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족군사회와 타이완문학
단일민족에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우리와는 달리 타이완은 십여 족의 원주민과 중국에서 건너온 한족(漢族)으로 이루어진 다족군(多族群)사회다. 또한 같은 한족이라도 명청(明淸)시기를 거쳐 푸졘(福建)성을 중심으로 한 중국 해안지역 출신의 민남인(?南人)과 광둥(廣東)성을 중심으로 한 내륙지방 출신의 객가인(客家人), 그리고 19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패한 국민당과 함께 철수한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뉘며, 타이완성 외부에서 온 외성인이란 칭호와는 구분된, 그 이전부터 타이완성에 거주하던 민남인과 객가인을 일컬어 본성인(本省人)이라 부른다. 이들 각 족군은 타이완에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와 그에 따른 역사경험이 다르고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에도 차이가 있으며, 현재 중국과의 관계나 타이완 내부의 정치적 문제에서도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특히 각기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있어 각 족군의 문화적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비록 국민당 철수 이후 국어라고 불리는 현대 중국어가 통일된 관방언어로 제정, 시행되었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각 족군 고유의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족군 간의 문화와 정체성을 가장 가시적으로 반영하는 문학작품 역시 각기 다른 언어로 창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중 원주민문학은 1980년대 원주민운동에 힘입어 활발하게 창작되면서 1990년대 이래 다원성을 보여주는 타이완문학의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부상했는데 대부분 국어, 즉 현대 중국어로 창작되고 있지만 각 부족의 고유언어를 사용하자는 주장 또한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각 부족의 언어는 소리만 있지 문자가 없어 표기에 곤란이 따른다는 점이다. 한편 타이완인구의 67.5%를 차지하고 있는 민남인의 경우 원래 중국방언 중의 하나였던 민남어가 타이완어로 불리면서 중국과 구별되는 타이완의 정체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는 정치적 민주화와 본성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외운동(黨外運動)의 성공으로 타이완을 대표하는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는 일군의 학자와 인사들은 타이완어로 창작된 것이야말로 진정한 타이완문학이란 주장을 펴면서 타이완어의 표기를 둘러싼 갖가지 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른다. 또 이런 주장은 실제 교육에도 반영되어 다원화의 기치 아래 향토언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각 족군의 언어를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는데 문제는 표기체계가 통일되지 않아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어로 창작된 작품은 타이완문학이 아니다?
최근 남부도시 타이난(臺南)의 한 학술회의에서 일어난 작가 후앙춘밍(黃春明)과 타이완어의 로마자 표기를 주장하는 한 국립대학 교수 간의 의견충돌은 이러한 타이완의 복잡한 언어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전통적으로 타이완의 남부지방은 당외운동의 근거지이며 타이완 독립성향이 강한 곳이다. 타이완문학을 체계적으로 정리, 연구하고 전시, 홍보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타이완문학관에서 열린 이번 학술회의에서 후앙춘밍은 ‘타이완어문 쓰기와 교육에 대한 검토’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타이완어 교육의 실효성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이에 청공대(成功大) 타이완문학과의 쟝웨이웬(蔣爲文) 교수는 후앙춘밍에게 타이완어로 작품창작을 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장내는 각각의 지지자들의 함성으로 소란이 일어났고 이 사건이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 의해 다음날 주요뉴스로 지면을 장식하자 언어사용 문제를 넘어 타이완의 정체성과 관련한 각계의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후앙춘밍은 물론이고 현재 타이완문학사 저술을 비롯해 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국립정치대(國立政治大) 타이완문학연구소 첸팡밍(陳芳明) 소장은 <롄허바오(聯合報)> 등 타이완의 주요신문을 통해 쟝 교수가 주장하는 타이완문학의 협소한 정의를 비판하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타이완문학을 연구하는 것이 학계의 임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쟝 교수는 주요 TV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중국어로 창작된 것은 타이완문학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급기야 자신의 견해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 학자들을 일일이 지목하며 반민족적이라고 매도했다. 이에 쟝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청공대 타이완문학과는 교수들 명의의 공동성명을 통해 쟝 교수의 주장은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일 뿐이라며, 이번 논란이 타이완문학과 혹은 대학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어 학생모집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타이완문학을 공부하는 각 학교의 대학원생들 역시 신문에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밝히는 등 언어문제로 촉발된 논란이 연일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논란이 커진 데는 당대 타이완문학의 주요작가로 존경받고 있는 후앙춘밍이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된 까닭에서도 연유하지만 기본적으로 양측의 주장이 앞서 말한 족군이나 언어 및 역사경험의 상이와 관련한 타이완의 국가 정체성 문제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1949년 국민당의 철수와 1950년대 백색테러리즘이라 불리는 반공정책 아래 일제시기 타이완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희생되었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본성인은 외성인에 의해 차별을 받아야 했는데 본성인이 외성인에 비해 표준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때문에 언어문제는 본성인의 정치참여를 주장하며 시작된 민주화 운동의 매우 중요한 논점이었고 정치인들은 타이완의 이익을 주장할 때는 어김없이 민남어, 즉 타이완어로 연설을 하는 등 타이완어는 반국민당, 민진당, 타이완 독립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1980년대 타이완의 본토성을 강조하는 정치본위 시대와 족군 간 문화의 다원성을 강조하는 1990년대 포스트모던 시대를 거쳐 2000년 야당인 민진당(民進黨)의 집권과 형식적으로나마 달성된 정치적 민주화로 인해 해소되었다. 따라서 이번 논란에는 2008년 다시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양안경제합작기구(ECFA)의 체결과 중국자본의 대량유치 등 경제면에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데 대한 독립파 근본주의자들의 반발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고 하겠다. 쟝 교수를 지지하는 서클의 독립추진 주장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타이완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려는 이유
