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억은 비트를 타고
여기 음악 마니아를 한 명 등장시키고자 한다. 그(그녀)는 이 시대적인 윤곽을 지녔다. 도시환경의 무국적화와 소셜 네트워크, ‘글로벌’한 콘텐츠 속에서 취향은 점점 폭넓어지고 주체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의식적으로는 서구중심주의 문화에 비판적이지만 그(그녀)는 영미의 청년문화를 대변하는 대중음악에 자신을 투사하며 성장해왔다. 미국화된 자아는 그 존재의 일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그녀)는 어쩌면 ‘홍대’를 위시한 음악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코드 하나쯤은 부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고개를 들어 검은 칠을 한 천장을 올려다보면 어느 박자에도 잘 어울리는 미러볼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그 공간에서는 특히 중저음이 부유하거나 하강한다. 그(그녀)에게도 내려깔린 미지의 어둠을 반사하는, 이러한 몽환이 친숙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지루한 일상에는 ‘낯섦’의 매혹이 필요하다.
이렇게 ‘문화적 유목민’이 되어 귀를 기울이면 바에서 흘러나오는 월드뮤직과 일렉트로니카에는 엇비슷한 격정이 스며있다.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아름다운 울림 속으로 사라지려는 초월의지.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할 수 없었던) 시공간을 감히 열렬하게 그리워하는 우월과 허약의 정서. 그래, 이것 역시 일종의 해방감이다. 새로움에는 늘 그것이 녹아있다. ‘해방’이라는 단어가 꽤나 구식이 되었어도 그것은 여전히 대중예술의 문화미학이 내포하는 공통욕구임에 틀림없다. 딕 헵디지(Dick Hebdige)가 쓴 『하위문화Subculture: the Meaning of Style』(1979)에는 다음과 같이 인용되어 있다.

일상적 삶은 최상일 때는 예술처럼 혁명적이지만, 최악일 때는 감옥이다.
- 폴 윌리스(Paul Willis), 1977

이런 가운데 불현듯 마르쿠제(H. Marcuse, 1898~1979)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자연과 문명, 기본과 과잉의 경계를 기만적으로 문지르는 대중문화에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알고 있는 대부분이 사실 ‘문명’의 산물이며, 자본주의사회의 보편적 문화(제도) 역시 대부분은 문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이데올로기를 위해 이용(과잉)되고 있다. 물론 그 시대에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었던 사유는 아니었다.
현대의 사상가들은 일깨워주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은 자연스러운 것(대상 그 자체)이 아니다! 록음악처럼 장르적으로 자의식이 발달한 몇몇 대중음악들은 보다 ‘진정한’ 사운드를 추구해왔고, 사회적 메시지를 발생시키는 과정에서는 주로 타자(소외된 것)와 사랑에 빠졌다. 그 상대는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자메이카에서 시작된 종교운동이자 문화운동으로서 성경을 흑인의 편에서 해석함일 때도 있었고, 하위계급일 때도 있었으며, 지난 시대의 소중한 가치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제1세계가 아닌 지역의 음악을 크로스오버한 경우도 많았다. 레게와 펑크록, 최근의 온갖 밴드와 뮤지션에게서 나타나는 빈티지한 사운드들. 록과 재즈에서 종종 흘러나오던 카리브해의 열정이나 인도의 심오함이여. 또 그들의 전형성이여.
이렇게 탄생한 인공의 음악들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누군가에게 ‘지구촌’의 소리를 보다 실감나게 실어다준다. 이러한 사운드는 세계를 매끈한 방식으로 흡수하도록 도와준다.
