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플랫폼>은 아시아사회의 현실과 문화의 현재, 그리고 각 지방 간의 소통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더욱이 인천문화재단의 여러 기획과 공모가 비평과 맞물려 새로운 문화생산을 촉진하는 일은 인천이 동아시아 물류의 거점을 넘어 동아시아 문화의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한 토대를 다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5년 간 아시아문화의 오늘을 진단하고 지역의 문화정체성에 가치를 더해온 <플랫폼>의 시도들은 한 도시의 역사와 발전 그리고 상생을 도모하는 문화적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리에 이제 막 평론가의 길로 들어선 제가 감히 서 있다는 것 역시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5년 후 <플랫폼>이 10주년을 기념할 때에는 오늘 이 자리에서 플랫폼 문화비평상을 수상한 네 분의 젊은 비평가들이 저보다 훨씬 좋은 강연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         
저는 4년 전 플랫폼 문화비평상을 받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비평을 써 왔습니다. 당시 학생의 신분을 막 벗어난 상태인 풋내기가 비평가로서의 자질이 있는가 숙고할 겨를도 없이, 다짜고짜 문화비평상에 응모한 것은 일단 지면을 얻어 졸업 후의 막연함을 해소하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오늘의 현실에서 비평을 써 생계를 꾸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특정분야에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갖고 해온 나름의 공부와 시각이 무용해지는 것처럼 막연하고 두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비평을 쓰는 일은 참 매력적인 일입니다. 한 시대의 자식으로서 그 시대를 진단하고 분석/비판하며 모색하는 비평의 힘은 문화의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나사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나사를 자신의 힘으로 좀 더 단단히 조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서구학문 중심의 학제에서 우리가 속한 아시아의 문화층위에 관심을 갖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제 경우 서구의 방법론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논리적 쾌감에 한참 몰두하던 차에 아시아 인식이라는 생경한 문제와 마주치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학적인 서구이론으로 작품을 분석하는 일이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내가 숨 쉬는 문화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자각을 시작했던 때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아시아문화는 이미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문화의 중심축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 때문에 우리의 현재를 지역성과 연결 짓는 것이 오히려 부득이한 일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는 서구의 합리화에 대한 환경적 반성과 함께 등장한 ‘대안’으로서의 동양과도 다르며, 경제성장과 맞물린 주요 수출대상으로서의 동양과도 다릅니다. 또 하나의 거대한 현실문화 생산자. 이것이 우리가 사는 오늘의 아시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발 물러나 보면 이 안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의 전파력이 강력할수록 고착화 역시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오늘의 동아시아미술에서 팝의 경향은 마치 아시아미술 흐름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국제미술 시장은 계속해서 이런 류의 작품을 요구하고, 그와 동시에 한국의 화랑 역시 이런 작품을 ‘팔리는’ 작품으로 취급합니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열리는 중국이나 일본의 현대미술 전시 역시 유명세를 업고 이른바 ‘잘 나가는’ 작가들의 작품 나열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한중일 3국 또한 서로의 미술의 주된 흐름을 획일화시키는 오류에 부딪히게 됩니다.
한 지역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다양성을 담보로 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획일화는 일종의 파괴이며, 새로운 건축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기존에 지은 건축물을 깡그리 부수어 놓은 뒤, 누군가는 새로운 건축물만이 그 도시의 전부라고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역에 담긴 시대의 결 위에 새로움을 쌓아가는 방식은 문화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비평은 역사적 단층에 고인 다양한 문화를 발견하고 그것의 의미를 찾아가는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 국소와 다양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지적기반과 물적기반을 동시에 요구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인천문화재단이 하고 있는 창작스튜디오나 주안영상미디어센터, 그리고 문화비평지 <플랫폼>이 그간 해온 작업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3.        
