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의 2012 봄 페스티벌 해방공간은 진우촌(秦雨村, 1904~?)의 <두뇌수술>(1945), 김송(金松, 1909~1988)의 <그날은 오다>(1946), 송영(宋影, 1903~1978)의 <황혼>(1945), 김사량(金史良, 1914~1950)의 <호접, 66년의 침묵>(1946), 박경창(朴景昌, 1918~?)의 <우박소리>(1945) 이렇게 다섯 편의 희곡을 무대에 올렸다. 이 연극들은 일제강점기에 뒤로 미뤄지고 억압됐던 사회 현실과 문제가 근대화의 기치 아래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곪아버린 형국을 보여준다. 재밌는 것은 희곡 안에서 갈등 관계가 헐겁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부분이 2012년의 연출과 만나 다른 의미망과 스타일로 변화한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두뇌수술>(윤한솔 연출, 극단 그린피그)과 <우박소리>(김한내 연출, 프로젝트그룹 빠-다밥)를 예로 들어 해방공간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시간 여행을 감행한 이야기들이 맞닥뜨리는 것은 해방공간이지만 해방이 아닌 공간이다.

 <두뇌수술>(원제: 망향)을 쓴 작가 진우촌은 인천에서 발간된 최초의 문예지 『습작시대』의 편집 및 발행 책임을 맡았고 연극모임 칠면구락부를 만들어 활동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은 의사 오영호가 부잣집 아들 상도와 가난한 시골 청년 무길의 대뇌를 서로 바꾸는 수술을 한 후 상도와 무길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일제강점기가 지났어도 조선인은 조선인일 뿐이란 것을 말하려 했지만, 공연은 다른 이와 뇌가 뒤바뀌었을 때 정신과 육체 중 무엇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가 하는 현대적 문제를 다룬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깨어나 혼란스러워 하는 인물들은 당시로서야 실성한 모습에 가까웠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대뇌 교환 수술’이란 상상은 더욱 파격적인 데가 있다. 이번 공연은 그것을 엉뚱하게 혹은 치밀하게 현재라는 시간과 충돌하게 함으로써 혼란한 과거에 생각이 묶여있되 얼굴은 현대인인 인물을 탄생시킨다.

 극장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하고 관객의 몸도 소독될 것만 같다. 애초 연극 <두뇌수술>은 극장 밖에서 절름발이, 배불뚝이, 혹부리와 함께 선 관객들에게 ‘금일 외래환자를 받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며 시작한다. 하얗게 탈색된 것만 같은 공간으로 내려가 관객들은 꼼짝없이 1945년과 2012년이 뒤섞인 곳에 앉은 대기환자가 된다. 병원인데 치료받을 수 없는 이상한 곳에서 배우들은 핏기 없는 얼굴에 속눈썹을 과장되게 붙이고 옛 대사의 독특한 어투를 살려낸다. 인형 같기도 하고 움직이는 시체 같기도 하다. 곳곳에 배치된 명랑한 음악이 인물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공연 전체의 리듬을 다잡는다. 관객들은 차가운 병원에 박제됐다가 깨어난 듯한 인물들(한서방, 간호사, 의사)을 보며 황당하면서도 강렬한 이물감에 들썩인다. 그것은 과거의 낯선 시간이 현재의 시간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면서 생기는 관객의 두뇌 속 사정이다.

 더불어 살아있는 종달새가 노래한다. 천장에 매달린 새장 안에서 한 마리의 새가 푸드덕거린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원과 종달새라는 생명체가 대비된다. 약혼자가 바보가 되고 죽은 이가 되었단 것에 좌절한 인순은 실성한다. 자살한 줄 알았던 인순은 다시 등장해서 새장을 집어던진다.(물론 실제 새는 슬쩍 대피시킨 후이다.) 관객들의 상상 속에서 새의 몸은 훼손된다. 더불어 인순은 이전의 순진하고 참한 인순이 아니다. 보라색 가발, 까만 반가면, 허리에 찬 두툼한 복서 챔피언 띠, 무명천으로 지은 가방에서 계속 나오는 총. 총은 쏠 때마다 펑펑 소리가 나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상도의 가족과 간호사, 한서방 등이 맥없이 맞아 쓰러진다. 그리고 인순과 안선달(무길의 부친)은 우스꽝스럽고 한편 괴기스런 춤을 춘다. 들썩들썩 온 몸으로 웃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의 잔혹과 억압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면, 혹은 지난하게 연결돼 있고 넘어서기까지 하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이 연극은 의식을 통한 비판이 아닌 몸을 통한 비판을 놀이한다. 즉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 몸에 전염돼버린, 엉뚱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현대의 어이없는 형국과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작에는 없었지만, 공연에서 새롭게 덧붙은 장면에서 13명의 배우는 죽 늘어서 일장기로 눈을 가리고 목청껏 <희망의 나라로>를 부르고, 슈퍼맨은 두뇌수술 후 슈퍼맨이 될 수 있다며 ‘유쾌한 결말’을 선포한다. 이 안에는 반어(反語)가 가득하다. 아무도 구출할 수 없고 기껏해야 공연이 끝난 후 돌아가는 관객들을 수줍게 배웅할 뿐인 슈퍼맨이다. 노라조의 <슈퍼맨>-아들아~ 지구를 부탁하노라.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마세요-이 배치되면서 희한한 굿이 완성된다. 춤사위를 보며 관객들은 신 나면서도 ‘이게 뭐지?’ 충격받은 얼굴이다. 관객들은 웃지만, 배우들은 웃지 않는다.

