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예술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예술이 중요한 이유이다.”           -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1924~1987)-

제임스 볼드윈은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공공연하던 1900년대 중후반에 활약한 미국의 대표적 흑인 소설가이자, 극작가, 에세이 작가이면서 시인이고, 사회비평가이다. 그에게 예술과 일상생활의 관계는 예술가로서,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늘 고민해야할 주제였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예술이 꽃을 피우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예술계가 가장 먼저 큰 타격을 받는다는 흔한 통계는 일상생활과 예술 사이에 놓인 간극을 반증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예술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수년째 지속되는 현시점에서 뉴욕 아트게이트갤러리에서 열린 <위기와 디자인展>은 이름부터 흥미로웠다. 환경위기, 에너지 위기, 식량위기, 경제위기, 제3세계의 위기 등 우리는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를 논하고, 그에 대한 분석과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뉴욕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과 건축가들이 모여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게 자리 잡는 예술을 선보였다.
아트게이트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는 뉴욕의 첼시 지역은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밀집된 구역으로 무수한 신인작가들의 등용문인 동시에 현대미술의 다양한 실험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동떨어진 예술, 예술을 위한 예술이 주를 이루며, 특별히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발걸음을 하지 않는 한산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한 첼시의 한 중앙에 자리 잡은 아담한 사이즈의 아트게이트갤러리에서 인구의 증가에 따른 주거문제, 무수한 예측불가의 자연재해에 직면한 개인들의 공포, 불안정한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꿈의 상실, 자전거 이용인구 증가를 도모하는 창조적인 자전거 주차공간 제시, 그리고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질병에 대한 이야기 등을 풀어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일면 무거운 이야기와 논의들에 대해 실질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관점으로 접근한 아티스트들의 창의성과, 그 다양한 접근 방식을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 녹여낸 큐레이터 최창학 건축가, 예술·건축·디자인 종합 연구소(The Institute of Multidisciplinarity for Art, Architecture and Design) 창립자의 노련함이다. 한 공간에 모인 작품들의 다양성은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다양한 배경과도 연관된다. 신발 디자이너,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인터액티브 미디어 디자이너 등 다양한 배경의 아티스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들이 직면한 위기를 논하고, 그에 대한 대안, 또는 위로를 건넨다.   
갤러리 안에는 전형적인 프레임에 갇혀 나란히 걸려있는 그림이나, 평론가들의 콧대 높은 설명을 요하는 추상적인 작품은 없다. 자전거 활용빈도를 높이는 동시에 도시의 랜드마크를 구성할 수 있는 ‘자전거 걸이(Bike Hanger)’ 안지용, 이상화 作의 구체적인 제작과정과 운용논리를 영상물을 통해 찬찬히 감상할 수 있다. 마치 비디오 게임을 하는 듯 익숙한 몸동작으로 리모컨을 들고 몸을 움직이면 화면에서 빛을 내며 날개가 움직인다.신수경, <죽지 않는 꿈(Immortal Dreams)> 보는 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작품이 완성되는 만큼, 꿈을 잃지 않으려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차분하게 전달된다. 한국의 전통적인 휴식과 대화의 공간인 정자에 영감을 받은 설치물 <시각적 투과성 정자(Visual Permeability Pavilion)>를 만든 건축가(강은기, 김다연, 이지은)들이 지은 설치물에 직접 올라서거나,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물을 보면, 작품과 반(反)월가 시위, 평등한 소통의 방법이 모두 하나로 만나는 작가들의 제작의도를 읽을 수 있다. 갤러리의 자그마한 복층 공간으로 통하는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각종 패턴의 천으로 만든 꽃들이 아름답게 매달려 있다. 이 서정적이고 따뜻해 보이는 작품이 인간 소외와 노인문제를 가슴 아프게 들여다본 허가희의 <노부인을 위한 꽃(Flower for Old Woman)>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보는 이의 마음에는 큰 반향이 생긴다. 이렇게 다양한 작가들이 직접 지은 모델과 설치미술,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과 다큐멘터리, 공간과 어우러지는 비디오 아트들이 작가들의 상세한 기획 의도와 함께 전시되어 관람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예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작품을 일일이 설명해줄 큐레이터가 따라다니지 않아도, 보는 이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작가의 의도를 전달받기를 선택할 수도, 아니면 스스로 깨닫기를 선택할 수도 있는 전시다.
현실 참여적인 예술과 예술을 위한 예술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느냐는 논의는 구시대적이다. 하지만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현실 속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대안과 해결책, 위로를 예술적인 관점에서 제시할 때, 그 방안들은 예술가들의 심미안과 섬세함을 거치며 보다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위기와 디자인전>은 의미가 깊다. 실질적인 동시에 아름답기까지 하기 때문에. 아름답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태초로부터의 욕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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