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따사롭던 평일 오후, 전시를 보기 위해 서울역사박물관으로 가던 내 눈에 반복해서 들어오는 풍경이 있었다. 널찍한 실내공간과 높은 천정, 모던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대형 커피전문점의 시원한 유리벽 너머로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혼자만의’ 사람, 사람들. 엄밀하게 말하면 물론 그들도 혼자는 아니다. 사람들과의 직접 대면은 아니지만 디지털 세계를 통해 또 다른 세상과 접속하고 관계를 형성하니 말이다. 문득 나의 청춘시절을 위무해 주었던 좁고 어두운, 담배 연기와 음식 냄새로 가득했던 신촌의 한 카페가 떠오른다. 그때 그곳에는 늘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약속 없이 가도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조우했다. ‘아득한’ 그 시간의 거리는 ‘선명한’ 이 공간의 차이와 오버랩되며 마침내 거부할 수 없는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가속화되는 현실과 느린 과거 사이에서 아찔한 긴장을 느낀다. 김수영(金洙暎, 1921~1968)과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이, 전혜린(田惠麟, 1934~1965)과 이봉구(李鳳九, 1916~1983)가 머물렀던 과거의 시공간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렇게 착잡했다.

 서울반세기종합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명동이야기展-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는 종로전, 강남전에 이은 세 번째의 전시다. 정치·사회·경제·문화의 중심성을 역사적으로 면면히 이어온 종로나, 발전의 아이콘으로 현재의 한국 사회를 압도하는 강남에 비하면 지역의 물리적 규모나 현재의 영향력 면에서 사실 명동은 왜소해 보인다. 조선시대 한양의 남촌이었던 명동은 식민지 시기 일본인 주거지였던 충무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다방, 요리점, 양장점 등 근대적 상업이 번창해 소비문화의 대표적 공간으로 부상했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었고, 사람과 공간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명실상부한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명동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명동이야기전>은 시대 순으로 크게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1950~1960년대의 명동의 문화예술과 낭만’은 당시 활동했던 문화예술인들의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전성기의 명동을 재현한다. ‘1970~1980년대 명동의 변화’는 본격적인 도심재개발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였던 공간이 사라지고 패션과 유행의 거리로 변모하는 모습, 더불어 억압에 저항하는 통기타·청바지의 청년문화와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격렬했던 민주화운동의 시공간을 담아낸다. ‘명동의 현재와 기억’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서울의 대표적인 복합쇼핑공간이면서, 동시에 최근 명동예술극장과 삼일로창고극장의 재개관으로 옛 명성과 정취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현재의 명동을 조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별 안배는 형식에 불과하고, 이 전시는 명백하게 1950~1960년대의 명동에 집중되어 있다. “명동샹송”으로 불리던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이 전시를 이끈 발상의 출발이자 기본정서이고, 늘 그곳에 있어 “은성의 풍경화”(‘은성’은 명동의 대표적 술집)라 일컬어지던 이봉구의 『명동-세월따라 바람따라』(1967)는 ‘명동이야기’의 저본이 된다. 전시장 초입에 재현해놓은 소극장 무대 같은 술집공간은, 벽면의 스크린에 비춰지는 <명동백작>  (EBS, 2004)의 인물들과 어우러져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상가이름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거리지도<서울안내 제3호 명동편>(1961)은 친절하게 건물 사진까지 오려 넣어 수제(手製)의 정감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동방살롱’, ‘돌체’, ‘모나리자’, ‘은하수’, ‘청동다방’, ‘갈채’ 등 수많은 다방들의 역사와, 그곳을 지켰던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다채롭게 수집·전시된 문화예술인들의 낙서 같은 메모와 그림, 문예잡지 원본의 낡은 표지와 삽화도 정겹다. “예술인들의 담화실, 문화인들의 집회소, 지식인들의 연락처, 신사들의 휴식소” ( 「‘문예싸롱’ 광고」, 『문예』, 1954.1)라는 광고문구대로 당시의 다방은 문학예술단체의 회의실이자 잡지사의 사무실이었고, 문단이나 예술계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대가들을 만날 수 있는 접견실이었다. 또한 원고 쓸 곳조차 없는 문인들이 아침부터 다방에 출근해 한 테이블씩 차지하고 앉아 하루 종일 원고를 써대거나 작품 구상에 골몰했다고 하니 그곳은 예술가들의 일터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출판기념회는 물론이고 전시회, 시상식, 그림전시회, 음악감상회가 열리는 ‘종합문화예술공간’이었다. 다양한 사진 자료와 기록을 통해 <명동이야기전>은 그 모든 것을 품어 안았던 그 시절 다방을 재현하고, 추억하고, 추앙한다. 이 전시의 주연은 당연히 명동의 다방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1950~1960년대의 명동이 단일한 이미지로만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명동 뒷골목에서의 성장기를 보냈다는 가수 윤항기의 힘겨웠던 명동기억은 ‘낭만’으로 신화화된 전후 명동의 ‘실존’을 환기시켜 준다. 국립극장과 같은 권위 있는 ‘본격’ 예술무대 한편으로 ‘미8군 쇼’의 본거지가 있었다는 증언도 인상적이다. 시인 한하운(韓何雲, 1920~1975)은 명동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방인의 정서를 느끼며 “시간과 과잉이 질질 흐르는 사람들”을 경멸의 눈으로 보았다. ( 「명동거리2」) 그런가 하면 1957년 동아일보 기사를 압축한 <서울의 축소판 명동의 하루, 호사극치의 번화가>는 유행과 향락만이 난무하고 “두부장수 종소리로 밝고 주정으로 새”는 명동의 일상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해놓고 있다. 전후 복구에 허덕이는 후진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자본이 흘러드는 곳에서는 유흥과 소비가 넘쳐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동은 보통의 유흥가와 다를 바 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명동의 ‘뒷이야기’는 너무 소략해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이 전시에서 가장 불편한 곳은 ‘요절한 예술인들’이라는 제명으로 명동에 드나들었던 예술인들 몇몇을 나열한 코너이다. 그들의 죽음을 왜 명동과 결부시켜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불필요할 뿐더러 과잉이다. 순간, 전혜린이 대중에게 향수되는 방식이 버라이어티하게 확장되어 <명동이야기전>의 기저를 이루는 것이 아닌지 살짝 의심이 든다. 이봉구와 박인환, 전혜린으로 대표되는 명동표상은 분명 대체될 수 없는 고유성을 지녔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전면화되는 순간 여지없이 ‘통속화’의 길을 걷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소란 인간의 감각과 체험을 통해 의미가 부여되는 공간이자, 시간의 변화 속에 사람과 사람, 사람과 외부 환경이라는 관계성의 맥락 속에서 사회문화적 의미를 형성하는 곳이다. 아마도 <명동이야기전>을 다녀간 관람객은 다방이나 술집, 화랑과 극장이라는 그 시절의 ‘종합문화공간’과, 그곳을 일상의 거처로 삼았을 당대 문화예술인을 휘감고 있는 ‘낭만’이라는 아우라에서 명동의 장소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매끄러운 동일성의 세계로 설명될 수 없는 충돌하고 파편화된 중층적인 시공간을 강렬한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하고자 하는 전시의 의도는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낭만’은 늘 실체가 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