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유토피아(?谷ユ?トピア) 1900~1945展>은 도쿄(東京) 시부야구립쇼토(松濤)미술관 3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메이지(明治)시대 말기부터 태평양전쟁이 종결되기까지 반세기에 걸쳐 도쿄의 시부야를 중심으로 그 일대에 모인 미술가들의 활동 궤적에 초점을 맞춘 것 이다. 유채화, 일본화, 조각, 가구, 건축도면과 시의 초고 및 편지 등 약 150점이 전시되었다.
 시부야는 현재 젊은이들의 문화중심지로 알려져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메이지시대 말기의 시부야는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의 여러 도시들 중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화한 도쿄에서도 시부야는 그 중심적인 도심부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시부야는 도쿄의 주변부, 즉 교외지역이었다. 메이지시대 말기부터 다이쇼(大正)시대에 걸친 시기에 그 일대는 잡목림과 거친 땅, 논밭 등이 펼쳐져 있어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토지의 자연과 교외지역 특유의 황량함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시부야라는 지명에 ‘谷’이라는 한자가 사용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곳은 기복이 심한 지형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쿄의 23구 중에서 서부와 북부에 걸친 이 지역은 소위 ‘무사시노타이치(武?野台地)’에 해당하며, 무사시노라 불렸다. 다른 사람들 보다 이른 시기에 시부야구에 있는 시부야촌으로 이사한 구니키다 돗포(國木田獨步, 1871~1908)가 저술한 소설로 『무사시노(武?野)』(1901)가 있다. 돗포는 도심부로부터 등을 돌려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었던 그곳을 매일 산책하였으며 적막한 분위기가 감도는 잡목림을 묘사하는 형식에서 근대소설의 새로운 자질을 보였다. 그러한 그의 문학적인 지향은 현재 자연주의라 불리는데, 이는 돗포가 일본에서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였음을 의미한다.
 유럽에서는 울창한 숲의 표상(表象)을 상징주의, 바르비종(Barbizon)파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활동한 풍경화가 집단, 미술공예운동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수공예적인 공예생산을 주창하며 일어난 운동 등이 주로 채택하였다. 산업화,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던 유럽 근대로부터의 기피가 숲을 (산업화되기 이전의) 원시사회의 표상으로 보도록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가 가지고 있는 서양 이외의 지역에 대한 정글 이미지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시기엔 많은 예술인마을(artist colony)이 만들어졌다. 북독일의 브레멘(Bremen) 근교에서 하인리히 포겔러(Heinrich Vogeler, 1872~1941)를 중심으로 형성된 보르프스베데(Worpswede)라는 화가촌과 스위스의 마죠레(Maggiore)호수 북서부에 있는 아스코나(Ascona)의 베리타(Monte Verita)산에서 형성된 예술인마을은 자연회귀지향, 신비주의, 아나키즘 등의 운동과 관계가 없지 않다. 일본에서도 다이쇼시대 초기부터 시라카바(白樺)파이상적 개인주의를 주창, 자신에게 충실할 것을 강조에 소속된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1883~1971),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篤, 1885~1976), 야나기 무네요시(柳宗?, 1889~1961),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 1887~1979) 등이 살던 예술인마을이 있었다. 그것은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저항운동 속에서 생긴 하나의 양상이었으며 산업사회로부터 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철퇴(撤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시부야에 집결한 예술가들의 느슨한 연대는, 근대 이후에 성립한 예술인마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거기에 그려진 풍경을 보면 그들이 끌린 것이 종래의 자연과 그것을 점점 침식해 가는 도시의 근대성이라는 두 요소가 애매하게 용해되어 서로 섞여있는 풍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을 시작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시부야에 모여들게 된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도심부에 살면 경제적인 면에서 부담이 많이 된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들에게 ‘교외’라는 개념이 ‘발견’된 것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교외라는 존재 자체가 근대도시의 형성과 병행하며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전시를 통해 시부야를 거점으로 한 소도샤(草土社)1915년 기시다 류세이(岸田劉生, 1891~1929)를 중심으로 창립, 당시 유행이던 인상파에 반발, 중후한 사실 묘사가 특징와 1930년협회1926년 결성된 미술단체로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유행한 야수파의 작풍을 보임의 멤버, 무라야마 가이타(村山槐多, 1896~1919), 창작판화운동20세기 초 복제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판화의 독특한 수법으로 창작활동을 할 것을 주창한 그룹의 리더인 히라쓰카 운이치(平塚運一, 1895~1997)들이 이런 풍경을 즐겨 다루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1914년부터 시부야 부근의 요요기(代?木)에 살았던 소도샤의 중심 화가 기시다 류세이는 전에는 야수파 풍의 회화를 그렸지만, 1914년 무렵을 경계로 반근대적인 사실주의로 회귀해 갔다. 기시다의 대표작 <산을 깍아 낸 도로, 제방 그리고 담(切り通しの?生-道路と土手と?)>(1915)은 다져져 있던 적토(赤土)가 무참히 벗겨져 드러난 도로와 잡초, 위압적으로 솟아있는 벽 등을 박진감 있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거기에는 이미 자연으로의 동경은 없다. 자연은 이미 황폐해진 것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시다 류세이의 회화에는 구니키다 돗포의 소설과 같이 무인(無人)의 풍경을 빚어내는 어떤 독특한 쓸쓸함이 감돌고 있다. 이 황량한 느낌은 아마 구니키다 돗포가 무사시노에서 발견한 것과 닮았을 것이다. 아무도 없다는 것이 강조됨으로 인해 그것을 보는 주체(화가, 소설가)만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발견한 것은 근대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위주의적인 진보사관에 동조하는 것도 아닌, 양의적인 주체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어디에도 자리매김 할 수 없는 고독한 주체(=예술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중심과 바깥을 구분하는 가장자리, 그곳에 위치하는 교외라는 장소의 애매함은 바로 그러한 주체의 애매함과도 연결된다. 기시다 류세이들이 본 무사시노, 그리고 시부야는 근대와 관련 있는 ‘거리’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