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문화교류의 미풍이 불기 시작하다
2009년 한국과 인도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에 공식적으로 서명하고 수교 36년 만에 양국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했다. 인도가 ‘동방정책’을 추진한 지 15년 만의 결과이고 2003년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가 인도를 앞으로 30~50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할 잠재력을 가진 나라라고 전망한 지 약 6년 만의 결과다. 이로써 남북한 영토의 열일곱 배로 유럽대륙과 비슷한 영토를 가진 인도와 우리나라의 깊은 ‘악수’는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는 거대한 시장의 탄생으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국가의 일원이자 중국과 더불어 친디아(Chindia)로도 불리며 경제성장에 가속도를 보임으로써 강대국으로 부상 중인 인도는 국제문제의 결정과정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인식한 우리나라의 관련분야에서는 인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도에 대한 수출을 확대하고 인도에 대한 직접투자를 활성화하려는 모임이 자주 열리고 양국 간에 공적, 사적 인적교류도 빈번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인도와의 장기적 경제협력보다 인구 12억이 넘는 거대한 인도시장에서 우리가 거둬들일 일방적, 단기적 이익에 관심이 더 크다. 양국 간의 문화교류나 상대국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프로그램은 뒷전에 있거나 구색을 갖추는 정도에 불과하다. 인도는 우리가 맘대로 이익을 추수할 수 있을 정도로 무력하고 인도인은 우리의 상품에 마음을 쉬이 내줄 만큼 만만하다고 여기는 것인데, 사실 스와데시(Swadeshi) 운동간디(M. K. Gandhi, 1869~1948)가 주장한 국산품 장려운동의 역사를 가진 인도는 그 반대의 성향이 짙다.

인도는 그렇게 오해받고 때로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지금도 후진국으로 여겨지고 요가와 명상의 나라와 같은 역동적이지 않은 이미지가 강하다. 앞으로 컴퓨터 전문가와 영어교사 등 전문기술을 가진 인도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인도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비호의적이다. 연전에 국내대학에 근무하는 한 인도인 교수가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을 받은 일이 언론에 크게 소개되었듯이 그들을 하대하듯 하는 것이 현실이다.
존중이 바탕이 되지 않는 관계는 허무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거기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것은 모순이다. 양국이 올해부터 문화적 관계증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늦었으나 바람직한 현상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양국은 올해 2011년을 ‘한국-인도의 해’로 잡았다. 한국은 ‘인도의 해’로, 인도는 ‘한국의 해’로 선포해 상대국의 문화를 알리는 갖가지 행사를 열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인에게 「동방의 등불The Lamp Of The East」이라는 시를 선사하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건네고 격려한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의 탄생 150주년인 올해 그의 탄생을 기리는 행사와 동상제막식이 한국에서 열렸다. 인도정부가 후원하는 인도문화원이 서울의 한남동에 문을 연 것도 올해   4월이다. 여기서는 인도에서 온 예술가들이 직접 악기와 춤을 가르치고 인도어와 요가 등의 수업도 진행한다. 한인(韓印) 문화교류의 미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의 사랑과 열정으로 탄생한
인도박물관
이런 변화의 와중에 한 개인이 올해 7월  2일 서울에 인도박물관을 열어서 주목을 받았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남부터미널 근처의 크지 않은 공간약 330m²에 자리를 잡은, 국내 하나뿐인 인도박물관은 김양식 시인의 사재로 개관되었다. 한 개인이 인도박물관을 열었다는 점도 놀랍지만 더욱이 그가 지난 30년간 개인적으로 한국과 인도의 문화교류를 증진하는 데 헌신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한층 더 관심을 받았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오랫동안, 그것도 여자 혼자 힘으로 활동해온 김양식 관장은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말을 예증한다. 나라와 나이, 인종과 계급의 험한 다리와 벽을 넘어 사랑을 이룬 수많은 이야기들처럼 1913년 영국 식민통치 하의 인도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아 세계를 놀라게 한 타고르와 그 시인을 배출한 나라에 대한 김양식 관장의 짝사랑은 숱한 어려움을 넘기며 많은 것을 이뤄냈다.
올해 여든인 시인의 인도사랑은 열 살 때 오빠가 권한 타고르의 시집을 읽고 시작되었다니 그 역사가 한국과 인도의 수교기간보다 갑절이나 오래되었다. 어릴 때부터 타고르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꿈을 키운 그는 1969년 마침내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여 타고르처럼 시인이 되었다. 시인은 1975년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시인대회에 참가했다가 타고르의 나라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인도를 다녀온 김양식 시인은 인도를 좀 더 알기 위해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인도철학을 공부했다.

