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1942~2011) 국방위원장의 사망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비록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았던 김일성(金日成, 1912~1994) 주석만큼은 아니었지만, 북한 최고 권력자의 죽음은 남북정상회담 등 북한을 국정 돌파용으로 이용하려던 우리 정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직도 휴전에 불가한 남북관계를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TV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 김정일 관련 특집 기사들은 현재 한반도 이남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남북관계의 자장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명징한 증거였다.
 그의 죽음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의 속살을 보여주었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의 죽음으로 도마에 오른 현 정부의 대북 관련 정보력이었다. 김정일 사망소식을 북한의 언론보도를 통해서야 알았다는 정부. 어쩌면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북 핫라인을 모두 제거한 채 4년 동안 북한이 망하기만을 기도했으니 그럴 수밖에. 생각해 보자. 남한의 대통령이 ‘김정일 사망을 온 세계가 동시에 알았다’고 변명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평양은 서울에서부터 고작 24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북한 관련 비상사태 대응능력은 처참할 정도였다. 김정일이 곧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의 사후 조문 논란부터 시작해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 기본적인 대책마저 수립하지 않고 있었다. 김정일의 사후 북한을 어떻게 설득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매뉴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정부의 이와 같은 무모함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계산이 분명히 전제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곧 망할 국가이며, 국민들은 더 이상 예전만큼 통일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통일 때문에 세금을 더 내어야 한다면 오히려 통일에 부정적일 것이라는 생각. 그러니 대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느니 차라리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기대어 묻어갈 생각을 할 수밖에.
 그러나 이와 같은 정부의 판단은 50%의 진실일 뿐이다. 북한이 망할 것인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예전처럼 무조건 통일해야 된다는 맹목적인 생각이 아니라, 통일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통일비용과 분단비용 중 우리에게 유리한 것 등 이제는 통일이 당위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북한이 붕괴된다면 통일이 될까?”,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질까?” 등과 같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김정일 사후의 한반도를 다루어 화제가 되었던 만화 『스틸 레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더 이상 북한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예전만큼의 위상을 가지지 않는, 김정일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이 시대에 『스틸 레인』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작은 단초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과연 『스틸 레인』이 지적하고 있는 북한과 그를 둘러싼 환경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스틸 레인』의 어느 부분을 공감하기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우선 『스틸 레인』이 묘사하는 북한의 모습을 보자. 만화는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누어진 북한을 전제로 한다.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 이면에는 권력투쟁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들이 김정일 사후 본격적으로 대결한다는 것이다. 북한 스스로가 주장하는 것처럼 균질적이지도, 통제력이 완전하지도 않은 사회. 주목할 점은 그들이 권력투쟁을 벌이면서 상대방을 궤멸시키기 위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남한과 미국, 중국 등을 이용한다는 점인데, 이는 결국 현재 우리 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비록 북한이 같은 민족을 강조하고, 남한과 비교해 역사적 정당성이 우월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수사일 뿐,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북한의 지도부 역시 외세를 끌어들이는 등 반민족적인 행태를 언제든지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시각이요, 이에 공감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인 것이다. 따라서 『스틸 레인』에 등장하는 북한의 지도부는 더 이상 남한의 대화 상대가 될 수 없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인민은 물론이요, 한민족 전체를 담보로 핵전쟁까지 불사하는 그들을 어찌 통일의 파트너로 상정할 수 있겠는가. 물론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우선적인 협상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단지 현실적인 이유에서일 뿐, 한반도의 미래는 어디까지나 남한 대통령의 전유물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를 꿈꾸는 데 적절치 않은 파트너로서의 북한 지도부. 그러나 동시에 『스틸 레인』은 남한 대통령이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한들, 그것이 남한이 원하는 방식의 통일로 이어질 수 없음을 지적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은 현재의 북한 지도부가 사라지면 한반도가 자연스럽게 통일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그것은 몰역사적이고 비현실적인 망상일 뿐이다. 작가는 이와 관련하여 미국중앙정보부(CIA) 국장의 입을 빌어 우리의 잔인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 남한은 붕괴된 북한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쏟아져 들어오는 북한 난민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음은 물론이요, 북한 재건에 필요한 천문학적 재원 또한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붕괴된 북한을 흡수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 밖에 없는데, 남한은 이에 대해 발해가 중국으로 흡수될 때 신라가 멍하니 지켜봤듯이 아무런 발언권을 가질 수 없다. 수천 년 된 영토의 권리라 할지라도 지킬 능력이 없다면 포기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영토를 뺏을 수 없는 것은 역사적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능력의 문제 아니던가.
 따라서 『스틸 레인』이 제안한 결말, 남북한 분단체제의 현상유지는 우리의 유일한 대안으로서 고려되어져야 한다. 한반도 영토와 관련된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면서 통일에 필요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북한 정권의 안정적인 유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체제유지의 필요성이 작가가 지적한 북한 지도부의 전쟁위협과 반인권적 행위의 면제부가 될 수는 없는 것 역시 명확한 바, 우리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남북 간 통일과 관련된 논의를 끊임없이 진행시키며, 폐쇄적인 북한의 개혁, 개방노선에 힘을 실어주어 북한 지도부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스틸 레인』을 읽은 독자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