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東日本)대지진은 우리 문명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대지진과 쓰나미 앞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방재시설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해 온 일본 정부는 막상 사고가 나자 허둥지둥했다. 매뉴얼도 없었고 대책도 없었다. 정부의 기능은 상실된 듯했다. 이날 일어난 일로 일본사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후쿠시마(福島) 이후의 일본’으로.
이제 일본이 후쿠시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염된 땅에서 방사능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고지역은 몇백 년 동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유출된 방사능은 토양과 바다를 오염시켰다. 이것은 사람과 동물의 몸에 축적이 되어 암과 백혈병 등을 일으킬 것이다. 얼마가 들어갈지 예측할 수 없는 사고처리비용은 가뜩이나 좋지 않은 일본 정부의 재정상태를 악화시킬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의 바로 이웃에 위치한 한국에서는 관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지구반대편 독일에서 30만 명의 시위대가 ‘핵발전(=원자력발전) 중단’을 외칠 때에도 한국에서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이런 태평함은 무지에서 기인한 것인가, 아니면 성장과 경쟁으로 치달리면서 자신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감수성마저 잃어버린 탓인가?
다행히 후쿠시마는 일본에 위치한 핵발전소 중에서도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적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후쿠시마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떻게 보면, 후쿠시마 사고는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핵발전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그러나 어리석게도 우리는 이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21개가 가동 중인 핵발전소를 42개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영덕을 새로운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도 핵발전 밀집도로 보면 한국이 세계 1위인데, 발전소 개수를 2배로 늘리면 단연 1위가 될 것이다.
왜 이렇게 한국사회는 핵발전에 집착할까? 그것은 한국사회가 빠져있는 성장지상주의, 물질중심주의와 연관이 있다. 덴마크 같은 사회에서는 과거 핵발전을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진지한 논의가 있었고, 그 결과 핵발전을 아예 시작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핵발전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까지도 그런 논의가 아예 없었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미래세대가 떠안게 될 부담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성장, 현재의 물질만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핵발전만이 문제는 아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적으로 식량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6.7%에 불과하다. 만약 식량위기가 현실화된다면 식량수출국들은 식량수출을 제한하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 한국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피크오일(peak oil)에 대해서도 무대책이다. 석유생산이 정점을 넘어서면 석유가격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핵발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한국은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저수준이다. 세계적으로는 풍력, 태양광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한국은 거기에서 비껴나 있다. 한국은 유독 대규모의 발전소를 짓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 핵발전소뿐 아니라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조력발전소를 서해안에 지으려고 하고 있다. 대규모 발전소를 짓고, 거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대도시로 끌고 오기 위해 초고압송전탑을 짓는 행태만 반복하고 있다. 한국은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고 사는 사회이다.
이런 한국의 상황은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성장과 물질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도 생각하고 지속가능성도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돈보다는 생명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더 불행 속으로, 그리고 위험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전환의 첫발은 핵발전에서 벗어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핵발전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점에서 가장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현 세대의 편의를 위해 미래세대에게 핵폐기물을 떠넘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핵발전 후에 남는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는 미래세대에게 떠넘겨진 재앙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기 위한 저장시설을 짓고 있는 핀란드는 10만 년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짓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나마 다른 나라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어차피 우라늄도 고갈될 수밖에 없으니, 핵발전도 미래에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 이후의 세대는 앞선 세대가 한 핵발전 때문에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해야 할 부담만 떠안게 된다.
‘사용후 핵연료’뿐만 아니라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의 폐쇄문제도 심각하다.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는 거대한 방사능 덩어리이다. 우리는 이것을 해체해 본 경험도 없고, 해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부는 수명이 끝나도 계속 수명을 연장해서 가동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수명이 끝난 기계를 연장해서 가동한다는 것은 사고위험을 높이는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난 핵발전소도 수명을 연장했던 발전소이다.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 정부는 ‘우리는 일본과 달라서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났을 때 일본 정부가 했던 말이다. 그 당시에 일본 정부는 ‘우리는 소련과 달라서 괜찮다’라고 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날 것이라고 경고하는 선각자의 말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괜찮다’,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것이 현재의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핵발전에서 벗어나는 ‘탈핵(=탈원전)’이다. ‘탈핵’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결정이 필요하다. 2022년까지 ‘탈핵’을 하겠다는 독일의 경우에도 사민-녹색당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던 2000년에 ‘탈핵’을 하겠다는 결정을 이뤄냈다.
그렇지만, 정부의 정책만 바뀐다고 해서 탈핵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업들도 변해야 하고 개인들도 변해야 한다. 그동안 기업들에게는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해서 전기낭비를 초래해 왔다. 이런 부분을 정상화해야 한다.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성찰이 필요하다. 전기소비를 줄이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순간에 난방까지 전기로 하게 되었다. 가정과 사무실에서 전기난방기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겨울철이 되면 전력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전기소비를 줄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핵발전소를 안 지어도 된다. 정부자료에 의하더라도 전기소비를 5% 줄이면, 핵발전소 2.5개가 불필요하게 된다.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태양광이나 풍력도 대규모 건설사업 밀어붙이듯이 하면 안 된다. 건물 지붕을 활용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가능한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야 태양광과 풍력이 확대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태양과 바람이 핵발전을 대체할 수 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독일 같은 국가에서는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일이다. 이런 전환의 과정이 반드시 불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이런 에너지전환의 과정에서 36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보고되고 있다.
후쿠시마 이후 1년은 우리에게 ‘전환’을 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 1년이었다. 이제는 이 신호를 받아들여 우리도 핵발전에 의존하는 길에서 벗어나 ‘탈핵’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그것이 현재의 삶과 미래세대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