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온화한 햇살 속에서 지진은 일어났다. 도쿄(東京)의 자택에 있던 필자 역시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었던 격한 요동에 주변의 가구를 붙잡고 서있는 것이 전부였다. 급하게 TV를 켜니 진원지는 미야기(宮城) 현 연안, 도호쿠(東北)에서 칸토(關東)까지 이르는 범위로 매우 강한 진동이 관측되고 있었다. 다행히 도쿄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정전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수도, 전화를 비롯한 인터넷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휴대전화만은 발신제한 때문인지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번만큼은 예삿일이 아니다-그런 긴장감이 연안부 사람들에게 피난할 것을 간곡히 연호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톤에서부터 느껴졌다. 화면에서는 해안가 지역의 모습에서 각 지역으로 전환될 때마다 수위가 뚜렷하게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 시간 후에는 쓰나미가 연안부의 마을을 쓸어 넘어뜨리는 모습과 시커먼 물이 맹렬한 스피드로 논을 집어삼키는 영상이 연이어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영상기술의 진화와 발신기술의 다양화에 의해 정보공유의 수단도 최근 몇 년 사이 현격히 증가하여 도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트위터(Twitter)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거나 적극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 과다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사고에 대한 상황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맹렬한 불안에 휩싸였다. 뿐만 아니라 사고 후 정부의 대응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은 물론, 세계 각지로부터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실추시켰기에 개인적으로도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이번 재해를 겪고 난 뒤 일본예술계에서의 반응도 가지각색인데다 예술이라고 한 마디로 말해도 그 분야가 다양하기에 본문에서는 주로 현대미술 영역에 초점을 맞춰 재해 후의 활동소개와 현 시점에서의 상황을 전하려고 한다. 재해로부터 100일이 지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이를 글로 전달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나 가능한 정확하게 전하려 한다.

여파-도쿄의 예술계
지진이 발생하고부터 일주일간은 원자력발전사고, 계획정전1), 음료수의 부족 등 매일이 믿을 수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었으므로 우리들의 일상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도쿄 내에서만 해도 수많은 미술관들이 관내점검을 이유로 임시휴관 조치를 취하는 곳이 많았고, 모리미술관(森美術館)은 3월 18일로 예정되어 있던 전시회를 일주일정도 미루어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당초 4월 1일로 예정되어 있던 아트페어도쿄 회의 역시 3월 22일 도쿄 도(都)의 요청으로, 회의장이었던 도쿄국제포럼이 재해자 및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관련 피난자 시설로 지정됨에 따라 부득이하게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2)
이외에도 중지 및 연기 통보가 잇달아 날아 들어오는 한편, 동시에 자선전이나 옥션, 이벤트 등의 수익을 의연금으로 기부하는 활동 또한 확대되어 나갔다. 대표적인 행사로는 토미오 코야마 갤러리(小山登美夫ギャラリ?)의 키요스미 갤러리 콤플렉스(?澄ギャラリ?コンプレックス)에서 개최된, 동일본 대지진 재해지역 지원을 위한 ‘키요스미 사일런트 아트 옥션’http://www.kiyosumicomplex.com이 있다.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를 시작으로 빌딩 내 각 갤러리 소속의 예술가들이 연대하여 총 125점의 작품을 판매, 최종적으로는 약 4,000만 엔한화기준 약 5억 4,250만 원에 가까운 수익을 국제 NGO 재팬 플랫폼에 기부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중장기적 지원활동을 표명하는 여러 단체들도 활동을 개시하여 계속적인 기부와 재해지에서의 워크숍 및 이벤트 개최 등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재해 전부터 지방주재의 예술가나 아트NPO와 제휴하여 프로그램을 전개해오던 단체들 역시 착실하게 지원을 해나가고 있다. 그중 NPO법인 아트NPO링크가 만든 ‘아트NPO에이드’의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NPO법인 아트NPO링크는 설립 이래 전국 각지에서 아트NPO의 전국회의나 문화정책제언 등을 펼치며, 지금까지 가꿔온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해지역의 예술가들과 아트NPO가 하루라도 빨리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1. 기부의 접수 2. 활동의 소개 3. 표현에 필요한 도구제공 4. 코디네이트를 하고 있다. 한편 웹사이트에 게재된 미술가 후지이 히카루(藤井光)의 재해지역에 있는 관계자들의 인터뷰 영상 <3.11 아트 도큐멘테이션>http://www.youtube.com/user/artnpoaid에서는 아름다운 영상 속에 피해상황과 재해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위와 같은 활동에 보다 힘을 실어주는 공익재단법인 기업메세나협의회의 ‘BFund’일본대지진 예술·문화에 의한 부흥지원펀드(http://arts-fukkou.blogspot.com)도 만들어졌다. 벌써 제2회 조성단체들이 선정되어 스물다섯 단체 앞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원활동이 공적·민간기관을 불문하고 확대되기를 기원한다.

