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사회의 시간은 삶의 속도를 잠식한다. 과거와 미래가 부대끼는 현재는 수없이 많은 파편을 남기며 역사 속으로 휩쓸린다. 현대중국은 가장 빠르고 화려하게 박동하는 지구의 심장부가 되었다. 공산주의식 자본주의라는 자기모순을 실현하는 솜씨와 성과는 늘 갱신되기 바쁘다. ‘눈부신’ 화려함이다. 게다가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정화장치를 거친 화려함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윤리학’은 현대중국이 배출하는 모든 것들을 정당한 것으로 만든다. 바로 이 ‘눈부신/윤리학’은 돈이요, 힘이다. 동시대 중국미술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그러나 주목하는 방향이 다르다. 내 나라의 돈과 힘 속에서 탈락하는 것, 소외되는 것, 잊히는 것, 모순되는 것, 그래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리셴팅(栗憲庭)중국의 미술평론가은 이를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아트라는 기묘하고 명료한 용어로 설명했다.
이번 <눈부신 윤리학展> 역시 이 기묘함과 명료함에 주목한다. 이 전시는 중국 아티스트 다섯 명의 작품을 통해 중국의 현재가 문화적으로 재현되는 방식을 축도(縮圖)한다. “눈부신 자본주의 발달의 영광과 그 찬란한 빛이 앞을 가려 환상으로 조장하고 있는 현시점의 양가적 현실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라는 기획의도에서 알 수 있듯 오늘의 중국을 살고 있는 미술가의 시선을 통해 중국의 오늘을 바라볼 수 있다. 예컨대 그 시선은 펑정지에(俸正杰)의 인물들이 가진 눈동자와 같은 것이다. 광고판에서나 볼 수 있는 키치적인 원색과 가식적인 매혹으로 꽉 찬 여인들은 모두 너무 작은 눈동자를 가진 사시안인(斜視眼人)이다. 그들이 보는 전혀 다른 방향의 세상, 그것은 자본과 이데올로기라는 양분된 세상 속에서 초점을 잡아 현실을 가늠할 능력의 상실과 혼란을 말한다. 그럼에도 펑정지에의 인물들은 화려하게 유약을 칠해 번쩍이는 유혹을 잊지 않는다. 마치 “내가 무엇을 보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그저 나만 따라오면 돼”라고 말하는 것 같은 여인 두상의 제목은 <자화상>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누구의 자화상인가? 화가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곳을 향한 작가의 눈동자가 본, 같은 시대의 중국인인가?
중국 현대사의 상징인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은 어떠한가? 인자오양(尹朝陽)은 마오와 톈안먼(天安門)과 같은 중국의 대표 이미지를 신기루로 만든다. 멀리서보면 분명한 이 상징들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면에 일렁이는 파동처럼, 끊임없이 돌아가는 소용돌이처럼 와해된다. 파동이 잦아들고 소용돌이가 멈추면 다시 마오의 초상과 톈안먼 풍경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이미 훼손되어, 멀리서 떨어져 어렴풋 관조할 때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연된 자본주의 안에서 강력하고 명확해 보이는 이데올로기는 다가가면 허상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의 이념의 존재방식이자 현실이다. 한편 종뱌오(鐘?)는 중국의 거대한 도시 속 개인을 주시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엄청난 규모와 인파로 가득한 도시의 전성기에 잔상처럼 지나가는 개개의 순간과 역사를 목격한다. 이는 꿈과 같은 현실 혹은 현실 같은 꿈의 시대를 날아다니듯 활보하는 개인에 대한, 현대중국을 살고 있는 수없이 많은 개인에 대한 초상이자 오마주다. 그 밖에도 중국윤리와 정신의 무구를 친숙한 캐릭터로 표현한 리젠(李?)과 이질적 요소가 혼재하는 현실에 대한 ‘나’의 분열을 보여주는 구안용(管勇)까지. 눈부신 윤리학은 내밀한 삶 속으로 침투해 가치관의 교차와 정체성의 불안을 드러낸다.
1990년대 이후 중국 현대미술은 오늘의 사회가 겪는 변화와 속도,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에 대한 언급을 통해 명확한 자기색채를 띠어왔다. 리얼리즘과 팝의 요소를 뒤바꿔 풍자와 조롱, 자조와 번뇌를 드러내는 이들의 색채는 현실의 만연된 ‘모순’과 ‘혼동’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다. 이 점에서 <눈부신 윤리학전>은 중국의 기성화가와 차세대 화가를 아우르며,

중국 현대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계기라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전시가 중국 현대미술이라는 기의에 새로운 의외성마저 부여했는가의 여부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전시의 주제가 한 시대를 호흡하는 중국 아티스트들의 가장 절실한 문제의식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될수록 다양성의 고착을 의심할 여지 역시 생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