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거세된 욕망을 강요당한 노인들
 

2002년 영화 <죽어도 좋아>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이 영화는 곧장 논란의 중심에 휩싸였다. 노인들의 성(性)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다루었던 이 영화는 내용과 상관없이 다루고자 했던 주제만으로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동성애 등 사랑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과 자유분방한 사고가 들어왔다고 생각됐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노인들을 욕망이 거세된 구성원으로 판단했고 또한 거세되어야 마땅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는 노인들 역시 욕망이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는 인간임을 보여줘 버렸으니 사회의 충격은 오죽했겠는가. 생각해 보면, 이 논란 자체는 곧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그 자체로 성별 여부를 넘어선 그냥 어른이었고, 사회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어른으로서의 체통이었다. 인생의 끝에서 그들이 누적한 지혜를 사회의 주요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순간에만’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들의 역할은 족한 것이었다.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주변부로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죽어도 좋아>는 노인을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욕망을 가진 한 인간으로 보았고, 그에 따라 이 영화는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해 먼저 개봉했던 영화 <집으로>가 가져온 흥행과 사람들의 호평을 연결해본다면 그 사실은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린 손자유승호 분와 그 손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할머니김을분 분의 모습을 기본 메시지로 했던 <집으로>는 노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물론, 영화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았던 할머니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흥행은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역할이 후세대에 무한한 사랑을 ‘내리’고, 지혜를 전달하는 것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스로의 모든 욕망을 거세한 채 손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전달하고 손자의 욕구를 적절한 순간에 맞출 수 없어 쩔쩔 매던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보아왔던, 그리고 보고 싶었던 노인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호평과 흥행은 그들이 스스로의 욕망을 거세당한 채 자식들의 욕망을 위해 모든 것들을 버릴 것을 사회적으로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셈이었다.
 

비교적 진보적인 매체라 할 수 있는 영화도 이러할 진데, 온 가족이 보기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정서를 전달해야 하는 보수적 매체 TV 역시 이와 같은 시선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TV에서 노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껏 이슈를 일으킬 만한 소재들은 노인들과 젊은 세대 간의 세대적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어 웃음의 소재로 만든 <좋은 세상 만들기-장수퀴즈> 정도의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명목상 ‘세대 간의 차이’를 좁힌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년층을 희화화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젊은 세대들이 알 만한 상식적 내용들을 퀴즈로 냈고, 출연진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답을 맞추게 되면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했다.
 

이처럼 십여 년 전만해도 대중문화에서 그들은 무한한 사랑을 주는 거룩한 존재로서의 사회적 어른이었고, 동시에 때로는 사회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이자 주류에서 밀려난 세대였다. 그리고 그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만큼 사회가 그들을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동일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사회에서 노인은 웃음거리도 주류에서 온전히 벗어난 세대도 아니다. 그들은 어엿한 사회의 한 주축이 되었고, 그들이 주도하는 문화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죽어도 좋아>가 세상에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지도 약 1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에게 노인은 더 이상 사회의 어른으로서 사랑을 내리고 삶을 마무리 짓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관조하거나 지난 삶을 돌아보는 것으로 남은 삶을 지탱하지 않고, 자신이 축적한 지혜로 삶을 개척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은 사람들의 욕구가 항상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중문화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대중문화는 이미 노년층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위치로 와 있음을 그려낸다. 이는 영화와 TV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모두 드러나는 부분이다.

<죽어도 좋아> 이후 10년, 대중문화의 변화된 시선
우선, 2010년 강풀 원작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년층의 연애담이 주된 내용일 정도로 노인들을 바라보는 대중적 시선이 달라졌음을 보여줬다. 2002년의 <죽어도 좋아>만큼 노인의 성(性)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연애를 둘러싼 그들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영화가 대중의 호응과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대중의 시선이 조금씩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를 시작으로 TV 프로그램에서도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그리고 자신의 욕망과 행복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인들을 만나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년 남자들의 새로운 미션 도전기를 담았던 <남자의 자격>은 합창이라는 미션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 연예인들과 함께 꾸려갔던 ‘합창단 시즌1’의 참가자들은 대회에서 우연히 실버 합창단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에레스 투Eres Tu>를 부르는 실버 합창단의 모습에 객석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뛰어난 합창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목소리에서 그들이 겪어온 수많은 세월들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기립 박수를 쳤고, 사람들은 <남자의 자격> 멤버들의 도전 이상으로 이 실버 합창단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
  

