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예술이란 무엇인가
시민예술이란 용어는 아예 없던 것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이미 존재해왔던 것에 새로운 정체성과 개념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 같다. 최근에 시민예술이란 용어는 시민이 주체가 되는 예술, 생활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술 등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시민예술은 사실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예술을 심미적이고 감성적인 제작(making) 활동이라고 정의한다면, 민화나 퀼트 같은 민속예술(folk art)도 오래된 형태의 시민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시민예술 양상에는 분명 과거와 다른 점들이 존재한다. 첫째, 사회적으로 보다 더 인정을 받는 전문예술이 존재할 때 시민예술은 전문예술을 모방하려는 성향을 가질 수 있다. 즉 전시나 공연의 포맷을 차용함으로써 전문예술의 외관을 취하는 것이다. 둘째, 제도적이고 집단적인 맥락에서 시민예술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 즉 동호회나 문화센터 같은 환경에 기대어 시민예술 활동이 조직화되고 지속되곤 한다. 요컨대 포괄적 의미에서의 시민예술은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문가들의 예술, 예술가란 칭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예술과 구별되는 예술, 심지어는 그들의 예술보다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시민예술이란 용어 전에 시민들의 자발적 예술은 아마추어 예술이라고 불렸다. 이 아마추어 예술은 대체로 유사한 관심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예술적 기예를 학습하고 발전시키는 모임 속에서 형성되고 전개되어 왔다.

아마추어 예술과 시민예술
그렇다면 왜 아마추어 예술이라는 용어 대신에 굳이 시민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하는가? 시민예술이라는 용어는 먼저 전문예술에 대해 아마추어 예술이 지니고 있는 열등한 위계에 대한 함의를 의도적이건 아니건 부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시민예술은 예술이 단순히 여가활동이나 취미활동이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인 효용과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1991년 VANVAN에 관해서는 이후 게재된 전수환의 글을 참조이라는 단체가 일반인들의 예술을 여가나 취미와 같은 ‘사적’공간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했다. VAN은 자발적 예술(voluntary arts)이라는 용어로 일반인들의 예술을 명명하면서, 자발적 예술이 개개인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행복의 자원일 뿐만 아니라 시민적 덕성을 양성하는 민주주의의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한다. VAN의 CEO인 로빈 심슨(Robin Simpson)은 영국의 자발적 예술은 예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결속과 복지에도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요컨대 시민예술은 기존의 아마추어 예술개념과는 달리 일반인들의 예술활동이 사적유희의 차원을 넘어서 공적효용과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지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에 의존하여 시민예술을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Robert D. Putnam)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은 “개인들 사이의 연결,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로버트 퍼트남은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2000)에서 일반인들로 구성된 예술동호회가 미국사회에 시민적 덕성과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교육의 장으로 기능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독서회의 활동은 “지적탐구에서부터 사회, 정치개혁을 북돋는 운동의 일환으로서 지역공동체 봉사와 시민의식의 향상으로까지 점차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소통의 가능성과 이를 위한 사회적 환경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째, 예술이 다른 경제적, 정치적 활동과 달리 시민적 덕성과 민주주의 발전에 “유달리” 기여하는 점을 가지고 있는가? 예술은 경제적, 정치적 활동과 달리 감성적 소통에 의존한다. 나를 기쁘게 혹은 슬프게 하는 것을 타인과 감성적으로 공유하게 한다. 철학자 파트리스 카니베즈(Patrice Canivez)는 이러한 감성적 소통을 통한 공동체를 취미공동체라고 부르면서 취미공동체는 동의를 ‘이루기’ 위한 소통이 아니라 동의를 ‘소망하는’ 소통을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즉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 연후에도 타인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으면 하는 소망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감성적으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소통, 경제적 이해관계를 달성하기 위한 소통은 나와 타인이 같은 편인가, 이해관계가 같은가를 확인한 후 공동체의 구성여부를 결정한다. 반면에 감성적 소통의 경우 공동체의 형성은 일종의 종결 없는 과정으로 시도되고 실패되고 다시 시도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시민예술이 다른 활동과 구별되는 고유한 시민적 덕성과 민주주의 교육의 장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시민예술은 다름에 대한 관용,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화하려는 소통의 가능성을 증언한다.

둘째, 일반인들의 모든 예술활동이 감성적 소통으로 사회자본을 활성화하는가? 나는 예술동호회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모든 예술동호회가 사회자본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특히 직장에서 형성된 동호회의 경우 문화센터나 자발적이고 우연적인 사교모임에서 형성된 동호회들에 비해 더 폐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에 지역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동호회의 경우 특정지역에서만 활동하는 동호회보다 사회자본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결국 시민예술 활동이 단순히 개인적 취미활동이나 사교적 여가활동에 머물지 않고 “함께 하는 삶”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데는 어떤 사회적 조건들, 특히 “어떤 환경에서 형성되었는가”, “어떤 환경에서 활동하는가”라는 조건들이 특정되어야 한다. 그 환경은 잠정적으로 이야기하면 공적이며 개방적이고, 차이들이 교류하는 환경이어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의 변화를 포착해야 한다
최근 시민예술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술정책 입안자들은 과거의 전문예술 중심의 지원정책에서 탈피하여 시민들의 자발적 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을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남문화재단은 2006년 이후 성남지역의 예술동호회들을 발굴, 연계, 지원하는 ‘사랑방문화클럽’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지역 문화재단과 중앙정부, 지자체의 문화관련 부처들이 시민예술을 어떻게 육성하고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 시민예술에 대한 관심은 다소 ‘유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시민예술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관심이 한국에서만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앞서 예를 든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호주에서도 시민예술에 대한 연구와 지원이 최근 들어 활성화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민예술에 대한 관심을 단순히 유행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그 관심을 촉발시킨 현대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변동을 포착해야 할 것이다. 예술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공동체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변화로부터 삶의 질을 고양시키고 예술적 표현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 계기들을 발견하고 이를 정책의 목적과 과정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변화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먼저 예술활동에 있어 소비자와 생산자의 구별,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구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경향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자원을 예술로부터 모색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정계층, 특정장르에 머물렀던 시민들의 예술활동은 이제 다양한 계층,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전통적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도 서로 감성적으로 연결되고 소통하려는 노력들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지역에서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사람들은 연결되려 하고 이 ‘연결에의 의지’에 있어 예술은 매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시민예술 지원정책이 고려해야할 점
시민예술에 대한 지원정책은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 첫째, 시민예술이 위치하고 있는 공동체의 인구학적, 경제적, 지역적,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특성들을 연구하고 그에 맞춤형인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정책적 개입에 거부감을 가질 것이다. 둘째, 시민지도자를 육성해야 한다. 시민예술은 이미 자생적으로 유지, 발전해왔다. 정책의 수행에 있어 필요한 것은 직접적 개입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시민예술의 주체들 속에서 리더십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예술과 공동체가 조우하는 접점을 인지하고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입안자들은 잠재적인 리더들을 발굴하고 이들과 교류하며 사용자 친화적인 정책의 방향을 수립해가야 할 것이다. 셋째, 시민과 예술가 사이의 호혜적 교류를 강조해야 한다. 정책은 시민과 예술가 사이에 엄격한 구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 예술가들은 예술가이자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인 시민이다. 또한 시민들은 자신들의 예술활동이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유대하는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정책입안자들은 시민과 예술가를 동등하게 대하고 이들이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