바야흐로 패스티쉬(pastiche)의 물결. 그리고 갖가지 장르와 스타일을 멋지게 종합하는 능력은 가장 강력한 음악적 무기가 되었다. 대중음악에서도 다양한 형식적 틀과 ‘명예의 전당’ 리스트가 마련됨으로써 ‘혼성모방’이 가능해졌다. 이국의 정취를 마음껏 버무려서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디제이들과 컴필레이션 음반들, 샘플링 등의 기법으로 따온 멋진 구간들을 육감적인 리듬 속에 녹이는 힙합이나 칠아웃(Chillout)댄스플로어의 휴식시간을 위한 나른한 분위기의 전자음악들.
편집에 대한 아이디어가 곧 음악이 되는 시대. 유행이 가장 뜨겁고 빠르게 생산·소비되는 도시에서는 종종 이 모든 이질적인 요소들이 정확히 같은 무게를 지니고서 정렬한다. 팝과 아프로큐반(Afro-Cuban)아프리카와 스페인의 리듬이 결합된 쿠바의 음악 스타일과 탱고는 최첨단의 비트 안에서는 적어도 균등하다. 단절되고 분절된 것들도 그런 점에서는 매끈해진다. 그것은 고정된 메시지가 아니라 자유분방한 스타일일 뿐이니까. 그렇기에 이전 시대의 장르음악 대부분이 죽었다 할지라도 대중음악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2. 브라질의 뮤지션 세우
그렇지만 반대로 국지적인 것(local)이 외부(Global)와의 연결점을 찾아서 스스로를 ‘재발견’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역사적인 맥락까지 갖추었다. 가령 MPB(Musica Popular Brasileira)1960년대 이후 브라질의 대중음악의 물줄기에 놓인 주요한 음악들을 들어보더라도 그렇다. 그것은 기존음악의 규범과 지역적 필요, 그리고 외부문화의 유입이 만들어낸 역동적이며 배타적인 개별화 전략이었다.

바히아(bahia)브라질 동부의 바히아주(州)로부터 영향을 받은 음악, 포로(forro)브라질 북동부지방에서 영향을 받은 댄스음악, 보사노바, 삼바 등의 브라질음악들은 서로 촘촘히 붙어 발전되었다. 또한 그들이 받아들인 ‘세계적’인 장르들-록과 힙합,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재즈-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브라질적’인 색채를 확장시킬 세포활동에 여념 없다. MPB는 세계음악시장에서 독창적인 범주를 장악하는 일본음악보다도 훨씬 혼종적이고 ‘지역적인’ 미감을 제시한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보사노바는 대중음악의 카탈로그에 커다랗게 실려야 할 만큼 훌륭한 형식으로 자리를 잡았고, 삼바 역시 국경 밖으로 넘쳐나 삶의 열기를 뽐낸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들은 그들 음악을 때로 너무나 기계적으로, 리듬만을 차용해 ‘표준화’하지만 말이다. 
다큐멘터리 음악영화 <아이슬란드의 외침Screaming Masterpiece>(2005)에서도 볼 수 있듯 현대의 뮤지션들은 종종 미국화된 자아가 제공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어떻게 고유성과 개별성을 가지고 예술활동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이 세계를 구축하는 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표준에 맞추기 위해 분투하고, 그러면서 그 안에서 소외당한 소리들을 발견하며 더욱 작은 부분들까지 미적차원에서 구제하려는 각성들.
민속음악과 대중음악 사이에 놓인 경계선을 어떻게 밀고 당기느냐. 이것이야말로 독특한 지역성과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합성하는, ‘젊은’ 음악을 위한 최대 화두일지도 모른다.
*
브라질의 뮤지션 세우(Ceu). 그녀 역시 자신의 음악지도에 특별한 땅과 바다, 그리고 숲을 그린다. 그녀가 발매한 두 장의 정규앨범은 기본적으로 자기문화의 뿌리와 동시대의 테크놀로지에 창작의 모티브를 두고 있다. 레게와 삼바, 재즈와 소울, 그리고 전성기의 록음악과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그녀의 보컬에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 줄리 런던(Julie London, 1926~2000)이나 사라본(Sarah Vaughan, 1924~1990) 등 초창기 재즈 보컬리스트의 허스키 보이스와 브라질 여성보컬들의 특징적인 질감이 겹치거나 갈라지면서 세우의 목소리를 구성한다.
