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노년문화가 등장하고 있다. 대중매체들도 다채로운 만큼이나 낯선 새로운 노년의 모습을 부지런히 조명한다. 그 중 최근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것은 아마도 TV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이 모집했던 ‘청춘합창단’에 지원한 노년들의 모습일 것이다. 카메라는 이들이 ‘노인’이라는 문턱에 갇히지 않고 오디션이라는 낯선 관문에 도전하고, 또 한마음으로 노력해 합창 경연 대회에서 수상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감동적 드라마로 그려낸다. 새로운 일에 열정으로 도전하는 이들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라 ‘청춘’이다. 합창단의 지휘자는 “청춘은 항상 시작입니다”라는 얘기로 노년 참가자들의 새로운 도전의 뜻을 자리매김한다.

 
한때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의 노년의 모습을 주로 조명하던 대중매체는 이제 나이를 넘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다양한 노년의 모습들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이 낯선 노년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노인’이 아니다. 짙은 화장과 화려한 복장으로 미인 경연 대회, 춤 경연 대회에 참여하는 노년 여성들, ‘노인 모델’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몸을 관리하는 노년 남성,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는 70대의 ‘철인 할머니’와 ‘철인 할아버지’를 포함해 열정적 노년의 다양한 모습들이 우리 시대 새로운 노년의 표상으로 대중매체에 의해 제시되기 시작했다.
 

광고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70세 열혈남, 미래를 질주하다”라는 문구와 함께 오토바이족의 복장을 한 ‘젊은 노인’을 모델로 등장시키는 한 기업광고의 카피는 다음과 같다. “할리 데이비슨과 아우토반을 열망하는 젊은 할아버지. 그에게 나이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닙니다. 넘치는 열정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진정한 청년, 그가 눈부십니다.” 형용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젊은 노인’, ‘청년 노인’의 이미지가 노년의 새로운 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낯선 노년의 모습들은 일면 “나이 들어서 주책”이라는 식으로 노년을 억압하는 연령주의 문화의 족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새로운 노년세대가 등장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 이들의 새로운 시도에서 나이가 드는 것은 곧 쇠퇴의 과정이라는 고정관념에 맞서 자신의 삶을 주도해 나가려는 노년의 결기도 엿보게 된다. 5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한 중년 남성으로서의 필자는 이렇게 연령주의의 족쇄를 거부하는 노년들의 다양한 시도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응원한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자로서의 필자는 노년의 삶을 빛내 줄 새로운 가치로 ‘청춘’과 ‘젊음’을 호명하는 이런 문화적 흐름이 좀 석연치 않다. 어떤 연유로 청년의 전유물이었던 ‘열정’이 갑자기 장년, 중년을 넘어 노년에게 기대되는 속성이 되었을까? 우리는 최근에 확산되고 있는 이러한 새로운 노년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미래를 꿈꾼다. 물론 수많은 꿈들이 현실에서 부대끼며 왜소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꿈꾸기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년의 삶에 관해서는 마치 자신의 앞길에는 노년이 없는 것처럼 문득 꿈꾸기를 멈춘다. 아니, 꿈꾸기를 멈춘다기보다는 노년의 삶에 관해 어떤 꿈을 상상할 수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차라리 노년에 관한 생각 자체를 회피해 버린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노년의 의미가 점차 불명확해져 가는 후기산업사회의 흐름에 맞닿아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건 노년은 상실과 저하를 동반하는 만큼 어느 정도는 부정적인 함의들을 지니나, 이제까지의 노년은 적어도 생애과정의 ‘예측 가능한 위기’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생애과정의 각 단계에 맞추어 문화가 제시해 주는 ‘삶의 시간표’ 혹은 ‘문화적 각본’이 노년에 이르면 갑자기 증발해 버린다.  

