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당시, 나는 고락쿠엔(後樂園)역에서 학교가 있는 혼고산쵸메(本鄕三丁目)역으로 가는 마루노우치(丸の內)선 지하철의 환승석에 앉아있었다. 지하철은 평소에도 흔들리곤 했으니까, 지하철이 흔들린다는 것과 그것이 평소보다 길게 지속된다는 것은 느꼈지만,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지하철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30분이 지나도 별반 달라지지 않아서, 지하철에서 내려 역 바깥으로 나왔는데, 그때에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2006년부터 후쿠시마(福島)의 원자력발전소 지역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서, 2011년 1월에 석사 논문 「전후 성장의 에너지-원자력마을의 역사사회학(戰後成長のエネルギ?―原子力ムラの?史社?學)」을 제출하였고, 동일본(東日本)대지진 이후 6월, 석사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후쿠시마론, 원자력마을은 어떻게 생겨났는가(「フクシマ」論-原子力ムラはなぜうまれたのか)』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학술서이지만 감사하게도 많은 이들에게 읽혀져서, 2012년 1월까지 12쇄, 2만 2천부가 판매되었다.
그 책은 “근대화가 이루어진 근저와 그 역학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원자력발전이라는 사례를 통해 고찰하는 작업이었다. 책에서는 ‘전근대의 잔재’를 근절하자며 ‘근대의 첨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향적·폐쇄적·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체=마을의 내부에 틀어박힌 채, ‘근대의 첨단’에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전근대의 잔재’를 재생산해버리는 상황을 묘사하였다. 즉, 언뜻 보면 근대적 훌륭함이 넘치는 이상을 이야기하는 미래와 외부에 열려있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 한 꺼풀 아래를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마을사회에 틀어박혀 좁은 시야에 갇힌 채로 너무도 내향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는, 표면적으로는 근대로의 접근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전근대에 머물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밝은 미래를 꿈꾸었던 사람들은 그 빛을 향해 질주한 결과, 어느새 눈이 멀고, 건전한 상호의존이 불건전한 군벌집단이 되면서, 더 큰 암흑으로 빠져버리는 상황을 간과해버렸다. 이것이 바로 원전과 일본사회의 관계가 3.11에 이르는 과정이다.
3.11 이후에 드러난 원전 문제와 그에 대응하는 일본사회의 현실은 실로 ‘근대의 첨단’이라는 마법이 ‘전근대의 잔재’ 내부에서 증폭된 결과, 막대한 피해가 불거지며 사회가 혼란에 빠진 상태 바로 그것이었다. 은폐, 정보조작, 사전 각본 … 너무도 치졸한 방식을 통해 원자력마을 사회가 유지되어 왔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졸저에서 아래의 세 행위자를 ‘전근대의 잔재’라고 평가했다. 그 첫 번째는 원자력행정·산업 또는 학계와 미디어의 복합체로서의 ‘중앙의 원자력마을’이다. 이에 대해서는 재해 발생 후 매우 많은 이들이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몇몇 사고조사위원회가 검정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대부분의 보고서에서도 ‘중앙의 원자력마을’이라는 문제점은 모두 지적하고 있다. 덧붙여서, ‘중앙의 원자력마을’은 반원전 운동도 포함한다. 이는 어떻게 된 것인가.

  
근래의 ‘탈원전’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반원전 운동’은 1970년대 이후, 생태, 젠더, 종족성 등의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다양한 ‘신사회 운동’의 발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반원전 운동은 ‘근대의 첨단’을 향해 질주하는 기존의 과학만능주의적 ‘기존 체제 기여적 과학’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공해와 같은 문제에 대한 반성부터, 그에 대항하는 ‘근대의 첨단’으로서의 생태를 전제로 하여 원자력발전의 존재에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원전 폐기를 주장하였다. 이는, 1970년대 이후 계획되었던 일본의 원전 설립을 중지시킨 것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소수세력의 어리광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데올로기적인 면에서 내향적·보수적인 운동을 고수하였던 것도 포함된다. 사회운동 또한, 얼핏 보면 추진세력인 원자력행정·산업 등과 정반대의 지점에 선 반대 세력이지만, 그들 역시 근저에는 내향적·폐쇄적·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체=마을의 성격을 지닌 채 결과적으로는 원전 추진에 기여해왔던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원전과 관련 시설의 설립지역인 지방이다. 나는 이것을 ‘지방의 원자력마을’이라고 명명하였다. 지방의 원자력마을은 일본 전후 경제 성장의 신화라는 인식을 부여 받아온 원자력과 후진지역으로서의 자신들의 지역을 접속시키는 과정에서, 설립 당시에는 “잘 모르지만 뭔가 굉장한 것”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던 원자력을 ‘근대의 첨단’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의 전근대성을 근대로 도약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지금까지 위에서 다룬 세 가지, 즉, 1)추진 행위자로서의 행정·산업 혹은 학계·미디어의 복합체와 반대 행위자로서의 ‘반원전운동’ 세력 2)원전설립지역, 그리고 두 행위자에 대해 무의식·무관심한 태도를 취해온, ‘일본’에서 ‘1+2’를 제외한 나머지에 해당하는 압도적인 다수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시기에 따라, 예를 들어 “히로세 타카시(??隆)일본의 반원전 운동가 현상’이라고도 불리었던 1980년대의 ‘반원전’ 붐에 일시적으로 호응하다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그 열기를 상실하였으며, 최근의 경우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친환경적이며 청정한 원자력’이며 간 나오토(菅直人) 정권이 제시한 신성장전략에서의 ‘원전 인프라 수출’ 등을 모른 척 해온 이들이다. 개발도상·신흥국을 대상으로 하는 거액의 수출산업으로서의 원전에 거는 기대 또한 ‘근대의 첨단’을 향한 추구와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불거진 원전 문제는, 미처 사회적으로 의식화 되지 못한 채 ‘사회적 무의식’의 단계에 머무르면서, ‘일단 있어도 상관없어’라는 식의 일본인들의 무수한 동의에 의해 추진되어 왔으며, 그렇게 3.11에 이르렀다.
