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을 찾아갔다. ‘살아있는’ 옛날을 찾아갔다.
옛날이,?옛날이 죽어있는가? 라고 묻는 건 화두(話頭)다. ‘한국의 대표브랜드 뮤지컬’을 표방하는 야심찬 기획인 <화선, 김홍도>는 우선 이 화두에 대한 실전적 물음이자?그?당찬 진경(珍景)을 호출하는 방식의 소박한 개가(凱歌)일 수 있다.?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물 드라마의?원천은 죽음이다.?인물의 죽음은 그의 삶의 성가(聲價)를 규정하는 최초이자 최종적인 아우라를 띤다. 그리하여 인물의 죽음은 극화된 진실을 요구한다. 예술적 왜곡이나 탐구적인 혹은 탐미적인 진실의 발굴이 더해진다.?그것은?후대에 뮤지컬로 형상화됐을 때 사실과 진실 사이를 요동치는 재현의?드라마로 활성을 띤다. 이럴 때 인물의 죽음은 선험적인 죽음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피안(彼岸)의 죽음이며, 건드릴 수 없는 죽음의 위엄이면서 과시적인 죽음의 뉘앙스다.
그런데 <화선, 김홍도>에는 아직 죽음이 없다. 그건 아직 경험 중인?살아있는 죽음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재현의 방식이 아니라 만남의 방식, 즉 실존에 육박하는 시대융합의 교집합으로서의 현장 가무악극인 셈이다. 이제 다시 앞의 물음을 조금 바꿔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옛날이, 옛날이 살아있는가? 화두는 그 오롯한?현장 속에서 요동친다. 화선(畵仙) 김홍도(金弘道, 1745~?)를 찾아 나선 김동지와 손수재의 행각은 서양 뮤지컬이 보여주는?나름의 창의적?재현의 방식에서 비켜서 있다. 그런 면에서 당대의 단원(檀園) 김홍도와 작금의 두 선비들 모두 죽음을 물리고 있다. 김홍도가 살고 있는 옛날은 아직도 죽음으로 완결되지 않은 시대의 완미(完美)와 진경을 보여준다. 김홍도의 풍속화첩들이 시공간적?육체성을 갖는 이유다.?비주얼한 배경으로서의 단원의 그림 이미지들과?당대의 풍물(風物)로서의 생동하는 무대는 서로 탐미성과 현장성을 주고받으며 갈마든다. 단원 김홍도는 아직 어리고 그는 아직 죽음을 모른다.?그러니 우리는?서둘러 김홍도의 죽음과 예술을 고매하게 깨우칠 수 없고, 그저 만나고 부딪치는 실제의 행각들로 김홍도라는 미지를 알아가는 즐겁고 호기심어린 구도(求道), 그?길 위에 놓여있다. 생물로서 살아있는 죽음에 가닿으려는 이 도저한?탐색은 하나의 로망이자 가무악극적인 환생을 여는 시대의 품이 있다. 규정되고 암시되는 현학적 인물론이 아니라,?고매한 예술적 인격으로 격상된 인물의 창의적 재현주의(Representationalism)가 아니라, 여기에는 자연스런 동참과?육화된 만남의 지적 주유(周遊)가 있다.
한 시대의 예술적 장르의 품이 다른 한 시대의 예술적 장인을 품어나가는 얼(魂)의 동트임, 단순히 ‘시대와 시대의 만남’ 운운하는 식의 상투적인 수사로서의 시대적 교우는 아니다. 아직도 실존으로 남아있을 거라 믿는 고매한 환쟁이 김홍도의 필선(筆線)의 기운을 감득하려는 한국적 뮤지컬의 간원(懇願)이다. 한 시대의 예술적 기호가 또 다른 시대를 면회하는 방식, 여기에는 선험적이고 확정적인?서양 뮤지컬의 죽은 예술가에 대한 불후의 찬양이 상당부분 거세돼 있다. 대신 그 불후의 죽음을 아득한 곳에 능놀게 하고 아직 생짜로서의 당대 화선의 삶의 저간, 그?우여곡절과 풍물을 불러들인다. 이것은 한국적 무속의 씻김굿 방식과도 일정한 형식적?궤(軌)를 같이 하는 데가 있다. 죽은 것을 위로하고 해원(解寃)하는 무속은 결코 죽음 그 자체를 사물화(死物化)시키지 않고 활물화(活物化)시킨다. 즉 각종 굿의 그런 현장성처럼 가무악극 <화선, 김홍도>도 그런 접신(接神)의 형태로 예술혼을 부르고 찾아가는 형식을 따른다. 이것은 결국 앞서 말한 ‘죽음을 먼저 상정할 수 없는 혼신의 부름’이 앞선 시대와?뒤의 시대가 서로를 손겪이하듯 겪어낼 수 있는 무애(無碍)의 형식적 개가인 셈이다.??

뮤지컬이라고 하는 서양의 총체극(總體劇) 개념은 그런 측면에서 <화선, 김홍도>에 이르러 좀 더 너름새 있는 요소를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것은 죽음으로 극명해진 한 인물의 화려한 극화(劇化)가 아니라, 지나간 한 시대의 종언으로부터 유예되고 한 예술가가 처한 생물학적 죽음으로부터 보호 받는 한 인물의 신명(神命)을?초대하는 현존의 만남,?그 부름과 불림을 시험하는 구조이기도 하다.?부르면?들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예술의 호명(呼名)이자 초혼(招魂)의 현재화?혹은 현장화 양식으로서의 효용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가무악극의 가장 큰 개가가?관객과?극중 현재인물들을 초시간적으로 살게 하는 극의 구조와 더불어?명인(名人)의 삶을 근린화(近隣化)하는 데 있다고 본다.?관객이 아닌 이웃되기, 관람이 아닌 동참하기, 예술이 아닌?삶의 총아(寵兒)되기. 어쩌면 이 가무악극의 본령은 그런 현장으로의 출동, 그 지극한 양대 시공간을 하나로 수렴하는 예술적 편재(遍在)의 양식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어린 김홍도는 아직도 저잣거리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무언가를 그리는 생령(生靈)으로, 그 환쟁이의 풍류에 눈떠가는 전생의 이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