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속 세상은 서바이벌 예능의 천국이다. 평범하게만 보였던 사람들이 비범한 재능을 다투며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참가자일수록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기에 좋다.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최고로 우뚝 솟는다는 미담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영웅신화의 전형이다. 신(新)시대의 영웅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서바이벌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는 순간, 대중은 대리만족을 느끼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인기는 미디어 현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서바이벌 예능은 성공을 향한 개인의 고투를 예찬하는 시대정신의 기표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열정까지도 경쟁의 소재로 삼아버린 경쟁사회의 징후다. 경쟁을 위한 개인의 열정은 미디어에서 한껏 치장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이 글을 작성 중인 지금 이 순간에도 청계광장에서는 대학생들이 참여한 ‘반값등록금’ 촛불집회가 한창이다. 교육수준이 미래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장하는 한국사회에서 고비용의 등록금 구조는 대학생의 어깨를 짓누른다. 열정을 내면화하길 강요당하는 젊은이들의 열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에 허덕여야 하는 모순이야말로 텔레비전 밖의 진짜 현실이다.
사회평론가 한윤형, 칼럼니스트 최태섭, e-스포츠 칼럼니스트 김정근이 공동으로 지은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이하 『열정은…』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산발적으로 드러났던 비극적인 징후들-인디 뮤지션,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 시나리오 작가의 잇따른 죽음-이 실은 동일한 자궁에서 배태한 문제임을 고발한다. ‘당신이 선택한 직업이니까’, ‘당신은 최소한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당신의 꿈을 좇아 최선을 다해라!’라는 구호로 젊은이들의 열정을 미화하는 시대에 누군가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남은 자에게도 세상은 녹록지 않다. 경쟁이 제도화된 현대사회에서 열정적인 노동은 삶의 대오에서 언제든지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을 씻어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열정은…』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징후 그리고 비극이 남긴 정신적 상흔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가운데 읽어야 할 책이다. 책이 완성되기 전 고(故) 최고은 씨의 사망소식에 연민보다 두려움을 느꼈다는 저자들의 고백은 이 책이 저격하는 구조의 모순이 이 순간에도 차곡차곡 그 병폐를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유동적 현대(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성(modernity) 규명에 천착해 온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Wasted Lives : Modernity And Its Outcasts』(2008)에서 현대화, 질서구축과 경제적 진보, 무엇보다 지구화(globalization)가 수반하는 잉여적 존재를 가리켜 인간쓰레기(human waste) 혹은 잉여인구(the superfluous population)라고 명명했다. 바우만에 따르면 경제발전은 ‘교역조건’, ‘시장수요’, ‘경제압력’, ‘생산성’, ‘효율성’ 등을 지향하고 인간의 노동을 시야에서 지워나가며 국가는 “자유시장의 논리로부터 야기되는 취약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해결책이 공적차원이 아닌 사적차원에서 대처되도록 방치한다. 현대화의 불가피한 산물인 잉여인구는 생물학적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힘겨운 삶을 연명하는 가운데 자존감을 박탈당하는 한편 불확실성 속에서도 일을 즐기라는 전 지구적 규율을 내면화한다.
바우만이 1970년대에 태어난 영국의 X세대에 빗댄 ‘잉여인구’는 지금 이 순간 한국사회에서도 결코 낯선 존재가 아니다. 『열정은…』의 저자들도 그 현상을 간파했고, 우석훈과 박권일에 의해 ‘88만 원 세대’라 불리기도 했던 잉여청년들에게 다시 한 번 돋보기를 들이댔다.
저자들에 의하면 전지구적 신자유주의화, 즉 금융산업의 영향력 확대, 노동의 유연화, 각종 규제의 완화 등 사회변화를 동반하는 경제구조의 변화가 IMF 이후 한국사회에 보편화되면서 노동구조 역시 급격히 재편되었다고 한다. 특히 자본의 효율성을 우선시한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불안정한 지위의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증가했다. 현재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영세 자영업자와 저임금근로자들의 존재가 그 증거다.(P.199) 노동자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자본가’의 지위로 몰린 자영업자 혹은 국가가 안정된 삶을 보호해 줄 의무를 포기하는 대신 불안한 자유를 부여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바우만이 가리킨 인간쓰레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난을 개인의 무능함으로 탓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의 원인을 이십대의 도전정신과 패기부족으로 돌리는 보수적 논법은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은폐하는 전략의 전형이다.
