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으로 북한을 이탈해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사람들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남한에 들어온 사람이 19,535명, 이 중 90% 이상이 1999년 이후 매년 1,000명 이상씩 입국한 숫자통일부 2010년 8월 자료다.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제3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인이 2000년 추정통계로 이미 10만 명에 육박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보였으니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얼마나 많은 탈북인들이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떠돌고 있는지, 그 많고 다양한 사연들을 짐작만 할 뿐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당연히 커졌고, 다큐멘터리, 수기, 소설, 영화, 공연 등으로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필자 역시 1990년대 후반 이들에 관한 중단편소설을 열 편 정도 발표한 바 있다.
『로기완을 만났다』의 처음에 이니셜 L로 소개된 ‘로기완’은 21세기의 탈북인으로 특이하게도 벨기에에 밀입국해 산 스무 살 청년이다. 출생지는 함경북도 온성 제7작업반. 어머니와 함께 중국에 숨어 지내다 어머니의 사고사 이후 어머니의 시체를 팔아 마련한 650유로한화기준 약 100만 원를 품고 브뤼셀(Brussel)까지 갔다. 온갖 위기와 가난과 모멸을 견디며, 브뤼셀에 정착하는 과정이 한 시사잡지에 수기로 소개된 것을 실시간 ARS 후원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방송 프로그램의 작가(나)가 읽고 감명을 받는다. ‘나’는 이 방송에 출연한 가난한 여고생 윤주에게 후원금을 많이 모아주려고 기한을 늦추다 그만 윤주의 혹을 악성종양으로 키우고 만다. 충격을 받은 나는 서로 연정을 키워가던 PD ‘재이’도 외면한 채 로기완을 추적하러 브뤼셀로 향한다.
이 소설은 이렇듯 탈북인 로기완의 수기를 밑바탕으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을 답사해 그 삶을 추적해 가는 방송구성작가 ‘나’의 20여 일간의 행적을 그려나간다. 즉 이 소설은 한 탈북인의 유럽 표류기이자 동시에 갑자기 삶의 진로를 잃고 좌절한 한 작가의 ‘글 쓰고 사는 삶’에 대한 의미 재탐색 과정으로 표면화되어 있다. 탈북인의 고난의 행로를 다루되 여느 탈북인 스토리에서 보는, 탈북 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실상이나 그 연장에서 이해될 세계사적인 변동 또는 남북한의 이질적 정황 등에 대한 자연스러운 정보제공은 이 소설에서 표나게 만날 수 없는 편이다. 이 소설이 내재화하고 있는 핵심은 자신의 뿌리를 잃고 생의 끝에 몰린 사람의 내면과 철저한 동일시를 경험함으로써 그 밑바닥에서부터 길어 올려지는 삶의 근원적 진정성에 있다. 작가 조해진이 보기에 그런 것 없이는 세상 사람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고 세상 사람에 대한 진정한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진정으로 알려는 노력은 창작의 기본자세이자 그 자체로 창작되기도 한다. 남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인간다운 삶의 기본자세이자 그 자체로 진정한 삶이 되기도 한다. 그 점에서 보면 로기완이라는 극단의 인생을, 그 사람의 시공간을 자기 것으로 체험해 진정으로 느끼려는 ‘나’의 행동은 진정의 삶과 글을 얻고자 한 사람의 순결한 의지의 표현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삶과 스토리인 셈이다. 이웃을 사랑하자는 사람들의 파렴치한 자기 이기주의, 사랑받을 대상의 기분은 고려하지 않고 온갖 사랑의 언어로 치장하며 자기만족을 일삼는 가짜 글이 판치는 시대에 이 작품의 시사점은 의외로 근원적이고 단순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가 택해서 추적한 인물 로기완은 북한에 살 수 없어 탈출한 탈북인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가 겪은 일들은 고스란히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인권유린적 실상’이며, 그 극단의 현실에서 스스로 벗어나서도 국제적 규약과 역학관계의 그늘에서 여전히 ‘비인륜적 고통’에 빠져 허덕이는 탈북인의 고난들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로기완과 내재적 동일시를 경험하고자 하는 ‘나’의 사연(브뤼셀에 거주하면서 로기완의 정착에 힘을 써준 의사 박이 간암말기 아내의 안락사를 도운 사연 등을 포함해서)은 로기완의 탈북유민 스토리에 비해 어쩔 수 없이 변두리로 밀려나 우연한 개인사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