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문제는 복잡하고 모호하다. 그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잠시 가정을 해보자. 만약 누군가 피 튀기는 연극에 출연해야 하는 배우라면, 또는 누군가 돈 벌러 간 딸을 찾아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면, 누군가 갈 곳 없이 재개발 구역에 남아 폐허의 삶을 살고 있다면, 누군가 딸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해야 한다면 마주하는 당신은 어떻겠는가. ‘누군가’는 자신이 아니고 ‘만약’이므로 현실이 아니라고 안도하게 될까.
우리는 매일 폭력과 마주하면서도 그것이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애써 잊고 만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구제역으로 인한 소와 돼지의 매몰, 민족주의와 다문화의 현실, 몰지각한 재개발과 난개발의 횡포, 군대 내의 기수열외와 자살, 일본에서 재점화된 방사능 공포와 노르웨이의 총기난사 테러,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지구 곳곳의 전쟁 등 한국사회를 포함한 전 지구에서 폭력적 사태는 확산되고 중첩되어간다.
누가 폭력을 행사하는가. 사람? 국가? 사회의 분위기? 현실이 모호한 건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전에 새로운 소식이 추가되고 오늘의 폭력이 어제의 폭력을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미처 해독하지 못한 의미들이 방죽 위로 흘러넘쳐 괴물로 자라나고 있다. 괴물의 입 속에 질문을 던져 넣고 속도를 늦춰야 한다.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는 네 편의 연극은 도처에 숨어있는 폭력, 여러 형태의 사회적 억압, 사람들 사이의 비(非) 소통을 주제로 하고 있다. 2011년의 봄과 여름에 공연된 이 작품들은 현실을 어떻게 포착해내고 있을까. 연극의 눈을 통해 폭력의 무덤과 사회의 결핍을 사유하고자 한다.

전략적 구조
<디 오서The Author>(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2011.4.26~5.28)는 폭력적 구조를 환기시키는 연극이다. 관객들이 보통 극장에 기대하지 않는 공간 구성을 선보인다. 관객들은 서로 마주보고 앉는다. 가운데에 무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객석과 객석이 마주보고 있는 것 자체가 무대이다. 이런 공간 안에서 현실 속에 난무하는 폭력적 이미지들을 말하면서 <디 오서>는 일종의 각성을 향해 구조의 밀도를 높여간다. 관객들은 가상의 폭력적 구조 속으로 들어간다. 물론 이것은 연극이다. 관객들은 특이한 연극이란 걸 받아들이지만 이내 현실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폭력의 문제를 다시 실감하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객석에는 등장인물 네 명이 각각 떨어져 앉아 있다. <파볼>이라는 공연을 함께 만들었던 작가 서상원, 배우 영필김영필 분과 미도전미도 분, 관객 주완김주완 분이다. 미도는 연극을 만들던 때를 회고한다.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소녀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것이었는데 같은 또래의 배우가 연기를 하게 될 경우 심리적으로 힘들어 할까봐 아이가 있는 자신이 그 소녀의 역 애쉬나를 맡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인 새별이 사진을 객석에 돌리며 아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도가 연습 과정에서 경험한 것을 말하면서 관객들은 불편해진다. 소녀의 자궁을 뜯어내는 장면에서는 허벅지에 생간을 매달아 표현했고, 눈에서 피가 솟구치게 하기 위해서 속임수에 가까운 기술을 썼으며, 폭력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배우들은 모순되게도 폭력이 난무하는 장면을 직접 봐야했고, 심지어 실제 사건을 겪은 소녀 하나에게 찾아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진술하듯이 말한다. 불편해하는 하나에게 괜찮다고 달래가며 인터뷰한 과정은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소녀에게 2차 폭력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성공을 거뒀다는 공연 <파볼>은 실제로는 없었던 것이므로 소녀를 향한 작가와 배우들의 태도도 실재하진 않지만 ‘들은’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시각화하게 되는 관객은 폭력의 덫 안에 걸려들고 만다. 그것도 가까이에 앉아서 말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폭력을 실재에 가깝게 만든다. 그만큼 배우들의 발화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가상과 현실은 구분될 수 있는 것일까. <디 오서>에서 극장은 가상을 강화하는가, 현실을 강화하는가.    