 <우박소리>에서 복만은 화가가 되고 싶어한다. 복만의 부모는 그런 아들이 답답하면서도 짠하다. 명순이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돈 많고 나이도 많은 남자에게 시집갔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집안 살림에 명순이 어미는 한숨을 내쉰다. 두 집안의 이야기다. 하얀 천으로 양쪽 방을 나누면서도 헐렁하게 틈을 내서 서로의 속사정을 알 수 있게 하는 무대다. 복만이네는 투박한 검은 천을 덧댄 이불을, 명순이네는 빨간 천을 덧댄 이불을 덮는다. 기우뚱한 시대와 인물이 그러한 것처럼 마루는 오른쪽으로 갈수록 기울어서 어쩐지 불안하다. 부모가 잠에 들면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 작은 방. 복만의 자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명순의 남편이 찾아오면 명순의 어미도, 징용 갔다 돌아온 오빠도 들어와 앉을 자리가 없다. 아직 자기 삶의 해방은 아득히 멀다.

 그림을 그리는 복만은 아름다운 명순을 보고 좋아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 가운데 죽어버린 무언가를 감지한다. 직관으로 시대를 읽고 또 그 고통 때문에 취한다. 지게를 져 돈을 벌고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는 부모님, 신발 닳는 게 아까워 들고 다니는 명순 어미, 조만간 ‘구직’이란 팻말을 허리에 찰 것 같은 옷차림의 철봉. 그 시대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삶을 살겠다는 것인지 삶을 관찰하겠다는 것인지 본인도 어지럽다. 결국 복만은 철봉과 함께 떠난다. 끊임없이 자기로부터 떠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은 서로 문답하고 울먹이며 공연 후반을 채운다. 시종일관 무대는 어두침침한 밤이다. 게다가 날은 춥고 밤새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무대에서 복만의 그림은 직접 볼 수 없지만 아마도 공연과도 같은 풍경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명순의 남편이 뒷모습으로 등장해 녹음된 목소리에 맞춰 고개를 주억거리는 장면이나 “생의 의지도 약동도 없는 시대”라며 복만이 랩을 하고 부모가 코러스를 보태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는다. 명순과 복만이 서로에게 마음은 있어도 어쩌지 못하고 엇나간 대화를 나눌 때도 관객들은 웃는다. 배우들의 어투가 구수하게 풀어지며 재미를 주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에 공감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은 지점들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나 청춘남녀의 불발탄 같은 사랑, 무엇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급히 가야만 하는 현실이 그렇다. 미러볼에 반사된 조명에 얼굴이 얼룩진 배우들이 나란히 서서 노래를 부른다. “돌아오네”, “집도 고향도 없고”,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드문드문 들리는 가사들은 흥이 나면서도 구슬프다.

 그러니 어디에서 어디를 향한 해방일까. 일제의 압박과 착취 속에서 죽음 같은 노동을 해온 이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앞에서 생활이 안정되리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해결되는 문제 하나 없이 굶주림과 추위에 떨었다. 때는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지고 삶은 또 휩쓸린다. 2012년, <두뇌수술>과 <우박소리>는 시대상을 들여다보는 창으로 기능하고 동시에 그 시대의 인물들이 이곳으로 넘어오게 하면서 관객이 해방공간이 참 지난하고 특수한 공간이라는 역설적 인식에 직면하게 한다. 해방과 비해방이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떻게 구별되며 동시에 2012년의 청춘들이 복만, 명순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문제. <우박소리>가 50분쯤이 지나 절정에서 툭 끊기는 듯한 마무리를 보여주자 관객들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웅성댔던 것처럼, 또 <두뇌수술>이 끝나고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는 슈퍼맨을 남겨두자 관객들이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은 바로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