개인들에게 삶의 청사진을 제시해 주고 또 이에 대한 꿈꾸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문화가 제공하는 상상력이어서, 우리의 문화가 노년의 삶에 관한 매력적인 밑그림을 제시하지 못하면 우리들이 노년에 관해 키울 수 있는 상상력도 그만큼 부실해지기 쉽다. 늘어난 평균수명으로 인해 은퇴 이후에도 이삼십년을 살아내야 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고령화 시대에, 즉 노년에 추구될 수 있는 삶의 의미와 청사진에 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막상 노년이라는 삶의 무대를 뜻있는 이야기로 채워 줄 문화의 각본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 역설적이다.
 

이렇게 노년의 삶의 가치나 의미에 대한 문화적 상상력이 고갈되어 가는 토양에서 노년에 대한 어떠한 꿈이 자랄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중매체가 열의를 가지고 제시하고 있는 ‘청년 같은 노년’의 이미지들이 노년담론의 이러한 공백을 채우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노년의 이미지들은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현대의 노년의 삶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동하고 구성하는 새로운 문화적 각본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이 제시되고 있는 노년담론이 조명하는 바람직한 노년의 상은 그 내용에 있어 ‘청년, 혹은 중년의 끝없는 연장’으로서의 노년이다. 언뜻 보기에는 활기차고 긍정적인 이러한 ‘연장된 젊음’의 이미지는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을 ‘지연’시킴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즉 ‘젊은 노년’의 이미지들은 사실상 나이듦에 필연적으로 부수되는 육체적 기능의 저하, 증대하는 의존, 다가오는 죽음 등의 노년에 고유한 삶의 경험이나 과정을 ‘회피’하거나 ‘은폐’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영원한 청춘’의 신화는 이러한 삶의 과정에 대해 언급하거나 이를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요컨대 노년에 고유한 경험들을 회피, 은폐하는 토대 위에 세워진 문화적 각본은 노년의 삶을 조명하는 새로운 문화적 청사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에는 커다란 한계를 지닌다.
 

다른 문제도 있다. ‘청춘 같은 노년’의 문화적 각본은 건강, 외모, 재력, 시간적 여유 등을 두루 갖춘 소수의 노년들만이 추구해 볼 수 있는 ‘특권적’ 성격의 각본이다. 이런 ‘젊은 노년’의 모습이 새로운 표상으로 부상하면 할수록 그런 각본을 실현하기에 요구되는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대부분의 노년들의 삶은 어딘가 ‘모자라는’ 삶이 된다. 이러한 특권적 각본이 제시하는 노년의 꿈은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노년의 초상을 그려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꾸기를 ‘교란’한다.
‘젊음 늘이기’의 신화를 넘어 현대사회의 노년에 눈을 돌려 보면,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노년문화의 특징으로 은퇴 이전의 신분이 지닌 중요성의 약화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노년들 간의 평등주의적 문화, 혹은 에토스의 확산이 눈길을 끈다. 노년문화의 이런 경향성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단계로 접어든 서구 사회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가령 은퇴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노년을 위한 복지센터처럼 노년들만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 과거의 직업에 관해 물어보거나 또는 잘나가던 자신의 이력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일종의 터부이다. 그래도 자기 자랑을 하고 싶으면 왕따를 각오해야 한다. 그런 얘기는 노년문화의 평등주의적 에토스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에도 이러한 평등주의적 노년문화가 어느 정도는 자리를 잡고 있으나, 몇 가지 제한점도 드러난다. 우선 우리 사회의 경우 서구의 경우와는 달리 이러한 평등주의적 에토스의 확산은 쉽게 계층, 혹은 신분의 벽에 부딪친다. 은퇴 이전의 화려한 경력과 재력을 배경으로 지닌 노년, 특히 노년 남성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낮은 신분’의 동년배와 섞이려 하지 않는다. 가령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자리를 같이하고, 말을 섞고, 쉽게 어울리는 노년들은 거의 중간 이하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이런 배경을 지닌 노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평등주의적 문화가 상당히 확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종묘공원을 자주 찾는 ‘단골’들의 경우 잘 모르는 상대방의 학력에 관한 질문은 삼가는 것을 불문율로 지킨다. 또 노인복지관 같은 노년들만 모이는 공간에서 자신의 과거 이력을 자꾸 과시하려는 행동은 백안시나 소외를 부추기기 쉽다.
 