극의 모델이 됐던 하나, 극중극의 인물인 애쉬나, 배우 미도가 겪는 폭력은 어떤 관계 안에 놓여 있는가. 구조를 단순화시켜 보자면 이 모든 인물은 가짜이면서도 <디 오서>의 관객과 실질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폭력적인 상황에 힘들어했을 이 가상의 인물들은 이야기로 조직돼 극장에 출연하면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관객은 완제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제작 과정이나 공연의 뒷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은밀하고 교묘한 폭력의 순간을 경험한다. 어느 날 택배가 왔는데 아저씨에게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다던 미도, 관객이 다가오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폭행하게 됐다는, 그런데 아무도 말리지 않더라는 영필. 영필은 고조되는 음악 속에서 개새끼를 외치며 폭발한다. 배우들은 이렇게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들은 연극을 했을 뿐이지만 실제 폭력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미도는 동영상으로 본 목이 잘리던 포로의 몸짓을 그대로 연기해 보이기도 한다. 의자 위에 축 늘어져 발작하듯이 온몸을 떤다. 연기이지만 자신의 몸으로 직접 시연하는 배우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관객도 끔찍한 폭력을 경험한다. 이렇게 관객은 배우들이 힘들어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들으면서 자신들이 그동안 폭력적인 이미지를 접해왔던 태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극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전혀 없으므로 겉보기에 관객의 몸은 안전하지만 과연 그럴까. 연극은 재현해 보이지 않고 들려줌으로 해서 오히려 ‘보는 것’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다만 ‘보고 침묵’하는 것이 폭력을 방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암시한다. 
작가 서상원은 침묵한다. 모든 등장인물의 진술에 침묵으로 대응하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암전된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배우 미도가 회식 후 자신의 집 서재에 아이 새별을 재우고 다른 방에서 자고 있을 때, 서재에 들어가 아이가 나오는 동영상을 보며 자위를 했다고. 관객으로서 이 장면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머릿속에서는 작가가 모니터를 보며 그랬다는 건지 실제 아이를 보며 그랬다는 건지 헷갈려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그러고 나서 태평하게 아내의 곁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로그아웃을 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서재에 간 미도는 화면을 보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은 관객에게 분명 힘든 일이다. 마치 무언가를 놓아버린 듯이 작가는 객석을 떠나버리고 관객들의 윤리적 고민은 증폭된다.
그리스 비극을 떠올려보자. 소포클레스(Sophokl?s, BC496~BC406)의 <오이디푸스 왕>의 경우, 이오카스테가 자살하고 오이디푸스가 그 옆에서 자신의 눈을 찌르는 장면을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재현했을까? 아니다. 이러한 장면은 사자(使者)의 긴 대사로 그 내용을 대신 전달했다. 비극시인들은 신체를 훼손하는 순간이나 친족을 살해하는 등의 폭력장면을 관객에게 직접 보이고 싶지 않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존재했고 관객의 머릿속에서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으로 각인되었다. 어쩌면 당시에 연극을 만들던 이들은 이런 장면을 직접 보이는 것보다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는 것이 인물의 고통에 동참하게 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디 오서> 또한 폭력적인 사건이나 폭력에 노출됐던 경험을 말하고, 심지어는 암전된 상태에서 집중해 듣게 함으로써 몹시 신경을 쓰게 한다. 다만 이미지를 보고 소비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디 오서>는 음악을 통해 관객들이 긴장을 풀 수 있게 하고 또 암전을 통해 다시 관객을 긴장시키는 등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활약했고, 초콜릿을 나눠주며 극장이 마냥 달달하기만 한 장소는 아니라는 걸 역설적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기분이 나빠진 관객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심어진 관객이라는 거다. 인터넷에서 공연 리뷰를 검색해보면 미리 준비된 사람이 언제쯤 자리를 박차고 나갈 거라고 알려준다. 필자 또한 그 사실을 알고 공연을 보러 갔다. 누군가는 실제 관객이 나갔다고 기억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가짜 관객이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극장을 통해 관객의 기억으로 구성되는 것은 허구일까, 진짜일까. <디 오서>에서는 대답보다 이 질문이 유효할 것이다.   
필자가 공연을 본 날, “어떤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글을 씁니다”라고 대답한 관객이 있었다. 사람들은 ‘오~’라고 반응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고 “글이 작가를 떠났습니다”라는 대사가 들려왔을 때 그 관객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연히 빚어진 조합이었지만 <디 오서>에 출연하는 작가 서상원과 관객으로서 앉아있는 또 다른 ‘글 쓰는 이’는 공연 안에서 흥미로운 관계를 맺게 된 것이 분명했다.(글 쓰는 관객이 가짜가 아니라는 건 필자가 알고 있다. 함께 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관계는 ‘어떤 세계를 쓰고 살고 있는가’라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원작을 쓴 팀 크라우치(Tim Crouch)와 등장인물로서의 작가 서상원, 관객으로 앉아있는 어떤 이. 이 셋은 각각 현실, 연극, 현실로 닥친 연극을 살고 있다. 그 공간들은 서로 교집합된다.
관객 역할을 했던 주완마저도 가방을 메고 객석을 떠난다. 극장에는 진짜 관객들만이 남겨졌다. 이제 관객들이 감당해야 할 것은 현실에서보다 훨씬 더 강화된 현실감각이다. 관객의 머릿속은 소란스럽다. <디 오서>의 전략적인 구조는 이렇게 연극과 현실을 혼합한다. 또 ‘디 오서(작가)’는 충분히 ‘더 스펙테이터(관객)’로 바뀔 수가 있다.
의문은 남는다. 관객 역할을 하는 주완이 자신의 차례가 오면 어김없이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대답도 듣는데, 그 시간이 아닌 때 그러니까 미도나 상원, 영필이 진술할 때에도 관객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던 걸까. 필자가 관람한 공연에서는 질문을 받기 전에 말을 꺼낸 관객은 없었다.

