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그렇질 않은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뜁니다. 아마도 젊은 비평가들의 에너지가 저에게 전달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문화비평의 탄생을 목격하는 이런 자리에 동참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40여 년 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장이 떠오릅니다. 그때의 감각을 상기시킨 이 자리가 나태한 저의 비평을 다시 깨우는 계기가 되었음을 새삼 새깁니다.

 
이 즐거운 잔치에 초청해주신 강광 대표님을 비롯한 인천문화재단 식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모르는 직원들이 더 많아도 재단은 제게 유사-가족입니다. 이때 ‘유사’는 물론 ‘가짜’가 아니라 ‘같다’는 뜻입니다. 제가 재단에 있을 때 가장 기억나는 일의 하나가 <플랫폼> 창간 전후입니다. <플랫폼> 5주년을 축하합니다. 짧지 않은 세월입니다. 잡지란 원래 손이 많이 가는 물건입니다. <플랫폼>은 격월간으로 간격이 밭은데다가 한국의 곳곳, 그리고 아시아 처처의 중요한 문화현상을 다루는 경(輕)비평지이기에 꼭지가 많아 품이 더욱 듭니다. 그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면서 잡지의 생명인 지속성을 담보한 <플랫폼>의 5년이 자랑스럽습니다. 창간 당시 백지운·강경석 씨로부터 오늘의 유다진·이승욱 씨에 이르는 잡지팀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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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혁신의 산물이었습니다. 1970년대는 ‘계간지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계간지의 역할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저 역시 그 영향 아래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창작과비평>, <실천문학>, <황해문화> 등등, 계간지 만드는 일에도 관여했습니다. 이전의 월간지 시대를 대체한 계간지들은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문제를 축으로 한국과 인천의 역사적 운명을 실천적으로 사유한 거대담론을 펼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크게 진화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계간지가 성공 이후 약간의 피로현상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거대담론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재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점에서 특히 새로 창간하는 잡지들은 계간지와는 다른 형태로 독자와 소통할 필요도 증대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플랫폼>이 격월간을 선택한 것은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격월간 하면 <녹색평론>  (1991년 창간)이 떠오를 정도입니다만, <플랫폼>은 이미지들을 더 활용한 실험적인 잡지를 지향했습니다. 지금은 학술지 디자인 같다고 타박하지만 처음 발간되었을 때는 제 눈에도 이상할 정도로 낯선 잡지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월간지 <마당>(1981~1986)과 계간 <실천문학>(1985)의 경험이 작용한 듯도 싶습니다. 전자는 1980년대의 소집단문화운동을 중시했고, 후자 또한 문학계간지는 문학계간지로되 미술, 음악, 영화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한 선구성이 있습니다. 문학 바깥으로 운동이 번진 1980년대적 경험을 21세기의 상황 속에서 다시 우려낸 것이 <플랫폼>인 셈입니다. 이후로 <플랫폼>을 따라하는 잡지들이 더러더러 눈에 띄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했다는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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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문화를 키워드로 삼았습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잡지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일방적으로 지양하지는 않았습니다. 문학과 문화의 호환성에 주목하여 문학과 문화를 서로 마주보는 거울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기우뚱한 균형’, 즉 문화를 앞세우되 문학으로 균형을 맞춘다는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 이후 어떤 위기에 직면한 우리문학의 새 길이 문화 또는 생활세계와의 호흡을 통해 열릴지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물론 그 역도 성립하길 희망했습니다.
생활세계의 문화적 고양을 목표로 삼은 인천문화재단은 기본적으로 시민에 대한 서비스 기관입니다. 덩치에 비하면 그 내면이 풍요롭지 못한 인천을 문화가 살아있는 도시로 들어올려 달라는 시민의 염원을 받들어 재단은 설립되었습니다. 문화의 향수층을 넓히고 그 바탕에서 문화생산의 질을 높이는 것이 재단의 모토인데, 이 역시 ‘기우뚱한 균형’입니다. 현재로서는 전자가 더 중점입니다. 그러니까 <플랫폼>은 인천시민과 함께 도시와 나라 안팎의 문화에 대한 눈을 예민하게 훈련하는 즐거운 공부방이 될 것을 사명으로 삼은 셈입니다.
인천은 원래 남북을 잇고 또 중국을 연결하는 배꼽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으로 건너갈 대륙을 잃고 6·25전쟁 이후 북쪽마저 막히면서 서해안 도시들이 그러했듯 도시의 위상 또한 낮아졌던 것입니다. 탈냉전의 물결 속에서 인천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우리 모두 실감하는 바인데, 그 꽃은 역시 문화적 힘입니다. 역사를 돌아보건대 위대한 시대는 위대한 문화의 시대였습니다. 인천의 문화는 목하 어떻습니까?  문화에 비약은 없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착실히 기반을 두터이 쌓아나가는 긴 여정을 통과해야 하거니와 <플랫폼>은 인천 르네상스의 발진(發進)역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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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아시아입니다. 인천사람을 폐쇄적으로 정의해서 인천문화의 토박이적 성격을 강조하는 향토주의는, ‘인천은 없다’식의 오만함으로 인천을 대하는 서울주의 또는 중앙주의만큼이나 곤란한 시각입니다. 이 두 편향을 함께 넘어서기 위한 제3의 선택으로서 아시아를 키워드로 세운 것입니다. 인천에서 아시아를 보고, 아시아에서 인천을 보는 쌍방향성을 통해 남북의 축이요 아시아로 난 창이라는 인천의 특성을 발양한다는 주지인데, 구경은 인천을 아시아의 허브로 재창안함으로써 인천을 문화도시로 나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도시의 탄생과 발전에 ‘동아시아의 지중해’ 황해가 지니는 의의는 지대합니다만, 그 사이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그 기억은 차단되었습니다. 문화는 기억을 선별하는 과정입니다. 서구주의의 횡행 속에 망각된 아시아를 정성스럽게 맞이하는 일로부터 인천문화 재건의 초석을 놓자는 것이 이 잡지의 뜻입니다.

