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인권센터에서 활동가로 있을 때 국제결혼 상담을 한 적이 많다. 대개는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여성 사이의 결혼문제였다. 주로 결혼과정에서 집안의 반대로 부딪치는 갈등이었다. 결국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동거하는 국제결혼 부부가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로 결혼 이후에도 갈등은 계속된다. 더러는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국제결혼 부부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결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상담이 이어졌다. 아이가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집에 와서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한다며 눈물로 하소연 하는 일이 빈번했다. 결혼 상담으로 시작하여 아이의 교육문제까지 이어지는 상담의 요지는 차별이다. 차별로 인하여 상처받고 고통 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국제결혼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생기는 일은 의외로 많다. 아침 식단부터 고민한다. 남편이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 사람인 경우 이슬람식 카레나 로띠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음식로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입맛인 한국식 식단으로 차릴지 망설인다. 남편의 식성에 맞추려면 할랄푸드이슬람 규율에 따라 종교의식을 치른 음식을 파는 마트에서 음식을 사와야 한다. 고기는 반드시 소고기나 양고기여야 하고 도축도 이슬람식으로 한 것만 구입해 요리해야 한다. 모든 음식요리에 돼지고기는 절대 금지다. 옷도 몇 벌 정도는 사리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여성의 전통 의상를 구입해야 한다. 시댁을 방문하거나 각종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반대로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이 결혼한 가정도 마찬가지다. 입맛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듯이 문화 역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은 갈등으로부터 시작되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서서히 차이를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쌍방향으로 스며드는 것이 결혼이듯 문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안녕 라자드』는 바로 우리 이웃에서 벌어지고 있는 있음직한 일에 질문을 던진다. 용산 참사, 외국인 이주민, 특수목적고, 십칠 년 만에 감옥에서 불현듯 찾아온 삼촌 등을 통해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현재’를 묻고 있다. 그 중 이 소설의 표제가 된 「안녕 라자드」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검은 얼굴의 라자드가 누나의 남자 친구로 소개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평소 토론을 좋아하는 가족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를 중시한다. 아버지는 대학의 철학과 교수이고, 어머니는 약사에다 누나는 이른바 일류대 출신의 시민단체 활동가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입시 지옥을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으로 “나” 역시 누나에게 독서지도를 받으며 일찍이 합리적 설득과 이해를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컸다. 그런데 어느 날 누나는 남자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면서 가족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준다.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라자드를 본 순간 가족들의 얼굴에는 라자드의 얼굴빛보다 더 검은 장막이 쳐진다. “너 미쳤어?”라며 기겁을 하는 엄마, “정물이 된 것처럼 굳어버린 얼굴”로 입을 열지 않는 아빠, “누나가 라자드를 사귄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윤호가 뜨악하게 낯선 손님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한 가족에게 벌어지는 낯선 이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 소설은 질문한다. 그 질문은 윤호의 집안의 분위기처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감성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불편한 편견이 내재화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는 이미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피부색이 다른 인종과 국가 간의 서열화가 무의식적으로 축적되어 있지 않은지 궁구하게 한다.
 

사실 오늘날 다문화는 이슈화되고 이념화된 다문화이다. 상호 인정하는 소통과 교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된 쌍방향의 다문화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만큼 현재의 다문화는 다분히 의식적인 다문화이다. 부조화되고 강요된 불편한 다문화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소설처럼 우리 스스로가 아시아인이면서 아시아계 인종을 받아들 수 없는 차별적 시선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에게는 외국인 특히 오늘날 한국으로 이주해 오는 아시아인들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낯선 자연스러움이 시간이 지나면 풍화작용을 하듯이 서서히 우리 안팎에서 사라지리라는 것은 또한 필연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시간이 걸리듯 교류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절대적인 시간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름은 결코 인간의 차이를 낳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안녕 라자드』는 우리에게 묻는다. 낯선 것으로부터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독자들의 대답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