재해지에서는-미래에 씨뿌리기
다음은 재해지가 된 도호쿠 지역의 상황이다. 도호쿠 지역의 중심도시는 인구가 102만 명이 넘는 미야기 현 센다이(仙台) 시다. 그 중심지에 2001년 오픈한 ‘센다이 미디어테크’(재)센다이 시 시민문화사업단 운영는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건축가 이토 토요(伊東豊雄)의 설계로 지어진 매우 유명한 건축물인데 지진으로 인해 건물 7층에서 천장의 일부가 무너지는 재난을 당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외의 피해는 적은 편이어서 5월 초에는 3층의 시민도서관이 재개장했으며, 동시에 여러 주최사업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3월 11일을 잊지 않기 위한 센터’의 개설인데 이곳에는 스튜디오와 방송국이 있어 시민과 전문가 그리고 스태프들이 협동하여 복구 및 부흥으로의 과정을 독자적으로 발신, 기록하며, ‘재해복구 아카이브’로서 기록을 보존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미디어테크 1층 오픈스퀘어를 활용, 재해복구와 지역사회, 표현활동에 대해 서로 모여 담화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대화나 공개회의, 시민단체의 활동보고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나갈 ‘생각하는 테이블’이라는 기획도 시작한다. 또한 편하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통해 복잡하고 조급해지는 스스로의 생각들에 대한 어려움과 재미를 체험하는 철학카페(てつがくカフェ)의 개최와 이바라키(茨城) 현 미토(水?) 시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나카자키 토오루(中崎透)의 시민참가형 장기워크숍 ‘재활편집지원실’도 펼쳐진다. 한편 3년 전부터 미야기 현 나토리(名取) 시의 약 1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집촌 키타카마(北釜)에 단신으로 들어가, 그 지역의 전속 카메라맨으로서 지역의 다양한 행사들을 기록하며 작품제작을 하는 사진가 시가 리에코(志賀理江子)의 연속강연 등도 개최된다고 한다. 그녀의 강연은 2012년 11월 미디어테크에서 개최되는 개인전의 사전이벤트로서 애초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기는 했지만 이번 지진으로 인해 그녀 자신도 쓰나미의 피해를 겪고 피난소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사진이나 자료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6월 12일 열린 첫 번째 강연에서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의 착지점이 전부 지진과 쓰나미만은 아니라고 밝혔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개인전을 향해가는 모습 그리고 작품들까지, 이 모든 것들을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센다이에서 차로 30분정도 떨어져 있는 시오가마(?釜) 시의 아트스페이스 빌드 플루가스(BIRDO FLUGAS)http://www.birdoflugas.com의 활동도 소개하고 싶다. 시오가마는 항구도시 임에도 불구하고 연안부 중에서는 비교적 피해가 적은 지역이었는데 그럼에도 건물 1층 부분은 보통여성의 키 정도까지 침수되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빌드 플루가스는 2006년에 오픈한 새 건물이었기 때문에 1개월 후 방문했을 때는 쓰나미의 영향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대표 타카다 아야(高田彩)는 이미 예술가들의 협력을 얻어 피난소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문구류를 전하는 활동이나 물품정리에 사용되는 박스에 작가들의 그림을 그려 보내는 활동을 전개해왔다. 또한 피난소와 가설주택을 돌면서 2007년부터 진행하고 있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출판워크숍 토비다스 빌드!(飛びだすビルド！)도 재개했다.

