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두 번 제주도 여행을 해봤을 테고, 그중 대다수가 마라도에 다녀왔을 것이다. 한때 신혼여행지로 이름이 드높던 제주도이기에 나이든 사람일수록 제주도에 대한 추억을 귀한 편지처럼 고이 접어 간직하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런 낭만 비스름한 것은 그야말로 쌍팔년도에나 어울릴 법한 퇴색한 얘기가 되고 말았다. 경제가 발전하고 곳곳이 개발 붐을 타면서 제주에서조차 예스러운 운치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자원 뿐만 아니라 오래된 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육지로부터 외따로이 나앉은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육지와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문화유산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최근 들어 국내 혹은 일본에서 북한어나 고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제주도에 너나없이 방문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왜 그들이 궁벽진 섬에까지 와서 시골 할머니를 만나 얘기를 꼼꼼히 받아 적고, 채록하는 것일까.
 

제주사학과 문화에 도저한 사학자들은 천혜의 자연자원, 문화전통, 제주어를 파괴시키는 주범이 외지 자본이라 꼭 집어 지적하고 있다. 제주도에 대한 애정 없이 투입된 자본은 단연코 투기 자본이라 매몰차게 단정한다. 이른바 단기 차익을 노려 ‘치고 빠지기’식으로 접근하거나 제주도의 권력층과 야합하여 오래오래 높은 투자 이자를 받아먹으려는 경우다. 제주도정은 이들을 투자라 어연번듯하게 포장하여 실적 부풀리기에 급급하고 있다. 제주도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바로 이것이 제주도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며 종주먹을 들이대고 있다. 환경론자들 역시 제주도다운 것, 전통을 지켜내는 것, 최소한의 개발로 자연 환경을 후손에 그대로 물려주는 것이 제주도만의 경쟁력이라 강조하고 있다.
 

섬 중의 섬이라 불리는 우도, 마라도 역시 다를 바 없다. 무분별한 개발, 영혼 없는 토목건축 열풍으로 인하여 지역민은 이미 살찬 도회지 사람들이 다 되었다. 최근 섭지코지에 다녀와 봤는가. 드라마 <올인>(2003)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치르더니 급기야 대규모 휴양단지가 들어서고 말았다. 이로 인해 섭지코지로 들어가는 도로가 봉쇄되었고, 아름다운 섭지코지가 몇몇 외지 자본에 의해 휘둘렸다. 굴러들어온 외지 자본이 제주도의 아름다운 관광지를 집어삼키고 주민이 대대로 지키고 두남두던 풍광을 빼앗아간 것이다.
 

초장부터 돌연 이런 얘기를 꺼내놓는 것은 마라도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다. 마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외지 자본과 장삿속으로 얼룩진 섬, 마라도. 국토의 최남단이라는 상징 이외에 마라도에 또 무엇이 존재하는가. 처음에는 국토의 최남단까지 휴대폰이 터진다는 이동통신  대기업의 광고로 마라도가 등장했다. 이후 우후죽순으로 기업들은 국토의 최남단이라는 상징을 자신의 광고 촬영 컨셉으로 사사롭게 이용했다. 조용히 나부죽 엎디어 살던 마을 주민들은 흥청망청 뿌려진 외지 자본에 차차 길들여지게 되었다. 마라도의 변질은 확고부동한 수순이었다.
 

마침내 마라도는 짜장면의 섬이 되었다. 한 개그맨이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광고 카피를 외장쳐 부른 이후부터. 국토의 최남단이라는 상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한두 시간 안에 짜장면 한 그릇 후딱 해치우고 카트 타고 섬 일주를 하면 끝나는 황막한 섬이 되었다. 관광객의 머리에는 아, 국토의 남쪽 끄트머리 섬에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야, 하는 단발적인 생각밖에 뇌리에 남지 않았다. 마라도 정기여객선에서 내린 순간 자기 가게에서 짜장면을 먹으라는 호객꾼을 만날 수 있다. 놀라운 자본의 가역반응이다. 다들 장사치가 되고 말았다. 여기 어디에 예술이 청죽(靑竹)처럼 허리 곧게 펴고 설 자리 있으며, 시 한 줄 유유자적 스며들 자리가 있겠는가. 또 한 줌의 영혼 머리 둘 데 있겠는가.
 

대한민국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에 문학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아니, ‘거세게’라고는 딱히 단정할 수 없다. 제주작가회의는 처음 시도해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주민들도 호의적이 아니다. 저렇게 허랑하게 떠돌다 때가 되면 떠나겠지, 하는 섬 속의 섬 특유의 냉소와 배타성이 짙게 묻어난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작가회의는 도전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제주도는 조선시대 최대의 유배지였다. 유배지 중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천형의 섬이라 불리었다. 대부분 정치범이라 중형을 면치 못하는 경우나 평생을 섬에 갇혀 사는 경우도 많았다. 지밀(至密)을 찬탈당한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이 제주에서 죽었는가 하면, 유배 왔다 돌아가는 길에 사약을 받은 유명한 유학자가 있고, 유배객으로 왔다가 후에 제주목사로 내려와 사랑의 결실을 확인한 이도 있었다. 이들 유배객들이 제주섬에 끼친 영향은 일일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농홍하다. 오죽하면 제주도의 문학관은 유배문학관 컨셉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얘기가 맑은 하늘 뭉게구름처럼 떠돌겠는가.
 

