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늘 할머니와 청암사 할머니는 집 앞 길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지나가다 자연스레 그 옆에 앉아 할머님이 키우시는 박과 화분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를 살피며 어제 백중 행사가 잘되었는지를 여쭤보았다. 마늘할머니는 행사에서 받은 떡이 많다고 가져가라고 하시고, 나는 아가 돌떡이 많이 남아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한 달 후에 날 잡아서 박을 따러오라고, 박 하나씩 들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그게 당신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하셔서 마늘 할머니네 박 따기는 연중행사이니 그날 잔치라도 할까요 하고 말씀드리니 한껏 좋아하시며 그래, 국수 삶아놔 봐, 라고 하신다.

퍼포먼스 반지하(이하 ‘우리’)는 육년 전 창영동에 지역청소년들의 지역문화교육공간을 마련하여 오가다 정착했다. 인천의 역사에서도 매우 오래된 이곳에는 오래도록 살아온 분들이 마을의 노인이 되었고, 새로운 사람이 이사 오더라도 주로 부모세대인 노인인 경우가 많아 전체적으로 노인들이 동네에 자연스럽게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동네에서 벌건 대낮에 젊은이들이 마을을 가꾼다고 노가다를 하며 먼저 인사를 드리면 일하는 것이 안쓰럽고 대견하다며 먹을거리를 챙겨주셨던 분들도 마을의 노인분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대우에 우리 역시 그분들의 삶을 존중하고, 배우며 기록으로 남겨 당신들의 삶의 구체적 내용들을 지지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재주로 삶을 비추어드리거나 일상에서 오가며 도움을 받기도 하고 드리기도 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마을 안에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쉼터, 벽화와 사진, 영상기록물과 마을자료들로 남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누리고,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노인분들은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사회에서는 이러한 노인들을 ‘복지계층’으로 분류해왔다. 무언가를 생산하는 주체이기보다는 보호해야 할 대상, 구매능력이 없는 무노동계층, 신체적 약자, 무성적 존재, 현대문명의 부적응자로 분류하여 교육해야 할 대상이거나, 윤리적으로는 공경해야 할 대상이라는 명목 하에 국가적 책임보다는 젊은이들이 부양해야 할 대상으로 떠넘겨 오기도 했다. 이는 사회의 방향이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기술발전을 통해 끊임없이 상품을 만들어내며 이를 팔아야 하기에 ‘소비자’이자 ‘상품생산자’를 가장 중요한 존재로 보는 구조적 필요에 기인한다. 그러다보니 이 같은 사이클에서 벗어나 있는 노인계층은 자연스레 쓸모없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부터 경제력이 있는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노인문제가 부각되고, 다양한 욕구와 조건들을 반영한 프로그램 및 공간과 모임들이 운영, 계발되고는 있으나 아직까지는 생애적 관점이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단순기능이나 향유 중심의 프로그램들이 많다. 지역사회에서 가장 최초의 노인복지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경로당(혹은 노인정)에서는 활용 면에서 아무래도 도시와 농촌 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도시의 경우에는 세대 간의 교류나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보다는 놀이와 여가중심의 문화가 주가 되어, 노인분들이 사회와 교류하는 생산적 활동보다는 소비적 문화가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노인이 갖고 있는 자원을 활용하는 사례로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서 마을 어른들이 마을의 이야기를 관광객들에게 전달하거나, 건강한 노인이 집에서 거동하기 어려운 이웃 노인의 간호나 말벗이 되는 등 몇 개의 사례를 보여주고는 있으나, 극히 일부만이 참여 가능하고, 일자리 사업의 형태로 개인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다 보니 지역문화로 확산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외에도 민간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무료급식이나 무료진료, 사례관리 같은 취약계층의 노인에게 필요한 복지서비스의 형태가 있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어른들이 자발적으로 배우러 다니는 복지관 내 프로그램이나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 관에서 진행하는 공공근로나 희망근로와 같은 다른 일자리 사업 등이 있는데, 이와 같은 대다수의 프로그램들은 특성상 취약계층이 아니면 혜택을 받기 어렵거나, 반대로 어느 정도의 생활이 안정된 노인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역사회 노인들에 대한 현장적 고민이나 조사,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야를 조금 넓혀,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역사적 구성원, 더 넓게는 자연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의 노인이 갖고 있는 위치와 의미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노인과 그가 속한 사회가 통합되고 유기적인 상생과 공존을 위해서는 현재의 문화가 어떤 형태를 지녀야 할까? 아동, 장애인, 노인 등 사회의 약자로 대표되는 이들이 지금처럼 계속 분절된 서비스 위에 놓여있다면 경제력의 여하에 따라 이를 이용할 수 있는 편차가 클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이들은 사회의 한 주체라기보다는 대상자가 되어 투입되는 공공자원은 끊임없이 늘어나면서도 자원이 순환되지 못하여 어느 한 곳은 늘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 노인이 갖고 있는 다양한 축의 정체성을 통합적으로 사고하여야 한다. ‘그는 누구인가’에서부터 그가 겪어온 세월과 관계망, 지역사회 안에서의 노동 형태, 가치관, 생활문화, 연령과 성별, 가족과의 관계 등을 모두 엮어 정체성을 이해해야 하며, 지역 생태계 안에서 노인 문제를 통합적으로 기획하고 풀어나갈 때 지역