1981년 시인은 한국타고르문학회를 세워 <한·인문화논총>을 발간하고 저명한 인도인을 국내에 초청하여 강연회와 좌담회를 개최하는 등 개인적으로 한국과 인도의 문화교류를 시작했다. 한국과 인도의 관계가 밀접하지 않은 당시 김양식 시인의 역할은 빛을 발했다. 타고르문학회에 초청받은 인사 중에는 인도의 경제성장을 이끈 만모한 싱(Manmohan Singh) 현 인도총리와 구즈랄(I. K. Gujral) 전 총리의 부인이 포함되었다. 2002년 인도정부가 한국과 인도의 관계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권위 있는 시민상 파드마 슈리(Padma Shri)를 김양식 시인에게 수여한 것은 그의 노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었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는 없으나 다행히 시인에게는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돈’이 있었다. 인도를 사랑하고 한국과 인도의 문화교류를 추진하려는 김양식 시인의 의지는 생물처럼 자랐으나 돌처럼 단단했다. 타고르문학회는 1997년 한인문화연구원으로 개칭되었고 이후 활동영역을 다방면으로 넓혔다. 타고르의 저서와 인도 문학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했다. 서울과 지방의 다양한 기관에서 인도민화 전시회를 개최했고 인도 현대회화를 소개하는 갤러리도 운영했다.
올해 한인문화연구원 창립 30주년을 맞는 김양식 시인의 긴 사랑을 증명하는 최고의 증표는 아무래도 인도박물관이리라. “죽기 전에” 사랑의 역사를 정리하고 싶은 시인의 바람이 담긴 박물관에는 김양식 관장이 40년 간 인도를 여행하다가 각지에서 모은, 다양성을 자랑하는 인도문화의 편린들 200여 점이 시간의 팻말을 앞에 놓고 모여 있다. 그가 수집한 1,000점에서 이번에 ‘뽑히지’ 않은 유물들은 앞으로 번갈아가며 박물관에 선을 보일 예정이다. 여러 주제로 기획전시실을 운영하는데 인도악기가 주제인 이번 기획전시실에는 땀부라(Tampura)인도의 전통 현악기 등 인도의 전통악기 6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인도박물관에서 가장 눈에 띠는 유물은 파르바티(Parvati) 여신상이다. 힌두교 시바(Shiva) 신의 아내이자 행운의 신 가네샤(Ganesa)의 어머니인 파르바티 상은 네 손에 삼지창, 뱀, 염주, 정병(淨甁)을 든 모습의 11세기 유물이다. 한쪽 팔을 들어 나무줄기를 잡은 약시(Yakshi) 상, 11세기 카주라호(Khajuraho)에서 제작되어 힌두사원의 벽에 장식되었던 여인상도 볼만하다. 사방불탑, 공예품과 민화, 직물과 장신구들도 관람객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

 
평생 한국과 인도의 문화교류와 그 증진에 힘써온 김양식 관장의 뜻에 맞춰 인도박물관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인도민화를 그려보거나 인형을 만드는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인도의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혜초스님(慧超, 704~787)처럼 인도에 가지 않고도 한국에서 인도문화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개인박물관이라서 인도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이나 운영 프로그램은 뭔가 미흡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천릿길도 한걸음부터 시작되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이제 걸음마를 떼고 활동을 시작한 인도박물관이 길게 이어질 한국과 인도의 교류와 협력에 초석이 되고 동시에 그 교류와 협력을 바탕으로 더욱 풍성해지면서 제2, 제3의 인도박물관의 탄생을 유인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