자신의 이름과 동명인 첫 앨범 《세우》(2005)에서는 브라질, 그 드넓은 공간을 쿵쿵쿵 두드리고 헤엄쳐 다녔을 온갖 역사적인 음악들을 도입했다. 참여한 악기들이 연출하는 미묘한 음의 하강과 그 때문에 느껴지는 쾌감, 어두침침한 사운드에 불쑥 끼어드는 감각적인 리듬들은 전반적으로 듣는 이를 무언가에 취한 듯하게 만든다.    
두 번째 앨범 《바가로사Vagarosa》(2009)에서는 본격적으로 지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때 이미 그녀는 서구사회에 월드뮤직 아티스트로서 이름을 알렸는데(라틴 그래미 어워드의 신인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다) 공간적인 넓이와 깊이가 한층 확장되었다. 여기서 확장이란 첫 앨범과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성질의 그것이 아니다. 콘셉트 자체의 변화다. 지도 위에 그은 선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녀의 노래는 끓고 있고 사운드는 연신 긴장을 유발한다. 시간을 축적한 오래된 검은 레코드판(vinyl)과 검푸른 숲의 기운(jungle)이 겹치는 듯한 이 곡의 제목은 <칸고테Cangote>. 앨범의 급진적인 발단부를 맡은 이 곡은 밥 말리(Bob Marley, 1945~1981) 풍의 ‘우물’ 사운드를 들려준다. 사이키델릭 연주기법들 사이사이에서 디제잉의 소리변형과 반복효과들이 급작스럽게 쏟아진다. 이어지는 트랙들에서 하나의 특이점이자 주요한 개성을 느낄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우의 목소리다. 앨범보다 라이브 영상에서 더욱 또렷하게 발견할 수 있는 그녀만의 전매특허 창법. 나는 그것을 ‘꼬리달린’ 발성법이라고 부른다. 음의 앞부분은 브라질 보컬답게 꿈꾸는 듯한 색채를 내다가 끝에 가서 그것은 마치 영상이 이지러지듯 독특한 떨림을 남긴다. 다음, 그 다음도, 또 그렇게….

<나센테Nacente> 쯤 가면 하나의 곡은 하나의 곡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앞 트랙과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소리와 이미지가 교차하듯 이것과 저것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가운데 어느 순간 재즈와 록의 솔로연주, 즉 즉흥적인 요소가 이 순환적 공간에 비집고 들어와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그들도 곧 자리를 내줄 것이다. 세우의 보컬은 이런 등장과 퇴장 가운데서 하나의 이야기를 불러내기 위한 뮤즈처럼 기능한다. 그것들은 단지 단선적이고 충동적인 소리뭉치가 아니다. 다양한 요소들을 한군데로 끌어 모으는 일종의 경향이다.
세우의 선배 뮤지션들은 “사이키델릭 록과 보사노바를, 일렉트릭 기타와 아코디언을, 노이즈와 샤우트를 뒤섞었”다.1) 그리고 그녀도 그러한 음악문화를 이어받는다. 두 겹으로 뻗어 나오는 솔로악기와 디제잉,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조화, 중후반부로 갈수록 무게를 더하는 직접 연주된 타악기들, 단단하고 절제된 터치들. 이 음악은 공통의 반복 안에서만 몇 가지 짤막하지만 주목할 만한 솔로연주들을 펼친다. 
     
3. 반복과 모방은 확산과 증폭을 만들어내고
그렇지만 세우의 오리지널리티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MPB에 각인된 문화운동 트로피칼리아(Tropicalia)로부터 비롯된 온갖 장르의 카니발 미학이며, 아프리카계 브라질리언들의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의식의 현대적 변형이다.