안에서의 다양한 문화들이 숨 쉬고 서로 도우며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은 환경오염과 빈부격차, 이념대립, 물질만능, 가족해체, 정서적 불안이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오래된 미래를 노인들로부터 발견하고 이를 지역사회 안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마을의 어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해가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갖게 하는 것이 지역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존재해야 할 공동체적 가치들을 동네 어른들을 통해서 발견하고 살려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역사회 노인문화가
갖고 있는 공동체성의 발견
 

 어느 정도의 시간을 축적한 지역사회 안에는 오래도록 지역에 살아온 분들이 있고, 그들은 마을에서 오래도록 자란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처럼 마을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정주 의식을 지닌 노인들의 생활문화는 지역사회를 공동체적으로 구성하는 데 기반이 되는 역할을 한다. 이 중에서는 늘 있는 듯, 당연하지만 정작 자신의 주변을 보면 스스로는 하지 않고 있거나 이제는 사라진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살려가야 할 요소들을 하나씩 다시 되짚어 본다.
 

첫째, 노인들은 늘 주변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매일 나오던 이가 하루라도 안 나오면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지를 살피고, 어디 갈 때면 내 것 사면서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묻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는 그들이 ‘노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세대가 복지 이전에 공동체를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동네에서 함께 살며, 먹거리를 나누고 기쁜 일 슬픈 일을 겪으며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으로 살아 동네와 함께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기, 청년기에 사회적 격변과 가난을 겪으며 주변 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밥은 먹었는지, 아프지는 않은지를 점검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바라봄’은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지역사회 참여의 중요한 형태이고 지금의 분절된 사회시스템에서 가장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이 된다.
 

둘째, 이러한 ‘바라봄’과 ‘관계함’은 많은 정보를 접수하고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물어보고, 여유가 있는 대로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속에 마을에서 필요한 정보들이 수집되고 유통된다. 마을 안에서의 행사나 사람들의 대소사, 먹거리 정보, 나들이, 집에 대한 정보, 혼사, 복지나 의료지원 정보 등 마을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마실문화를 통해 나누어진다.
 

셋째, 마실문화 속에서 노인분들과의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실제로 나누게 되는 것들이 으레 생겨나기도 한다. 노인분들은 당신에게 있는 것, 나눌 수 있는 것을 늘 나눌 준비가 되어 있고 또 말이 나오거나 생각나면 바로 움직여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이 안에서는 나눔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게 되는 문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반찬을 나누는 것은 가끔은 밥 먹기도 귀찮을 만큼 무력해 질 때 이웃이 있어 살아가는 힘을 주고, 다양한 물품을 물려주거나 나누는 행위는 물질을 다시 쓸모 있는 것으로 순환시켜 소비적이고 반환경적인 대다수의 생활방식을 비자본적이고 생태적인 실천으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생활문화는 지구도 살리고 마을도 살리고 나와 이웃의 가정경제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실례로 마을에서 아기를 낳고 일 년 동안 마을 어른들로부터 다양한 물건을 물려받고 또 공유하게 되어 양육비를 크게 들이지 않고도 풍요로운 육아를 할 수 있었다. 마을의 터줏대감이신 임씨 할머니는 오래된 기저귀 창고에 가서 묵은 기저귀를 헐값에 사와 아가선물로 주셨고, 옆집 젊은 할머니는 오래된 아기 침대와 갖가지 반찬을, 문방구 할머니는 아기들이 타는 트럭을 챙겨주시고, 수빈이 할머니는 다섯 살이 된 손녀딸이 보던 책이며 인형, 한복을 챙겨주셨다. 그러다 보니 늘 무언가를 하다보면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으레 생각나고, 또 그만큼 나누고 교류하다보면 실제 가진 것보다 풍요로워지며, 서로의 삶이 엮여져 살아가는 힘이 되어 그 힘으로 살아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같은 다양한 세대와의 교류 속에 아이들이 이를 지켜보고 성장하는 걸 보며, 사람이 갖고 있는 가치가 환경이 되어 성장하는(인문학적, 역사적, 인본적인 가치를 자연스럽게 형성해가는) 자양분이 됨을 생활 안에서 경험하게 된다.
 

