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배회하는 사춘기의 불량소녀’를 뜻하는 뎁(deb)이 2011년 7월 2집 앨범 《백만불짜리여자》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2004년부터 그룹 ‘페퍼톤스’의 객원 보컬로 활동하면서 홍대 앞을 배회하던 뎁이 2008년에 1집 앨범 《패러렐 문즈(Parallel moons)》를 발표한 지 3년 만이다. 1집에 이어 2집에서도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담당한 뎁의 이번 앨범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녀의 위상은 대중가요사에서, 인디판(Indie scene)에서, 혹은 여성 음악자작가(singer-songwriter) 중에서 어디쯤일까?
낯선 음들의 배열이 장난스러움과 진지함의 경계를 오가게 하는 인트로 <테마(Theme)>에서부터 간주에서 재즈의 향취가 은은하게 풍기는 <랑데-브>에 이르기까지 총 열세 곡이 빼곡하게 담겨 있는 뎁의 음반은 지난 3년 간 그녀의 숙고, 경험, 그리고 성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모던록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곡 중간 중간에 재즈적인 접근이 드러나는 것이 이번 앨범의 음악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백만불짜리>, <지하요새>, <환절기사건>, <어디에도 없는 곳>처럼 제목에서부터 독특함이 묻어난다. <백만불짜리>에서는 ‘백만 불’이라며 이유 없는 혹은 이유 있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지하요새>에서는 ‘지하요새의 기밀 실험실’을 배경으로 하여 ‘기묘한 묘약’을 만들어 내는 엉뚱한 상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환절기사건>에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랑 끝의 매서운 추위 내지 아픔을 담담하면서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스카스 인투 스타즈(ScarS into StarS)>나 <아스트로 걸(Astro Girl)>처럼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를 노래하던 1집과 비교하면 2집에서 그녀의 기발함과 엉뚱함은 다소 수그러들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놈의 사랑타령>이라고 하면서도 그녀의 2집 속 노래들은 어찌 보면 ‘사랑타령’에 머물러 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떠오르게 하는 <내 이름을 불러줘>를 위시하여 <모노레일>, <언제나 내게 감탄의 사랑>, <랑데-브>, <마천루> 등이 모두 그러한 예다.
하지만 뎁의 사랑타령이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사랑을 재현하는 방식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모노레일’에 비유한 것도 기발하거니와 <마천루>를 들으면 고층건물 꼭대기에서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사랑이야기를 속삭이는, 동화 같은 연인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 작가의 경험 이상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간 그녀는 어쩌면 사랑을 하고 이별을 했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이별의 경험은 한 인간을 아픈 만큼 성숙하게 한다. 그러므로 2집 앨범의 주제가 ‘사랑’에 정착한 것은 현실에 ‘적응’했거나 ‘성숙’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집과 비교해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진정으로 ‘백만 불짜리’가 되기 위해서 그는 더 많이 배회하고 불량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직 기발하고 엉뚱한 ‘사춘기적 감성’을 버릴 때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녀는 “터질 듯이 타오르는 랩소디”를 부르며 “소녀여 기타를 잡아라”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어떤 면에서 다소곳하고 섬세하고 말랑말랑한, 그래서 사랑과 예쁨을 받고 싶은 소녀 내지는 여성의 감성과 서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아쉬움은 인디판의 여성 음악자작가 중 그녀의 위상과도 연결된다. 몇 년 전부터 홍대 앞의 여성 음악자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인디씬 3대미녀’, ‘홍대여신’, ‘얼짱 싱어송라이터’ 등의 수식어와 더불어 요조, 한희정, 타루, 오지은, 뎁, 연진, 웨일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예쁘장한 얼굴에 자기고백적인 음악을 조곤조곤 노래한다. 이들이 음악 이전에 외모와 관련된 수식어로 명명된다면 주류 대중음악계와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뎁은 이들과 어떤 변별점을 드러낼 수 있는가?

예쁜 척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노래를 만들고 부를 수 있다. 예쁜 척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정작 자신의 내면에는 소홀할 수 있다. 그리고 예뻐 보이고 사랑받기 위해서 세상이 규정한 틀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뎁의 내면에는 커다란 욕망의 소용돌이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4차원의 감성’이라는 수식어도 이를 말해준다. 주춤거리고 망설이고 때로는 어색해 보이는 그녀의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자유롭게 터져 나와 거침없이 흐르기를 기원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음악은 지금 뻔하거나 뻔하지 않거나, 그 경계 어디쯤에서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