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극장가에도 인도영화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동안 인도영화라면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뮤지컬 형식의 정신없는 마살라 무비(Masala Movie), 이른바 발리우드(Bollywood) 영화가 대다수였지만 최근엔 인도의 문화적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도 편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드라마 위주의 영화들도 다수 제작되고 있는데 <스탠리의 도시락>이 바로 그렇다.
 스탠리^{파르토 A. 굽테(Parth A. Gupte) 분}는 밝고 재주 많은 소년이다. 노래, 춤, 입담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그는 학급의 분위기를 책임지고 있는 인기스타. 심지어 얼굴에 멍이 들어 등교한 날에도 특유의 입담으로 한 편의 무용담을 들려주는 그의 재치에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흠뻑 빠져있다. 꿈꾸는 소년에게 학교는 그렇게 즐거운 곳이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걱정이라면 도시락이 없어 매번 끼니를 때울 고민을 해야 한다는 사실. 하지만 배가 고파도 친구들의 도시락을 나눠달라 하기엔 유리처럼 섬세한 소년의 마음이 이를 허락지 않는다. 게다가 교실에는 식탐대마왕 베르마아몰 굽테(Amole Gupte)분 선생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노리고 있다. 타고난 식탐을 주체 못해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얻어먹고 다니는 베르마 선생에게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 스탠리는 눈엣가시이자 경쟁상대다. 이윽고 방학 보충수업이 시작되자 친구들과 스탠리는 베르마 선생을 피해 다니며 도시락을 나눠먹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베르마 선생과 아이들 간의 쫓고 쫓기는 도시락 사수 대작전이 시작된다.

 웃음과 감동은 인도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뼈대다. 여러 재료를 조화시킨다는 향신료 ‘마살라’처럼 인도영화는 희로애락을 비롯한 인간의 풍부한 감정을 마구 버무려 스크린 위에서 한 편의 왁자지껄한 축제를 벌인다. <스탠리의 도시락> 역시 즐겁고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코미디와 감동의 코드로 풀어나간다는 점에 있다. 사실 <스탠리의 도시락>은 기술적으로 이야기의 흐름과 결이 일관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드라마는 초반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백묵 애니메이션에서 이미 모두 설명된다. 도시락을 둘러싸고 베르마 선생과 갈등을 벌이고 베르마 선생이 반성하는 것, 드라마적 차원에서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스탠리의 도시락>의 진짜 시작이자 백미는 그 다음부터다. 스탠리가 학교대표로 선발되어 합동콘서트를 훌륭하게 마치고 난 뒤, 영화 내내 애써 숨겨왔던 스탠리의 속사정이 공개되는 순간 영화는 진지한 사회고발 드라마로 변모한다. 시종일관 밝고 귀여웠던 영화는 인도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불쑥 카메라를 집어넣곤 수돗물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진실을 서슴없이 보여준다. 아동 노동력의 착취와 빈부격차라는 인도사회의 진실 앞에서 그저 한번 흘려 넘길 수도 있었을 가벼운 웃음들은 앙금 같은 우울로 변모한다. 하지만 삶은 늘 즐거울 수 없고 그늘이 묻어 있는 미소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 그 점에서 <스탠리의 도시락>이 보여주는 웃음과 활기는 밝은 만큼 짙은 그림자를 남기고 덕분에 관객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무게감을 얻는다.

 이처럼 사회적 문제와 진지하게 접속하기도 하지만 너무 우울해지진 않을까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기본적으로 밝고 화사한 영화다. 연기와 비(非)연기를 넘나드는 소년들의 미소와 표정에는 쑥스러움과 진심이 담겨있고 감정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음악이 감정을 고조시키는 마살라 무비의 전통도 여전하다. 메시지를 대놓고 반복하는 노래가사처럼 직설적인 이야기 방식이 일견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거칠고 투박하리만큼 솔직한 만듦새는 오히려 영화의 진심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든다. 결국 어딜 가나 밥이 문제다. 모든 사람은 밥 앞에 평등하고 한 끼 식사에 사회의 근본이 담겨 있다. 무상급식 같은 최근 우리사회의 이슈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도 당연하다. 왜 친구의 도시락을 얻어먹지 않았냐는 질문에 “내 것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할 줄 하는 소년. 그 아름다운 염치가 아이들 밥 한 끼 놓고 아웅다웅하는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