그녀가 한 앨범을 단위로 삼아 음악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개별음원을 중심으로 편성된 오늘날의 거대시장에서 앨범이라는 형식을 통해 음악적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은 시대의 흐름과 대비되는 구석이 있다. 그녀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굴곡을 지니고 있고, 그러면서 서로 연결된다. 세계적 리듬과 지역적 정서의 융합은 트랙마다 내러티브를 작동시키듯 작곡방식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주었다.
여기서 비트의 에코효과는 장르의 모방을 가능케 한다. 이 반복은 음악의 본질이 무한한 숫자로 재현될 수 있고, 또 그것은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자 진동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세우에게서 반복은 단순히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 몽환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증폭되고 확산되며, 청자의 감정 또한 그렇게 만듦으로써 결국 반복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반복할 만큼 중요한 대중음악 형식들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그 반복은 허무가 아니다. 온갖 테크닉과 정신없이 돌아가는 유행에도 체온을 잃지 않는 에로스다. 클럽의 조명이나 컴퓨터 장비들의 육중하고 비인간적인 열기와 분리되지 않고 뒤섞여 있는 인간적 에너지다. 여기서 마르쿠제가 말한 예술의 언어를 체험하기도 한다.
모방(mimesis)이란 일탈을 통한, 즉 의식의 전복을 통한 묘사이다. …중략… 그들은 탈신비화한 세계를 경험한다. 지각이 강화되어 사물을 왜곡시키는 데까지 이르고,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며, 다른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참기 어려운 것이 폭발하게 된다.2)

 
4. 재현미학과 세우
서두에서 말한 그(그녀)가 세우의 음악을 들으며 경험하는 카타르시스와 위안, 그리고 정서의 확장은 바로 이렇게 국제화된다. 「미적차원The Aesthetic Dimension」과 같은 논문에서 마르쿠제는, 대중예술은 그 내용이 아니라 형식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내어야 하고 그것은 표준화된 문화를 각성시킬 만한 자유로움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음악은 그런 척도에서 지도 위의 영토를 가늠할 때보다 훨씬 더 창조적인 방향감각을 갖고 있다.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선언 가운데 ‘작은’ 문화들이 약진하고 있다. 문화에서 아름다움의 기준도 시시각각 변한다. 다양성과 상대주의를 함유하지 못한 심미안으로는 포스트모던 문화를 즐길 수 없다. 문화의 위치들은 때로 평준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종종 차이 없는 차이-그러니까 낯섦의 소비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무관심한 태도-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런 자유 속에는 불안이 스며있다. 더 앞서갈 것, 더 희귀할 것, 더욱 개인화될 것.
때때로 우리나라와 같은 제3세계의 문화미학은 글로벌한 취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개별음원을 생산하는 작곡자와 가수, 프로듀서, 그리고 마스터링 기법과 유통의 방식 등에는 서로 조금의 변별점이 있다. 그러나 대중음악의 분위기나 스타일을 결정하는 소스는 미리 결정되어 있는 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속한 문화의 서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음악이 매번 전복적인 최초의 사건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문화에 무관심한 상품미학의 강박과 자기로부터 끝없이 달아나기만 하는 세련에 대한 맹목에 전혀 의구심을 품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상품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가 재빨리 내려놓지만 문화는 사회구성원들의 소통이므로 단지 개인적인 호불호 차원으로 단순화시켜서는 안 된다.
*
인도출신으로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 및 연구활동을 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 학자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의 재현(represent)담론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다문화주의의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우리는 저마다 세계인으로 현존하면서 각 문화에 차별 없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스피박은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Can the Subaltern Speak?」와 『포스트식민이성비판The Post-Colonial Critic』에서 서구의 현대이론들이 너무 빨리 폐기해버린 재현개념에 주목한다. 그녀에 의하면 포스트모던 세계는 마치 주체가 객관적인 지시 없이도 아름다운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물론 객관적 지표가 존재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노동계급의 전형적인 문화는 개별노동자를 정확히 포착할 수 없다. 스피박도 이런 관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지배이데올로기와 사회적 관계에 영향 받지 않는 주관적 세계의 개별자인가.
