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아시아라는 규정
아시아 대륙의 서쪽에 이른바 중동(中東)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중동은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아시아 주의 서쪽 끝에 위치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이곳을 지칭하는 명칭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이 중부 동쪽지대라는 뜻의 중동이다. 한편 서남아시아라는 명칭이 당연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을 무작정 따라가지 않고 버텨보겠다는 뜻이 읽히기 때문이다. 중동 또는 근동(近東)은 서유럽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렇고, 우리나라에서 보면 중동은 엄연히 서쪽이 된다. 우리가 다시 스스로를 기준으로 내세워 그곳을 서방이라고 불러야 할 것까지는 없겠다. 아무튼 아시아 대륙의 서남쪽에 위치하니 서남아시아라는 규정은 객관적 명명을 향한 중요한 진전이다.
서남아시아에는 여러 민족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 살고 있다. 이 무대에서 때로는 다투며 갈등하고, 때로는 교류하며 협동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민족으로 아랍인, 이란인, 터키인, 이스라엘인, 쿠르드인 등이 있다. 지역을 조금 더 넓혀보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도 서남아시아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이들의 언어 가운데 아랍어를 전공한 필자는 아랍어로 쓰인 현대문학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아랍의 문학이 풍요로운 성취를 올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타 언어의 문학 또한 그에 못지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감히 언급하지 못하는 것은 이 글의 한계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아랍문학
아랍인은 서남아시아의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광활한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아랍어를 사용한다. 서남아시아 아랍 국가들은 동쪽으로 이란, 서쪽으로 이스라엘, 북쪽으로 터키와 접해 있다. 아랍인들은 언어, 문화적으로 이 세 나라와 영향을 주고받아왔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길고 문화적으로 깊은 유대는 북아프리카의 아랍인 형제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아랍의 현대문학을 논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분리하는 것은 다시 서남아시아 아랍문학의 중요한 뿌리마저 희생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와 아랍 각국이 정치와 경제적 측면에서 관계가 강화되는 속도와 비교할 때 문화, 예술적 측면에서의 교류는 여전히 미약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학작품의 번역교류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랍문학의 국문번역과 우리문학의 아랍어 번역작업이 공통적으로 시작단계에 불과한 실정이다. 
아랍의 고전문학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천일야화Alf Laylah Wa Laylah』와 『칼릴라 와 딤나』, 『수전노Al-Bukha'la'』 등 몇몇 번역서에 국한되며, 현대문학에 들어서도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 나집 마흐푸즈(Naguib Mahfouz, 1911~2006),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 1941~2008) 등 아랍문학의 하늘에 빛나는 별이라 불리는 몇몇의 소설과 시만이 우리나라 독자들 손에 닿을 수 있었다. 한편 최근 들어 눈에 띄는 변화는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들의 신작들이 속속 번역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작가 사하르 칼리파(Sahar Khalifeh)와 이집트의 살와 바크르(Salwa Bakr), 알라 알아스와니(Ala al-Aswani) 등의 작품들은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아랍 현대문학의 흐름을 가늠케 하는 지표구실을 해준다. 그중 서남아시아에 위치하지 않는 이집트를 빼고 나면 사하르 칼리파가 주목할 만한 아랍 작가로 남는다.

문학과 예술의 정치성
아랍소설은 종종 정치의 과잉이라는 평을 받는다. 아랍소설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이 정치와 관련된 담론이니 잘못된 평가라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랍 작가들이 소설에서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이유 없이 정치에 함몰된 것은 아니다. 제 땅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은 아랍 각국에 넘쳐난다. 억압을 행사하는 주체가 권위적이고 부패한 정권일 수도 있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보수적 종교지도자일 수도 있으며,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지역을 지배하는 패권국일 수도 있다. 관습과 전통 또한 사회구성원을 향해 얼마든지 폭력적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회와 마찬가지로 아랍의 작가들이 관찰하는 현실에서 불의와 억압은 일상의 일부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신의 삶의 터전을 좀 더 나아지도록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지니지 않는다면 올바른 지식인이라 할 수 없다. 아랍 작가들이 신조로 여기는 ‘참여’는 날카로운 현실인식에 기초한다. 힘 있는 자는 사회구성원의 일상생활은 물론 미래를 구속하고 때때로 당장의 생존을 위협한다. 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뻔히 보이는 억압에 침묵하는 작가는 범죄의 동조자다. 약자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에 굳이 예언자적 소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와 내 자식의 목숨을 잃더라도 정치를 멀리해야 좋은 예술작품이 나온다고 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비정치, 탈정치가 아니라 올바른 정치며, 아랍 작가들이 지향하는 정치가 그러한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정치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아랍세계 전역에 퍼지게 된 시초는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이집트의 수학자 압드 알아짐 아니스(Abd Al-Azim Anis, 1923~2009)와 문학비평가 마흐무드 아민 알알림(Mahmoud Amin Al-Alim, 1922~2009)이 『이집트 문화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저자들은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에 기초하여 당대 보수적인 아랍문학의 거장들을 비판하고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문학의 당위성을 주창했다. 아랍의 문학인들이 모두 이 책의 강경한 이론을 따른 것은 아니지만 1950년대 이후 아랍문학의 지형은 이런저런 수정과 조정을 거쳐 문학과 사회의 관계, 문인들의 사회적 책임 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랍권 전역의 소설문학에 커다란 영향력을 지녔던 나집 마흐푸즈의 경우 점진적인 사회개혁을 지지하면서 압드 알아짐 아니스 등의 이론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적 요인에 눈을 감지는 않았다.