넷째로 젊은이들에게 노인들의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지런한 가꿈의 문화도 자연스레 전이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가꾸는 이들, 그래서 그 가꿈이 마을의 아름답고 일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노인들의 노동은 생애적으로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그저 부지런히 몸으로 노동하는 그 자체로 존재해왔던 것처럼 보인다. 편리한 것들이 생기기 이전에 손과 발로 모든 걸 해결해왔던 생활방식들이 몸에 배어,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살림을 꾸려갈 수 있는 근검절약과 수 십 년 동안 매일같이 가족들을 건사하고 살림을 해온 성실함이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집밖의 풍경과 미물들까지도 살려내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한 철마다 필요한 먹거리들을 키워내고, 꽃나무를 키우고, 봄이면 한 해 농사지을 흙을 살리고, 장 담그기, 쑥개떡 해먹기, 씨앗 뿌려 싹 난 것들 솎아내서 모종을 나누고, 여름이면 고추말리기, 가을이면 김장 먹거리를 키워내고, 함께 다듬고, 겨울 초입에는 김장 담그기, 그리고 한 겨울이면 어딘가에 함께 모여 마늘을 까거나 호박죽을 쑤어먹거나 함께 만두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 등, 멀리서 찾는 친환경 살림법이 마을 어른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흐르고 있다.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마을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파지를 수집하고, 돈이 되지 않는 것도 손수 치우는 마을 어른들의 수고로움 있어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등하교시 많은 쓰레기를 버려도 길은 마을 어른들의 노동으로 수시로 치워지고, 깨끗하게 가꾸어진다. 가꿈은 전염과도 같아서 한번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면 그곳은 하루도 되지 않아 쓰레기장이 되지만, 늘 깨끗이 치워지는 것을 보면 쉽게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스스로의 주변을 가꾸는 문화로 변화되어 간다.

지역사회에서 노인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한 평도 되지 않는 이곳에서부터 마을에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자연 생태계가 다양한 종이 존재하는 속에 서로의 삶이 순환하며 전체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 것처럼, 노인문화를 다룬다고 해서 노인들만 볼 것이 아니라 나 역시도 이 생태계의 일부로 기여할 수 있는 것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자.
 

이를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실천은 ‘인사하기’ 이다. 내가 인사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말고, 노인분들을 만날 때에 인사하기 위해 노력을 하다보면 그들도 당당하게 젊은이들을 대할 것이고 자연스러운 관계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간단한 대화로써 일상을 조금씩 함께 나누는 노력 속에 내가 나눌 수 있는 작은 것들부터 몸을 움직여 나누다보면, 노인분들도 많은 것들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누가 소외되거나 대상화되는 것 없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갈 것이다. 
 

젊은 세대인 우리는 그들의 삶의 지혜를 지지하고 배워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방향과 철학이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먼 미래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바라보고 대화하고 실천해야 한다. 무언가를 상품화 시켜 팔아대기에 급급한 문화산업의 논리나 관광을 통한 당장의 유명세가 가져올 지역사회의 해체를 보지 못하는 원칙도 철학도 없는 발상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온 작은 요소들을 해치거나 무시하는 것 없이 소중히 다루고 또 함께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어야 할 것이다. 그 미래 속에 우리가 노인이 되고, 새로운 세대가 우리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배워가며 어느 마을에 뿌리내린 나무로 성장하고 살아가 더 많은 이들에게 그늘을 드리워 다양한 생명체를 살게 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