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처음 개최된 싱가포르 비엔날레(Singapore Biennale)는 싱가포르는 물론 동남아시아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글로벌 예술계의 지형내로 끌어오면서 아시아와 서구 예술가들 간의 대화와 공동작업을 위한 장을 마련해왔다. 2011년 비엔날레는 63인의 전체 참여작가 중 스물일곱 명의 아시아 작가, 그중 아홉 명의 싱가포르 작가의 작품을 선보여 지난 비엔날레에 비해 아시아 작가들의 참여를 확대시켰다. 올해의 테마인 오픈 하우스(Open House)는 최종 결과물로서의 작품보다는 그 작업과정에 더욱 주목하고자 했으며, 이는 관람객들의 참여를 통해 작업이 전시 중에 계속 진행되거나 작가가 전시도중 재정비를 통해 재전시를 하는 방식, 그리고 전시를 주제별로 구분하여 서로 다른 네 곳의 전시공간에 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진행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관람객들이 지닌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을 넘어 개별작품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주제들로부터 공통적인 사회적 이슈를 제시하고자 하는 비엔날레의 취지와도 맞물려 있다.
2011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의 주제 ‘오픈 하우스’는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간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특히 네 개의 주요장소에서 분산 개최되었는데 각각의 장소가 주는 함의도 흥미롭다. 활용된 공간은 우선 싱가포르의 대표적 전시공간인 싱가포르예술박물관(Singapore Art Museum)과 싱가포르국립박물관(Singapore National Museum), 그리고 새 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폐쇄되었던 구(舊) 칼랑공항(Old Kallang Airport)과 1970년대 바다를 매립하여 새 도심지가 된 마리나 베이(Marina Bay)다. 싱가포르예술박물관에서는 주로 사적인 공간과 경험, 개인적인 수집품들, 개인의 선택과 개인성에 대한 전시를, 싱가포르국립박물관에서는 미디어, 기술의 발달, 소비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이 모두를 추동하고 있는 세계화와 그에 의해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분열 및 파장에 대한 단상을 보여주는 전시가 주를 이루었다. 구 칼랑공항에서는 공항이라는 장소성에서 떠올릴 수 있는 여행, 변화, 교환, 탈구(displacement), 이동과 긴밀하게 연관된 전시들이 주로 선정되었다. 한편 마리나 베이에서는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의 점유가 보여주는 차이, 그리고 싱가포르의 과거 역사적 경험과 미래에 대한 시선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전시들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각각의 전시공간은 전시작품들과의 직접적인 개념적 연계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령 일본작가인 타츠 니시(西野達)는 마리나 베이에 실제 설치되어 있던 상상의 동물 멀라이언(Merlion) 동상을 작가가 마리나 베이 내에 직접 설계하여 지은 호텔방 내부로 들여왔다. 멀라이언 동상은 정부가 싱가포르를 대표할 이미지를 고심하던 중에 찾아낸 상징물로 원래는 어느 공무원이 지어낸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공의 동물이었으나 현재는 국내외에서 싱가포르의 국가 이미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타츠 니시의 작업은 이러한 공적 아이콘을 사적인 호텔방 내부에 설치, 이를 다시 관람객들이 집단적인 관람을 통해 공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일정금액을 지불한 관객에게는 실제로 숙박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를 다시 사유화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마리나 베이에 항상 서 있던 동상을 일시적이지만 사적인 공간에서 점유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든 이 작업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람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비엔날레는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나 개인의 예술작품 소장과 같은 개인적 수준을 넘어 어떻게 작가들이 예술작품을 통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지에 더 주목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오픈 하우스 전시들의 주제를 세분화해 보면 소외, 환경문제, 시민사회, 소비주의, 매스 미디어, 세계화, 테크놀로지와 같이 현대사회의 삶의 조건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참여적인 작가들의 경향은 현대작가들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다수의 갤러리들이 사회참여적인 아트 스테이지 같은 전시에 참여하거나 중국의 유명작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와 같은 작가들이 인간의 조건에 대해 다루는 방식 등이 그 예다.
