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8일부터 12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된 <소통의 기술展>은 사실, ‘소통의 시도’에 가깝다. 순수미술이 태생적으로 간직한 고답성(高踏性)은 소통을 시적(詩的)으로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반면 전시 제목이 목적한 소통의 기술을 선사해 주기란 그리 만만치 않은 듯 보인다. 사실, 이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 안리 살라(Anri Sala), 함양아,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의 작품들보다 미술관의 제스처가 바로 난점이 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한 안드레아스 후이센(Andreas Huyssen)이 1982년 제7회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독일의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 전시회에서 겪었다는 “만져도 안 되고 침해되어서도 안 된다는 예술의 오래된 개념”에 대한 경험을 공감할 정도로, 전시장 분위기는 엄숙했다. 영상 작품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전시장 안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칠흑같이 어두웠고, 이 때문에 작품 캡션을 전혀 읽을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살라의 작품 사운드를 듣기 위해 벽에 걸어 둔 두 개의 헤드폰에는 연출된 것처럼 하이라이트가 비춰지고 있었으며, 어떠한 안내 문구도 없어, 무심코 헤드폰을 들었다가 ‘혹시 이것도 작품?’하는 생각에 황급히 헤드폰을 다시 걸어놓았다. 소통을 위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제공하는 것이 마치 예술에 흠집이라도 낼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러니가 오히려 전시 주제인 ‘소통’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동기를 부여한 것은 틀림없다. 우선 첫 번째 전시실은 안리 살라의 3개 영상 작업이 설치되었는데, 그 중 <색칠해 주세요Dammi I Colori>(2003)은 지금 우리의 사회 속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소통’ 부재 상황과 상당히 흡사하다. 안리 살라는 알바니아 출신 작가로, 예술가이면서 2000년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Tirana)의 시장이 된 친구 에디 라마(Edi Rama)의 ‘리페인팅(Repainting)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라마 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의 회색 아파트에 총천연색 페인트를 칠했다. 영상 속의 목소리는 색에 대한 시장의 대답들로 이어진다. “아파트 풍경은 모든 취향을 찾아 합산할 뿐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타락을 의미하며, 그 타락은 국가의 무관심이다”라는 단조로운 목소리는 취향이나,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회색으로 칠해진 척박한 옛 도시풍경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그의 심드렁한 목소리는 다시 “자연적으로 발전된 도시의 색은 드레스의 색이다. 그러나 이 도시의 색은 그렇지 않다. 도시의 색은 드레스나, 립스틱과 같은 색이어야 한다”라는 말로 자신이 단행한 프로젝트의 독단적 인위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말고의 문제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안리 살라와 에디 라마는 시민들의 관심뿐 아니라, 유럽의, 또는 국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관심이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강렬하여 공격적으로까지 보이는 원색의 벽면을 훑고 올라가는 화면들은 분명 충분히 논쟁거리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이 논쟁으로 인해 도시는 활력과 관심을 얻었다. 소통을 기대했던 이들의 프로젝트는 이러한 의미에서 목적을 이루었다.

한편 함양아의 영상은 살라의 작품에 비해 세련되었고, 시적이면서 상징적이다. <원 데이 이스케이핑(One Day Escaping)>(2004)은 섬의 선착장 장면을 이어 놓은 것으로, 왼쪽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아주 느리게 재생된 화면이, 오른쪽에는 배를 타려는 인물의 행렬이 정상 속도로 재생된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대한 대비, 자아와 타자의 시각차의 대비를 통해 나와 타자 간의 관계,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를 되짚어 보게 한다.
필립 파레노는 알제리 출신으로 전시 공간 자체를 작품의 하나로 보여 주었다. 작가는 “파티가 다 끝난 뒤 파티장에 도착한 상황”을 보여주려 했는데, 전시 기간 후반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바람이 빠진 금색 말풍선-풍선 모양의 진짜 헬륨풍선이다-들이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작품 <스피치 벌룬즈Speech Balloons>(2009)는 마치 파티 장소를 채웠었던 대화와 수다가 공허하게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또한 한 쪽에서 상영하고 있는 <더 보이 프롬 마르즈The Boy from Mars>(2003)는 첨단 음향기기를 이용해, 시각뿐 아니라 청각적인 표현 또한 소통의 중요한 구성 요소임을 깨닫게 한다.

그가 작품에 사용한 사운드는 자연 상태에서는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지만, 그것을 과장되게 증폭시킴으로 마치 화성에서 온 소년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귓가에 생생히 울리는 숨소리, 허밍, 낯선 풍광을 통해 흘러나오는 바람 소리, 발전기에서 윙윙대는 소리 등은 <스피치 벌룬즈>에서 시각으로 청각을 표현한 것과는 다르게, 청각을 극도로 증폭시킴으로 시각과 청각의 연결고리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다. 낯설게 보기(Tromp L’oeur)가 아닌, ‘낯설게 듣기’라고나 할까? 작가는 이처럼 새로운 시도를 통해, 관습적으로 치닫는 무의미한 소통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네 명의 작가는 모두 지금 우리의 소통을 점검하는 기회를 선사한다. 소통의 부재, 관습적 소통, 소통에 있어서 주도권의 문제 그리고 이 모든 문제가 언급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우리의 소통. 그토록 소통을 강조하지만, 우리 사회는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기능은 유효한가? 인터넷 방송, 블로그, SNS 등 동시대는 미디어를 통해 그 어떤 시대보다 소통이 잘 되는 양 보이고 있지만, 실상 우리는 아주 그럴듯하게 설득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이미지 제공_ 덕수궁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