이밖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재해지역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그 속에서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예술활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도 전하고자 한다. 23세의 젊은 예술가 키타자와 쥰(北澤潤)은 후쿠시마 현 북부에 위치한 신치마치(新地町)라는 곳에서 지난 4월부터 재해 자원봉사센터 일원이 되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재해자들의 요구들 속에서 가설주택의 살롱담당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지역사회에 다가갈 수 있도록 섬, 마을, 집, 주민을 키워드로 소소한 일상들을 만들어 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으며, 이제까지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마이타운마켓’http://mytownmarket.blogspot.com이라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은 가설주택 내에 시장을 여는 활동인데 집회소를 거점으로 시장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깔개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여 주민들과의 대화로 출점자를 모집, 조금씩 모여든 출점자들과 함께 마을의 파트(사무소, 우체국, 학교, 채소가게, 찻집, 파출소, 이발소, 영화관 등)를 생각하여 마이타운마켓 내 가게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첫 번째 시장은 7월경 열릴 예정이며, 필자도 그 모습을 보러 방문할 예정이다.

3331 아츠 치요다와 재해
3331 아츠 치요다(3331 Arts Chiyoda)3)는 재해 직후 3331 입주단체를 중심으로 한 주변 측근들에 요청하여 ‘긴급 오픈미팅-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을 개최했다. 갑작스런 공지에도 불구하고 시설이용자들을 위주로 약 60명 정도가 참여, 저마다 지금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3331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결과 3331의 공간을 예술가와 디자이너 등 크리에이티브 표현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 재해 부흥지원을 위해 이용하도록 했다. 이어 4월 2일과 3일에는 체육관을 사용하는 이벤트를 여는 한편, 7월 10일까지의 전시 스케줄을 전부 연기하여 ‘동일본대지진 부흥지원 아츠 액션 3331’이라는 명칭 하에 예술과 디자인 등으로 부흥지원 활동을 전개하는 이들에게 메인갤러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오는 9월부터 시작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참가가 결정되어 동일본대지진과 관계된 전시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상이 동일본대지진 이후 지난 3개월 간 일본예술계에서 나타난 상황의 일부다. 지면상이라는 이유로 미처 소개하지 못한 많은 활동들이 지금도 전개되고 있으며, 아직도 부흥은커녕 생활전선의 복구마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지역도 많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계속해서 한국의 많은 분들로부터 중장기적인 지원과 주목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간략한 보고로서 드리고자 한다.

1) 롤링 블랙아웃(Rolling Blackout). 전력수요가 전력공급능력을 상회하여 대규모정전에 이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력회사가 일정지역마다 전력공급을 순차적으로 정지·재개하는 것.
2) 연기일정은 2011년 7월 29일에서 7월 31일 사이에 결정된다고 한다.
3) 2004년 폐교가 된 구(舊) 렌세중학교를 개수하여 2010년 탄생한 공설민영(公設民?)의 아트센터. 갤러리와 카페, 크리에이터의 사무소 등이 입주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 또한 3331 아츠 치요다의 매력이다. 이런 환경을 살려 스쿨링 프로그램 아츠 필드 도쿄(ARTS FIELD TOKYO)와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사업 에어 3331(AIR 3331) 등도 전개하고 있다. 많은 이벤트와 전람회를 통해 여러 표현을 발신하는 3331은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 각지와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하여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예술의 거점을 지향하고 있다.(http://www.3331.jp)

번역_ 裵善英 도쿄예술대학교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