오늘날 기술은 미학이 되고 한 사람은 미디어가 되며, 예술은 생활로서 호흡합니다. 인지 가능한 세계는 무한히 넓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몸’의 존재이기보다 ‘말’의 존재로 타인에게 다가갑니다. 미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나 평을 쓰는 사람 역시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 자신의 블로그나 SNS등을 통해 활발하게 발언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이 공신력과 비례하는가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가 많을수록 정보의 질을 따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지면의 명성과 필자의 지위에 기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정작 비평에서는 몇몇 소수의 필자들이 많은 관련잡지와 리뷰에 반복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술의 경우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월간지 몇 개에 한 사람의 글이 동시에 실리는 일도 많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보증된 이름과 필력을 통해 안정된 지면을 만들려는 편집의 타성이 작용한 탓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만큼 비평의 다양성도 중요합니다. 몇 사람의 시각이 한 작품이나 현상에 주된 영향력을 행사할수록 독자의 관점 역시 거기에 무조건 동조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런 풍토에서 젊은 비평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비평의 관문이라고 하는 공모 역시 많이 줄어, 신춘문예 중 미술평론 분야는 단 하나만 남은 상태입니다. 플랫폼 문화비평상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해 각 분야의 젊은 비평가들의 등용하고 이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발언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비평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이것은 평론가가 되려는 이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고, 독자에겐 신선한 시각을 접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평론을 쓰기 시작해도 ‘비평가’란 매우 모호한 위치이기 때문에 학자로서 비평가의 역할을 할지 아니면 대중과 창작 사이의 매개자/안내자가 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나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 그리고 김현(金炫, 1942∼1990)과 같은 비평가들의 글에 열광합니다. 그것은 현실의 대상을 지식으로 상승시키는 비평의 힘과도 같습니다. 비평은 흔히 예술가가 되지 못한 이들의 화풀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하지만 어쩌면 정확한 분석과 통찰이야말로 학술적 비평의 본색이며, 시대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문화풍토가 요구하는 것은 주로 매개자/안내자의 역할입니다. <플랫폼> 역시 아시아문화비평을 통한 대중의 이해에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늘어나는 문화향유자들의 지적욕구를 해소하는 것은 문화비평지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중요한 톱니입니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지만 더 이상 거대담론은 없습니다. 오히려 흥미를 끄는 작은 이야기가 많은 독자의 관심을 끕니다. 그러다보니 긴 글 보다는 짧은 글 속에 인상적인 설명을 해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비평가는 반(半)구어체의 글을 쓰거나 아예 작가에 관한 인터뷰만으로 작가론을 대치하는 경우도 있고, 시각문화 잡지의 경우 글보다는 감각적인 편집이 돋보이는 이미지 위주의 지면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물론 이 같은 흐름은 현재를 읽어내는 예리한 감각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볍게 흐를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거기에 비평가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욕구까지 더해지면 짧은 글들에 난해한 개념이 난무하는 상황이 됩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쉽게 쓰는 것에 얼마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어려운 개념을 가져다 써야만 필자의 위신이 설 것만 같은 현학에의 유혹 말입니다. 이것은 지식인에 대한 욕구와 독자의 위에 서고자하는 오만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젊은 무명비평가의 어줍지 않은 혼란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비평을 할 것인가는 물론 비평적 감식안의 몫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비평할 것인가는 시대적 관점을 요구합니다. 비평가는 예술가의 사적인 작품을 사회적 맥락으로 이동시킵니다. 이것은 마투라나(H. Maturana)/바렐라(F. Varela) 식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함’을 앎으로 바꾸는 것이며, 이 ‘앎’을 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창작행위이며, 동시대의 거대담론을 생산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모든 문화적 생산물이 분화된 상태로 존재할 때 비평가는 조망의 시선으로 이 분화의 이유와 필연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팔리기 위한 잡지를 만들기 위해 설사 필자가 독자의 구미를 맞춰 간택을 기다리는 풍토가 있다고 해도 ‘비평함’의 책임과 무게까지 간과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지리적 접근성과 문화적 인접성을 가진 동아시아의 문화를 바라보는 일은 내가 딛고 서있는 시간을 자각하는 일이고 <플랫폼>이 ‘아시아문화비평지’라는 정체성으로 접근하는 방향 역시 그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시각정보가 넘쳐나고 감각적 이슈와 대중적 인기도가 문화의 주류를 형성하는 지금 문화비평지로서의 다이너미즘(dynamism)은 필수적인 요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플랫폼>은 인천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통해 아시아문화비평이라는 명확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매호마다 의미 있는 특집과 논단, 비평 등을 실어 왔습니다. 무엇보다 특집기획들은 오늘의 아시아가 가진 문제와 고민, 그리고 가능성에 대한 깊이 있는 제언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중국과의 교역통로이자 일본과의 교류통로로서의 인천인 만큼 동아시아의 젊은 예술가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또한 비평공간 섹션이 너무 다양한 장르를 한꺼번에 다루다보니 너무 많고, 짧은 리뷰가 잡지 한 권에 압축되어 있는 인상을 받습니다. 제안하자면 필자에게 매호의 콘셉트를 설명하고 직접 리뷰대상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슈의 리뷰를 넘어 직접 이슈를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좀 더 농밀한 비평적 분석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플랫폼>의 외양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격월에 한 번 <플랫폼>을 처음 손에 들 때 드는 인상은 문화비평지에 학술지 디자인을 입힌 느낌입니다. 그리고 책을 펼쳤을 때 정적이고 모범적인 편집이 자칫 지루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젊은 독자들의 감각은 그 잡지만이 주는 독특한 매혹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심지어 내용을 앞설 때도 있을 정도 입니다. 수많은 웹진이 존재하는 가운데 페이퍼진만의 독특함, 그중에서 충실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플랫폼>만의 거부할 수 없는 디자인이 함께 한다면 아마 최고의 문화비평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