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사이로 뛰어다니거나 옷장에 들어가 무릎을 맞대고 앉아있던 기억,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 때문에 구석진 곳을 찾아다니던 기억이 누구든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공간은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자의 기억으로 남는다. 작은 공간일지라도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은 그 공간만의 힘으로 소통과 연대의 에너지를 전파시키는 신기한 기능을 갖게 된다.
 

인천에 이런 작지만 소중한 공간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지난 5월 신포동 칼국수 골목과 창영동에 이른바 골목길 갤러리, 2곳이 탄생한 것이 시작이었다. 신포동 토박이 청년들이 만든 ‘신포살롱’에 이어 7월에는 ‘다락 소극장’, 9월에는 간석동에 ‘문화바람’이, 차이나타운에 ‘낙타사막’이 각각 문을 열었다. 구 돌체소극장 자리에 자리 잡은 ‘플레이캠퍼스’, 창영동의 ‘퍼포먼스 반지하’, ‘스페이스 빔’ 등 기존의 문화공간들까지 꽤 많은 공간이 각자의 기획을 갖고 재미있는 색깔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 공간들을 만든 사람들이 인천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나 기획자들이라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바야흐로 인천에 ‘구도심 문화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있다”는 지역 언론의 표현이 과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다.
 

지원금을 받아서도,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저 즐겁게 만든 공간들이기에, 만든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겁다. 예술가도, 기획자도, 시민도, 지나가던 관광객도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은’ 부담이나 ‘예술을 즐기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 같은’ 중압감 없이, 한 호흡 멈추고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공간들이 모두 구도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영동과 배다리, 신포동과 차이나타운까지 오랜 역사와 그 역사만큼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이 이런 작은 문화공간을 배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커피 한 잔이라도 사 먹지 않으면 잠시 앉아있기에도 눈치가 보이는 번화가에는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쉽지도 않은 일이다.
  

“건축이란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완공함으로써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살게 되는 거주자의 삶으로 이루는 것이며, 만약에 건축이나 도시가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붕괴나 몰락을 의미한다”는 건축가 승효상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천 곳곳에 생겨나고 있는 공간들은 그 자생성과 활력만으로도 반갑기 그지없다. 이 공간들은 자동차를 이용하기보다는 걸어서 다니면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공간들을 찾아가고 싶다면 동인천역에서 내리거나 버스를 타고 배다리에서 내리는 것이 좋겠다. 아벨서점을 위시한 헌책방 거리를 지나, 옛 양조장을 근사하게 리모델링한 대안미술공간 스페이스 빔으로 간다. 깡통로봇이 지키고 있어 찾기도 쉽다. 스페이스 빔에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니 운이 좋다면 작가에게 작품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쪽으로 살짝 더 올라가보면 주황빛의 아담한 ‘한점 갤러리’가 보인다. 부담 없이 쓱 들어가 구경하고 나올 수 있다. 1점은 아니고, 3~5점 사이의 작품이 전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도, 보는 사람도 부담 없는 소규모 전시지만 새로운 작품을 보고 느끼기엔 충분하다. 바로 옆은 창영동에서 지역예술 활동을 꾸준히 해온 퍼포먼스 반지하가 만든 마을 카페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나 차 한 잔 마시면서 관련 자료와 지금껏 진행됐던 프로젝트들을 감상해 볼 수 있다. 주차장 등 곳곳에 그려진 벽화들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좋겠다. 다시 아벨서점 쪽으로 내려와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고르고, 서점 옆에 있는 작은 문화 공간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에 들러도 좋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맞춰 가면 시 낭송회에 참석할 수도 있다. 신포동으로 넘어와서 신포동 칼국수 골목, 신포순대 옆 좁은 골목길로 들어오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작은 갤러리가 바로 ‘유네스코 에이포트(Unesco A.poRT)’다. 찾기 어려워서 더 재미있는 공간인데, 인천이 갖고 있는 공항(Airport)과 항구(Port)의 영문을 합성해 에이포트로 명칭을 정했단다.
 

칼국수 골목에 왔으니 싸고 푸짐하고 맛있는 칼국수 한 그릇을 빼놓을 수 없다. 배를 채웠으니 좀 더 걸어가 보자. 운동화 매장 옆 골목 건물 2층에 보일 듯 말 듯한 간판을 달고 수줍게 자리한 신포살롱이 있다.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신포동 소셜커머스를 표방하는 마을기업 영싱크의 사무실도 겸하고 있다. 신포살롱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락 소극장이 위치해 있다. 7월에 개관한 이곳은 전시와 공연을 한곳에서 하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공연장 로비가 상설 전시 공간이고, 80석의 객석을 가지고 있다. 연극을 기본으로 미술, 사진 등 복합적인 장르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다락 소극장에서 인천역 방향의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인천아트플랫폼이 나오고, 좀 더 걸어가면 차이나타운의 공자상 계단이 나오는데 계단 가운데쯤에 최종 목적지인 ‘낙타사막’이 있다. 낙타사막의 공간 정체성은 모호하다. 1층은 전문 서적들이 놓여 있는 카페로, 2층은 소모임 위주로 대관하기도 하고 작가들이 사용하기도 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점심시간엔 맛있는 카레와 커피가 7천원에 제공되니 식당이기도 하다. 칼국수로 부른 배를 커피로 달래고, 2층에 올라가면 바다가 보이는 인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자상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또 하나의 미니 갤러리 ‘쉬필라움’도 자리 잡고 있다. 아기자기한 공간과 햇볕이 내리쬐는 골목길. 같은 차이나타운이지만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 관광객들이 떠들썩하게 지나다니는 그곳과는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공간들을 만들거나 운영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바람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번 주말 한나절 시간을 내어 거창하게 문화 활동을 하지 않아도, 한 걸음 일상에서 내딛으면 가볼 수 있는 이런 공간들을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출근길이 나의 여행길”이라 표현한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익숙하다고, 다 안다고 생각했던 공간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공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기분 좋을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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