말을 바꿔 표현하면, 제주도는 섬 전체가 거대한 감옥이었다. 유배인들에게는 형을 사는 감옥이었고, 제주 사람들은 출륙금지령의 올가미에 갇혀 뭍으로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고 끝내 좌절하고 마는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이었다. 그런 유배객 중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사람이 있으니, 그 대표적인 이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다. 김정희는 유배 오기 전의 오만방자함을 유배 기간 동안 스루고 인고하여 <세한도(歲寒圖)>를 그리고, 추사체를 완성했다. 그로 하여금 이러한 성과를 낳게 만든 것은 지난한 유배의 시간과 대정현  모슬포의 모진 칼바람이었다. 예로부터 대정의 된바람은 모지락스럽기로 유명했다. 지금까지도 모슬포를 ‘못살포’라 하여 사람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제주작가회의는 추사 김정희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그것은 ‘자발적 유배의 시간-마라도 창작스튜디오’라는 타이틀로 결과물을 드러냈다. 이는 입주작가로 하여금 조선시대 최대의 유배지였던 제주에서 자발적이고 한시적인 유배 생활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보다 웅숭깊은 문학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뼈를 깎는 고통으로 멋진 작품 하나 일구어달라는 당부이자 부탁이기도 하다.
 

제주작가회의는 지금, 2011년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지원하는 레지던스 사업의 일환으로 마라도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마라도 창작스튜디오는 제주에서 처음 운영되는 문학 레지던스 사업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마라도의 ‘기원정사’를 거점으로 개설되는 이 창작 집필실 지원사업은 마라도 가 국토최남단이라는 상징적 좌표에만 머무르지 않고, 참여 작가들이 문학을 도구로 마라도에 예술적 가치를 보태고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7월부터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마라도 창작스튜디오는, 현재까지 10여 명의 작가들이 다녀갔다. 길게는 두 달, 짧게는 한 달 동안이다. 태풍 무이파가 다녀갔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마라도는 운이 없으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발이 묶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라도로 들어오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짙은 안개나 높은 파고, 혹은 왁살스러운 바람이 그 주범이다.
 

입주 작가 박아무개는 무이파가 집어삼키는 섬을 목격했다. 해안 산책로를 집어삼킬 듯이 몰아치는 파고 앞에서 그저 우두망찰 입을 벌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고 했다. 설한풍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에는 모래로부터 주먹만 한 돌멩이까지 두루 실려 있었다. 유리창이 깨지고 빨래가 날아갔지만 그 압도적인 장면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했다. 나중에 그는 일생동안 그런 광경을 다시 구경하지 못하리라 술회했다. 그것이 자기 문학에 있어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진귀한 체험이었다는 데 입주 작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런 두려움과 외로움이 <세한도> 같은 웅숭깊은 작품 잉태하게 만들지 않겠는가.
 

입주 작가 중에는 도외 작가들이 많았다. 제주도 안에는 전업 작가가 드물 뿐만 아니라, 몇 안 되는 그들은 오히려 육지의 한적한 곳에서 작업하기를 희망한다. 현재까지 입주 확정된 작가 20여 명 가운데 단 2명만이 제주 출신이다. 제주작가회의는 이 점을 착안하여 정식 공모에만 의존하지 않고, 입주 시기에 의해 생기는 여분의 시간에 따라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를 제주도 작가에게 할애하기로 확정했다. 제주 작가들이 짧은 기간이나마 글을 쓰고 육지 작가들과 소통을 하라는 의도에서다. 집필실 작가들에게 용기도 주고 심신을 추스르며 소통의 장을 만들라는 다중적인 속셈이 깔려 있다. 어떤 이는 면회객 역할을 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작품에 몰두하는 이른바 ‘자발적 유배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제주작가회의는 이들 입주 작가들로 인해 마라도나 제주도를 소재로 한 작품이 다양하게 탄생하길 바란다. 작품을 읽고 일부러 찾아오는 문화 관광객을 그려본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 마라도 창작스튜디오로 인해 마라도 주민이 생계를 해결하고 좀 더 느긋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제주작가회의의 궁극적인 바람이다. 나아가 마라도의 뭍인 제주본섬까지도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우리가 먼저 안으로 수그러들어 성찰하고 신발끈을 동여매 ‘자발적 유배의 시간’을 보내야 함은 당연한 이치이다.
 

제주작가회의는 이 사업을 통해 지리적 인문적 환경의 보고인 마라도가 예술의 향기도 함께 피어나는 섬으로 바뀌길 고대한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예술인들에게도 사랑 받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문학적 역량을 보태고자 한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시도이나 야심찬 기획이다. 또 이번 사업은 중앙에 편벽되이 몰려있는 문학의 판도를 바꾸고 제주도만의 독특한 지역 문학적 자존심과 명맥을 이어가는 도저한 시도라 평가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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