왜 다은이가 총에 맞고 연희가 죽어야 하나
극단 그린피그의 <연변엄마>(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011.5.27~6.12)는 연변에서 딸을 찾아 한국으로 온 복길순강애심 분의 시선으로 한국사회의 초상을 그리는 연극이다. 이 초상은 보는 방향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 하는 그림처럼 희극이기도 비극이기도 하다.
광택이 나는 바닥에 놓인 고급스러운 식탁과 소파. 무대는 삼대가 함께 살아가는 아파트의 거실이다. 치매에 걸린 전직 육군장성 전희복김재건 분과 그의 아들 내외 전강돈류태호 분과 금보미서진 분, 이들의 자식 전우진김태윤 분과 전다은노수산나 분, 그리고 새로 온 가정부 복길순이 함께 산다. 이들 가족 사이에 흐르는 것은 갈등과 집착, 의심과 비밀이다. 금보미는 시아버지 전희복이 싫어서 수면제를 먹이고, 전강돈은 아버지가 보물이 숨겨진 곳을 알고 있다고 믿고 어떻게든 그 정보를 알아내려 한다. 전우진은 진보를 자처하지만 전강돈의 큰소리치는 일장연설에 태도를 바꾸고, 전다은은 우리나라가 구리다며 프랑스로 가고 싶어 한다. 금보미는 자신의 딸이 의대에 붙기만을 바라면서 다은의 철없는 어리광을 모두 받아준다. 이들 가족이 삐걱대고 서로 반목할 때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이는 복길순이다.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술집, 카바레, 경마장 등을 돌며 지친 가운데에도 그녀는 치매에 걸린 전희복과 임신을 해서 두려워하는 전다은을 돌본다. 그러나 그녀의 모성이 주변을 따뜻하게 밝히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듯이,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화면에 찍히는 돈뿐이다. 팔천이백 원을 들고 한국 땅을 밟았던 3월. 딸의 빚을 갚는 데 월급을 다 쓰고 화면에 찍히던 그녀의 돈은 얼마였던가. 또한 딸 미란이가 눈이 멀어 섬에 팔려갔다는 소식은 얼마나 스산했던가. 고급아파트였던 거실은 창살이 있는 무대로 바뀌고 복길순은 결국 외국인 임시 보호소에 갇힌다. 그리고 외치듯 묻는다. “여기가 어딤까? 여기가 한국임까?”
<연변엄마>에서 복길순은 그가 가진 모성의 힘으로 한국사회의 폭력에 맞선다. 전희복이 복길순을 처음 보았을 때 엄마라고 부르던 것이 의미심장했다. 딸에게 빚이 있다는 말에 속고, 딸이 일하던 현장을 참혹한 심정으로 마주하고, 고층 아파트에 스민 허구의 인생들이 자신을 깔보고 무시해도 그녀는 굴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딸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딸에게 전하고 싶은 따뜻한 마음은 딸에게 가 닿지 못하고 대신 주변 가까이에 있는 인물들에게로 미친다. 이 작품이 따뜻한 것은 그래서이다. 더불어 이 작품이 차가운 것은 다음의 장면과 관련이 있다. 철없는 고등학생 다은이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의 총에 맞는 장면이다. 전희복은 자신의 아들 전강돈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총을 발사하게 되고 다은이 맞고 쓰러진다. 모두가 점점 더 사회악에 가까워져 가는 동안 다은이는 변화했던 인물이다. 생명을 가졌다가 잃는 경험이 다은이에게 큰 변화를 가져와 복길순에게 마음을 열게 한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다은이가 총에 맞아야만 하는가. 작가는 왜 다은이라는 인물에게 가혹해야만 했을까. 다은이에게 닥친 위기는 허울뿐인 이 가족을 파탄에 이르게 할 것이다. 피상적인 것에 현혹된 가장 연약한 인물에게 뇌관을 심어놓음으로써 작가는 아슬아슬한 불균형의 상태가 폭발해버리도록 만든다. 그간 숨어있던 세대별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 ‘할아버지가 쏜 총에 맞는 손녀’라는 인물로 집약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천만 원짜리 개를 갖고 싶어하는 소녀와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 사이에는 탐욕에 눈이 먼 부모세대가 있을 뿐이다. 전우진이 중재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청년도 토대가 허약하긴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그 또한 이 집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다은이가 희생되는 문제는 다음 작품으로도 이어진다.  

