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문화활동과 사회적 공공성의 확대
시민들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문화활동에 참여하는 일은 꼭 문화도시 혹은 문화국가라는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살기 좋은 사회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필수적인 일이다. 복지국가 담론이 한창 유행인 오늘날 문화 역시 복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의 초석을 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타인을 배려하는 일, 개인과 더불어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을 고민할 줄 아는 사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공공적 윤리와 교양의 형성이 문화의 기능이라면, 복지와 생태의 문제와 달리 문화는 공동체가 유지되는 토대를 쌓아가는 일이다. 요컨대 문화적 토대가 튼튼해야 복지의 문제도 생태의 문제도 공동체의 이해와 동의를 기반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민들의 문화활동을 진작시키는 일은 전문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이나 발표활동 못지않게,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민들의 문화활동 영역이 특정 예술장르로 분류되거나 전문예술인을 닮아가기 위해 열심히 기량을 갈고 닦거나 예술적 재능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될 수 없는 것도 그래서다. 시민들의 문화활동은 예술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공성 확대의 문제로 접근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문화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과연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문제가 구조적이고 특수하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요인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구조적이며, 어떤 보편적 원리가 작동하기에는 개별적 상황이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문화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더 깊이 있고 인내심 있는 기획과 실천이 필요할 터이다.

인천과 성남의 사례로 보는
공공의 접근방식
흔히 지방자치단체나 문화재단에서 시민들의 문화활동 참여를 위해 전문예술가들에 대한 지원과 비슷한 모델로 다양한 사업에 대해 재정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창작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그 외에 제안된 여러 활동에 대해 필요한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공모를 통해 계획서를 검토하고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비용을 직접 지원하는 것인데, 공모를 통한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자발성을 유도하고 다양한 기획의 틀을 열어 놓는다는 긍정적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지원방식은 엄밀히 말해 수동적인 차원의 사업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즉 공모에 응할 경우 심사를 거쳐 지원하겠지만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서 지원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는 결여된 것이다. 시민들의 문화활동이 활발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이런 지원사업을 널리 인지하고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지원의 효과를 단기간에 거두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필요한 비용을 시민들에게 직접 배분하는 방식의 정책적 함의는 시민들의 문화활동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재정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해소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시민들의 문화활동을 가로 막는 것은 재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즉 시민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직접적 재정지원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인천시는 ‘책 읽는 도시, 인천’을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사실 따져보면 시민들이 책을 일상적으로 읽을 수 있는 도시야말로 최상의 문화도시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여러 문화활동 가운데 가장 손쉽고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자 동시에 문화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책 읽는 도시, 인천을 만들겠다는 취지 자체는 충분히 공감을 얻을 만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 읽는 도시를 만들 것인가? 그 방법론을 생각해보면 책 읽는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조건을 도시가 만들어간다는 의미이므로 이것은 몇 가지 이벤트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책을 읽자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캠페인을 벌인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때로는 그런 캠페인의 역효과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진행성과가 눈에 확연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문화는 그렇게 소리 내서 한다고 성과를 거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가시간의 확보, 책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도서관 및 공공장소의 확대, 책을 읽는 다양한 동아리의 광범위한 조직, 직장 내 독서 분위기 조성, 책에 대한 정보습득 통로와 기회의 확대 등등 사회의 유무형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여건을 조성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가운데 책에 대한 흥미를 돋울 수 있는 문화적 이벤트가 부수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단순히 책에만 집중하여 어떤 사업을 기획하고 독서운동을 벌려서 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책 읽는 일 하나만 놓고도 시민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른 경우를 보자.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성남문화재단이 주도한 ‘사랑방문화클럽’은 시민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낸 매우 중요한 성공사례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동아리를 더욱 활성화시킨 성남 사랑방문화클럽의 성공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동아리 간의 네트워크를 성남문화재단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동아리 활동의 공공적 가치를 스스로 깨닫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활동인데 그것이 우리가 사는 동네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힘을 합하고 네트워크를 하면 더욱 즐거워지고 그 영향이 배가된다는 것을 실례를 통해 입증했다. 그러다보니 시민들의 동아리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게 된 것이다. 사랑방문화클럽은 성남문화재단이 오랜 시간 지역상황을 조사하고 기획해서 만들어낸 성과다. 여기서 배울 점은 성남문화재단의 기획자들이 지역의 현실을 충분히 조사하고 시민들의 문화동아리가 갖고 있는 장점과 한계를 파악하여 장점은 살리고 한계점은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다. 그 내용이 동아리 간의 네트워크와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활동을 기획하는 것이었다. 성남문화재단의 사례는 시민들의 문화활동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시사해준다. 단순히 공적기금의 지원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현장을 조사하고 지역현실에 맞는 정책을 기획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데 성남의 성공사례를 다른 지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생각해봐야 한다. 성남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남이라는 지역적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방문화클럽은 성남 가운데서도 주로 분당지역에서 활성화되어 있는데 두루 아는 바와 같이 분당은 전형적인 중산층 밀집 주거지역이자 수도권의 위성도시적 성격이 강한 곳이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여유 있는 중산층 중심의 신도시에서 문화동아리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그것의 성공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비슷하게 갖고 있으며, 서로 교류하기에 편한 밀집 주거지역인데다 도시가 형성된 역사가 짧아 혈연이나 지연에 대한 연고가 많지 않다는 점은 문화동아리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남 사랑방문화클럽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지역적 특성을 무시하고 성남의 사례를 기계적으로 다른 지역에 이식하려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모델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문화활동을 조직해내기 위해 공공영역이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의미가 있고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책적 수단을 공공재원의 직접 투입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금물이다. 오히려 공공의 재원을 잘못 투여하면 시민들의 자발성을 해치게 될 가능성도 많다. 시민들의 문화활동은 말 그대로 자발성에 기초해야 하는데 자칫 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기획하다 보면 그들의 문화활동 목적이 공공의 재원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원에만 의존하는 문화활동은 그 재원이 끊길 때 쉽게 사라진다는 점에서 정책효과가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아울러 그런 방식은 문화가 시민들의 일상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으로 보기도 힘들다. 비용을 지원해야만 어떤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나 관습은 적어도 시민 문화활동 영역에서는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문화욕구와 수요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사는 동네의 문화환경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면밀한 조사다. 이때에도 조사만이 능사는 아니며, 시민들의 문화활동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목적과 의도로 조사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적 기획력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그런 조사결과를 토대로 정책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속적으로 진행해갈 때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업의 성과가 한 순간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문화영역에서는 상식에 속한다.
종종 해외의 성공사례를 거론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역시 참조해야 할 자료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모델이 필요하다. 압축적 성장을 통해 단기간에 발전한 한국적 특수성이 갖는 조급성도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이뤄냈지만 생활 속 민주주의는 아직 형성중인 주민들의 이율배반적 사고구조나 지방자치가 일천한 우리의 역사적 상황과 문화적 토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거기에 동네마다 처해있는 환경 또한 모두 다르다. 인천만 예를 들자면 신도시적 성격이 강한 연수구와 구도심 지역인 중구와 동구가 같을 수 없다. 이런 특성들을 고려하여 정책의 방향을 세우고 그 방향을 실현할 수 있는 효율적인 사업을 기획해서 인내심을 갖고 추진하며 과정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일회성 사업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시민들이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때로는 하드웨어적 인프라일 수도 있고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일 수도 있으며, 시민들의 모임과 같은 조직체일 수도 있다. 공공의 정책이나 재원을 어떻게 기획해서 집행할 것인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런 일일수록 책임감 있고 열정을 가진 문화매개자의 존재는 그 빛을 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