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플랫폼 미술비평상에 응모한 스물한 편의 글을 읽었다. 다양한 영역에 다기한 관심들을 글로 보내왔는데 좀 아쉬운 점은 동시대 현대미술에 대한 논쟁, 담론을 건드리는 글을 접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미술비평으로서의 그 날선 비평적 관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미술에 관해 진지하고 깊이 있는 접근과 그로부터 도출해내는 시대적 흐름과 미술에 대한 관점, 미술문화의 맥락을 포착한 것을 글로 써내는 것이 미술비평이라면 이를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너덧 편의 작품이 심사대상에 올랐고 이를 대상으로 한편 씩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서 수상작을 선정했다.
당선작으로 남웅 씨의 「동성애자 에이즈 재현에 관련된 논의-에이즈 위기부터 오늘의 한국사회까지」를 선정했다. 충실한 자료조사와 이를 연결해서 써나가는 힘이 느껴지는 글인데 아쉬운 점은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사례가 절대 부족하다는 점, 아울러 이런 논의가 새삼 지금 요구되는 점이 무엇일까가 궁금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다른 글에 비해 완성도가 높다는 점을 심사위원들이 인정했다. 그 외에 고윤정 씨의 「흩어지는 전술들(Hit and Run)-진화하는 한국 공공미술의 단면」은 공공미술에 대한 흥미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지만 한정된 전시 하나로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고, 전수연 씨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현대미술을 관통하는 이산자들의 시선」은 이산에 대한 문제접근에서 재미있었지만 이전의 논의와 정보에서 좀더 나아간 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작가론에 해당하는 정혜란 씨의 「이해민선 작가론-자생하는 사물들」과 전인미 씨의 「1993 휘트니 비엔날레의 기수에서 ‘아마추어’ 화가로 : 바이런 킴의 회화작업(1989~2008)에 대한 연구」도 좋았지만 미술비평적 시각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다.
스물한 편이라는 적지 않은 응모작을 통해 미술비평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알 수 있는 무척 좋은 기회였다. 이번에 응모한 모든 이들이 앞으로 좋은 글을 써내는 미술비평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미술비평상 심의평
에이즈에 관한 다른 시각들, 다른 재현들을 심층적으로 파고듦
고충환 (미술평론가)
예년에 비해 전반적인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을 느꼈다. 적어도 논점이 빗나간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따라서 글 자체의 수준과 깊이가 평가 대상이 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며 변화라고 생각한다. 진지한 논의 과정을 거쳐 다음과 같이 총 세 편의 비평문이 최종적인 후보 군으로 압축되었다. 남웅 씨의 「동성애자 에이즈 재현에 관련된 논의-에이즈 위기부터 오늘의 한국사회까지」, 고윤정 씨의 「흩어지는 전술들(Hit and Run)-진화하는 한국 공공미술의 단면」, 전수연 씨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현대미술을 관통하는 이산자들의 시선」이다. 각각 동성애 코드, 공공미술, 그리고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짚은 글들이다. 이 가운데 고윤정 씨의 글은 특정 전시에 대한 리뷰를 계기로 그동안 조형물개념에서 실천논리개념으로 변화해온 공공미술의 변화양상을 짚는 한편, 이 전시를 그 롤 모델로서 제안한 글이다. 과연 이 전시가 공공미술과 관련한 대안적 모델의 대표성 내지는 적절한 사례일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가 쉽게 도출되지가 않았는데, 공신력과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수연 씨의 글은 이란 출신 여성작가 시린 네샤트(Shirin Neshat)와 재미 작가 민영순의 사례 분석을 통해서 이산의 미학적 의의를 짚은 글이다. 글에서 논의된 내용이나 수준이 수년전 작가들의 비엔날레 수상(시린 네샤트)과 기획전시(민영순)를 계기로 논의되어졌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이후의 행적을 추적하고 재구성하는 형식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당선작으로 선정된 남웅 씨의 글은 에이즈와 에이즈 공포증을 다룬 글이다. 에이즈는 단순한 질병으로서 논의의 대상이 아니지만, 에이즈 공포증은 재현이며 재현의 정치학과 관련된다. 필자는 이렇듯 에이즈가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집중 분석하는데, 에이즈 양성자, 퀴어 공동체, 페미니스트, 그리고 제도권과 미디어 등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각 주체들 간의 에이즈에 대한 다른 시각들이며 다른 재현들을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지금 새삼스레 무슨, 이라는 식의 의구심도 있었다.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국외 사례에의 쏠림현상도 지적될 수가 있겠다. 국내에도 동성애 코드를 매개로 작업하는 사례들이 적지가 않은데, 그 부분을 보완해 균형을 유지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남웅 씨는 이 부분을 각주로 처리해 선행연구를 참조하도록 권유하고 있지만, 여하튼) 이런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논의를 전개하는 필자의 역량과 깊이는 그 지적들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특히 관련논제 내지는 인접논제들을 아우르는 신뢰감을 준다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동성애 코드는 일종의 개념의 교차로에 비유할 수가 있다. 동성애를 비롯한 에이즈, 몸 담론, 정상성과 비정상성 논의, 페미니즘, 성과 권력, 정체성과 성정체성 문제 등 주요한 핵심논제들이 여기에 물려있다. 차후에 남웅 씨의 글쓰기는 얽히고 설킨 그 개념과 담론의 그물들을 풀고 수선할 수 있으리라는 신뢰감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