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東日本)대지진이 있은 지 1년이 지났 다. 하지만 지진 피해는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 들고, 원자력발전에 대한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영화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카메라에 담고 있을까. 곧 공개될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감독의 <프렌즈 에프터 3.11(Friends after 3.11)>은 2011년 여름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것을 극장용으로 재 편집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해 직후 패닉 영화는 수없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번 재난에 필적할 만한 위험이 눈앞에 있는 데도 텔레비전, 신문 등 각종 미디어들은 한 데 입을 모아 ‘안전하다. 괜찮다’라는 거짓 정보만을 흘리고 있다. 이와이 감독은 이런 현실이 SF영화를 보는 듯하여 망연자실해졌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5월 피해 지역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그때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으나,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을 무시하는 언론을 납득할 수 없어 자기 나름 대로 ‘반(反)원자력 발전’입장을 표현 해보기로 결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와이는 친구, 연구자, 저널 리스트들과 함께 지진/쓰나미 피해, 원폭문제 그리고 정치와 문화, 일본의 현재와 미래 등에 대해 토론하는 “로쿠노카이(ロックの?, 자물쇠 모임)”를 결성했고 그 진행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다큐멘터리 <프렌즈 에프터 3.11>이다.
영화는 가늘고 긴 플레임 속 시오가마(??) 미야기현(宮城縣)의 항구도시의 쓰나미 영상으로 시작 한다. 이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속보를 알리는 자막과 사진이 떠오르고, 도쿄의 반(反)원자력 발전 데모 영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와이와 네비 게이터웹 브라우저를 사용해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인 마쓰다 미유키(松田美由紀)가 ‘새로운 친구, 그리운 친구, 인터넷 세상에서 알게 된 아직 이야 기조차 나누지 못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서고, 그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담았다.

    
지진 직후 일본 미디어들이 뜨뜻미지근하게 대응해온 ‘멜트다운(meltdown)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 되어 내부의 열이 이상 상승하여 연료인 우라늄을 용해함으로써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일 가능성’에 대해 일찌감치 지적한 전 토시바(東芝)원자력플랜트설계기술자 고토 마사 시(後藤政志)는, 일본에는 안전에 대한 철학이 없 다는 것을 간파했다. <피폭자, 세상의 끝에(ヒバク シャ世界の終わりに)>, <6개 마을 랩소(六ヶ所村ラ プソディ?)>, <꿀벌의 날갯소리와 지구의 회전 (ミツバチの羽音と地球の回?)> 등 10년 넘게 원자력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가마나카 히토미(鎌仲ひとみ)는 <꿀벌의 날갯소리와 지구의 회전> 상영 중 3월 11일의 흔들림을 감지했다. 지진 직후 그는 후쿠시마(福島) 방사성 물질 유출을 확인 하고 현장 스텝으로 가기 위해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 면서 간사이(關西) 출신인 영화홍보 스텝에게 본가 로 피난할 것을 권유해 동업자로부터 ‘도망치는’ ‘비겁자’라는 이야길 들어야만 했다. 고생하는 스텝 들에게 “내가 가라고 했으니까 도망가도 된다”고 타일렀지만, 가마나카는 “그때 인간의 본연의 자세와 이별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또한 “일본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며,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안타깝다. 후쿠시마의 대응을 보아도 당사자로서의 자각이 부족하고, 중요한 것이 표백되어 누락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정 말 이 문제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일까. 도쿄가 살짝 방사능에 오염되어 버렸다는 사 실은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주변은 여전히 아름 답기 그지없고 에너지가 넘친다. 변화는 가이거 카운터(Geiger counter, 방사능 측정 계수 장치) 수치로 밖에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오감을 넘어서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표현해야만 한다”고 안타까움과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이야기했다. “(이번 지진 후 방사성 물질 유출의 중심지가 된) 이이 타테무라(飯館村)는 맑은 물이 샘솟는 그림 같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 들은 그것을 풍요로움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원자력에 팔아버렸다. 그들은 일본의 모든 마을에 편의점과 게임센터가 있는 것처럼 24시간 영업 가게가 있는, 도쿄 같은 풍요로움을 원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 정말 원자력이 필요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수려한 바다와 산과 물, 그곳에 은어가 살고 있는 다양한 풍요로움에 대해선 상관하지 않았고 만족해하지도 않았으며, 그것과는 다른 풍요로움만을 원했다.” 이런 가마나카의 말에서 우리들은 진정한 풍요로움을 잊고 매우 멀리까지 와버렸음을 실감할 수 있다.