스피박은 이제 더 이상 어느 누구의 눈과 입과 귀도 빌리지 않고 개별자 스스로, 온전히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가타리(F. Guattari, 1930~1992)나 들뢰즈(G. Deleuze, 1925~1995), 푸코(M. Foucault, 1926~1984)의 입장에 비판적이다. 그들이 말하게 하라(deixa falar). 브라질 최초의 삼바스쿨 이름이기도 한 이 문장은 앞서 거론한 철학자들에게서 의미심장하게 공유된다. 하위주체의 자기-정체화에 있어 묘사와 재현이란 문제는 미적다원주의의 문화비평에서 핵심적인 포인트인 셈이다.
여기서 잠시 주류문화의 미적질서와는 구분되는 타자성-가령 대중음악에서 숱한 타악기들의 향연, 백인음악과 강세의 위치가 다른 비트, 상이한 창법들-을 떠올려보자.
스피박은 모든 존재가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직접 현시(present)할 수 있다는 판단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것은 정치적 대리인으로서의 대표(vertreten)와 미학적 초상으로서의 재현(darstellen)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단위 집단의 대표가 있다는 것이 미적차원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류체계와 상관없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구의 가치기준에서는 브라질적인 것과 인도적인 것, 쿠바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은 공통적으로 ‘낯설기’ 때문에 그만큼 ‘순수하게’ 이미지화되기 쉽다. 그들의 눈에는 이제 세계 각국의 음악이 온전히 개별적 고유성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한 민족의 특성이란 것도 사실은 내부와 외부를 이음으로써, 즉 재현체계에 의존함으로써 성립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문화에서 재현담론은 폐기가 아니라 끈질긴 관찰과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브라질음악에는 포르투갈에 의한 유럽의 영향,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이주당한 흑인노예의 자손들이 자신들의 전통형식을 현실에 맞게 개조한 노력들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세우의 정글사운드 역시 단순히 이질적인 분위기를 위한 효과가 아니라 브라질이 (민중)문화운동 이래 지속적으로 펼쳐온 음악적 실험에서 추출된 것이다. 1980년대에 질베르토 질(Gilberto Gil)이 연주했던 밥 말리는 세우의 첫 번째 앨범에서도 회귀한다.<콘크리트 정글Concrete Jungle> 물론 밥 말리의 완전한 재현이 아니라 그 음악의 가치를 현재화하려는 맥락에서다.
*
지구적 장르라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에 각기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한 사람 한 사람, 그(그녀)를 규정하는 문화미학은 제1세계적 가치와 자국의 민족적 관습, 그리고 각 성별과 계급, 세분화된 계층정서, 나아가 문화산업 속 각 개인의 심리적 조건들의 총합 그 이상이다. 예술과 문화의 차원에서는 한 집단이 완전히 동일한 성격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처럼 완전히 순수하게 개인적인 취향도 없다. 도시의 음악이란 이런 점에서 재미있다.
최근의 월드뮤직을 다루는 해외의 웹사이트에는 상파울로 사운드(Sao Paulo Sound)라는 표현이 가끔씩 나타난다. 지금 상파울로에는 더 이상의 장르실험실이 들어설 자리가 없겠다 싶을 정도로 ‘자기재현’의 형식들이 끓어 넘친다. 세우도 그 흐름의 한 측면이다.
신선한 미적체험으로서의 예술은 기존사회의 명령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 아닌 타자’를 경험케 한다. 그것이 다른 민족이든, 무의식 혹은 과거든 간에 우리는 내가 아닌 것에서, 하지만 나와 관계를 맺은 것에서 의미를 발굴한다. 더욱이 현대세계에서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원시성’을 유지하는 문화란 없다.