사하르 칼리파의 작품세계
팔레스타인 작가 사하르 칼리파가 『가시선인장Al-Subar』한국외대 출판부, 2005과 『유산Al-Mirath』아시아, 2009을 통해 내보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국제정치의 희생양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여 자신의 의지로 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조건 하에 살도록 내몰렸다. 의지와 상관없는 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전에 굴욕과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정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아갔고, 현재의 삶을 옭죄고 있으며, 미래마저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팔레스타인의 시인 파드와 뚜깐(Fadwa Tuqan, 1917~2003)은 자서전에서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이렇게 전한다.

매일, 매시간 죽음의 현실을 살고 있는 시민들, 유년을 빼앗긴 아이들, 자신의 미래를 찾으려는 젊은이들이 탱크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대에 대항한다.……이들의 무기는 돌과 조국애와 저항에 대한 불굴의 의지가 전부이다.……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 역사에서 그리고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오로지 이스라엘의 점령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이 당하는 억압과 불평등으로부터 풀려나 자유와 인간적 존엄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다.1)

사하르 칼리파의 소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며, 필연적으로 정치적이 된다. 칼리파는 여러 면에서 나집 마흐푸즈의 후예다. 빈자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보는 시각, 철저하게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적인 가치관, 과학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인간이 무엇보다도 사회적 존재라는 인식 하에 개인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사회에서 찾는 태도 등 두 작가는 유사한 점이 많다.

사하르 칼리파의 소설이 이룩한 중요한 성취는 균형이다. 그녀의 첫 번째 균형감각은 외부와 내부 사이의 연결에서 나타난다. 소설 『가시선인장』과 『유산』에서 화자는 팔레스타인 사회에 대한 내부적 시각을 확보한다. 내부적 시각으로 관찰된 작중인물들은 구체성을 획득한다. 그들은 언론매체에 뉴스로 나올법한, 막연한 증오에 사로잡혀 죄 없는 이스라엘 시민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찢어버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이 정도는 내부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어렵지 않게 전달될 수 있다. 사물은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이는 법이며, 비아랍권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뉴스의 시각을 뒤집은 것과 같은 효과인 것이다. 또한 화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야비하게 다루다가 결국 비참한 죽음으로 내모는 이스라엘 점령군들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위치에서 상대방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행동을 서술할 뿐이다. 나아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는 아랍 각국의 지배층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지 않는데 이 같은 서술태도는 상대방 탓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에 대한 성찰을 동반하는 것으로서 적어도 끝없는 증오와 적대의 고리를 끊으려 한다는 점에서 사하르 칼리파의 올바른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사회를 내부적 시각으로 보되 외부에 대해서는 관찰자적 시각을 유지하는 방식은 외부자의 행위에 신빙성을 부여하고 서술의 설득력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
사하르 칼리파의 두 번째 균형은 특수와 보편의 균형이다. 대다수의 아랍 작가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을 침략자, 압제자로 분명하게 규정한다. 이스라엘의 존재가 아랍인과 무슬림들에 대한 증오의 표현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대 팔레스타인 정책 속에 숨은 특별한 사악함을 찾아낸다. 조금 더 객관성을 좇는 작가들은 이스라엘의 정책에서 예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을 본다. 그리하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지적인 특수한 문제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하르 칼리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스라엘로부터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을 발견하는데 예컨대 군이 민간인의 생존을 억압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권력을 쥔 강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는 점이다. 같은 종류의 강자는 팔레스타인 내부에도 있으며,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
세 번째는 소설의 내용과 형식 간 균형이다. 사하르 칼리파는 정치적 구호에 몰두하는 일부 아랍 작가들과 달리 사회적 책무가 과도하여 미학적 가치를 손상하는 소설을 거부한다. 그녀는 당위가 관념적으로 설교될 때보다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을 매개로 제시될 때 비로소 감동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것이 예술로서의 소설이 져야할 책임이라고 본다. 소설 『유산』에서 화자는 팔레스타인 정치가가 쓴 희곡과 단편소설을 이렇게 평한다.

그의 희곡작품 하나는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지만 사람들에게 이르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작품은 투쟁정신과 열정, 주인공들의 고결한 설교, 그리고 고난과 순국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한 어머니가 눈물을 참으며 아들의 순국을 기리는 자그라다를 발하는 것으로 끝났다. 관객들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별 감흥 없이 극장을 나섰다. 반면 그의 단편소설들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적어도 부분적인 성공은 거두었다. 단편소설들의 성공비결은 그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길어 올린 실제인물에 관한 이야기였던 데 있었다. 그는 예전 고향마을에서 살고 있을 적에 열심히 독서하고 사람들의 삶에 관해 오랫동안 묵상했으며, 뽕나무나 포도동굴 밑, 찻집, 월요시장 등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농민들의 목소리가 글 속으로 뚫고 들어가서, 독자는 삶의 박동과 오늘의 고민, 내일의 희망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2)

화자의 이 서술이 작가 자신의 생각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서술이 진행되는 중에 작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문학론이 나오는 것 자체가 『유산』이 지닌 관념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하르 칼리파의 두 작품은 이처럼 소설의 관념적인 설교가 감동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이 점에서 그녀는 나집 마흐푸즈 리얼리즘의 발전적 계승자라 할만하다.

1) 송경숙, 「아랍 현대문학」, 김영애 외,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3), P.194~195에서 재인용. 
2) 사하르 칼리파, 송경숙 역, 『유산』, (아시아, 2009), P.391~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