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90주년을 경축하기 위한 이벤트
2011년은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이다. 1921년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지에서 13인의 지역대표들이 모여 1차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만 90세를 채운 중국공산당은 당원 8,000만 명을 거느린 세계에서 가장 큰 정당이자 1949년 정권수립 이후 집정당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 현대중국을 이끌어 온 권력의 핵심이다. 원래 중국에서는 숫자가 꺾어지는 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거니와 내년부터 새로운 중국공산당 18기가 출범하기 때문에 올해는 유독 공산당 창당 90주년 관련행사가 넘쳐난다. 거리의 현수막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 주최로 어떤 행사가 벌어지든 간에 그 앞에는 ‘창당 90주년’이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 올해 6월 15일 개봉한 영화 <젠당웨이예(建?偉業)>와 6월 30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베이징(北京)-상하이 간 고속철도의 개통은 지난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기념일을 앞 둔 시점에서 건당 90주년의 전국적인 경축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국가적 이벤트였다.

화제의 영화 <젠당웨이예>
아마 우리에게서 오래전 사라진 ‘선전영화’이기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젠당웨이예>라는 영화는 개봉 이전부터 영화 외적으로도 각종 이슈를 쏟아냈다. 우선 웬만한 블록버스터 급 제작비8억 위안(元), 한화기준 약 1,342억 원가 들었다는 점이나 출연배우만 108인1)이라는 규모에 관한 이슈 외에도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의 첫사랑이었던 여성혁명가 타오이(陶毅) 역에 캐스팅된 탕웨이(湯唯)의 출연부분이 통으로 편집되었다든지2), 영화비평 웹사이트에 평점을 줄 수 없게 되어있다는 점3), 또한 관중동원을 위해 할리우드(Hollywood) 대작 <트랜스포머 3Transformers: Dark Of The Moon>의 개봉일자를 늦추고 기관과 기업들에 표를 강매했다는 등의 폭로성 이슈들이 터져 나왔다.
사실 이 영화는 재작년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개봉했던 <젠궈따예(建國大業)>의 속편 성격으로 전작 <젠궈따예>와는 감독이 같을 뿐만 아니라 중화권 유명배우를 망라한 대규모 캐스팅과 공산당 지도자 중심의 서사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 등 형식과 내용에서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더욱이 두 영화 모두 제목에 큰 대(大) 자나 큰 위(偉) 자가 들어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해 제작된 영화며, 따라서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가치판단이 그대로 투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어느 정도 지루함을 각오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인의 입장이어서 그런지 역설적이게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재미’ 역시 대학시절 한 번쯤은 교양수업으로 들었음직한 ‘중국근대사’나 ‘중국혁명사’의 내용들이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재구성되는구나, 라든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도 대사에 등장하네, 또는 후스(胡適, 1891~1962)에 대한 가치판단을 리다자오(李大釗, 1889~1927)나 천두슈(陳獨秀, 1879~1942)를 통해 내리는구나, 하는 종류의 것이니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재미와는 거리가 있다. 또 영화는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진행 도중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개요를 간간히 자막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는데 예를 들어 도입부에서의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중국이 반(半)식민지 반봉건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는 자막처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단정적인 서술방식이나 단어선택이 주는 ‘낯섦’ 또한 지루함을 더는 데 크게 한몫했던 듯싶다.