 
극단 다리의 <없는 사람들>(가톨릭청년회관 ‘다리’ CY씨어터, 2011.7.14~7.31)은 갈 곳 없이 남겨진 재개발지역의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은 용역깡패들과 맞서고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과도 상대해야 한다. 무기라고는 흔들리는 자존심뿐이다. 무엇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굴레인 사람들이다.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대학생, 김밥집 아줌마, 버스기사, 낚시터 도우미, 신부님, 복덕방 아저씨, 용역깡패, 경찰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며 나 자신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무대는 성당, 골목, 장례식장으로 쓰이는 십자가의 공간과 연희네 김밥집, 영식이네 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철거를 앞둔 서울의 한 동네, 재개발 구역이다. 다른 주민들이 용역깡패의 위협에 시달려 하나 둘 떠나는 동안에도 연희네는 떠나지 못한다. 터무니없는 보상 때문에 화가 날 뿐더러 연희 아빠김종태 분가 이 부조리한 현실과 싸우겠다고 결심한 까닭이다. 그런데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연희 엄마최솔희 분에게 그런 남편은 비현실적이고 고집만 센, 야속하고 답답한 사람이다. 연희 아빠는 연희 엄마와 또 싸우고 집을 나섰다가 용역깡패이상민 분와 맞닥뜨린다. 짧은 드잡이 끝에 용역이 넘어져 머리를 다치고 연희 아빠는 겁이 나 영식이네 집으로 도망을 간다. 용역이 김밥집을 지키는 바람에 연희이새별 분는 하교 후에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던 연희가 영정 사진이 되어 장례식장에 앉는다. 용역은 나타나지 않는 연희의 아빠 대신 연희를 협박했었다. 이사를 가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도 학교 앞에 나타날 거라고 했고 연희는 깊은 밤에 몰래 학교로 들어가려다가 그만 실족사하고 만다. 흥미로운 점은 연희의 부모는 끝까지 연희가 죽게 된 이유, 그러니까 한밤중에 학교에 가려했던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 연희와 용역의 만남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연희의 남자친구김인권 분뿐인데 그는 경찰서 대신 성당에서 신부에게 고해성사한다. 이는 극의 후반부에 신부의 내레이션을 통해 드러난다. 그렇게 연희는 죽고 지지부진했던 재개발 사업은 취소된다. 망루 위에 올랐던 사람들은 허탈하다. 싸움의 이유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싸움의 흔적과 상처는 고스란히 남았기 때문이다.   
혼탁했던 싸움을 뒤로 하고 시간이 흘러 연희의 가족과 이웃들은 연희의 무덤 앞에 모인다. 날씨가 화창하다. 모두가 슬픔을 극복한 듯이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 연희 아빠는 연희가 살아있을 때 늘 미안하다고 말하고 걱정만 했지, 날씨가 좋다는 말도 희망을 얘기하지도 못했다고 후회한다. 인물은 후회와 함께이더라도 감정이 정화된 상태를 표현하지만 관객은 그렇지가 못하다. 연희가 연희 아빠 대신 용역의 협박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고, 연희 아빠가 그 사실을 모른단 것도 알기 때문이다. <연변엄마>에서 다은이가 희생되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없는 사람들>에서는 왜 연희가 죽어야만 하는가. 연희의 죽음은 누구의 탓일까. 용역의 탓인가? 연극은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사연이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끝까지 그 사연을 알려주지는 않고 타자로 남긴다. 대신 그도 연희에게 하얀 국화꽃을 바치는 조용한 문상객이 된다. 죽음의 탓이 용역 개인에게로 쏠리지 않는 이유이다. 그럼 연희의 죽음은 아빠의 탓인가? 아빠의 신념은 현실 앞에서 무능했던 건가. 잠깐, 여기서 질문을 수정해야 한다. 죽음은 누구의 탓일 수 있는 걸까. 폭력적 구조의 핵심에 무엇이 있기에, 약하게 태어나 오래 못살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도 그렇게 예쁘게 잘 자라온 연희가 죽음의 담을 넘어야 했나. 연희의 부모와 동네 사람들은 따뜻한 본성으로 삶을 이어나가며 소녀의 죽음을 극복하지만, 이 관객은 다시 묻고 싶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건 개인 말고 사회의 구조일 수는 없나. 폭력은 구조에서 오고 용서와 화해는 개인의 몫이란 말인가.