부산영화제가 타산지석의 하나입니다. 이 영화제의 콘셉트가 아시아영화제입니다. 도쿄영화제를 누르고 대표적인 아시아 영화 시장으로 발전하자 세계의 사람들이 아시아 영화의 전시창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렇게 부산영화제는 세계영화제로 단숨에 올라선 것입니다. 처음부터 세계라고 날치지 않고 아시아로 집중하니 아시아의 부상과 함께 그냥 세계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시아는 이제 세계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비평 역시 키워드입니다. 잡지의 생명은 현장성의 다른 이름인 비평 또는 비판입니다. 여기서 비평이란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 1822~1888)가 말하는 교양(culture)과 통합니다. “세상에서 생각되고 말해진 최선의 것을 아는 것(to know the best that has been thought and said in the world).” 제대로 알려면 비평적 또는 비판적 능력이 요구됩니다만, 잡지를 꾸려나가면서 문학에 비해 문화예술 분야는 비평의 부족/결여가 문제임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문화생태계의 선순환에 열쇠고리라 할 문화비평의 구축이야말로 인천 르네상스의 소중한 종자 <플랫폼>의 지향점입니다. 
아시아, 문화, 비평이라는 키워드를 꿸 제호는 <플랫폼>입니다. 사람과 물건이 모이고 흩어지는 플랫폼이란 고정된 축을 가진 중심이 아닙니다. 모든 지식과 정보와 판단이 모이고 흩어지는 탈중심의 유연한 중심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시아와 함께 세계로 나아가려는 인천문화재단의 이상을 표백하는 것이거니와, 그런 담론의 집산지요 저수지로서 자연스럽게 새 세상을 여는 집합적 담론의 생산적 장소를 자임하겠다는 나지막한 선언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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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金九, 1876~1949)는 「나의 소원」(1948)에서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우선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한 부력이란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최고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아닙니다. 일등 가는 부자들이 한국에서 많이 나오기를 바란 것도 아닙니다. 나라 안이 빈부로 갈리는 것이 아니라 고루고루 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아랍의 봄’으로 시작해 ‘미국의 가을’로 마감 중인 2011년 대변동의 바탕에는 청년층의 불안과 분노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진행된 양극화의 심화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한 강력이란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최강이기를 바란다는 것이 아닙니다. 군사제일주의가 군부독재를 불러온 경험에 의하건대 강력이란 적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그치면 족하다는 백범의 평화주의는 종요롭습니다. 요컨대 백범의 건국강령은 부국강병론이 아닙니다.
그 대안은 무엇입니까? 백범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백범을 테러리스트라 여기기도 하지만 그는 평화의 소국주의자입니다. 그러고 보면 최소한의 전쟁수단으로서 테러를 택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의 소원」을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또는 인천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문화국가/문화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 고갱이가 거기 있습니다. 골고루 잘 사는 사회, 곧 높은 문화적 힘을 가진 나라/도시야말로 우리의 이상입니다. 인천문화재단의 사명이 그곳에 있을 것이며, 그 뜻을 시민과 함께 실천하는 장소가 바로 <플랫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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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플랫폼>은 혁신의 산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플랫폼>이 안정된 틀 속에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플랫폼>은 재단에서 발행하지만 단순한 기관지가 아닙니다. 잡지시장에서도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잡지를 상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래야 잡지의 운명을 가르는 독자와 함께한다는 의식이 더욱 생생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험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새로운 5년, 창간 10주년으로 나아갈 <플랫폼>의 진진한 모색을 기대합니다. 
덧붙여 아시아에 지나치게 국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간세상은 상대적인지라 비교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다른 대륙과 나란히 놓을 때 아시아가 제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시아 내부의 복잡성에 주목하여 특히 동북아시아가 흔히 간과하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배려가 더 커졌으면 합니다. 국경, 젠더, 민족/종족 등이 유동적인 동남아시아는 동북아시아를 상대화할 다른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흥미롭습니다. 그것은 동북아시아 사람들의 정치적 무의식을 해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데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20세기의 동북아시아를 넘어서는 종요로운 자양이 될 가능성이 풍부합니다. 타이완과 오키나와와 같은 부분국가 또는 특수지방은 물론이고, 미우나 고우나 통일시대의 짝인 북에 대한 지속적 관심도 더욱 요구됩니다.
미국의 황혼 속에 세상이 (동)아시아로 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더 나은 새 세상의 출현 여부는 바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니 젊은 세대의 선택이 관건입니다. <플랫폼>이 그 겸허한 디딤돌이 되기 바랍니다. 인천문화재단의 나날이 새로워짐(日日新) 또한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