영화 속에 비친 지도자들의 도덕적 우월성
영화의 시간적인 배경은 1911년 무창봉기(武昌蜂起)부터 1921년 중국공산당의 성립까지로 대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신해혁명(辛亥革命) 실패 후 군벌들 간의 대립과 대륙의 혼란상황을 묘사하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은 5.4운동 전후 마르크스(K. Marx, 1818~1883) 이론의 도입과 그 속에서 지식인들의 사상적 흐름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은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인해 촉발된 운동세력의 각성과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1차대회를 통한 공산당의 성립을 그리고 있다. 특히 두 번째 부분부터는 중국공산당의 성립세력을 베이징대 마르크스 이론가 집단과 마오쩌둥을 필두로 하는 후난(湖南)세력, 그리고 프랑스 유학파로 나누어 묘사하고 이들 간의 교류와 연대를 강조하면서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시각으로 이들 각 세력의 활동을 차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역사적 흐름을 영상화하는 데 있어 시기별 주요사건과 그 사건에 처한 주요인물의 직접적인 행위를 중첩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주요인물 간의 선악구조를 비교적 명확하게 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이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마오쩌둥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등장하며 주인공 없는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해내고 있는데 그 외에도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나 주더(朱德, 1886~1976),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 등 후일 중국공산당의 지도자들은 그 분량에 상관없이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동시에 초기 마르크스 이론가 혹은 극중 선한 인물들과의 인간적인 교류과정을 통해 이들의 온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중국공산당의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서사구조를 취한다.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문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 영화의 줄거리나 서사구조의 단조로움, 그리고 단정적인 가치판단에서 엿볼 수 있는 중국공산당의 역사관을 유치하다고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중국인의 입장에서 본 중국혁명의 역사는 분명 자랑스러울 수 있는 역사기도 하다. 또 동일한 시기 슬펐던 우리 역사를 생각해보면 조금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애써 보여주는 당시 공산당 지도자들의 도덕적 우월성과 공산당 창당의 역사적 필연성만으로 건국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공산당 집정을 당연시하기에는 지금 현재 중국사회의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개혁개방 이후 엄청나게 벌어진 빈부격차와 지역격차, 공산당의 오랜 집정으로 인한 부패문제와 상대적으로 더딘 정치체제 개혁, 민족 간 갈등과 종교의 갈등 그리고 이러한 갈등을 극복할만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부재 등 이런 제반문제들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대응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현상유지와 관리에, 국정운영 전반에 걸친 우선순위의 조정보다는 중화민족주의의 강조와 사회 전방위적인 확대재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최근 중국사회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감정적 민족주의로의 쏠림현상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체현으로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국공산당을 강조하는 지도층의 대내외 정책적 선택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보다 많은 중국인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이익의 지점을 중국공산당의 그것과 동일시하게끔 만드는 것, 이것이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좀 오래되고 상투적이지만 반대로 그래서 더 쉽고 효과적인 중국공산당의 상징조작이다.

 
중국공산당의 건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중국공산당 1차대회 참가자들이 프랑스 군을 피해 배 위에서 마지막 회의를 가지는 장면이 재현된다. 참가대표들은 <궈지거(國際歌)>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그 노래가 끝나자마자 강대한 현대중국의 이미지가 내레이션과 함께 겹친다. 하지만 외국인의 시각에서 이 <궈지거>의 이미지와 강대한 중국의 이미지 사이에 ‘널뜀’은 확실히 조화롭지 못하다. 나아가 1921년 창당 당시 중국공산당의 가치지향과 조화사회를 강조하는 지금의 중국공산당의 가치지향 역시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젠당웨이예>에서 엿볼 수 있는 중국공산당의 비논리적이지만 경제적인 설득이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체제저항적인 중국의 지식인들이 국가에 빠르게 포섭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도 이 설득이 비교적 오랫동안 유효할 것이라는 전망을 갖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예전에 읽었던 『파리코뮌』이라는 책에는 “상황만을 강조하면 역사는 우연이 되고 원인만을 강조하면 역사는 필연이 된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사실 아무리 청(淸)황실의 무능함을 강조하더라도 또 아무리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을 강조한다고 해도, 그래서 60여 년 전 중국공산당 집정을 시대적 요구에 따른 필연이었다고 해도 2011년 현재 중국사회가 처해있는 상황은 90년 전 만들어진 정치적 정통성만으로 봉합되기는 힘에 겨워 보인다. 그런 점에서 중국공산당의 건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