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은 전체 면적의 64%가 산지이며 평균 기온이 28℃로 온난한 섬나라이다. 그중에서도 단수이(淡水)라는 도시는 서양의 문화가 상륙하는 지점이자 문화가 확산되는 관문의 역할을 수행한 우리나라 인천과 많이 닮아 있다.

 단수이는 옛날부터 무역항으로 번영했던 도시로, 현재 국제개방 항구가 있다. 타이완 북쪽 연안에 위치하며 그 해변의 아름다움은 감히 베니스에 비유될 정도로 낮과 밤이 가진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그 속에 매혹적인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타이완의 역사는 크게 16세기 이전, 네덜란드 식민지(1624~1662), 정씨 왕국(1662~1683), 청나라(1683~1895), 일본제국 식민지(1895~1945), 중화민국 시기로 나눈다. 이런 역사에 기인하여 외국 상인과 여러 이주민들이 생활하면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관광객들에게도 제일 인기 있는 도시 단수이는 지역의 역사, 문화, 시민 공동체를 적절히 살려 새로운 도시공간 활용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작품으로 변신한 공장
 단수이에서 처음 방문했던 곳은 ‘단수이문화지구(淡水文化園區)’이다. 이곳은 예전에 영국선박석유회사 쉘(Shell)의 저장창고로, 시가 고적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곳은 쉘이 토지, 부두, 창고 사용권을 불평등 조약을 통해 획득한 후 지어진 곳으로, 현재 단수이문화기금회(淡水市文化基金會)에 기부하면서 전시공간과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수이문화기금회는 쉘 기업전시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또한 방문했을 때는 기금회 이사장인 장우난(莊武男)의 소장품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품들은 대부분이 2,000년 전의 도기들로 옛 건물을 헐을 때 떼어낸 섬세한 작품들이다.

 타이완의 옛 건물들은 대부분 외관을 작품으로 장식했는데, 이는 건물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는 것이며,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전시장에는 기교 넘치는 유물들과 화려한 도자기류들로 가득했는데, 이 모든 것이 타이완의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단수이문화기금회(淡水市文化基金會)는 지역 전체의 문화를 아우르며 문화 창작 활동을 촉진시키는 단체이다. 사립기관 형식의 재단법인으로 정부의 보조를 받지 않고 민간인의 기부나 기업의 후원를 통해 모인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社區)대학1)을 운영 중이며 학교 건물에서 전시를 열기도 하는데 예술인에게는 장소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단수이는 정부에서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현대식 건물을 짓는 계획을 추진하고자 했는데, “옛 것을 지키고 가업을 살리자”는 주민들의 데모로 현재까지 옛 모습을 지키고, 또 노력하고 있다. 다가오는 10월에는 국제환경예술제를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모든 행사는 이곳의 주민들이 운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며 잃어버린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모습에서 현재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는 시멘트로 지어진 아파트가 생각이 났다. 문화와 역사가 가진 가치를 무시한 채 새로운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선교사 맥케이가 설립한 단수이교회
 이리 저리 꼬인 건물들 사이를 헤집고 도착한 단수이교회. 1872년,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조지 레슬리 맥케이가 설립한 교회로 종교를 넘어 의료, 교육, 기술, 문화 등에도 꾸준히 기여하는 바가 컸다. 조지 레슬리 맥케이(George Leslie Mackay, 1844~1901)는 먼저 임대주택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신도들이 늘어남에 따라 교회를 세웠고, 1933년에 조지 레슬리 맥케이의 단수이 도착 60년을 기념하여 재건하였다.

 재건사업에는 그의 아들 조지 윌리엄 맥케이가 교회를 설계, 감독하였는데 공간 확장과 실용성에 중점을 북미 스타일로 건설하였다. 교회 내부는 화려하지 않지만 아치형의 전형적인 중세 고딕 양식과 아기자기한 단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눈에 띈다. 현재 교회에 다니는 신도 수는 수백 명이 넘는다 한다. 지역 주민, 학생, 다른 교회의 기부금으로 운영 중이며 마을의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는 회의장으로도 쓰이는데 이는 종교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사실 타이완의 종교는 불교와 도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기독교의 입지는 약한 편이다. 그럼에도 교회가 지금까지 긴 세월을 지내올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먼저 종교보다 의술로써 주민들에게 다가갔던 힘이 컸다고 전해진다.

