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성소수자에게 마냥 행복한 해는 아니다. 한국의 법에 명시된 대표적 성소수자 차별조항인 군형법의 ‘계간’ 조항에 대해 2001년 4월 헌법재판소는 합헌판결을 내렸다. 한자로 계간(鷄姦)닭의 성교은 남성 간의 성행위를 뜻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군대에서 남성 간 성행위는 ‘형법’으로 다스려진다. 이성 간 성행위가 ‘민법’으로 처벌받는 것에 견줘서도 명백한 차별이다. 이렇게 세상은 성소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여전히 허하지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올해 퀴어문화축제 슬로건은 퀴어 예찬(Viva Queer)다. 세상이 성소수자를 그렇게 대접해온 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축제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슬로건으로 택했다.
여름은 ‘퀴어’의 계절이다. 북반구가 뜨거워지는 5~6월이 오면 지구촌 곳곳에서는 ‘게이 퍼레이드’로 대표되는 퀴어축제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남반구 시드니(Sydney)의 마디그라 축제를 시작으로 서울, 모스크바(Moskva), 런던(London) 등으로 퍼레이드는 이어진다. 5월 28일 두 개의 도시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경찰이 금지한 모스크바의 퍼레이드에서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현역군인으로 커밍아웃해 ‘동성애자도 군 복무할 권리’를 얻는데 상징적 인물이 된 한국계 미국인 대니얼 최가 러시아 경찰에 연행됐다. 같은 날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도 퀴어문화축제의 꽃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2000년 연세대 안에서 행사를 시작하여 불과 수십 명이 촛불을 들고 연대 정문 앞으로 행진하는 것으로 조촐한 시작을 알렸던 퀴어문화축제가 이제는 수백 명이 참가하는 축제로 발전했다.

해마다 그렇듯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차량이 퍼레이드의 선두에 섰다. 차량의 위에는 여성의 드레스를 입은 게이 남성, 남성의 복장을 한 레즈비언 여성이 올라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구호를 외쳤다. 내년쯤에 동성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사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퍼레이드 차량에 올라 흥겨운 분위기를 돋웠다. “여러분, 커밍아웃은 축하할 일입니다!”, “저는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너무 즐거워요!” 관객 500만 명을 동원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을 만든 제작자인 그가 외치는 말에 함께 퍼레이드에 나선 동성애자들이 흥겨운 목소리로 반응했다.
퍼레이드에 누가 참여하는지 보면 오늘의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보인다. 또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올해의 의제’가 보인다. ‘모두를 위한 평등,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동성애자인권연대가 만든 펼침막이 행진하는 사람들 사이에 보인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논의된 지 서너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입법은 머나먼 현실을 반영한 문구다. 올해도 7할의 한국인, 3할의 외국인 참가자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성소수자단체는 한국인이 만든 단체가 아니었다. 1990년대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주한 외국인 레즈비언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포(SAPPHO)가 있었다. 유구한 역사적 이름 사포의 깃발을 들고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외국인은 건재하다. 어디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해마다 퍼레이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외국인의 국적과 인종과 외모는 날로 다양해지는데 올해는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를 몸에 두르고 참가한 남성도 보였다.
퍼레이드에 누가 참여하는지를 보는 것만큼이나 누가 구경하는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퀴어 퍼레이드 역사가 길어지면서 주변을 서성이는 ‘성소수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여전히 퍼레이드 행렬에 끼어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지나가는 행렬을 보도에서 지켜보는 성소수자도 적잖다.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이들의 성별과 연령이 다양해지는 것만큼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퍼레이드 행렬을 지켜보던 이들 가운데는 히잡(hijab)을 두른 무슬림 여성도 있다. 퍼레이드가 처음 열렸던 10여 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구경꾼’들이다. 이렇게 서울은 어느새 다문화 도시가 되었다.