하지만 굳이 서구와 비교해 보자면 우리 사회의 노년 평등주의는 아직 개인들의 ‘신분적 배경’으로부터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다. 종묘공원이나 노인복지관과 같은 노년들의 공간에서도 각 개인의 신분적 배경의 차이가 사람들 간의 사회적 위상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자원으로 활용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년의 평등주의 문화가 드러내는 이러한 신분주의적 한계가 고령화의 진행 정도와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는 한국 문화의 전반적 특성과 더 연관된 것인지의 판단은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만일 전자의 경우라면 한국 사회에서도 평등주의적 노년문화는 앞으로도 더욱 확산될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평등주의적 노년문화는 대중매체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특권적 청춘’의 노년문화와는 전혀 다른 노년의 의미와 가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토양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젊음의 연장으로서의 노년이라는 꿈은 사실상 부정적 노년의 이미지에 기초하고 있다. 노년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공상적인 ‘청춘’을 욕망한다. 여기서 ‘청춘’은 노년에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신분’의 지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반해 평등주의적 노년문화는 ‘청춘’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획득하기 위한 속물적 인정투쟁의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어느 정도 해방시킨다. 이 새로운 문화적 토양은 중년까지의 우리의 삶을 지배하던 문화적 강박들로부터 놓여난 문화적 공간이며, 새로운 노년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여백’이다.
 

중년이 된 고교동창들이 모여, “동창회에서는 사십이 되면 학력 불문, 오십이 되면 재력 불문, 육십이 되면 외모 불문, 칠십이 되면 건강 불문, 팔십이 되면 생사 불문”이라는 농담에 같이 웃은 적이 있다. 그 웃음은 과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감 때문인 점도 있다. 이런 ‘나이 시리즈’ 우스개는 종종 현실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담고 있다. 사실 고교동창이라는 오래된 울타리는 신분을 향한 인정투쟁의 욕망을 바깥세상에서 보다 더 일찍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토양을 제공한다. 이러한 평등주의적 공간에서의 ‘인정투쟁’의 도구는 더 이상 기존의 신분적 지표들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배려, 공동체에의 헌신, 분위기를 돋우는 유머감각, 성숙함, 진정성과 같은 자질들이다. 평등주의적 노년문화도 신분에 대한 강박으로부터의 해방을 가능케 하는 문화적 울타리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동창회와 묘하게 닮아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새로운 열정으로 노년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청춘합창단에 참여해 참가자들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나면 그들과 같은 눈물을 흘릴 것 같다.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일들이 현실이 될 때의 기쁨과 감동을 누구라 쉽게 폄훼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문제는 이러한 노년의 열정과 시도들을 “젊음 늘이기”라는 노년 회피의 담론으로 포장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문화와 대중매체의 상상력의 결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청춘합창단의 경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노년 참가자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에는 시청자들의 눈물샘까지 적시는 사랑의 감동과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율동과 함께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를 메들리로 엮어 부르는 노년 참가자들을 바라보는 가족들과 방청객들의 환호와 웃음에서 아이들의 학예회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표정에 깃드는 ‘대견함’의 감정을 읽게 되는 것은 나만의 경험일까? 노년 참가자들이 경연에서 선보인 노래와 율동은 모두 이들이 더 젊었더라면 좀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혹 방청객들의 감동은 불완전하나마 젊음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 노년들을 ‘대견해’하는 것은 아닐까? 노년들의 다양한 분투를 보며 우리는, 또 우리 문화는, 최대한도로 유지되고 있는 ‘청춘’ 이외에 그들의 삶이 보여주는 어떤 다른 가치와 의미에 공감하고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혹시 우리는 그들의 분투에 감동하는 순간에도 노년을 젊음이 모자라거나 결핍된 상태로만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노년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런 ‘문화적’ 질문들과 본격적으로 씨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