 
아미시인의 용서
극단 C바이러스의 <아미시 프로젝트The Amish Project>(신촌 더 스테이지,  2011.3.5~4.10)는 용서를 사유한다. 원작은 배우이자 극작가인 제시카 딕키(Jessica Dickey)가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해 쓴 것으로, 2009년 뉴욕 인터내셔널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모노드라마로 초연됐다.
공연은 반복해서 말한다. “한 남자가 아미시 학교에 들어가 총을 쐈다.” 이것은 매우 간략한 사건의 개요이자 언론과 뭇사람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이 문장에는 한 남자가 ‘왜’ 그런 사건을 저질렀는지도, 사건의 앞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담겨있지 않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일방적인 시선에 비판적인 시선을 더하고 있다.     
2006년 10월 2일 미국 아미시 마을. 아미시는 기독교 교파인 재침례교 신도들을 말한다. 자동차나 전기와 같은 문명을 거부하고 농업을 중심으로 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나간다. 이곳의 니켈 마인스 학교에 찰스 칼 로버츠 4세가 권총을 가지고 들어갔다. 그는 우유를 가공공장으로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학교선생으로부터 신고를 받은 경찰이 건물로 들어갔지만 로버츠가 이미 열 명의 소녀를 쏘고 자살한 후였다. 로버츠와 다섯 명의 소녀가 현장에서 죽었고 나머지 다섯 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언론은 흥분했고 시간이 흐른 후 더 흥분했다. 아미시인들이 살인자를 용서한다고 발표했고 언론을 비롯한 바깥 세상의 사람들은 그 용서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시카 딕키는 이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아미시 소녀 안나와 벨다, 우유배달부 에디와 그의 아내 캐롤, 그리고 이웃인 셰리와 아메리카, 아미시 문화를 연구하는 교수 빌노스를 등장시킨다. 특히 미망인 캐롤에게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는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사건의 이면에 숨어있던 관계와 감정을 드러낸다.
무대의 오른쪽 벽에 인물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조명이 역으로 그림자를 도드라지게 한다. 모눈종이처럼 격자로 구획이 지어진 무대. 군더더기는 없다. 중앙에 움푹 파인 네모난 공간은 평화로운 아미시 학교다. 꽃이 피어있고 작은 의자가 귀엽게 놓여있다. 이곳은 아미시 아이들의 꽃무덤이기도 하다. 환하고 정갈한 아이들의 공간과 현대사회의 익숙한 물건인 마트용 카트가 대비된다. 이것은 아미시 문화와 현대사회의 대비이기도 하다. 철망으로 만들어졌고 비어있는, 온갖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카트. 가해자 에디의 아내 캐롤은 물질 문명을 상징하는 오브제를 끌며 마트에서 장을 본다. 자외선 차단제 함유 모이스처 로션을 고르는 캐롤. 그녀는 백색의 로션과는 정반대로 한없이 어둡고 슬프다. 셰리는 그런 캐롤에게 다가가 섬뜩하게 속삭인다.
  “네가 제대로 된 아내였다면 그 아이들은 죽지 않았을 거야.”   
셰리는 열세 살 때 수학 선생님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던 인물이다.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행동했다. 딸에게 말하길, 수학선생님께 친절하게 굴어야 한다면서 자신이 ‘네 몫’까지 수학 선생을 ‘미워할’ 거라고 했다. 셰리는 성장하면서 수학선생의 죄를 엄마의 ‘희생, 인고, 미움’으로 치환시켜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셰리는 여성인 캐롤에게 에디의 죄를 묻는 폭력적인 사고 방식을 갖게 됐다.
무대 오른쪽의 세로로 긴 세 개의 문은 ‘폭력, 조롱, 폐쇄, 비소통’을 환기시킨다. 캐롤을 압박하는 인물들은 그 문을 쾅 닫고 사라지고 다시 들어올 때도 위협적이다. 그리고 장면들은 마치 사건을 편집해 되돌려보는 듯한 ‘반복’의 형태로 연출된다. 반복을 통해 폭력적인 시선과 왜곡이 드러난다. 배우들의 몸은 서로 밀착해 겹쳐지고 장면은 필름이 감긴 것처럼 뒤로 간다. 에디, 셰리, 빌노스, 그리고 마트에서 일하는 아메리카가 한데 뭉쳐 캐롤를 향해 비웃듯이 소리친다. 셰리는 ‘돌아버리겠다’며 바닥에 깔려있는 캐롤을 한 바퀴 돌려버린다. 각각의 인물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잣대를 들이대며 캐롤을 압박한다. 캐롤은 이러한 악몽 속에 살고 있다. 작가는 사건 전체를 다시 재배열하면서 아미시 소녀들의 죽음뿐만 아니라 사건 이후 가해자의 가족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가는 과정에도 집중한다.  
무대 오른편의 스크린에서는 뉴스 영상이 반복되고 있다. 영상은 헬리콥터에서 아미시 마을을 내려다보며 찍은 것으로, 이 사건의 전체를 총괄하고 장악하겠다는 듯 오만하다. 마치 먹잇감이라도 찾은 것 같다. 붉은색 바탕에 찍힌 ‘긴급속보(Breaking News)’라는 글자, 분주한 사람들, 경찰차, 사건 현장임을 알리는 노란색 테이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뉴스만을 보고 사건을 판단한다. 극중의 셰리 역시 “러닝머신에서 운동을 하다 CNN뉴스를 봤어요. 난 생각했어요. 어떤 정신병자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지?”라고 말한다. 뉴스는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선정적으로 핥듯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다. 캐롤은 그 뉴스가 끊임없이 방송되는 텔레비전의 세계에 갇혀 살아간다. 자신도 텔레비전을 보며 괴로워하고 또 텔레비전으로 소식을 접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고통 받는다. 
