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의 상처
일본 도호쿠(東北)지방을 휩쓴 동일본(東日本)대지진이 발생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체육관이나 공민관한국의 문화원처럼 주민을 위한 사회교육시설에서 가설주택(총52,191호)으로 살림을 옮겼다. 그러나 그들은 그날의 악몽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15,848명의 사망자와 3,305명의 행방불명자를 낸 지진은 그 몇십 배 몇백 배 사람들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행방불명자가 많은 것은 피해의 90% 이상이 쓰나미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테현(岩手縣) 가마이시시(釜石市)에 사는 가즈미(和子) 씨(31세)는 남편과 아들의 장례식을 아직 치르지 못하고 있다. “딸(2세)을 찾아 세 명 같이 보내주어야지오.”라면서 딸 소식을 기다린다.(<아사히신문(朝日新聞)> 2011.12.11)
전기공사회사를 경영하는 하루마사(晴昌) 씨(69세)는 지진 직후 회사에 들려서 종업원들의 피난을 확인한 뒤 집으로 가서 아내와 딸을 데리고 피난했다. 그런데 2층에 아들이 있는 줄 몰랐다. 4년 전 회사를 잇겠다고 돌아온 아들은 그날 2층에서 회로설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마사 씨는 지진 후 아들이 길을 헤매지 않도록 집 가까이 언덕에 임시사무소를 차렸다. 사업이 바빠도 하루에 몇 번이나 아들 생각이 났다. 그런데 2011년 11월 아들은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DNA감정으로 2011년 4월에 발견되어 화장까지 마친 시신이 아들이라고 판정된 것이다. 지금은 바쁘게 일하면서 가족들이 함께 살던 이곳의 부흥을 지켜보고 있다.(<아사히신문> 2011.11.30)
이시노마키시(石卷市)에서 사업을 재개한 인쇄회사에 연하장 주문이 거의 없었다. “축하”란 말을 할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문이 많은 것은 지방신문에 싣는 사망광고로 조부모와 부모, 아이들 7~8명의 이름이 함께 실릴 때도 있었다. 합동장에서는 소학생들 이름을 확인하는 작업이 괴로웠다고 한다. (<아사히신문> 2012.1.21)

‘이중의 빚’과 실업
지진과 쓰나미는 사람들의 재산도 앗아갔다. 현재 341,411명의 피해자들이 국가가 마련한 가설주택과 공영주택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춥고 눈이 많은 도호쿠지방에서 가설주택의 규모는 역부족이다. 학교, 직장, 병원 등이 멀어 불편함이 많다. 더구나 가설주택에서의 거주 기한은 기본적으로 2년. 그간에 자립의 토대를 닦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기요시(喜吉) 씨(44세)는 2009년에 2,700만 엔으로 집을 신축하고 매달 30만 엔의 월급에서 13만 엔을 은행에 갚고 있었다. 그런 집을 쓰나미가 쓸어가고, 2,500만 엔의 빚만 남았다. 국가가 자택이 있었던 토지를 매입한다고 하지만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쓰나미 피해를 막기 위하여 보다 높은 곳에 집단이주하게 될 것이지만 국가의 매입 가격으로 새로운 땅을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땅을 구한다 해도 이제까지 갚고 있었던  13만 엔에 신축비를 더해야 한다. “나도 집을 재건하기 힘든데 나이 드신 분이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주택을 마련할지.”(<아사히신문> 2012.1.15)
 지진피해지역은 세계 3대 어장의 하나이다.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어업과 관련한 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어민들은 배와 양어시설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시장건물과 냉장고 등을, 가공업자들은 공장과 기계를, 수송업자들은 시설과 수송수단을 잃었다. 재개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마련해야 한다. 본래의 빚에 재개를 위한 빚. ‘2중의 빚’이 복구의 길을 가로막는다.

