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석수시장의 복합문화공간 ‘석수아트터미널-샛’이 따뜻한 와인 뱅쇼(Vin Chaud)의 내음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다양한 전시설치물이 펼쳐진 이곳은 앉을 자리가 별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좁은 공간이라 방문객들은 나름 자신이 서 있을 공간을 확보한 채 양손으로 뱅쇼 잔을 감싸지고 연신 호호 입김을 불었다.

보얗게 일어났다 금세 사라지는 입김과 뱅쇼의 증기가 함께 어우러져 실내를 밝히는 전시 조명의 빛을 한층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지난 1년간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진행한 2011년 경기문화바우처 기획사업의 면면을 보여주는 아카이브전시가 1월 18일부터 29일까지 석수아트터미널-샛에서 진행되었다. 석수아트터미널-샛은 안양의 예술공동체 스톤앤워터(Stone & Water)가 석수시장 내 몇 년간 비어있던 점포 3개를 통합하여 2010년 12월 개관한 보충대리공간으로 삶과 예술의 소통으로 도시생태학습지의 역할을 표방하며 석수시장에 자리 잡았다.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지역에 정착하여 석수시장 상인들과 함께 예술과 삶의 조우 과정을 만들어가는 스톤앤워터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난 1년간 경기도 전역에서 진행했던 문화바우처 기획사업의 결과물인 우편집배원, 기간제 교사, 청소미화원, 독거노인, 장애우 등 소외된 경기도민들과 예술가들의 만남에 대한 각종 기록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문화바우처 사업은 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국내 문화복지사업으로 2005년도 시범사업으로 처음 시행되었다. 경제적인 제약으로 문화향수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어려운 이들에게 가구당(청소년 세대원의 경우 1인당) 연간 5만원 한도의 문화카드를 발급하여 공연과 전시 관람, 책이나 음반구입 등 문화생활 여건을 개선하려는 정책사업이다. 문화바우처 기획사업은 위와 같은 카드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한 현장 중심의 아날로그 사업으로 2011년에 시작되었으며, 문화바우처 정책의 사각지대를 적극 해소하기 위한 수혜대상자 맞춤형 사업들이 16개 시도별로 다양하게 시행되었다.

 경기문화바우처 기획사업은 ‘가가호호 문화교감’, ‘낮달 문화소풍’, ‘활생 문화공명’ 세 가지 카테고리 내에 총 11개의 세부 프로젝트들로 진행되었다. 이번 전시는 각 카테고리 별 사업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그 진행과정을 볼 수 있도록 아카이브전시로 기획되었다.
 가가호호 문화교감의 전시공간은 창고형 중앙공간과 부속건물로 이어진 작은 공간 2곳으로 크게 구획되어있다. 중앙공간 오른편과 이어진 부속건물의 작은 방에 가가호호 문화교감의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가호호 문화교감은 예술가들이 가정집과 복지대상 생활시설에 찾아가서 공연, 사진촬영, 체험 등의 문화예술 활동을 기부하는 나눔 활동이다. ‘가가호호(家家好好)’ 즉 집집마다 문화로 교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4개의 하위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첫 번째 ‘찾아가는 고양이들’ 사업은 수원 에이블아트센터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집으로 찾아가 다양한 시각예술활동과 문화나들이를 진행한 일련의 과정들이다. 10명의 참여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찾아가는 고양이”라 불렀고, 아이들을 “작은 고양이”라고 불렀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예술교육, 예술치료의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아이들의 예술적 감수성과 직접 교감하고자 했다. 찾아가는 고양이, 즉 참여 작가들은 이러한 과정들을 “고양이 발자국”이라는 이름의 일지로 기록하였고, 그 일지는 그동안 아이들이 작업한 작품들과 수업과정을 남긴 사진 등과 함께 아이들의 여행가방 안에 전시되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작품 <여행가방 속의 상자>를 연상시키는 작은 고양이들의 작품들이 수줍게 들어앉아 있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펼쳐 보일 수 있는 편리한 형태, 가방 안에 차곡차곡 수집된 아이들의 작품들은 지구촌 어느 곳에 닿아있는 아이들의 꿈들도 함께 펼쳐 보인다.

