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출신의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1918~2007)은 전후 예술영화의 대표적인 작가로 불린다. 그가 만든 1950~1960년대의 작품들이 당시 영화계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고도의 표현형식, 복잡한 심리묘사와 형이상학적 테마, 참신하고 강렬한 영화 기법으로 세계의 영화인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은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 시기 서구 예술영화관의 인기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게다가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은 “베리만 풍(bergmanesque)”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냈고, 그의 상상력은 예술영화의 개성적인 브랜드를 구축하기에 충분했다. 베리만의 영화 속 한 장면은 그 자체로 풍부한 예술적 이미지에 속하는데, 가령 <제7의 봉인The Seventh Seal>(1957)에서 기사가 신과 체스를 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 이미지에는 그의 영화인생 50여 년이 농축되어 있는 듯하다.

 베리만을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그의 1950년대 작품들 대부분은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죽음의 신에 체스로 도전한다’는 <제7의 봉인>이 이 시기 대표작인데, 이 영화는 페스트가 유행해, 마녀 재판이 횡행하는 공포와 광기에 물들여진 중세 유럽을 무대로 한다. 이국의 전장에서 돌아온 십자군의 기사^{막스 본 시도우(Max Von Sydow) 분}는 조국 스웨덴을 향해 여행하다가 황량한 해변에서 죽음의 신과 마주한다. 죽음의 신에게서 기사는 자신이 죽을 운명에 처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기사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생명 연장을 걸고 기사는 죽음의 신에 체스로 도전한다. 데카당스로 가득한 이 풍경에서 기사가 제기하는 질문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문만은 아니다. 알고 싶은 것은 이 황폐한 세계에서 왜 ‘신이 침묵하고 있는가’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가 돌아온 마을에는 역병이 돌고 기아로 인간의 시체가 구르는 돌처럼 어디에나 널려 있다. 앉은 채로 죽어버린 주인 앞에 충실한 개가 가만히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웃 마을에서는 소의 머리를 한 갓난아기가 태어났다는, 다른 마을에서는 태양이 네 개나 낮에 떠있다는 말이 떠돈다. 세계의 묵시론적 풍경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베리만에게 신의 존재성에 대한 질문은 근원적인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베리만의 질문은 그러나 신의 존재성 여부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시대의 상황이 질문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런 지옥과도 같은 세계에서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베리만의 작품에서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고 하는 인물들, 삶과 사랑이 여전히 이 세계에서 여전히 가능한지를 이해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질문은 언제나 우리를 삶의 경계로 안내한다. 가령,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시각화한다. 기사와 그를 따르는 동행자들이 죽음의 신에 손을 맡긴 채 언덕 위에서 춤을 추며 저 멀리 떠나가고 있다. 죽음의 신을 선두로 이들이 벌이는 행진은 이 세상의 저편으로 가는 여행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른바 중세 시대에 죽음에 대한 풍자에서 비롯된 ‘죽음의 무도’이다. 전염병과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중세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죽음을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삶의 일부이자 보편적 현상으로 묘사하는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죽음의 무도를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은 사실 나이브하면서도 장엄해 보인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죽음으로의 여행이나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특별한 고통이 아니라 우리의 조건과 그것의 치명적인 위험들 가운데 춤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조건이다. 우리의 삶은 이러한 죽음과 악마적인 상황 사이에 놓여있다. 아마도 우리의 목표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는 것으로, 우리 자신을 따뜻하고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이리라. 베리만의 신과 인간, 종교와 영화의 관계는 이후 <침묵Tystnaden>(1963)이라는 작품에서 만개한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은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에서 중세시대에서 연유한 이러한 춤이 움직이며 리듬을 타는 다른 장소, 즉 비밀의 문으로의 탐색으로 우리를 이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탐색은 영화의 본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베리만은 외로움의 예술가였다. 그가 고독을 즐겼다는 것이 아니라 고독의 실존적 조건에서 질문을 하려 했다는 말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에게 질문들에 대답하는 과정이었다.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신에 대한 영원한 질문을 남긴 작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