내가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그러한 견고한 체제의 근저에 숨겨진 원리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 사회는 독특했다. 나는 그 독특함을 ‘원전을 끌어안은 사회’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끌어안다’라는 말은 존 다워(John W. Dower)의 『패배를 끌어안고Embracing Defeat: Japan in the Wake of World War II』라는 책 제목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 내부에 은둔해버리거나, 그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않고, 부정적이라고 여겨지는 ‘패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을 그린 퓰리처(Pulitzer)상 수상작이다. 외부 시각에서는 ‘해당 지역의 사람들은 원전을 꺼리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러한 측면이 크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원전설립지역의 현실이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이 있는 지역에서는 ‘원자력 모나카(モナカ)’라는 과자를 팔거나, ‘회전스시 아톰(アトム)원자(atom)의 일본어식 표기법’, ‘파친코 아톰’ ‘아톰 북스’ 등의 '아톰 브랜드’를 내건 상점이 있다. 물론 도쿄(東京)전력이 이를 강제한 것은 아니다. 원전 설립 이후 40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원전이 있었고, 원전과 함께 생활해왔다. 그렇게 ‘원전을 끌어안은 사회’가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 온 것이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나의 문제의식은 원전 추진이냐 반대냐는 것에 맞춰져 있지 않다. 오히려, 어떻게 ‘망각’에 저항해야 하는가가 나의 문제의식이다. 이는 원전 추진의 과오를 따진다는 문제 설정이 40년 전부터 존재해왔음에도 해결되지 못했다는 점, 특정 측면을 살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보이지 않게 되어 3.11에 이르렀다는 점을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11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4월 10일, 나는 니가타(新潟)현에 있었다. 그곳에는 가시와사키카리와(柏崎刈羽) 원전이라는 또 다른 도쿄전력의 원전이 있기도 했고, 니가타의 상황을 통해 일종의 광기에 빠져든 후쿠시마를 상대화하여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찾아간 것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4월 10일 니가타에서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시와사키카리와 원전 지역에서는 선출 의원 2인에 대해 원전 추진파 2명, 반대파 1명이 출마했다. 그리고 추진파 2명이 선출되었다. 가시와사키카리와 원전은 2007년 쥬에쓰오키(中越沖)지진 당시 화재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리고 선거가 한창일 무렵 미디어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은 현재 매우 ‘위험하다’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선거 때 추진파에게 표를 던졌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세뇌 당한 것도, 돈에 미쳐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가시와사키카리와 원전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의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도쿄전력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상황이 되었다고 해서, 도쿄사람들은 갑자기 탈원전 하자고 난리 법석을 부리고…”
이뿐만이 아니다. 그 지역에는 후쿠시마로부터 피난온 사람들이 곳곳에 머물고 있었다. 이는 도쿄전력의 원전이 설립되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도 일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취직을 한다는 것도 여간 말이죠. 빨리 원전 일이 다시 시작되지 않으면…” , “여기 원전에 재취업이 되었어요. 다행이에요.”
미디어가 전하는 지방의 빈곤한 상황은, 그들의 언어를 담는 실재를 넘어서 있었다. 그들은  원전을 통해 몇십 년 생계를 유지해왔다. 원전을 끌어안고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것이 ‘원전을 끌어안은 사회’의 현실이며, 저출산, 고령화, 산업의 쇠퇴, 재정의 핍박이라는 현실에서 중앙이 제멋대로 농락한 ‘현대 지방’의 현실이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음식점에서는 ‘원자력 라면’이라는 이름의 라면을 팔고 있었다. 역시 이 지역도 원전을 다시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끝까지 추궁하지 않고, 원전을 유지하는 이유를 묻지 않고,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그 근저에는 견고한 ‘망각’의 구조가 있다.
일본사회와 원자력의 관계. 이는 예를 들어 전지구적 질서, 과학기술론, 에너지 안전 보장, 미디어와 거대산업의 관계 등 다양한 측면으로부터 논의되어온 주제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을 ‘지방과 중앙’의 관계로부터 묻고자 시도하였다. 이 문제야 말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이 낳아버린 것, 그리고 이제부터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압축적으로 함의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원전 문제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