 ‘안녕하세요 대부도 사진클럽입니다’는 박준식 사진작가가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들과 안산 대부도 주민들로 구성된 대부도 사진클럽 멤버들과 함께 대부도 독거노인들의 집에 방문하여 장수 사진 촬영, 옛 사진 복원, 그림문패, 방풍작업 등을 하는 가가호호 프로젝트이다. 박준식 작가는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하며, 짙은 가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난방도 없이 추위를 버티는 어르신을 만나며, 문화예술의 역할과 예술가로서의 접근태도를 고민하였다고 한다. 방풍작업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문화바우처 등의 제도적 지원과 최소한의 보호대책에서도 배제된 ‘가난한 삶의 진짜 주소’를 찾는 작업으로 되돌아가 진지하게 직면해나간 고민의 흔적과 과정이 담겨있었다.
 이 외에도 예술재능 기부자의 방문을 요청한 복지기관과 생활시설 또는 개인 신청자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소규모 공연을 진행한 ‘재능기부 재가방문’과 광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이 24명의 성남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작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가는 예술교육 프로젝트 ‘크크 오케스트라’의 결과물도 함께 전시되었다.
 낮달 문화소풍은 버스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공연과 전시 관람을 지원하는 문화서비스이다. 4개월 동안 총 8,391명이 함께한 나들이에 대한 소개로 전시는 마무리 되었다.
 활생 문화공명은 경기도 6개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안공간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각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회공헌형 3D업종 종사자를 위한 예술 헌정 프로그램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각 프로그램의 기록영상과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수원의 대안공간 눈과 이웃(EWUT)이 주관한 '예술수다로 돌A봄'은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을 만나 수다를 통하여 예술적 감수성을 회복해가는 치유 프로그램이며, 안양의 스톤앤워터와 소셜아트컴퍼니가 진행한 ‘집배원의 손편지’는 우체국 집배원들의 비정규직 삶을 들여다보았다. 집배업무 종사자들이 직접 손편지를 작성하고 손편지 공모전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찾아가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사회적 리서치 과정을 밟아나갔다. 부천의 아트포럼 리가 진행한 ‘도시 스킨케어링’은 환경미화원들의 일상에 주목하였다. 그들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환경미화원들이 작가로 참여하여 낙엽을 쓸면서 낙엽드로잉을 하고(무쓸모의 쓸모 프로젝트), 실내 청소를 하며 비누거품으로 드로잉 작업을 하면서(청소 드로잉 프로젝트) 자신의 삶을 표현하도록 하였고, 이러한 모든 프로젝트의 과정을 전시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공유하고자 하였다. 안성의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는 임시직 특수교사들을 만나 상담·미술·난타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안산의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의 ‘수다.ZIP-다문화 활동가들의 이야기’는 이주민 인권운동과 다문화 가정문제 상담지원 활동가들이 자신의 삶과 일을 주제로 한 스토리텔링 구성을 책으로 엮었다. 포천의 문화살롱 공은 ‘치유와 나눔의 숲, 어처구니 숲학교’을 통해 소아암 간병인과 백혈병 어린이 가족들에게 작가들이 마련한 숲 속 쉼터와 나들이 길을 따라 걸으며 즐기는 명상과 음악회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2011년 전격 시행된 문화바우처 기획사업은 16개 시도 지역주관처별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모셔오는 서비스’ 유형의 서울문화바우처 기획사업, 복지대상자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예술을 통한 접근방법을 고민하며 친구(우리친구C바우처), 가족(함께가족C바우처), 이웃(서로이웃C바우처)의 관계설정으로 풀어보고자 한 인천문화바우처 기획사업, ‘착한 그물’이라는 예술가 재능기부 방문프로그램 모델을 만들어낸 부산문화바우처 기획사업 등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한 해법과 대안들이 진지하게 고민되고 모색된 한 해였다. ‘삶의 예술’로 대변되는 새 예술정책의 실천에서 본격적인 복지 시스템으로의 접근을 시도하는 문화바우처 사업의 확대시행은 막대한 예산투입과 함께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환경과 관련한 여러 이슈를 담고 있다. 엄밀한 자격기준에 따라 지원대상자를 가르는 선택적 복지냐,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로서 보편적 복지냐의 정책적 판단은 한정된 예산과 현실적용문제 등을 이유로 실천의 장에서 최소한의 지원과 시급한 수혜대상에게로 집중되기 마련이다. 문화와 복지가 함께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예술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무에 대한 질문들은 각 지역 바우처 기획사업의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진 자가 못가진 자에게 베푸는 시혜적 태도가 아닌, 나눔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복지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는 본격 시작되었으며, 여기에서 나아가 한국형 복지모델에 대한 물음표에 직면하게 되었다.

  
 ‘가난’, ‘예술’, ‘소외’, ‘사람’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태도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 <2011 경기문화바우처 기획사업 아카이브>展은 문화바우처의 추상적인 수혜자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접근했던 각 사업의 과정과 결과를 담아내었다. 또한 현장에서 겪은 한계와 불평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품에도 주목하면서 예술과 복지의 경계에 대한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