예컨대 언론의 오만한 시선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장면이다. 아이들이 한명씩 총에 맞는데 총소리가 나지 않는다. 대신 성스러운 종소리가 열 번 울려 퍼진다. 가장 직접적이면서 동시에 은유적인 장면이다. 연극은 여기서 아미시 소녀들의 죽음을 폭력의 시선에서 놓여날 수 있도록 한다. 비극과 용서를 동시에 사유하는 장면이다. 역설과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아미시 사람들의 ‘용서’가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연 셈이다.     
극단 C바이러스는 제시카 딕키의 모노드라마 형식 대신 일곱 명의 배우에게 역할을 나누어 표현한다. 그런데 에디를 연기한 배우만 마지막에 이르러 아미시인까지도 연기하게 함으로써 죄와 용서에 초점을 맞춘다. 남색 모자를 쓴 에디가 혼란스러웠던 모습을 뒤로 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밀짚모자를 쓴 아미시인이 빛과 어둠의 경계에 가만히 서 있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빛과 어둠의 경계, 즉 무대 왼쪽에 위치한 문 없는 등퇴장로는 ‘죽음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장소이다. 모자 그림자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미시인(죽은 아이의 아버지)이 캐롤을 위로하기 위해 어두운 그곳에서 온다. 그는 직접 말하지 않지만 미망인은 그가 ‘아프다. 괜찮다’라고 말했다고 관객에게 전한다. 이 대목에서 용서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용서는 연극에 이르러 ‘타인에게 전해진’, 타인의 입을 빌어 나오는 언어 혹은 행위가 되었다. 아미시인이 그렇게 하듯이 용서는 타인과 진정 대면하는 행위인 건 아닐까. 캐롤은 아미시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용서를 실천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깨닫는다. <아미시 프로젝트>는 이렇게 일인이역을 통해 죄와 용서를 함께 보여준다. 죄와 용서는 한 몸이며 용서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유튜브(youtube) 동영상으로 확인한 제시카 딕키의 모노드라마는 즉각적으로 표정과 목소리가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혼자서 일곱 명을 연기함으로써 인간 안의 여러 모습, 즉 선함과 악함, 순수함과 뒤틀린 욕심 등을 한꺼번에 표현해낸다. 결과적으로 아미시 사회의 정갈한 의상을 입은 몸에서 여러 인물이 출몰하는 모습을 보여서 아미시 학교 내 총기살해사건이 다만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사회의 여러 모순과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같은 작품이면서도 각각의 <아미시 프로젝트>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사라져가는 고백
<디 오서>에서는 미도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와 애쉬나가 성폭행을 당하고 <없는 사람들>에선 연희가 죽고 <연변엄마>에서는 다은이 총에 맞는다. <아미시 프로젝트>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죽는다. 네 편의 연극에서 모두 소녀들이 희생되는 것이다. 이 일련의 연극들은 들여다 보고 있다. 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소녀로 상징되는 무엇인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말이다. 폭력의 양상을 고스란히 흡수하며 죽음의 길을 가는 그녀들은 다만 소녀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고백이다. <아미시 프로젝트>와 <없는 사람들>에 그리스도교의 시선이 배어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연희가 죽기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연희의 남자친구가 신부에게 고해했던 것처럼 인물들은 객석을 향해 내레이션(<없는 사람들>, <디 오서>)한다. 내레이션은 연극이 관객을 향해 고해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것은 한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사회공동체의 선을 찾아 떠나는 관점이기도 하다. 고백성사의 내용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과 폭력’이다.
폭력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지만 인물들이 그 안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폭력이 현대사회의 주요 이미지로 번져나가는 현실을 깨닫도록 촉구하는 힘(연극 <디 오서>), 사회의 폭력과 맞서며 딸을 찾아나서는 모성의 힘(연극    <연변엄마>), 약자와 타자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힘(연극 <없는 사람들>). 가해자의 가족까지도 위로하는 용서의 힘(연극 <아미시 프로젝트>). 네 편의 연극이 저마다 이해와 화해, 용서의 가치로 극을 갈무리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연극의 시선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폭력의 세계 말고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소녀들이 돌아올 수 있는 세계 말이다.

