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언제부턴가 ‘시민문화’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민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원도 조금씩 늘어가고 그 분야의 건강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시민문화가 무엇인지, 어디까지를 시민문화라고 할지, 직접지원이 맞는지 등에 대한 설왕설래도 있었다.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에는 현재 300여 명의 시민문화 동아리 활동을 하는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 세월동안 거쳐 간 회원이 1,000여 명을 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장르도 다양해서 음악의 여러 장르를 기본으로 미술, 춤,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동아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회원과 다양한 장르의 동아리를 만나고 그 동아리들의 흥망성쇠를 만났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시민문화 동아리 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해오며 외부의 분석과 논란에 마음을 다칠 때가 많았다. 또 시민문화를 바라보는 정책과 제도에 중요한 것이 빠져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단체가 정의한 시민문화는 일단 ‘살고,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능동적인 문화예술 향유활동’이다. 문화예술 향유활동은 단순한 ‘관람’ 형태에서 ‘교육’의 과정을 통한 ‘직접 체험’의 단계를 거쳐 그 체험의 시간이 쌓인 후 ‘발표’, ‘사회공헌’ 등의 방식으로 사회와 만난다. 이런 과정에서 예술의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거나 누군가는 직업적 예술가로 성장하기도 한다. 하여 모든 사람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시민문화라 할 수 있지만 직업적 활동이 목적이 아닌 사람들의 활동에 그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렇게 모여서 활동하는 동아리들 중 시민합창단 ‘평화바람’의 모습을 살짝 엿보고자 한다.

어느 시민합창단의 모습
저녁 여덟 시가 되면 회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하루 종일 일을 한 탓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 때로는 저녁식사를 하지 못하고 달려올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먹을 간식이나 김밥, 컵라면 등을 넉넉하게 사서 모임장소에 모인다. 그래서 모임 전에는 늘 먹거리를 나누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느지막이 잡은 시간이지만 늘 지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늦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가족의 저녁식사를 차려주거나 혹은 직장에서 잔업을 하고, 또는 일을 마치고 늦게라도 오려는 그들의 마음과 상황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신입회원이 찾아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리 카페를 알게 되었다는 그는 오늘 처음 보는 회원이지만 이미 카페를 통해 환영을 받은 터라 친근하다. 그는 오디션이 없는 우리 합창단의 원칙 때문에 더 쉽게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악보를 잘 보지 못하는 것, 노래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습은 최대한 즐겁게 하려고 하고 서로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긴장과 자신감 없음은 노래를 하는 데 있어 최대의 적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쯤 연습을 하면 여기저기서 ‘그만하고 싶다’는 신호가 온다. 노래연습을 마치면 회장의 진행으로 간단한 회의를 통해 운영에 필요한 사항들을 결정한다.
그리고는 늘 ‘뒤풀이’ 장소로 향한다. 뒤풀이는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다. 술을 많이 먹지 않는 편인 평화바람은 뒤풀이를 ‘야식동아리’라 부른다. 그곳에서 회원들은 한 주간 자신의 생활을 나누고 새로 온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신입회원의 어색함은 이내 풀린다. 혼자서 오랫동안 생각만 해오던 일을 결정한 기쁨과 편안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 금세 동화되는 것이다.

자신의 꿈 그러나 어쩌면 외로움
직장인 동아리의 특성 중 하나는 그 모임을 한결같이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가족과 직장이 삶의 1순위일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동아리 모임은 2, 3순위일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 일이 끝나지 않거나 갑자기 멀리 발령을 받으면, 혹은 가족 중에 일이 생기면 그 모임에 계속 나갈 수 없다. 이 문제가 가장 고질적이다. 사회전체가 한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의 시간을 정하고 지켜주지 않는 이상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모임을 지속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환경이 조금 더 나아지면 다시 모임을 찾는다. 그들에게 이런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은 자신의 현실을 넘어서게 하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나와 내 가족을 지키고 직장을 잘 유지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감에 외로워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늘 갈등하지만 선택은 책임과 의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회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면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그 꿈을 기억해낸다. 통기타를 치고 싶었던 꿈,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꿈, 시를 잘 쓴다고 칭찬받았던 기억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 공통의 관심사로부터 만난 새로운 관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만나 같은 취미를 나누고 그 안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그들과 삶을 나누는 과정이 이러한 활동을 더욱 의미 있게 한다. 그래서 학원에 가서 배우는 것이나 개인강사에게 배우는 과정과 달리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은 훨씬 더 그 활동의 폭이 크고 다양하며, 나아가 많은 긍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시민문화를 문화예술 환경의 발전 혹은 예술가들의 사회참여, 그리고 전문예술가가 되기 위한 모임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대단히 편협하고 기존의 예술가 중심의 문화예술을 벗어나지 못하는 관점이다. 한편에서는 ‘아마추어’라 부르며 실력이 낮다는 이유로 예술가의 지도를 받아 더욱 전문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중요하다는 듯 말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에 대한 지원 역시 일회성 지원인 경우가 많다. 나아가 시민문화 활성화 역시 단기간 내 사업의 성과를 보기 위해 그것을 개량화, 규격화하려고만 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이름 지은 이 시민문화를, 자신의 삶에서 선택하여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하고 싶었던 것을 선택한 작은 한걸음이며, 한편으로는 삶의 무게감이나 외로움을 극복하고 싶은 의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활동을 하는 데 돈이 좀 덜 들었으면, 비교적 직장이나 집에서 가까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함께 모인 사람들이 좋은 이들이기를, 자신의 작은 재주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자랑스러워지기를, 이런 활동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이 더욱 윤택해지기를 바란다.
이런 그들에게 그들의 활동이 ‘공익적’인지를 묻고 ‘꾸준히’ 활동하는지 체크하며, ‘발전’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그리고 ‘즐거워하는’ 그들에게 ‘실력이 모자란다’고 비난하고 지적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시민, 문화로 꽃이 되다
회원들은 모임 후 온라인 카페에 종종 이런 글을 남긴다. “어제 넘 즐거웠어요.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리지요? ㅠㅠ 우리 힘냅시다 ^^ ” 한 개인의 삶이 어떤 사회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데는 아주 많은 요소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평범한 우리들이 의식주로 표현되는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곁에서 함께하는 ‘사람’과 더불어 내일은 더 나아지리라는 ‘꿈’ 또는 ‘희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감히 문화예술은 의식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아갈 힘, 나아가 꿈을 꾸게 하고 희망을 보게 하는 것이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시민문화를 활성화하려는 어떤 정책적, 제도적 움직임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라고 묻고 싶다. 시민문화는 저 멀리 있는 어떤 시민들이 하는 행위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그 무엇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다운 꽃처럼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문화로 ‘꽃’이 되고 싶다. 잘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