  
실업자 문제도 심각하다. 일본정부는 실업수당 지급기한을 본래 기한보다 210일 연장하는 특례조치를 취했는데 2012년 1~2월에는 약 4,000명이 그 기간이 끝난다. 그런데 그들 중 4분의 1정도는 아직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간에 기한이 끝난 실업자들은 실업보험 가입기간이 짧은 젊은 층이었지만 앞으로 기한이 끝나게 되는 고령층은 취업이 더 어려울 것이다.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비정규직과 아울러 수입이 없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피해를 보았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주변의 집들은 무너졌는데 한 채만 남은 집이 있다. 침수 피해는 있었지만 수리해서 지금도 그 집에 사는 여성은 “큰 피해를 입은 집도 있는데 지원물자를 받아도 되는지” 괜히 마음이 위축된다. 집을 잃은 친척에게 목욕탕이나 식사를 제공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도 “이 집은 괜찮은데 왜 우리집은 무너졌을까 하고 불만을 품고 있지 않을까”하고 불안해진다. 친한 사람들은 다 피난을 가고 아무것도 없는 빈 터에 한 채 남은 집에서 혼자 살면서 복구회의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아사히신문> 2011. 12.2)

후쿠시마(福島)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이 사고는 자연이 아름다운 이 지역의 농업과 축산업을 망쳤고 품질개량에 심혈을 기울여온 농민들의 몇십 년에 걸친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고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 혹은 남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다.
어머니와 고베(神戶)로 피난온 소년은 고오리야마시(郡山市）에 남아있는 친구에게 “만나면 다시 카드를 가지고 놀자”고 편지를 썼지만 보내지 못했다. “거기 남은 친구가 섭섭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오리야마시에 남아있던 친구도 소년에게 편지를 썼지만 보내지 못했다. “편지 때문에 위험한 곳에 돌아오고 싶어하면 안되니까.” 두 어머니는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목이 메었다고 한다.(<아사히신문> 2012. 1.18)

 
한신·아와지대지진의 교훈
일본에서는 17년 전인 1995년 1월 17일 효고현(兵庫縣)을 중심으로 6,402명의 사망자와 3명의 행방불명자, 40,092명의 부상자를 내는 한신·아와지(阪神·淡路)대지진을 경험했다. 그 당시 주택 538,767채가 무너졌다.
효고현은 그때부터 10년이 지나야 지진에 직접 영향을 받은 피해지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2001년과 2003년, 2005년에 효고현과 교토(京都)대학방재연구소가 실시한 생활부흥조사 결과이다. 2003년까지는 주택 등 재산의 피해 정도가 “생활부흥감”을 좌우하는 큰 요인이었으나 2005년의 조사에서는 피해 정도가 아니라 “진재(震災)를 극복했다는 느낌”이 생활부흥감의 중요 요소가 되었다.
이때 조사에서는 거주환경에 만족하고 생계가 안정되고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적은 사람일수록 진재의 영향을 극복했다는 의식이 강했다. 이런 사람들은 일상을 되찾고, 과거의 진재 경험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고, 미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진재 경험에 긍정적인 평가를 부여하거나 현재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는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만남”을 통해서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와 같은 조사결과에 기초해서 연구자는 피해자가 “진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택, 사람관계, 거주지역 내 활동, 재해에 대한 대비, 심리적·육체적 건강, 직업과 수입, 지역행정에 대한 관심 이렇게 일곱 가지 요소가 불가결하다고 결론지었다.
