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 쌓아올려 얼기설기 이어붙인 높이 10m의 나무구조물이 버티고 서 있다.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쿵쾅거리는 소리를 따라 깊숙이 숨겨진 입구를 찾아 들어가면 어딘가로 이끄는 미로가 펼쳐진다. 눈으로 감상하는 작품이 아니라 몸을 숙인 채 좁은 통로를 다니며 구석구석 공간을 탐험해야 하는 스위스 출신 샤퓌자 형제(The Chapuisat Brothers)의 작품 <공명Resonance>(2012)이다. 노마디즘(nomadism)을 키워드로 한 이 작품은 샤퓌자 형제가 세계 곳곳에서 현지 재료로, 공간에 맞게 제작한 장소특정적인 작품이다. 미술공간 안에 비실용적인 대안적 건축공간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유목민의 삶을 체험하게 한다. 공명 즉, 울려 퍼짐을 통해 관람객과의 열린 소통을 시도하는 사퓌자 형제의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는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리플렉션 프롬 네이쳐(Reflection from Nature)展>이다. 송은아트스페이스는 특정 국가와 연계해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연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첫 기획전으로 올해 스위스 현대미술을 소개한다. 스위스예술위원회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인 ‘까이에 다르티스트 컬렉션(Collection Cahiers d'Artistes)’ ^{매해 선정작가의 카탈로그 제작 및 배포를 통한 프로모션}에 선정된 작가들 중, 자연에 대한 탐구와 접근을 보여주는 네 명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 선보였다.

 전시장을 따라 이동하면 에이드리안 미시카(Adrien Missika)의 영상 작품 <러브 투 대스Love to Death>(2005~2007)와 마주한다. 미시카의 작품은 총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프랑스 영화감독 알렝 레네(Alain Resnais)의 작품 <죽도록 사랑하리L'Amour A Mort>(1984)에서 발췌한 장면이며 2부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폴리스티렌 눈이 날리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3부는 실제로 스위스에서 촬영한 눈의 모습으로 사람의 숨소리가 사운드 트랙으로 담겨져 있다. 작가는 ‘실재’와, ‘실재를 근거로 만들어진 이미지’ 간의 격차, 그리고 인식 주체가 만들어내는 환상과 기대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허상에 대해 주목한다. 이러한 간극의 차이를 주목하고 일상에서의 자연풍경, 현상 등의 이미지들에 대한 탐구를 모색한다.

 물질과 형태에 대한 탐구와 사유의 흐름들을 제시하는 뤽 오보르(Luc Aubort)의 작품 <초우즈Chose>(2011)는 버려진 가구의 일부, 주변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오브제를 전시장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붙여 그 의미가 변경되는 지점을 사유한다. 작가는 본래의 기능으로부터 분리된 물성에 색을 덧칠하거나 아상블라주(Assemblage, 여러 물체를 모아 붙이는 기법)와 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조합과 맥락을 만들어 또 다른 물성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또 폭풍, 기류와 같은 기상학적인 용어들을 주제로 삼아 기다림, 정지와 같은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해온 프란치스카 푸르터(Franziska Furter)는 일본 만화 이미지에서 차용한 거대한 드로잉 <프라미스트Promised>를 비롯해 2차원적인 드로잉을 3차원으로 옮겨 거대한 종이를 잘라 만든 설치작품 <몬스테라Monstera>를 선보였다. 작품들이 담고 있는 의미에 집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색을 절제함으로써 명상적이고도 내면적인 투영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들은 자연에 대한 자신만의 시적 은유들을 시각화함으로써 섬세하고도 독창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네 작가의 작품들은 지역, 국가 간의 차이가 점점 무의미해 지고 있는 동시대 미술의 현실을 반영하듯 실제 스위스의 자연을 재현하기보다는 다양한 매체 또는 주관적 직관에 의해 해석된 자연을 원천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연의 풍경을 통한 은유적 메시지들은 어쩌면 글로컬리즘 안에 살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귀향하고픈 어느 한 지점이 아닐까?

 시공간을 초월한 물리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자연’의 의미를 스위스 젊은 작가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환경을 통해 재구성된 작품들은 일상에 무감각해진 우리 주변을 환기시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