한편 각각의 세부주제 중에서 우선 개최장소인 싱가포르에 대한 시선을 담고 있는 작품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는 다인종, 다문화의 기반 하에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급속한 경제발전을 통해 아시아에서 서구자본주의와 소비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다. 마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어린 팝스타가 개인의 정체성을 탐구하거나 발전시킬 시간도 없이 세상에 알려져 그 외부적 요인들에 쉽게 휩쓸리는 것처럼, 싱가포르인들은 매스 미디어와 급속한 세계화의 여파에 휩쓸려왔다.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문화적 충격들을 걸러줄 수 있는 강한 국가 정체성이나 기저문화(base culture)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유동적이고 쉽게 부서지며, 위태롭기만 하다. 어떤 예술가는 이를 두고 싱가포르인의 정체성이란 바로 정체성 없음(no identity)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사회적 탈구라는 주제에 관한 작품들을 보면 싱가포르의 작가들과 다른 외국작가들 간에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 작가들은 주로 보존, 기억, 역사, 상상, 주변화, 인간소외, 흔적 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적 ‘뿌리 없음’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기원에 대한 노스탤지어적 시각으로 이를 다루고 있다. 그 예로 존 로우(Jonh Low)의 <아이브 빈 스카잉I’ve Been Skying>은 싱가포르를 가로지르는 강에 대한 사색을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끝이 없는 구름을 쳐다보는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싱가포르의 과거와 현재를 짙은 노스탤지어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에 비해 태국작가 나빈 라완차이쿨(Navin Rawanchaikul)의 <홍 룹 캑Hong Rub Khaek(Khaek Welcome)>은 태국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인도 이민자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필름에 담아내면서 그들이 가질 어떤 소외나 부유의 느낌을 애써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과거와 뿌리에 대한 작업이자 동시에 싱가포르 예술의 역사를 더듬는 싱가포르의 예술사가 코 느앙 호우(Koh Nguang How)의 <아티스츠 인 더 뉴스Artists In The News>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부터 싱가포르의 현대예술과 관련한 방대한 문서와 자료들을 수집해온 그의 아카이브는 대부분의 자료가 디지털 형태로 저장되는 정보화 시대에 유형의 역사적 기록물이 가진 함의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는 아카이브이자 개인공간인 그의 아파트 구조를 전시공간에 그대로 복제하여 가져옴으로써 공적인 전시공간을 사적인 기록보관소로 활용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기록물들을 통해 당시 시대로 불려가, 가령 1980년대의 현대예술이란 어떤 맥락에서 현대예술로 정의되고 있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그는 전시장 한 구석에 상주하면서 그 아카이브의 컬렉터로서 전시의 부분이 되기도 하고, 또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을 위해 전시현장은 물론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동시에 관람객과 소통함으로써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비단 올해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현대예술이 항상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바로 자아에 관한 것이다.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서 온 캔디스 브레이츠(Candice Breitz)의 <팩텀Factum>은 가족이나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한 개인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비교해 보여줌으로써 불안정한 정체성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이번 비엔날레의 작가들은 동시대 젊은 세대들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인터넷과 매스 미디어가 키운 이 세대들은 이미지, 셀러브리티(celebrity) 문화,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라는 어쩌면 매우 비현실적인 이상에 깊게 매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유투브(Youtube)에 작품을 직접 공개해 주목을 받은 라이언 트레카틴(Ryan Trecartin)의 <리서치 웨이츠Re’Search Wait’S>는 크게 설치된 네 개의 스크린에 다양한 디지털 효과와 빠른 편집으로 작가 자신과 친한 친구들의 분열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교차시켜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새로운 테크놀로지 세대의 분열적인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를 통해 과다하게 노출되고 있는 폭력성 역시 문제시되고 있는데 필리핀 작가 루이 코르데로(Louie Cordero)의 <마이 위My We>는 최근 필리핀의 가라오케에서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1915~1998)의 노래 <마이웨이My Way>를 잘 부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살해된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화했다. 함께 장소에 있던 사람이 노래 부른 이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이 사건은 현장에 있던 네 명의 인물과 가라오케 기계 그리고 시나트라의 반복적인 음악으로 재구성되었으며, 매우 희화적인 방식이지만 일련의 미국 드라마들이 신체절단과 폭력 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현대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어떻게 미디어의 폭력성에 무뎌지고 이것이 현실화되는지를 비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소비문화 역시 다양한 전시를 통해 다루어졌는데 글로벌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단상을 보여준, 코펜하겐(Copenhagen) 출신의 세 작가로 이루어진 수퍼플렉스(Superflex)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아마도 맥도널드가 싱가포르 전역에 수많은 매장을 갖추고 일종의 커뮤니티를 위한 장소로 활용됨으로써 싱가포르인들과 맥도널드 매장이 지니는 다양한 관계성 때문일 것이다. 수퍼플렉스의 필름작품인 <플러디드 맥도널드Flooded McDonald’s>는 실제 크기의 가짜 맥도널드 매장을 만들어 놓고 마치 홍수가 일어난 듯 물을 채우고 이를 통해 서서히 망가지는 매장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본주의에 의해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는 일상생활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2011 싱가포르 비엔날레에서 대부분의 작품들은 타자들 간에 경험되고 있는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넘어서려는 노력들을 담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술작품으로서의 시각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작품과 관객, 작품과 전시장소의 장소성 등 관계성에 대한 요소들도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정치, 경제적 위계에 따른 차이들은 물론, 사회문화적 구분을 가로지는 개인성,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들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과 재현이야말로 이번 비엔날레가 사회와 소통하며 관계 짓는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_ 金志允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