한 시간 가까이 청계천을 따라서 행진했던 사람들이 출발점인 한빛미디어파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진 축제 축하공연. 올해는 ‘언니’가 돌아왔다. 사회자 구야는 최근 신곡으로 돌아온 김완선의 히트곡 <리듬 속에 그 춤을>에 맞추어 율동을 선보였다. 미국에 마돈나(Madonna)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완선이 있다. 그렇게 말해도 좋겠다. 1980~1990년대 서로를 몰랐던 김완선의 ‘게이팬’들은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이어서 게이만의 김완선 팬카페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전성기를 지나고 방송활동을 멈춘 다음에야 김완선은 뒤늦게 퀴어들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날 게이들에 의해 패러디되고 립싱크된 또 한 명의 여왕은 레이디 가가(Lady GaGa). 그녀의 분장을 한 드랙퀸(drag queen)여자 차림을 좋아하는 남자 동성애자, 여장 남자이 무대에 올랐다. 스스로 “퀴어들의 군대를 이끌고 주류로 진입했다”고 말하는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올해 5월 두 번째 앨범의 첫 노래로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를 발표했다.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트랜스젠더든” 상관없이 “나는 어떤 면에서도 아름답다”는 가사는 명백히 성소수자를 겨냥한 것이었고, 세계의 성소수자들은 기꺼이 반응했다. 예외적으로 무대에 한글로 번역된 가사의 자막까지 나온 이 노래는 올해 게이들의 노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 게이음악 찬송가가 만들어진다면 1장 1절 노래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의 다음쯤에 나올 음악이 되지 않을까. 이날도 이 노래의 후반부는 ‘떼창’으로 변했다. 이렇게 스스로 참여자가 되고 함께 즐기는 사람이 되는 퀴어 퍼레이드는 지나온 1년 동안의 성소수자 문화를 결산하는 의미도 지닌다.
잠시 만나서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함께 사는 것을 꿈꾸는 커뮤니티로의 진화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친구사이가 광장에 전시한 퀴어타운 인 코리아(Queer Town In Korea) 프로젝트는 서구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게이 커뮤니티’를 한국에서 그려보는 작업이었다. 남성 동성애자인 친구사이 회원들이 종로, 이태원, 성미산의 실제 공간에서 어떻게 성소수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가 가능할지 지도를 그리고 모형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100여 개의 게이바가 몰려 있는 종로 낙원동 중심에 LGBT (Lesbian·Gay·Bisexsual·Transgender)센터가 들어서고 성소수자의 상징물인 핑크트라이앵글 타워가 세워지는 입체모형이 전시됐다. 여기에는 동성결혼이 가능한 웨딩홀, 성소수자들이 함께 만드는 그룹홈의 꿈도 담겼다. 이태원의 성소수자 벼룩시장, 마포 성미산의 우정여관 같은 구체적 계획이 담긴 모형도를 만들기 위해 성소수자들은 한 달에 걸쳐 간담회를 갖고 마을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제 한국에서도 주말에 잠시 모였다 사라지는, 명멸하는 공동체를 넘어 일상을 공유하는 성소수자의 주거환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퀴어문화축제는 퀴어의 오늘을 넘어서 미래를 본다. 성소수자들의 생활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퀴어문화축제가 아니면 어떻게 알까?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경기도에서 성소수자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시도가 있다는 사실을 여기가 아니면 어떻게 알았을까? 심지어 스스로를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무성애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알리는 대자보를 한국에서 볼만한 장소가 또 있을까? 퀴어문화축제의 꽃인 퀴어 퍼레이드는 한나절의 시간으로도 한국사회의 숨겨진 진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러나 퀴어 퍼레이드가 퀴어문화축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축제는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2주 동안 곳곳에서 이어졌다. 제11회 서울 LGBT 영화제가 6월 2~8일 서울 종로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다. 김조광수씨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오면서 LGBT 영화제는 더욱 탄탄해진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동성결혼과 관련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민투표를 다룬 다큐멘터리 <모르몬 발의안 88: The Mormon Proposition>(2010)부터 게이와 친한 여성흔히 패그해그(Fag-Hag)라고 한다의 고민을 담은 극영화 <바이올렛의 취향Violet Tendencies>(2010)까지 동성애자의 상징인 무지개처럼 다양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선보였다. 이렇게 퀴어문화축제는 ‘어디에도 있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여기에서도 확인하는’ 행사다. 해마다 활기를 더하는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성소수자가 궁금한 이성애자를 위한 축제로 내년에도 여러분을 기다린다. 

이미지 제공_ 퀴어문화축제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