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같이 등장한 제레미 린
2012년 2월 이후 타이완에서는 끊임없이 제레미 린(Jeremy Lin, 林書豪, 이하 린)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출신으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미국프로농구(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이하 NBA) 뉴욕 닉스(New York Knicks)에 소속되어 있는 프로농구 선수다. 작년까지만 해도 타이완에서 린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의 친척이나 정말 열정적인 농구 팬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그런 린이 전미(全美)는 물론 타이완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2월 4일 뉴저지 네츠(New Jersey Nets) 전(戰)을 통해서였다. 36분 정도 출장시간을 얻은 린은 팀 최다 득점인 25점을 기록했으며, 7어시스트에 턴오버실책으로 인해 공격권이 상대방에 넘어간 경우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는 겨우 1개라는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틀 후 유타 재즈(Utah Jazz) 전에서는 처음으로 스타트 멤버로 출장해서 28득점 8어시스트라는 성적을, 이어 워싱턴 위저즈(Washington Wizards) 전에서는 덩크슛을 포함 23득점 10어시스트를 성공해 생애 처음 더블더블농구 경기에서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슛블록·가로채기 등 5개 부문 중 2개 부문에서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것을 기록했다. 그 후로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Los Angeles Lakers) 전에서는 본인 기록뿐 아니라 팀 시즌 기록 중 최고 기록인 38득점 7어시스트로, 카멜로 앤서니(Carmelo Anthony)와 아마레 스터드마이어(Amar'e Stoudemire)가 빠진 팀을 승리로 이끌어 팀은 7연승을 기록했다. 이런 활약으로 린은 갑작스럽게 NBA 올스타 게임의 라이징스타챌린지에 출장하게 되었다. 2월 6일부터 12일까지 치러진 경기에서 린이 동부리그의 ‘그 주(週)의 선수’로 뽑히자, 전미 잡지들은 "린새니티(Lin-Sanity)" 린과 ‘보통이 아니다’라는 의미의 insanity를 조합한 조어라며 크게 보도했다.
린이 NBA에서 활약한 최초의 중국 선수는 아니다. 그 전에 중국 대륙 출신인 야오밍(姚明)이 있었다. 229센티미터의 키에 선수로는 축복받은 체격을 가진 야오밍은 촉망받는 인기 선수로 NBA에 입성했다. 반면, 신장 191센티미터의 린은 확실히 축복받은 조건의 선수는 아니다. 그런 린에게 전미의 농구 팬이 열광했던 배경에는, 린의 이름이 전미에 알려졌던 2월 4일의 대(對)네츠 전 전날 랜드리 필즈(Landry Fields)의 집 소파에서 잤다는 등의 일화가 대표적이듯 평범한 선수가 노력으로 스타덤에 올랐다는 성공 스토리에 대한 보편적 공감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땅은 아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이 보여주듯 자유와 평등에 대한 동경이 일관되게 강한 풍토로 존재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게다가 스포츠 성적도 우수한 아시아계 남자아이가 피와 땀으로 주어진 기회를 실력으로 잡아내 영광을 쟁취하기까지의 과정은 미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성공 스토리로 회자되었던 것이다.

 
타이완에서 제레미 린 붐이 탄생한 배경
린의 활약은 양친의 고향인 타이완에서도 실시간으로 보도되어 열광적인 붐을 일으켰다. 첫 보도가 있었던 2월 초가 타이완에서 극도로 뉴스거리가 없는 시기였던 것도 관계가 있다. 타이완에서는 1월 14일 중화민국정부총통과 입법위원(국회의원에 해당) 선거에서 마잉쥬(馬英九) 총통이 과반수 득표로 재선되었으며, 여당인 국민당도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등 온당한 결과로 끝을 맺었다. 마잉쥬 정권의 존속은 타이완해협 양안관계가 이후에도 개선과 확대라는 경향 속에서 진전될 것을 의미한다. 큰 선거의 결과가 정국이나 국가전략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한, 선거 종료와 동시에 일련의 뉴스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거 종료 후 얼마동안 타이완, 일본 혼혈의 여자 연예인과 일본인 남성이 택시운전사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톱뉴스로 연일 보도되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이 뉴스에 식상해 질 무렵 덩리쥔(鄧麗君, 1953~1995)타이완을 대표하는 가수 중 한 명과 견주어지는 국민 가수 펑페이페이(鳳飛飛, 1953~2012)의 부고(訃告)가 보도되는 등 한동안 연예계의 불미스러운 사건과 불행이 타이완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았다. 그러나 모두 본질이 부정적인 뉴스로, 타이완 사람들의 감정을 꿰뚫지는 못했다. 거기에 쏟아 붓듯 보도된 것이 혜성 같이 스타덤에 오른 타이완계 미국인 제레미 린의 활약이었다. 밝고 자극적인 뉴스에 굶주려 있던 타이완 미디어는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라는 뉴스에 달려들었고, 시청자들도 오랜만의 밝은 뉴스에 열광했다. 이 같은 타이완 사회의 분위기가 다소나마 제레미 린 붐의 수위를 좌우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에서의 활약이 갖는 특별한 의미