5. 세우의 문화미학
영국의 대중음악을 인종과 계급, 세대연구를 통해 분석한 딕 헵디지의 『하위문화』에는 밥 말리가 활동했던 웨일러스(The Wailers)가 ‘백인취향’으로 레코딩 될 때 흑인음악의 예술적 지향점인 퍼커션(percussion)의 강력한 무게감을 뒤로 밀어제치고, 보컬의 목소리를 부각하거나 백인 록 기타의 연주와 유사한 스타일을 삽입한 점을 지적했다. ‘흑인성’은 ‘백인성’과 분명히 변별되는 아름다움을 지향함에도 사회적 조건 때문에 끊임없이 수정될 운명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동일하지 않다. 대중문화는 더 이상 반역과 저항을 코드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한 점도 있다. 대중음악의 작품성에는 기본적으로 차별화와 더불어 동화(assimilation)의 전략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장르의 중첩과 재정의’는 색다른 소리들을 부르고, 그로인해 세계의 음악을 끊임없이 달리 듣도록 만든다. 어떤 사람은 음악장르를 화가의 물감처럼 개인의 자기표현을 위한 재료쯤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문화적인 문맥의 자기인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두 가지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상품을 반복적으로 소비하기만 해도 우리는 특정한 문화적 지형을 지닌 지도 위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술에 고정된 의도 따위는 없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전제하는 한 스타일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세우의 음악에는 삼바와 보사노바, 소울, 재즈, 펑크(funk)까지 담겨있고 영국의 클럽 씬에서도 울려 퍼질 덥 뮤직(dub music)1970년대 레게음악에 기원을 둔 자메이카 음악의 한 종류 특유의 미학이 브라질의 음악적 뿌리와 접속되었다. 그것들을 모두 덧셈한다고 해서 세우의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멜로디를 어떤 편곡에다 올릴지, 순환하는 비트 안에 리얼 악기의 연주는 어떻게 위치 세울지, 그 앨범을 만든 사람들의 소통과 고민의 흔적이 바로 그 음악의 캐릭터를 구성한다.
세우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 가령 MPB풍의 보컬과 악기들의 연주, 즉 내부로 향한 집중력이 사이키델릭록과 펑크재즈, 즉 외부를 향한 시선을 재빠르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혹은 그 반대도 가능하다. 프로그래밍된 리듬은 테마가 있는 연주를 품고 반복과 변칙을 번갈아가며 넘실거린다. 그녀의 아름다운 음악은 세계의 내부와 외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발견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런 차원에서 음악은 여전히 메시지이고 그 메시지는 항상 혼성적인 것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
국경을 초월해서 듣는 이 음악은 타자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무관하지는 않다. 대중음악은 문화들이 시간의 흐름을 통과하면서 경합을 벌이는 격렬한 하나의 장(field)이며, 우리는 그로인해 음악문화의 별자리나 공간적 지도를 지역적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음악은 상호 소통적이다. 음악을 개인적인 취향의 산물로만 해석한다면 그것은 유리벽 너머에서 벌어지는 유혹일 뿐이다. 개인과 개인, 지역과 지역은 단절된다. 모든 물상화(物象化)는 망각이다.3)
세우와 같은 음악에는 재현과 현시의 미학이 공존한다. 거기에서 음악은 공통의 언어로 쓰인 텍스트이면서 동시에 일회적이고 개별적인 가치를 지닌 사건이다. 타자를 신비의 베일로 처리하는 다문화주의나 공허한 패스티쉬의 증식에서 벗어나고픈 정체성의 욕구가 지금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그 기묘한 인공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비평상 당선소감

자유로움과 깊이를 길러내는 글
 

성재린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은 음악에 대한 글 을 쓰고 목표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비평에 대한 꿈이 사그라지고, 그 후 음악이나 인문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시간들 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1년에는 문화와 비평의 가치에 다시금 다가서고 싶었고, 너무나 기쁘게도 좋은 성과 를 얻었습니다. 