이에 더하여 열정노동을 예찬하는 또 하나의 구조가 IMF시대 이후 형성되어갔다. 본문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시절의 소프트파워 육성정책, 즉 지식과 문화산업 육성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담론과 제도가 확산되면서 IT벤처와 영화를 필두로 한 정보기술 및 문화관련 산업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한 노동행위가 아닌 소비행위와 여가에서 시작된 이들 분야는 현장체계가 어느 정도 정립된 이후에도 여전히 ‘즐길 수 있는 일,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을 바꾸지 못했다. 영화현장에 투입되는 스태프의 1년 연봉이 1,000만 원 내외라는 근래의 조사결과는 노동을 미화하는 가운데 삶을 방관하는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다. 『열정은…』의 3장에서 꼬집는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미화정책은 2장에 소개된 다양한 청년들의 실제 노동현장과 그들의 삶을 구성하는 굳건한 토대로 작용해 왔다. 프로게이머, 운동선수, 영화계·IT업계·서비스직종 종사자, 언론사 입시생, 창업자, 시민단체·노조·정당 상근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구술되는 개인의 삶은 놀랍게도 서로 닮아있다. 유사도덕으로 제도화된 ‘열정’은 대부분 노동현장에서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평가하는 잣대로 작용한다. 그러나 극심한 경쟁구도에서 이들의 열정은 단지 저임금으로 고도의 생산성을 산출하기 위한 유인책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게이머, 운동선수, 연예인을 ‘꿈’꾸는 청년들의 노동은 근로환경의 악조건 속에서 착취되지만 별다른 자아실현의 수단이 없는 이들은 현실을 감내한다.(P.73) 소수만의 성공이라는 보상을 독식하는 이들 업계에서 짧은 생명력과 삶의 탈락에 대한 위기감이 극심한 것은 사실이다. 저자들이 지적하듯이 e-스포츠 승부조작(P.67)과 쇼트트랙 순위조작(P.71) 사건은 그러한 위기감이 왜곡된 방향으로 분출된 사례다. 운동선수나 프로게이머만큼이나 IT업계도 생명력이 짧기는 마찬가지다. 대기업 우위의 분배구조가 만연한 IT업계에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강조하며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담론은 개발자인 당사자들에게는 공허한 외침이나 다름없다.

노동현실의 이러한 사정은 취업준비생조차 불안해하는 미래다. 취업예비군 양성기구로서의 명함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많은 대학에서 재학생들은 더 나은 ‘스펙’ 쌓기에 골몰한다. 불안정한 노동에 내몰리지 않기 위해 대기업 입사를 ‘꿈’꾸는 청년들은 자신의 능력을 계열화시키는 스펙에 한 줄이라도 더 보태기 위해 면접시험 스터디그룹을 조직하고(P.44) 꿈과 무관한 창업동아리나 창업지원센터에 들어가며,(P.139) 심지어 비정부기구에 인턴으로 참여한다.(P.158) 공적영역에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언론계 직종은 소위 학벌 높은 대학생들에게 매력적인 직종이다. 언론계 취업희망자들은 열정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면접관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자체면접을 통해 스터디구성원을 충원하며(P.116) 대학은 저널리즘스쿨을 만들어 학생들의 ‘언론고시’ 합격을 돕는다.(P.114) 대학생 개개인의 정체성이 취업에 필요한 외적조건, 즉 스펙(specification)으로 대체되는 가운데 그들은 무한경쟁의 노동현실 속에서 특정사양(specification)을 강요받는 기계나 진배없다.
열정과 꿈은 좀처럼 부정적인 함의를 갖지 않는 용어다. 그러나 『열정은…』에서 까발리는 ‘열정’과 ‘꿈’은 열악하고 슬프다. 그것은 개인의 나약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의지를 감시하고 조절하며 강요하는 자본주의, 그리고 그러한 자본의 힘으로부터 개인의 삶을 보호해야하는 책무를 방기한 정치 때문이다. 그러나 ‘열정노동’이 모순된 슬로건이라는 적나라한 까발림이 통쾌할 수만은 없다. 뜨거운 열정을 통해 자아를 실현해보려는 누군가의 꿈에 찬물부터 끼얹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정은…』에서는 원인의 적시처럼 명확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 비록 완벽한 결론만큼이나 치열한 문제분석이 갖는 의의를 부정할 수 없지만 ‘사태를 직시하고 고민해보자’는 안일한 결론은(P.258) 의욕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저자들의 분석이 옳다면 열정의 온도가 더 식어버리기 전에 개인의 노동을 개인의 열정에 귀속시킬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뉴스에서는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