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앙(李昻)의 소설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에 반가와 선뜻 서평을 맡았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그 명성을 들어왔으면서도 읽어볼 기회를 갖지 못하던 터다. 뒤늦은 한국상륙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동시대 정상급 타이완문학을 접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리앙은 타이완에서 래디컬(radical)하기로 알려진 여성작가다. 1983년 <롄허바오(聯合報)> 중편상을 획득한 그녀의 대표작 「남편 죽이기(殺夫)」는 계엄체제와 엄격한 유교이념의 지배 아래 있던 타이완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작가지만 그녀의 작품은 섬세함이나 부드러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투박하고 거친 필치로 성(性)과 정치의 성역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오랜 분투를 거쳐, 이제 그녀는 타이완 평단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귀신(看得見的鬼)』 또한 성과 정치에 관한 이야기이다. 16세기 이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스페인, 청(淸)왕조, 일본 식민지에 이어 쟝제스(蔣介石, 1887~1975) 국민당 정부의 40년에 걸친 독재라는 ‘슬픈’ 역사 속에서 성과 정치는 자기를 드러내는 언어로서 타이완의 신체에 단단히 부착되어 왔다. 식민자(남성)에 유린당한 식민지인(여성), 이런 우언(寓言)적 재현이 상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상투성이라는 비판에 합당한 무게를 싣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리앙은 소설의 주인공을 여성이 아닌 여귀(女鬼)로 세움으로써 이런 상투성을 오히려 더 전면화했다. 『눈에 보이는 귀신』은 억울한 죽음으로 원귀가 되어 윤회의 회로에도 들지 못한 채 수백 년간 타이완 해협을 떠도는 바다귀신의 이야기다.

총 다섯 개의 귀신이야기로 구성된 이 소설의 정수는 단연 다섯 번째 「나라의 서쪽-여행하는 귀신」이다.(첫 장을 읽다가 길을 잃은 독자라면 마지막 장부터 먼저 읽기를 권한다) 각 장의 제목이 ‘나라의 동쪽’, ‘북쪽’ ‘중심’, ‘남쪽’, ‘서쪽’이지만 사실 모두가 타이완의 서쪽 바다에 면한 장후아(彰化) 현의 항구도시 루강(鹿港)작품에서는 루청으로 나온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주민을 논외로 한다면 타이완은 명(明)대 이래 중국대륙의 민난(?南) 지방, 즉 푸(福建) 성의 남부 세 도시, 취안저우(泉州), 장저우(?州), 샤먼(厦門)의 이민자가 세운 나라다. 루강은 취안저우에서 뱃길로 가장 가깝고, 또 청대 건륭(乾隆) 가경(嘉慶)년 간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물이 깊고 항구가 넓어 대륙과의 무역항으로 번영을 구가했던 곳이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아름다운 항구도시 루강의 화려한 시절과 쇠락의 과정이 원귀의 시선 속에 파노라마처럼 길게 펼쳐진다.

「나라의 서쪽-여행하는 귀신」은 루강의 유복한 상인의 딸이 취안저우에서 건너온 준수한 외모의 청년과 결혼했으나 곧 배신당하고 잔혹하게 살해된다는, 익숙한 고사(故事)로 시작된다. 원귀가 된 여귀는 어느 지관(地官)의 법력을 빌려 천신만고 끝에 바다를 건너 취안저우에 도달한다. 여행의 목적은 변심한 남자를 찾아 복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의 이야기인지라 서술은 복수(複數)적이고 미로처럼 반복하여 앞뒤를 오간다. 여귀는 복수에 성공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여러 가지 연고로 혼백이 흩어져버렸을 수도 있다. 그런 원귀가 수천수백이니 그 복수의 여정도 다양할 터. 아무튼 주인공 귀신은 취안저우 선착장에 성공적으로 도달한다. 그리고 남자를 찾아내 복수를 마친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비로소 여행의 본질이 다른 데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될 것이다. 처음 루강의 피안(彼岸), 취안저우에 도달한 여귀는 너무나 익숙한 거리이름과 지명에 깜짝 놀란다. 그것은 루강이 취안저우 이민자들의 고향을 본떠 만든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한 기억을 믿고 거리를 활보하던 여귀는 곧 갈피를 잃고 만다. 취안저우는 루강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곳은 같은 곳이지만 다른 곳, 금생(今生)의 피안이자 내세까지 지속될 고통의 바다였다.
복수와 원한, 복수는 마쳤어도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복수는 사실 루강이(혹은 타이완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귀신』이 집필되던 시기(2001년~2002년)가 외성인(外省人) 정권 국민당의 장기집권이 종결되고 민진당 시대가 열리던 시점이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인 ‘복수’를 대륙을 향한 적대감으로만 읽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해석이다. 취안저우와 루강 사이를 떠도는 수많은 원귀들은, 대륙과 타이완이 금생에서 내세까지 고통과 슬픔의 인연으로 인해 끊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그 점에서 『눈에 보이는 귀신』은 푸성과 타이완 민간전설 속의 수호여신 마주(?祖)에 대한 전복적 다시그리기라 할 수 있다. 고통과 원한의 세월에 벼려져 마침내 무아(無我)라는 지고상태에 이른 여귀들이 지금도 여전히 소란스런 양안해협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