공연비평상 당선소감

 
극장과 현실의 관계를 탐구하는 글을 쓰도록 노력할 것
 

김해진

처음으로 공연을 보았던 건 초등학교 때다. <애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택이었다. 애니의 빨간 머리가 앞사람들의 머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들 사이로 빛이 새어나올 때마다 무대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중학교 때 역시 아버지의 선택으로 <아가씨와 건달들>을 보았다. 헐렁한 튜브톱 드레스를 입고 군무를 추던 한 무용수가 만세 동작을 하다가 그만 젖가슴을 보이고 말았다. 당황했다. 그때 어렴풋이 연극의 현장감을 알았던 것 같다.
비로소 혼자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이웃한 고등학교의 동아리 공연에서부터 대학로, 홍대 공연에 이르기까지. 그로 부터 제법 긴 시간이 지났을 때에도 오로지 공연을 보기 위해 낯선 곳에 발을 디뎠다. 그러는 동안 왜 그렇게 외로웠는지 잘 모르겠다.
내심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괜히 풀이 죽어 ‘내 블로그에나 연재해야겠다’고 머릿속 에서 편집, 기획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당선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사실 오랫동안 내 안에 있는 ‘비평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 했었다. 많은 질문들을 떠오르게 하는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보 통은 답을 찾기 어렵거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앞으 로도 오래 걸릴 그런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왜 내 안에 ‘있는’ 시선을 천덕꾸러기 취급 해왔는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  해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인정하기로 했다. 확장 시키기로 했다. 그동안 공부했던 것과 경험했던 것을 종합해서 원고를 써내기로 결심했고 마침표를 찍었을 때 당선여부와 상관없이 이 글이 다음 단계로 올라설 발판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쓰게 될 글들이 종이에 누워있지 않 고 담대하게 일어나 세상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갔으 면 좋겠다. 극장과 현실의 관계를 탐구하는 글을 쓰 고 싶다. 계속 노력할 것이다.
이 기쁨이 늘 믿고 기다려주시는 어머니에게 오랫동안 머물렀으면 좋겠다. 은옥, 현수, 장수에게 고맙다. 목요일 오후 한 시에 함께 연극을 한 친구들 에게 고맙다. 꾸준히 리뷰를 쓸 수 있도록 응원해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에 고맙다. 평소 존경해온 두 심사위원님들과 플랫폼 문화비평상 관계자 분들 께도 감사드린다.