음악은 사랑하는 연인입니다. 너무 사랑해서 나는 결코 그(그녀)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그녀) 를 매번 조금씩 새롭게 느끼는 과정 중에야 나는 나 자신이 됩니다.
천국이라면 아마 비평이나 평론은 따로 필요 치 않을 테지요. 그러나 문화의 세계에는 다양한 힘과 욕망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가려져 있거나 단정 지어진 영역들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다양한 시공간 위에 손 맞잡고 나타날 수 있길!
제 능력 범위에서, 자유로움과 깊이를 길러 내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내 마음의 샘물 기타장이 쌍디귿님, 바람이 되어주던 돌고래여인 최, 어여쁜 늑대소년 D, 당신 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날 품어주신 창숙씨, 정신의 나무 철학과 스승님들, 내 글을 다른 사람에게 읽힐 기회주셨던 고마운 분들께. 

 
음악비평상 심의평

세계음악의 흐름을 짚을 줄 아는 안목이 상당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시인,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

모두 아홉 편의 평론이 응모작으로 제출되었는데, 편수는 많지 않았으나 다행히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작품들이 있었다. 심의위원들은 네 편의 작품을 먼저 고른 다음 그 중에서 두 편을 최종심의 대상으로 선정해놓고 숙고에 들어갔다. 두 편 모두 나름의 정당성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쉬운 점도 눈에 띄는 글들이어서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배수정 씨의 「창조적 파괴, 비주류 음악 나오다」는 시각의 현재성이 돋보였다. 배수정 씨의 글은 현재의 한국 대중음악계를 적절히 진단함으로써 평론가적 자질의 하나인 ‘시대적 안목’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비주류’ 음악계가 ‘주류’ 음악계와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주목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잘 짚은 것이었다. 그러나 평론가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 할 ‘문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주어와 술어가 제대로 호응되지 않는 문장이 상당히 많았고 심지어 비문도 있었다. 음악계의 흐름을 해석하는 감각은 좋았고 그 시각 또한 균형감이 있었다는 점이 인정되나 평론의 구체적인 실체인 ‘글’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배수정 씨의 글을 당선시키기는 힘들었다. 또 하나, 이 작품에는 음악계에 관해서는 의견이 제시되어 있었으나 구체적인 노래라든가 뮤지션의 음악적 경향이라든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모호하거나 인상비평적인 분석에 그쳤다. 배수정 씨가 앞으로 글쓰기 자체에 관한 훈련과 노래 한 곡, 뮤지션 한 명의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하는 연습을 통하여 자신이 갖춘 감각을 좋은 글로 연결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선작인 성재린 씨의 「전지구적 음악장르와 문화적 자기인식」은 무엇보다도 평론의 수준이 다른 작품에 비해 높았다. 대중음악을 중심 테마로 다양한 문화비평적, 이론적 시각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도 돋보였다. 성재린 씨는 브라질의 가수인 ‘세우’에 대한 세밀하고도 구체적인 분석을 통하여 세계의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어떤 소통관계 속에서 결합되고 생성되는지 밝히려 했다. 세계음악의 흐름을 짚을 줄 아는 안목이 상당했다. 그러나 어떤 이론적 접합점들은 설득력이 약했고 게다가 현학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또한 ‘지금-여기’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시각이나 입장표명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가령 세우에 관한 이러한 분석을 지금의 케이팝(K-POP) 현상과 연결시키는 비판적 고리로 삼아 글을 조금 더 전개시켰더라면 훨씬 공감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심의위원들은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글의 수준과 분석의 세밀함, 구체적 사례의 정확성, 이론적 안정감 등으로 볼 때 성재린 씨의 글이 당선작의 수준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당선자는 평론가의 피사체는 늘 ‘지금-여기’여야 한다는 점을 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한 이론들은 가능하면 보이지 않는 기초공사 속에 넣는 것이 좋다는 점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