환경운동가인 다나카 유우(田中優)는 체르노 빌 사건 후의 활동에 대하여 반성해야 하며, 위기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일상생활에 관한 문제로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지를 촉구하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구조와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재해 후 주오대학(中央大?) 종합공학연구소 교수인 다케다 구니히코(武田邦彦)는 엄마들이 많이 모이는 블로그에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고 한다. 그는 지구온난화, 이산화탄소 논쟁부터 시작해 클린 에너지로서 원자 력을 이야기하지만, 본래 이산화탄소 논쟁은 미국 농업단체에서 거론한 것으로, 국제정치가 환경문제 등과 관련한 도덕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류의 과오는 원자력발전이 인간의 건강에 미칠 피해에 관해 잘 알지 못한 채 개발을 진행한 것이다. 그는 자원이 있는지 없는지(그는 석탄 석유는 아직 8,000년분이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자세 히 조사해야만 하고, 이후 이산화탄소 소멸=원자력 장려라는 구조를 전환 해야만 한다 고 말한다.
환경에너지 정책연구소 소장인 이다 테츠야 (飯田哲也)는 재해 후 간 나오토(菅直人) 정권이 내세운 ‘반원자력 발전’(수상 교체로 인하여 철회되었다)의 조언자이다. 이와이 슌지는 그에게 메이지유신(明治 維新)의 개몽자인 사카 모토료마(坂本龍馬, 1836~1867)와 같은 배후 조정자 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또 과거에 <스왈로테일(Swallowtail)>이라는 영화에서 돈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던 이와이는 금융기관 임에도 탈 (脫)원자력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던 죠난신용금고 (城南信用金庫) 이사장 요시와라 쓰요시 (吉原毅)에게 마이크를 건낸다. 요시 와라는 “지역을 지키고, 지역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자 하는 초심을 잊지 말라는 선대 오바라 데쓰고로(小原鐵五?, 18 99~1989)의 가르침을 지켜 탈원자력의 의지를 표명하게 되었다”라며 경위를 밝히면서 “기업은 처 음부터 의지를 가지고 사회에 무엇인가를 하기 위 해 만들어졌다. 인간의 이상 으로 돈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수 있었던 출발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라고 앞으로의 기업의 자세를 밝히고, 배금 주의(拜金主義)에서 벗어날 것을 제언했다. 그 밖에도 원자력 반대를 주장해온 원자력연구자 고이데 히로 아키(小出裕章),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등과 환경프로젝트에도 함께한 음악 프로듀서 고바야시 다케시(小林武史), 레어 어스(rare earth)각종 광물에 포함된 희토류 원소의 산화물 정제 과정에서의 피폭(被爆)을 쫓는 태국 다큐멘터리 작가 탄 츄이미 (陳翠梅), 저널리스트 우에스기 다카시(上杉崇), 아이돌인 후지나미 고 코로(藤波心), 배우인 야마모토 다로(山本太?) 그리고 센다이(仙台)에서 피난한 이와이 슌지의 학창시절 선배와 친족들이 등장한다. 이와이가 던지는 생각과 질문에 대답하는 등장 인물들과의 대화에서 1년 이 지났어도 한쪽 방향 으로 수렴되지 않는 재해 후의 문제의식이나 현재의 상황, 그리고 이후 우리 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 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다큐멘터리는 어쨌든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다고, 미래를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용기를 온화 한 어조로 확실하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이 자신은 <스왈로테일> 이후 계속 구상하고 있었던, 원자력 붕괴 후의 세상을 그린 <개는 마당을 지킨다 (番犬は庭を守る)>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같은 시기에 공개된 <311>은 옴진리교 신자를 쫓는 <에이(A)>로 알려진 영화감독 모리 다쓰야(森達也)가 친구들과 함께 수집한 영상을 정리한 다큐멘터리다. 