공연비평상 심의평
 

폭력이라는 현상을 통해 연극과 사회를 조망한 글쓰기
 

김명화 (연극평론가, 극작가)
 

플랫폼 공연비평상 후보작들의 수준이 좋아졌다. 올해 모두 열아홉 편이 응모되었고, 대부분의 후보작이 기본적인 분석력과 수준을 갖추었다. 그러나 가독력에 문제가 있는 글쓰기가 여전히 보인다. 비평은 일반 독자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저널적 글쓰기다. 지나치게 아카데믹하거나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하는 번역투의 문장 또 강의 시간에 제출하는 리포트처럼 딱딱하고 규격화된 글쓰기는 넘어서야 할 부분이다.  
또 한 가지, 분석력은 좋아졌으나 해석력이 부족하다. 희곡과 공연의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분석하는 작업은 비평가만이 아니라 학자나 드라마투르그(Dramturg)공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공연의 완성도를 돕는 자문역할도 할 수 있다. 비평가는 그 이상, 공연된 작품을 해석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예술과 사회라는 넓은 컨텍스트의 망 안에서 대상 작품을 바라보고, 위치 짓고, 의미 부여하는 비평가의 역할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여러 사항을 고려하여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신소영 씨의 「배우와 인물, 그 겹을 찾아서」, 김해진 씨의 「소녀들이 사라져간다」 두 편으로 모아졌다. 당선작인 김해진 씨의 글은 폭력이라는 현상을 통해 연극과 사회를 조망한 글쓰기로, 거친 구석도 있었지만 후보작들 중 가장 분명한 논지가 있었고 공연을 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그 공연을 밀도 있게 설명하고 분석하는 명증함과 설득력이 있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신소영 씨의 글은 포스트연극의 연기에 대한 글쓰기로, 시의성 있는 주제를 심도 있게 전개하였다. 그러나 구체적 공연분석이 아닌 이론적 수준에 머물러있어 비평이라기보다는 논문에 가깝고 좀 더 육화된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 외 이태욱 씨의 「쇠와 살, 다양한 경계들에 대하여」와 손옥주 씨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이에 대한 고찰」이 함께 언급되었는데, 두 편 모두 장점과 가능성을 갖춘 글쓰기지만 에세이에 가까운 의미의 과잉이나 구조의 불균형은 극복해야 할 지점이다.

공연비평상 심의평

당선작 외 잠재력이 확인된 응모작 다수

김남수 (무용평론가)
 

주목할 만한 응모작이 고른 수준으로 다수를 차지하여 이번 플랫폼 공연비평상 본심은 쉽지 않았다. 손옥주 씨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이에 대한 고찰」은 ‘수행적 전환’이란 개념 정립을 통해 실로 눈부신 논리전개를 보여준다. 다만 불필요한 서론과 구태의연한 지식이 섞여있는 데다가 분량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태욱 씨의 「쇠와 살, 다양한 경계들에 대하여」는 에세이와 비평이 결합된 미덕으로 최종단계까지 각축하였지만 비평언어의 부족과 지나친 의미부여가 지적되었다. 신소영 씨의 「배우와 인물, 그 겹을 찾아서」는 현 단계 변화된 공연조건에 관한 단연 뛰어난 글쓰기라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단지 구체적인 작품사례가 곁들여지지 않아 논문에 가깝다는 평가가 있었다. 김해진 씨의 「소녀들이 사라져간다」는 자기만의 비평적 시선과 개념생산이 약하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관한 논리가 다수 작품의 충실한 분석과 함께 밀도 있게 일관된 점이 점수를 얻었다.
그 외에도 최종단계까지 오르진 못했지만 백소연 씨의 「그림자들을 만나는 방법」의 전체에 대한 통찰과 윤리학적 접근, 이민주 씨의 「한 그릇의 춤」의 공연비평의 기초로서 단단하기 짝이 없는 현상학적 기술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당선작 외에도 잠재력이 확인된 응모작이 많았다. 미래를 바라보고 정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