타이완문학은 정통 중국문화의 계승을 자처하는 국민당 체제 하에서 오랫동안 존재조차도 알려지지 않았다가 2000년대에 와서야 정식교육 체계로 진입하여 교육, 연구되고 있다. 사실 타이완문학, 문화와 역사의 발견과 중시가 기본적으로 본성인의 정치운동과 궤를 같이 하므로 전공학과나 대학원 과정의 설립에서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아주 없었다고는 하기 어렵다. 또한 그로 인해 중국과의 차이에 중점을 두면서 타이완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학과가 이민과 식민경험, 냉전을 거치며 형성된 타이완의 역사경험과 다족군 사회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통해 타이완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노력하지 않고 객관적인 역사경험을 부정하며 족군 간의 갈등을 조장한다면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타이완문학 연구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할 것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적인 내용인 타이완어 사용과 로마자 표기만 본다면 전자, 즉 타이완어 사용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거의 없다. 타이완어 단어나 표현법이 대량으로 국어에 섞여 있는 것이 실제 타이완의 언어사용 실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자를 배제한 로마자만으로 표기하자는 주장은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현재 타이완어의 표기방식은 크게 기존 한자를 이용하는 방식과 한자와는 완전히 다른 로마자로 소리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이번 논란에서 작가 후앙춘밍을 비난한 측은 베트남의 경우처럼 로마자를 사용해 한자를 완전히 배제하고 타이완어를 표기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반대하는 측은 이것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며 다양한 족군 중 민남인 우월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고 있다. 따라서 타이완어의 로마자 표기를 주장하는 측의 핵심적 사고는 언어민족주의를 통해 중국과 구별되는 타이완어와 타이완문학을 창조, 중국으로부터 문화적으로 독립하려는 기초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며, 현재 정치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없는 시점에서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 채택한 일종의 전략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 식민지 시기에도 문단의 쟁점이 된 바 있다. 1930년대 좌익문단의 문예대중화 방안이 논의되면서 무산대중에게 문예를 창작하고 향유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어떻게 표기할지를 두고 각각 백화문(白話文)구어체로 쓴 중국의 글과 타이완화문(臺灣話文)의 사용을 주장하는 논쟁이 있었고, 또 타이완화문의 표기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모색되기도 했다. 이렇듯 언어문제는 각기 다른 족군, 역사경험과 이를 기반한 정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줄곧 타이완사회의 중요한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로마자로 표기된 타이완어 창작만이 타이완문학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대다수 반대자의 의견처럼 현실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지나친 정치적 목적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족군의 화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정한 타이완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우선 타이완문학이 일제 식민지 시기의 일본어 창작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국어인 현대 중국어로 창작되어 모든 족군에게 향유되고 있는 현실에서 굳이 민남인의 고유언어인 타이완어 사용과 또 통용되는 한자를 배제한 로마자 표기는 기존의 현실적 문학기반을 무시한 방안이라고 하겠다. 만약 이런 방안이 미래지향의 방향성으로만 채택된 것이라면 모르되 그렇지 않고 역사적으로 이미 성립, 발전해온 타이완문학을 이 표준에 맞추어 선택, 배제시킨다면 그야말로 문학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언어에 비해 타이완어의 사용이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초기 선교사들에 의한 로마자 표기 시도 이외에 과거 그 어느 시기에도 한자를 표기수단에서 배제한 적이 없는 만큼 전면적인 로마자 사용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로마자의 전면수용이 타이완의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적으로 다족군사회에서 타이완어는 민남인 이외의 객가인과 외성인, 그들의 후대와 원주민에게 있어 자유자재로 사용이 가능한 모어(母語)가 아니다. 특히 원주민의 경우 과거 한족으로부터 받은 핍박은 차치하더라도 다원화된 당대 타이완사회에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그들의 모어와 완전히 이질적인 언어를 강요당하는 것은 다원성과 평등, 화합을 강조하는 시대정신에 위배될뿐더러 족군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위험도 있다. 
때문에 타이완이 각기 다른 시기에 이주해 온 족군들로 구성된 이민사회이며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네덜란드, 스페인, 청나라와 일본의 지배를 거쳐 국민당의 철수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굴절을 겪으면서 중국과 문화적으로는 친연관계에 있으나 역사경험에서는 다른 길을 걸어왔음을 인지하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면서도 각 족군을 아우를 수 있는 문학기반을 건립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일찍이 타이완에서 쓰였던 언어로 창작된 작품이면 모두 타이완문학의 범위에 귀속시키고 있다. 이럴 경우 비록 타이완어가 수적으로 우세를 차지한다고 해도 현재 사용되는 모든 언어와 그 언어로 창작된 작품이면 모두 타이완문학의 범위에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유감인 것은 이번 논란이 정치권이 아니라 학계에서 제기되어 학문의 정신인 다양성과 합목적성을 훼손할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고, 또한 내년 총통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본래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논의해야할 언어문제를 이처럼 배타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자칫 정치적 입장의 대립으로 격화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다. 어찌되었든 이 논란은 아직도 타이완사회가 탈중국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