모리는 같은 영화감독인 마쓰바야시 요쥬(松林要樹)와 옛날부터 알고 지낸 프로듀서 야스오타 다카하루(安岡卓治), 영상 저널 리스트 와타이 다케하루(綿井健陽) 등과 함께 재 해 이후 15일째 되는 날부터의 후쿠시마를 겨냥했다. <311>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재해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이상하게 고조된 분위기로 막을 연다. 도호쿠(東北)지방의 쓰나미 탁류가 몇만 명의 사람을 집어삼키고, 후쿠시마는 일촉즉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 사실을 텔레 전을 통해 접하고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잃은 그들이 친구를 만나 그때의 긴장과 숨막힘을 해소 하는 순간이 조심스럽지 못하다 싶었다. 하지만 도호쿠지방에 연이 없는 사람으로서 어딘가 내 모습을 보는 듯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특별 한 장비도 없이 4명의 영화동지들은 후쿠시마 방사선량에 개의치 않고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이와테현(岩手縣)과 미야기현(宮城縣)을 종주한다. 행방불명된 아이를 찾는 부모들, 피난소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계속하는 자위대(自衛隊)에 마이크를 들이 밀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현지인들의 맹렬한 비난뿐이었다. 모리의 얼굴은 혼란으로 가득찼다. 그들은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으나 이미 시체가 운송된 뒤였거나 아니면 고아인가 싶어 마이크를 건냈지만 그렇지 않았거나 하는 등 다큐멘터리는 좌충우돌 그들의 행적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마치 미증유의 인재(人災)와 자연의 맹위에 어쩔 도리 없이 서 있어야 하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인 듯하다.

 
이 두 작품 외에도 재해와 원자력을 다룬 작품으로, 고바야시 마사히로(小林政弘) 감독의 <아슬아슬한 여자들(ギリギリの女たち)>, 히로키 류이치(廣木隆一) 감독의 <리버(River)>, 가네코 슈스케(金子修介) 감독의 <파란 하늘의 하얀 구 름(?いソラの白い雲)>, 오바야시 노부히코(大林 宣彦) 감독의 <이 하늘의 꽃, 나가오타 하나비 모 노가타리(この空の花 長岡花火物語)>, 나카무라 요시히로(中村嘉洋) 감독의 <포테이토 칩스(ポ テチ)> 등이 있다. 또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주연 배우인 소메타니 쇼타(染谷?太)와 니카이도 후미 (二階堂ふみ)가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소노 시온 (園子?)의 <히미즈(ヒミズ)>도 재해 후 각본을 바 꿔 피해지역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이와이 슌지와 마찬가지로 원자력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이미 후쿠 시마 원자력을 소재로 한 차기작도 진행하고 있는 소노 시온은 많은 일본인 감독들이 만들어내는 지금의 이 상황이나 이에 대한 태도가 마치 다른 사람의 집에 계속 거북한 흙발을 집어넣는 꼴과 같 다며 완곡하게 이야기한다.

이번 재해지역을 도는 순 회영화관에서 현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즐거움을 선사한 토라상(寅さん) 시리즈로 친숙한 국민감독 야마다 요지(山田洋次)는 재해 때문에 작년 4월부터 크랭크 인 예정이었던 <도쿄모노가타리(東京家族)>의 촬영을 연기했다. 작품은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 1903~1963)의 명작 <도쿄모노가타리>를 모티브로 하여 현대 가족의 뒤엉킨 문제를 그리는 작품으로, 재해 후 도쿄를 그리기 위하여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촬영은 3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며, 야마다가 그리는 재해 후의 도쿄 모습에 이목이 모이고 있다. 일찍이 구로자와 아키라(?澤明, 1910~1998)는 관동 대지진으로 겹겹이 산적한 시체들과 기와 더미를 목격하고 <살아있는 자의 기록(生きものの記?)>을 찍었다. 전쟁과 핵 문제에 민감했던 구로자와의 메시지는 재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현재 일본인에게 주었다. 많은 일본인이 재해와 원자력의 맹위에 실어증을 치르고 있지만 그 와중에 영화인은 무엇을 그려야 하고 또 어떻게 그릴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