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존재한다. 한인 이주민, 재중동포, 중국인, 한인 디아스포라, 조선족 등의 용어는 한인 이주와 신중국 성립(1949), 중국의 개혁개방(1978)과 한중수교(1992) 등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이들이 구성되었으며,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다양한 배제와 포섭의 메커니즘을 통해 이들을 규정하는 많은 ‘신분’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조선족을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소수집단으로 한정시킬 때 이 질문은 조선족이라는 타자를 정의하는 한국 사회의 시각을 보여준다. 조선족은 대부분 이주노동자 혹은 결혼이주자의 신분으로 한국으로 이주한다. 한국인이 실제 생활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들이기에, 언어와 문화, 역사와 상징, 전통과 신화를 공유하는 공통된 민족이라는 동질감은 조선족과의 실질적 접촉이 늘어나면서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불일치로 인해 불쾌감으로 치환되기 일쑤다.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조선족의 이미지 역시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마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거나 범죄자로 뉴스에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포라는 독특한 지위를 통해 다른 이주자에 비해 많은 특혜를 누리지만 한국에 대한 이해나 애정 없이 그저 “한몫 잡기” 위해 한국을 이용한다는 인상에 한국 사회의 안정성을 교란하는 반동적인 이미지가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범죄 가해자에 조선족이라는 수식어가 더해질 때 그의 반사회성이 강조되고 대중의 혐오가 더욱 격화되는 현상은 한국 사회가 조선족을 바라보고 있는 스펙트럼이 얼마나 한정적이고 부정적인지 반영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조선족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통로는 비교적 다양하고 전면적이다. 2년 전 여름, 논문 현지조사차 옌지(延吉)를 방문했을 때, 집집마다 한국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위성 안테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옌볜(延邊) 지역의 조선족에게 한국방송은 현지 옌볜방송은 물론이고 중국중앙TV(中國中央電視臺)보다 더욱 가깝고 친근한 매체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한국의 최신 뉴스는 매일 업데이트 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의견 전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 상품은 흔히 구할 수 있고, 가족 구성원 중 적어도 한두 명 이상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거나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중국의 다른 지역에 있는 경우에도 한국기업 혹은 한국인과 연관된 일에 종사한다.

 이러한 인식의 불균형이 상호 혐오와 부정의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이 책은 한국인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조선족 노동자가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동전의 뒷면인 것이다. 엄마 대신 자신을 보살펴준 할머니를 엄마라 부르고 싶어하는 채월이, 자식을 위해 한국행을 포기한 ‘바보 엄마’에 감사하는 조홍, 더 높은 보수의 직장을 거절하고 해체 위기에 처한 학교를 지키기로 마음먹는 선생님 이야기 등을 읽고 있노라면 그동안 단편적인 인상에 머물렀던 조선족의 삶이 하나의 유기적인 스토리로 다가온다. 그리고 전탁생^{집에 없는 부모 대신 맡아서 기르는 학생} 등과 같이 새로운 용어를 통해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것이 보편화된 조선족 청소년들의 현실과 가족과 학교의 해체라는 조선족 사회의 공통적인 위기를 함께 목격하게 된다.

 책에 소개된 거의 모든 사례가 증명하듯 현재 조선족 사회의 위기는 공동체 자체의 와해가 거론될 만큼 심각하다. 대규모의 노동이주와 결혼이주로 이산가족이 속출하고, 장기적인 별거는 가정파괴와 이혼율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편부모, 조손 가정의 증가로 인한 청소년 일탈문제도 심각하다. 룽징(龍井)과 투먼(圖們)시의 조선족 소학교에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출국한 가정이 전체 학생의 41.4%와 63.8%에 달한다. 옌지시의 한 소학교에서는 전체 학생의 71.4%가 부모가 한국으로 갔거나, 이혼한 가정의 학생들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소통 공간의 확장은 상호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로 다가올 때 그 설득력은 한층 더 커진다. 이 책에는 친구와의 우정, 진로에 대한 고민, 해체된 가정과 사회부터 청소년이 느끼는 절망감 등 한국 사회의 청소년과 학부모, 교사가 함께 고민할 문제거리가 넘쳐 난다. 한국과 중국이라는 공간의 차이, 한국인과 조선족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친구, 동료로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민족이라는 범주에서 경험의 불일치로 인한 불쾌감은 더 높은 단계에서의 보편성의 공유라는 측면에서 해소될 수 있다. 공통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동일한 시민으로서의 재범주화가 가능해진다. 보편성을 공유함으로써 공간과 경계를 넘어서는 사유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은 여태껏 듣지 못했던 청소년의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식당과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족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경준이의 어머니, 령화의 아버지로 보이기 시작했다면, 이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