이후, ‘합창단 시즌2: 청춘 합창단’이 탄생했다. 52세 이상만 참여가 가능했던 청춘 합창단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연령층의 중년층과 노년층이 참여했다. 이들은 전국 합창 대회 출전을 목표로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합창 연습에 임했고, 본선에 진출했으며 은상을 받았다. 물론 이들은 고작 2~3개월 남짓 연습을 했을 뿐이고, 그 실력 역시 프로 합창단에 준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이들의 합창은 어쩌면 미달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합창의 목표는 합창 대회 출전과 좋은 성과의 획득보다는 인생의 황혼기에도 ‘노래를 부르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 속에서 행복을 찾길 원하는 합창단원들의 모습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 긴 연습의 과정들을 차근차근 밟아 나갔으며, 카메라의 시선은 이 과정들을 공들여 담아냈다. 합창단은 막상 따지고 봤을 때 인생 전체에서는 별 것 아닌 도전일 수도 있고, 젊은이들에게는 어쩌면 ‘안 되더라도 그만일’ 취미 생활일 수도,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얼마든지 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를 그런 작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청춘 합창단에 참여한 이들에게 단원 활동이란 분명 거세되었던 욕망의 표출이며, 몇 십 년 만에 찾은 자신만을 위한 도전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는 시청자들 역시 카메라를 통해 투영된 이면의 도전을 보고 있는 것이다.

 
<1박 2일> 역시 마찬가지다. 시청자 투어를 통해 대한민국을 한데로 엮는 ‘국민 예능’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시청자 투어 특집 3탄’은 1세부터 100세까지 각 연령의 국민 대표를 뽑아 1박 2일 간의 여행을 떠났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넓은 연령대의 수많은 사람을 다루면서도 카메라의 시선은 젊은 층의 다이나믹한 이야기보다는 8~90대의 이야기에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누적해 온 삶의 지혜는 책으로도 혹은 짧은 이야기로도 단 번에 축적하여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카메라는 기꺼이 이들에게 시선을 맞춤으로써 이들이 살아온 세월과, 앞으로 살아야 할 세월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또한 여행 문화가 발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봤을 때, 이들에게는 여행조차 지금에 와서야 도전하는 크나큰 욕망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자 하는 욕망이 결코 이들에게도 퇴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어떤 도전 못지않은 새로운 도전이자 욕망이기도 하다. 그리고 카메라는 기꺼이 이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해피선데이>의 두 프로그램은 우연이든 혹은 폭 넓은 인기를 염두에 두고 의도한 것이든 노인들의 모습을 정면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의 욕망을 폭 넓고 다양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주체로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싶어하는지, 얼마나 욕망하고 있는지 담는 데 공을 들인다. 결국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카메라를 통해 대중을 설득해 내고, 사회의 시선 변화와 맞물려 대중문화의 트렌드로 자리 잡도록 기여하고 있다.

노인, 욕망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다
대한민국은 통계학적으로 노령 인구로 구분되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7% 이상인 고령화 사회다. 그리고 고령 사회와 초고령 사회로 이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는 점점 더 앞당겨지고 있다. 불과 10~20년 뒤면 65세 이상의 노령 인구 비율이 14%를 넘게 되고, 금세기 안에 노령 인구의 비율은 20%를 상회하게 된다. 이렇게 통계적으로 노령 인구의 수치가 높아지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라면, 이들을 품어 안지 못하면 이 사회는 경제적으로도 또한 문화적으로도 ‘마니악’해 질 수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은 층의 수와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이들의 문화와 경제는 결코 노년층을 끌어안지 않고는 ‘주류’가 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변화는 TV와 대중문화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2002년, 그리고 2011년 현재. 지금까지 대중문화 속 노인들의 모습은 분명 욕망의 객체에서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노인들의 모습은 더 주체적이고 사회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해 나가는 모습일 것이다. 이는 점점 늘어나는 노인 인구수에 따라 막강해 질 수밖에 없는 이들 계층의 힘과 사회적 변화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반영한다. 경제의 주류 생산자에서 벗어난 이들은 여가 시간에 TV와 영화 등 대중문화를 누리려는 욕구가 더욱 강해질 것이고, 대중문화의 주 소비계층으로 떠오를 이들의 모습을 대중문화계는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중문화에서 보이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변화들은 곧 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세밀한 변화의 과정은 쉽사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 방향은 분명 노인들을 욕망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살아가게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그리고 그 늙음의 길이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환경과 의학의 발달은 우리 모두의 생명을 연장시켜 놓았지만, 그 모든 과정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삶을 연장시키는 것은 온 인류의 꿈이었지만, 그 연장된 뒤의 삶에 대해서 사람들은 고민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현실이 닥친 지금, 우리는 이 상황들을 깊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의 대중문화는 이미 그 현실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당신들도 언젠가는 ‘늙게’ 될 것이며 그 사실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그 메시지 앞에서 이제 우리가 변화해야 할 때라고.
 

이미 이 사회의 어른들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이야기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의 황혼기라 생각했던 60세이지만, 평균 수명을 기준에 두면 적어도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20세까지 얼마나 드라마틱한 변화와 생애를 각자가 겪어왔는지 생각한다면, 이 시간들은 결코 짧은 시간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 속에 우리의 새로운 ‘청춘’을 찾을 수밖에 없다. 청춘 합창단 속 어른들이 긴 삶이 주는 기쁨과 슬픔 그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전달한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