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주변은 늘 특이한 느낌을 준다. 정확하게 발을 맞추어 걷는 군인들의 모습에는 긴장감이 감돌지만 광장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얼굴에서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라는 톈안먼 광장의 동쪽에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인 중국국가박물관(中國國家博物館)이 있다. 중국국가박물관은 중국역사박물관(中國歷史博物館)과 중국혁명박물관(中國革命博物館)을 기초로 건설되었는데 중국역사박물관의 전신은 1912년, 중국혁명박물관의 전신은 1950년에 세워졌다. 중국국가박물관은 2007년 3월부터 보수 및 확장공사에 들어갔다가 올해 3월 1일에 재개관하여 현재는 그 규모가 기존의 세 배로 확장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 되었다.
입구에 도착했더니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줄이 길었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딘 이유는 가방검사 때문이었다. 가방을 소지한 모든 사람은 입장 전 검사를 받아야 하고 가방에 음료나 껌, 칼, 라이터 등이 있으면 이것을 폐기하거나 짐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입장 후에는 공항검색대처럼 몸수색을 받는다. 30분을 기다려서야 들어간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도대체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할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찰나 전시되고 있는 전시회 표지가 눈에 띄었다.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상설전시 <고대중국展(古代中國展)>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였고, <부흥의 길展(復興之路展)>만이 전시를 시작한 상태였다. 그 밖에 <중국고대자기예술展(中國古代瓷器藝術展)>, 리커란(李可染, 1907~1989), 후앙저우(?胄, 1922~1997), 판톈셔우(潘天壽, 1897~1971)의 수묵화 특별전시, 독일 내 유명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을 베이징으로 옮겨온 <계몽의 예술展(啓蒙的藝術展)> 등이 열리고 있었다. 규모에 걸맞게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중국고대자기예술전>에는 청자부터 채색자기까지 여러 종류의 중국자기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었고, 그 아래층에서는 수묵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 수묵화 전시에는 중국에서 유명한 세 수묵화 화가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었는데 특히 후앙저우의 수묵화는 주로 위구르족, 타지크족 등의 소수민족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물화였다. 화려한 색감의 그림에는 그들의 전통문화가 묘사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과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가 등장한 그림도 있었다. 작품 <인민을 위해 온 힘을 바치다(鞠躬盡?爲人民)>에는 저우언라이를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쉰여섯 민족들이 즐겁게 웃고 있었다. 각 소수민족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데 그중 한복을 입고 있는 조선족도 몇 명 눈에 띄었다. 리커란의 수묵화는 주로 풍경화로 그는 중국 각 곳의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구이린(桂林),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쓰촨(四川), 베이징의 이허위안(?和園)중국황실의 여름별궁까지 중국의 절경이 모두 그의 수묵화로 다시 태어났다. 중국인들은 서양의 것과는 차별화되는 ‘우리의 것’인 수묵화에서 자신들과 ‘우리’ 민족의 얼굴, 그리고 고향을 찾고 있었다.

중국국가박물관의 가장 중심이 되고 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전시는 <부흥의 길전>일 것이다. 이는 상설전시로서 규모도 상당하다. <부흥의 길전>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현재까지 중국인민들이 어떻게 중국의 부흥을 위해 힘써왔는지에 대한 전시다. 또한 중국공산당의 역사와 개혁개방,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부흥의 길전> 입구에 들어서면 머리말과 거대한 조각이 보인다. 이 조각은 톈쿠이위(田奎玉)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하여(爲了中華民族的偉大復興)>라는 작품이다. 이 짙은 갈색의 조각에는 중국의 만리장성부터 오륜기, 우주선의 모습까지 중국의 굵직한 사건들이 담겨 있다. “중화민족은 근면하고 용감하며 지혜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위대한 민족으로, 인류문명의 진보에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대한 공헌을 했다”로 시작하는 머리말은 이 전시의 목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부흥의 길전>의 문을 여는 “아편전쟁 전의 세계와 중국”으로부터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이르기까지 전시는 여러 사진자료와 미술작품을 통해 당시 중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 끊임없는 고난과 시련의 역사 속에 중국인들은 항쟁하고 스스로의 민족의식을 각성했다. 더불어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신해혁명(辛亥革命)과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에 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의 성립과 그들의 혁명노선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일본의 중국 침략시기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일본의 중국인 살해현장과 위안부 사진이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결국 중국인들은 항일전쟁에서 승리했고, 이에 중국인들이 일본군에게서 빼앗은 전리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는 주로 경제, 정치방면에서 높아지고 있는 국민들의 위상이 소개되어 있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의 경제를 회복하고 국민들은 이 땅의 주인으로 민주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는 사회주의가 국가에 미친 영향에 대한 설명도 빠뜨리지 않고 있는데 <부흥의 길전>의 가장 마지막 전시는 “중국적 사회주의 노선을 걷다(走中國特色社會主義道路)”로 여기에서는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을 시작으로 각 지도자들의 공로와 업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홍콩(香港), 마카오(澳門) 반환부터 기술발전으로 이룬 농업 우량종 생산, 중국 최초의 우주인, 국방을 위한 무기발전상, 쓰촨 지진 이후 국민들의 모금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띄는 업적들을 사진, 모형과 함께 설명해놓고 있었다. 이 부분의 전시는 세계의 자본주의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중국식 사회주의가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부흥의 길전>은 중국인들이 근대 이후부터 계속된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현재의 위치에 다다를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눈앞에 시간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국민 모두가 힘써 이룬 부흥의 모습에 중국인들은 자부심을 느낀다. 오성홍기가 중국의 국기로 정해지기 이전의 다양한 중국국기들, 그 옆에 배치된 국가의 악보, 그리고 전시관 입구와 같은 형태로 출구의 벽에 새겨진, 쉰여섯 개 민족이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조각은 중국인들의 단결심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킨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가 민족주의 서사의 필독서가 된지 이미 오래다. 그중에서도 민족형성에 박물관이 기여한 역할은 자명하다. <부흥의 길전>을 빠져나가는 중국인들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때마침 적절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출구의 전자방명록이 그 증거다. “조국만세”, “우리 중화를 사랑합니다”, “위대한 조국”, “조국이 더 강대해지길 바라며” 등의 자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긴 메모에서부터 “일본놈을 타도하자”라는 격앙된 표현까지. 방명록은 그렇게 다시 한 번 <부흥의 길전>이 무엇을 이야기했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 중국은 박물관 등 공공시설의 무료개방정책인 삼관일참(三館一站)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미술관, 도서관, 문화관 등을 무료로 개방하자는 정책이다. 물론 실질적인 재정문제로 인해 모든 시가 이를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는 않지만 이러한 중국의 노력은 실제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국가박물관 역시 재개관 후 무료로 개방되면서 중국 각지의 관광객이 베이징에서 반드시 들르는 장소로 변모했다. 박물관의 역할은 관람객들에게 단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박물관의 전시가 애국주의 교육을 주요목적으로 할 때, 중국인들은 조국을 더욱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