영국 성공회 선교사였던 랜디스(Eli Barr Landis, 1865~1898)가 1890년 인천에 와서 선교활동과 함께 의료구호사업을 전개한 사례도 이와 비슷하다. 단수이 해안가에는 조지 레슬리 맥케이를 기억하고자 세운 동상이 있는데 불현듯 인천의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생각났다. 어느 나라이건 한 시대에 한 인물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한 것 같다. 교회 근처에는 ‘단수이 아트 갤러리’가 있는데, 단수이교회를 시대별로 그린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인상 깊었던 점은 단수이교회의 목사 또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 그림 또한 수준급이었다. 단수이 아트 갤러리는 ‘녹색 개념’이라는 건축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는 건물이며 2011년 2월에 완공되었다. 이곳은 경계 없는 예술을 추구하며 현지 작가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단수이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관람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공감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 무작정 종교 색을 내세우지 않고 지역 주민과 예술가와 화합하여 평화롭게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교회와 갤러리를 보며 긴 세월 쌓아온 그들의 남다른 문화 소양을 읽을 수 있었다.
 

 견고한 붉은 빛깔의 요새 산 도밍고
 울창한 나무숲을 이루고 있는 산 도밍고(Fort San Domingo)는 스페인에 의해 1629년에 지어진 최초의 요새로 국가 지정 1급 유적지이다. 1867년부터 영국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가 미국대사관 등의 관리를 거쳐 1983년 영국영사관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군사요새와 사무실의 흥미로운 조합이 탄생되었다.

 현재는 타이완의 소유로 일반인에 공개되고 있다. 지금까지도 특유의 붉은 빛깔을 잃지 않으며 300년의 세월을 버텨온 튼튼한 석재와 벽돌이 놀랍도록 견고한 요새이다. 사각의 빨간 지붕 때문에 홍마오청(紅毛城)이라고도 불리며 주위의 녹색과 바다의 푸르름과 한 데 어울려 매우 아름답다. 지금은 상류에 훌륭한 다리가 건설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강을 건너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아직도 하류에서 맞은편 기슭으로 건널 때는 나룻배를 사용한다고 한다. 바로 근처에는 대외무역 개방 후 외국인 임원을 위해 지었다는 세관이 있는데, 그곳은 아름다운 집으로 매력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백악관으로도 불리는 화이트하우스도 함께 위치해 있는데, 특별전시와 함께 이상적인 오후 관광을 보낼 수 있었다.

 단수이의 여러 명소들을 지나오며 크게 놀라웠던 점은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문화와 역사를 가치화시켜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사실이었다. 주민들이 자신과 환경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부심과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원활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한시적으로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훌륭한 관광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단수이라는 도시를 경험한 것은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데 지역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하나의 사건이었다. 현재 각 도시마다 결과물 만들기에 급급한 도시문화정책보다 주민들의 소통을 통한 내실화에 중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문화라고 하면 보통 특별한 것으로 생각해, 여행을 다닐 때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화는 이미 우리 삶과 함께 하고 있으며 일상을 구성하고 있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보면 문화를 접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텐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이 든다. 단수이는 편안한 문화여가의 공간이며, 또한 작가들에게는 과거의 전통을 찬미하고 새 것을 창조하는 영감의 기회를 찾게 하는 곳이었다. 우리 역시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고, 문화적 다양성을 넘어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단수이를 떠나며 방문하는 장소마다 찍었던 스탬프가 생각이 났다. 스탬프를 찍는 일은 이정표를 남기고 싶은 관광객을 위한 주민들이 세심한 배려였다. 단수이는 앞으로도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기억과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또 어느 곳의 이정표를 찍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