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외면하는 거예요. 고통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지 않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죄악은 거기부터 시작돼요.”(73면)

 가급적 보거나 듣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신문의 사회면 한 구석을 채우는, 사소한 것 같지만 누구에게는 아주 커다란 사건들. 어느 회사와 관계된 스물두 번째의 죽음. 30분 피자배달 보증제를 지키려다 사망한 아르바이트 대학생의 죽음들 같은 것들이 그렇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들에 대해 어떤 채무도 없다. 그런 사회구조를 만든 원인에 협조한 기억도 없다. 그렇지만 왜 그런지 그것은 아프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누구도 통증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종류의 아픔이라는 것은 눈 한번 질끈 감거나 귀 한번 틀어막고 나면 가볍게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타인의 희생은 현실의 표층 아래로 사라지고, 내가 알지 못하는 희생은 나와 관계없는 환상의 층위로 가두어진다. 이제 그에 대해 함구하기만 한다면 일상은 다시 평온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과 마주하지 않는 현실의 나머지 부분이 어떤 체계로 작동하게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굳이 알려 하지 않는다는 편이 더 적당하다. 즉 현대의 개인은 자신이 아닌 모든 타자들의 소리를 자신의 청각신경에 접근시킬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무모하게도 그런 통증의 원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이런 종류의 관심은 매우 위험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로부터 가혹한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희생된 사람들을 우리는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우리 시대 낮은 곳으로 임한 성인과 그 성인이 겪는 고난을 다룸으로써 시대와 투쟁하는 영웅과 그가 겪는 수난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소설이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부성(父性)을 추정할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난 ‘제이’는 분명히 성인의 다양한 변주 중 하나인 예수에 가깝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가 ‘나’는 피로한 제이에게 향유 대신 젖을 먹여준 ‘Y(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제이가 행한 이적을 듣고 제이에 대한 복음(福音)을 기록한다.

 제이는 어린 시절부터 선택적 함구증을 겪는 ‘동규(베드로이자 유다)’의 욕망의 수신자이자 통역자로 기능하며 남들이 할 수 없는 특이한 이적을 보인다. 제이에게 귀의한 첫 인물인 동규의 첫 배신으로 보육원에 끌려가게 된 제이는 곧 동규뿐이 아닌, 세상의 모든 타자가 겪는 고통과 그들이 내는 고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각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제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개 사냥꾼, 장애인 소녀를 착취하는 양아치들과 같은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극복하는 것이 성인의 속성이다. 제이는 곧 비행청소년들로 구성된 폭주족들의 신망을 끌어내고 그들의 예수가 된다. 그때부터 제이는 여태까지 사회에 전혀 들리지 않았던, 아니 들렸는지 모르지만 외면이 가능했을지도 몰랐던 그들의 소리를 전달한다. 성인의 비극은 이제 시작이다. 이전까지 비행소년들의 폭주는 단순한 혐오의 대상일 뿐, 실재성이 적어 사회의 구조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방치되며 외면된다. 하지만 제이라는 구심적인 리더가 나타나는 경우, 그들은 현 권력관계를 위협하는 실재적 공격력을 가지게 되고, 공권력은 긴장한다. 결국 그들은 움직이고 동규의 배신으로 인해 제이는 제거된다. 이렇게 예수가 승리하는 이야기 따위는 없다. 예수가 승리하게 된다면 그 후의 세상에 대해서 기술하여야 하는데, 그런 세상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상적인 소설가라 하더라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묘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죽어야 한다.

 하지만 예수가 죽었다 하더라도 예수의 목소리는 남는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입 안에서 저절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들렸지만 애써 외면했던 소리들이 계속해서 귀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히어로 같은 게 되겠다는 게 아냐. 그냥 씨발 사람이 사람한테 저래서는 안 된다는 거야. 내 말이 어려워?"(116면)

 아니 안 어렵다. 그런데 정말로 실행하기가 쉽지 않구나.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