한신·아와지대지진 경우와 이번 동일본대지진을 비교하면 우선 피해지역이 전자는 효고현에 집중되었지만 후자는 여덟 개 현에 걸친 넓은 지역이다. 피해 총액도 한신·아와지대지진은 약 10조 엔, 동일본대지진은 16~25조 엔에 이른다. 그만큼 이번 대지진 같은 경우 사회기반시설 복구에 시간과 자본이 많이 필요하고, 복구 시 지역의 특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또한 피해의 대부분이 전자는 가옥 붕괴에 의한 것이었고 후자는 쓰나미에 의한 것이다. 한신·아와지대지진 때는 건물의 지진대비 규정을 한층 엄격하게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 주택을 재건할 수 있었으나,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곳에서는 쓰나미 피해를 막기 위해 보다 높은 곳으로 거주지를 옮길 수밖에 없다. 어업을 하면서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이 바닷가를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자리와 주택의 분리도 어려운 문제다. 대도시와 지방의 차이도 있다. 한신·아와지대지진 때는 피해가 큰 곳은 대도시였다. 때문에 전자가 일어난 곳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하는 제2, 제3산업이 주이고 개인화가 촉진되어 있었지만 이번에 피해를 입은 도호쿠지방은 어업이나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채취업 즉 제1, 제2산업이 주이고 공동체의 유대가 강하다. 강한 공동체의 존재는 부흥을 위한 믿음직한 토대가 되지만 어업이나 농업은 개인이나 가족이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 주택을 마련하는 것도 힘든데 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령화, 과소화(過疏化)도 심각하다. 홋카이도(北海道) 오쿠시리토(?尻島)도 1993년 7월 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 후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사회자본시설을 구축했으나 과소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삶의 부흥
시대적 배경도 크게 다르다. 한신·아와지대지진이 있었던 1995년은 일본경제의 버블이 붕괴된 이후(1992년) 그 영향이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는 시기였다. 그 이후에도 일본경제는 계속 하강선을 그리다가 2002년에야 겨우 회복의 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제회복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은 계속 늘어났다.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노동시장의 규제완화로 비정규직이 계속 늘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임금이 낮은데다가 고용형태가 불안정하며 고용보험이나 사회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에서도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경력을 쌓는 것도 어렵다. 그 결과 아무리 일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노동자 중에서 빈곤상태에 있는 자가 대량발생하고 있다. 2006년에는 연 수입이 200만 엔 이하의 노동자가 1,023만 명으로 전체노동자의 23.8%를 차지하였고, 이는 1985년 이후 21년 만에 1,000만 명을 돌파한 것이었다. 2009년에도 그 수가 1,100만 명으로 노동자 전체의 24.5%를 차지했다. 일본총무성의 취업구조형 기본조사에 의하면 워킹 푸어에 해당하는 세대는 1997년 458만 세대 12.8%, 2002년에 657만 세대 18.7%, 2007년에는 675만 세대 19.0%로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당신은 어느 층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에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중산층”이라고 답한 시기가 있었다. 그동안 고용과 의료 복지의 안정망도 나름대로 구축해왔다. 그런데 1990년 이후 일본은 글로벌 자본의 영향으로 경제성장과 효율을 우선한 나머지 패전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정비해온 안정망마저 기능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NPO파견노동네트워크의 이사장 나카노 마미(中野麻美) 변호사는 “부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의식주의 안정적인 확보, 자원에너지와 의료, 복지, 교육 등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한 사회기반시설의 정비, 찢어진 안정망의 재구축이다”고 지적한다.
2012년 1월 23일에 발행한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은 매그니튜드 7급의 수도권 직하형 지진이 앞으로 4년 이내에 발생할 확률이 약 70%라는 예측결과를 도쿄(東京)대학지진연구소의 연구팀이 발표했다고 전했다. 나카노 변호사는 “재해를 확대하고 재기 기간을 장기화 시키는 사회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크게 전환해야 한다. 재해는 그런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덮치고 사회의 왜곡된 점을 순식간에 가시화 시키는데 그것이 거대도시에서 일어났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하고 경고하면서 자립할 수 없게 하는 저임금과 노동력 가치의 평가 절하의 타개, 일과 소득의 격차 완화, 인간생활과 노동형식을 자연과 공존 가능한 스타일로 전환하는 것, ‘직능(職能)’의 한 부분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협동력, 의사소통 능력,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것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일본 정부의 동일본대지진부흥대책본부는 한신·아와지대지진의 예를 참고로 부흥기간을 10년으로 하고 당초 5년간을 집중부흥기간으로 설정했다. 이 부흥이란 커다란 사업을 글로벌기업의 수탈과 임시노동자의 저임금을 조장하는 1990년대 이후의 경제시스템으로 밀고 나아갈지 아니면 피해자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재난을 극복했다’고 실감하게 하는 ‘삶의 부흥’이란 개념으로 추진할지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