타이완과 중국 대륙 사람들이 린에 열광했던 것은 린이 미국이라는 세계의 큰 무대에서 미국 선수들을 압도하는 활약을 보여줬던 것에서 기인한 영예감 때문이다. 야오밍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체격이나 체력 면에서 일반적으로 동양인의 참여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백인, 흑인 위주의 스포츠에서 동양인 선수가 활약한 경우 동양인 팬들은 강한 공감과 동정심을 느낀다. 타이완 출신의 메이저 리그(Major League Baseball, 미국프로야구) 워싱턴 내셔널즈(Washington Nationals)에서 뛰고 있는 투수 왕 민(王建民)의 경우에도 같은 관점에서 관심과 응원을 보냈다. 왕 민은 오랫동안 ‘타이완의 빛’으로 칭송받아 왔는데, 이 빛나는 칭호는 린에게도 마찬가지로 붙여졌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활약하는 그들이 이룬 영예감은, 올림픽으로 대표되는 국제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이나 자국 선수가 메달을 획득했을 때의 그것과 같은 성질의 것일까. 분명 그렇지 않다. 스포츠 경기의 성적이 국가, 민족의 영예감으로 쉽게 승화되는 경우는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에서 실제로 있었다. 일본이나 한국, 중국에서는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전후 시기와 같이 국가와 사회 전체가 상승기운인 때 국제 경기의 결과가 국내외에 국위선양의 효과를 가져왔으며, 국민들에게 강렬한 고양감과 일체감을 주기도 했다. 상승기뿐만이 아니다. 오늘날의 일본처럼 사회 전반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폐쇄적인 기운이 만연한 때 국제 경기에서 선수 개개인이나 국가대표팀의 활약이 의기소침해 있는 국민에게 큰 위로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일본 내 텔레비전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에서 피겨스케이팅이나 수영 등 일본 선수의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들의 국제 경기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 사회 전체에 떠도는 강렬한 초조함과 불안감, 그리고 그로 인한 일본 선수의 활약을 갈망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하는 일본 선수에게 보냈던 기대는 국제 경기에서 일본 선수나 일본 국가대표팀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며 보냈던 그것과는 분명 성질이 다른 듯하다. 그것은 20세기 말 궁극의 절대 강자의 상징이었던 미국과 그 주변국들 사이에 놓여있는 미묘한 알력 관계와 심리적인 거리감 같은 것이다.

 
‘공헌’이 나타내는 심리적 위치 매김
투수냐 야수냐를 불문하고, 일본의 미디어가 일본인 메이저 리거의 활약을 보도할 때는 선수 개인의 활약이 팀의 승패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에 중점을 둔다. 그때 거의 예외 없이 사용하는 단어가 ‘공헌’이다. 투수 아무개는 완봉으로 팀의 승리에 공헌했다, 야수 아무개는 기회를 살린 적시타로 팀의 승리에 공헌했다와 같은 문맥이라고나 할까. 흥미로운 것은 린의 활약을 보도하는 중국어 미디어들도 같은 의미에서 ‘공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의 배후에는 미국 프로팀의 일원으로 참여한 영광과 더불어,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미국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의 선수가 미국 선수와 동등하게 맞붙었으며, 뿐만 아니라 미국 선수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 숨겨져 있다. 이는 유럽의 프로 축구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의 성적을 보도할 때와 비교해 보면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미국에 대한 동경이나 콤플렉스가 절묘하게 혼재되어 있는 대미(對美) 감정이 기쁨의 어투나 억양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제레미 린의 NBA 활약을 보도하는 중화권 미디어들의 열광을 보면 미국과 타이완 그리고 미국과 중국 대륙 간에 존재하는, 한마디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타이완 사람들 사이에서 린 붐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앞에서 언급한 메이저 리그 투수 왕 민에 대한 열광과는 다른, 미묘한 온도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린의 양친은 타이완 출신이지만, 린 본인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산소 때문에 양친의 고향을 찾았을 뿐, 타이완과의 거리가 그다지 가깝다고는 할 수 없다. 반대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미국인은 린을 자신들의 동포라 여기고 그의 활약에 열광했지만, 왕 민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출신의 선수들에 대해서는 야구단 일원으로서 축복할 수는 있으나 동포로 여기거나 그와 비슷한 친근감을 가질 수는 없다. 또한 린의 어머니 쪽 조모가 중국 대륙 저쟝성(浙江省) 출신으로 이른바 외성인(外省人)이며, 린 본인이 유튜브(YouTube) 인터뷰에서 “내가 중국인이라는 것에 긍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부모님이 타이완 사람이라는 것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에서 보여지듯, 린은 20세기 말부터 금세기 초기에 걸쳐 타이완을 석권하고 있는 편협한 타이완인 민족주의에 가담하는 성격도 아닌 듯하다. 반면, 린의 일련의 언급에서는 막대한 중국시장을 시야에 둔 비즈니스 전략의 흔적도 보인다. 그 배후에 중국시장을 노리고 있는 린의 스폰서 볼보(Volvo)스웨덴 자동차 제조회사의 사욕이 숨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배후와 함께 중국 대륙 측도 린에게 접촉을 시도했다는 경위도 있어, 타이완 측 팬들의 린에 대한 열정은 왕 민에 대한 그것에 비해 약간은 냉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타이완해협 양안관계의 개선과 긴밀화가 추진되고 있는 요즘 타이완과 미국의 관계가 급속히 소원해질 리는 없지만, 양자의 거리감에도 어느 정도의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타이완계 미국인 린의 활약에 대한 타이완 사람들의 차분한 열광은 역시나 미국, 중국, 타이완의 위치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린 붐 이후의 모습을 지켜보면 저절로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