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러 내려오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어 왜 그런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문화예술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것 같다. 내 보기에도 확실히 문화 쪽 사람들이 많이 오긴 한다. 그래서 일부 호사가들은 ‘문화이민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적 통계조사나 설문은 없었으니 구체적 데이터를 근거로 이주자 특성이나 이유 등을 거론하기는 곤란하다. 또 지면의 한계가 있는 터에 굳이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지자체가 도시민의 자기 지역으로의 귀농귀촌에 목말라 하는 것에 비해 무관심이 현저히 느껴지는 제주도의 무신경한 도정이 답답할 따름이다.

 급격한 시대변화에서 ‘이주’, 혹은 ‘귀농귀촌’이 가지는 사회적 배경, 파급효과, 바람직한 대응방안 등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것은 이러한 요소들이 지역의 미래비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주민들이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지역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또한 이주민이 선주민 사회와의 통합 방식에 따라 지역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교통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구방화(Glocalization)’는 이주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주민에 대한 정책은 중요한 사회정책으로 대두되어야 마땅하다. 젊은 인재의 유출, 고령화, 공동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수도권 이외의 ‘지역’은 더욱 더 그러하다. 지난 10여 년간 약 3,000개의 마을이 사라졌다는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문화이민자는 적확한 표현일까? 이것은 문화예술인이 이주했다는 걸 의미하는가? 아니면 문화적 이유로, 혹은 문화활동을 위해 이민을 했다는 걸까? 상당히 혼란스럽다. 아마도 근래의 제주 문화이민자의 경우는 예술의 활성화와 접근성, 즉 예술활동의 메카라는 이유 때문에 이주를 하는 일반적인 문화 이주 사례와는 다르다는 측면에서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제주의 자연환경은 아름답고, 그곳의 역사와 신화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은 줄 수 있을지언정, 문화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예술시장의 규모가 작아서 문화활동을 하기에는 적합하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문화이민자들의 활동의 양과 수준이 눈에 띄게 의미 있다고 할 수준도 아직은 아니다.

 따라서 제주로의 ‘문화이주’가 활발한 근본적 원인은 좁은 의미의 문화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문화적 이유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태적 가치의 확산, 무한경쟁 사회에서의 탈주, 느린 삶과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환경 추구 등 ‘삶의 방식’의 전환을 꿈꾸는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 내재한 여러 모순들이 극에 달하고 있고, 그 폐해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대안적 삶의 방식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데, 그런 흐름이 문화, 예술인들의 기질과 철학에 잘 맞아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실제로 제주로 이주한 예술가들에게 물어보더라도 자연, 주거 등 환경적 요인들을 언급하거나, “그냥 좋아서” 등 싱거운 대답으로 돌아오지 문화활동 계획을 거창하게 풀어놓는 경우는 드물다. 문화활동은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수단 정도로 활용하는 정도이고, 오히려 게스트하우스, 카페 등 생활문화 차원의 다른 일을 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현재 제주도에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엄청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이주민들이 만든 것이다.

 그러면 이주민들이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얼까? 이들 업종에 대한 도시민들의 로망도 있을 것이고, 직장과 달리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노동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제주는 일자리가 부족한데다 임금이 낮은 편이다. 미리 직장을 구해 놓거나, 농업 등 다른 일을 하지 않는 한 와서 좋은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삶의 방식’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이에 따라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이 일도 만만한 일은 결코 아니다. 생각보다 노동력이 많이 드는 일인데다 수익을 내는 것도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강원도 지역, 지리산 지역, 제주도를 대상으로 귀농귀촌한 사람들의 특성을 가지고 얘기한 걸 들은 적이 있다. 강원도로 간 사람들의 특징은 산에 자주 다니며, 공동체성이 약한 편이고, 지리산으로 간 사람들은 공동체성이 강하며, 철학적인데다 말이 많다는 거다. 이에 반해 제주도로 간 사람들은 성격이 좀 느긋하고, 태평하다는 것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기지만 상당히 그럴싸하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삶의 방식과 행태가 달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개인의 철학과 성향이 이주 지역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내 보기에 많은 사람이 제주를 이주 지역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아름답고, 청정하며, 특색 있는 자연환경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거리는 멀지만 항공을 통해 서울로의 쉬운 이동성, 제주 어디에 살든 큰 도시에의 쉬운 접근성, 일 년에 8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의 방문으로 인한 파생효과에 대한 활용 가능성 등이다. 일부는 이러한 이점들을 잘 살려 재미있는 삶을 살지만 상당수는 처음의 기대와 달리 생계와 정착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제주에서도 농촌지역에 자리 잡은 경우, 기존의 공동체에 스며들어 마을의 일원으로서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제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상 육지의 내부식민지로 끊임없이 침략과 약탈을 당해왔다고 할 수 있으며, 4·3사건은 제주민들의 가슴 깊은 곳에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적 켜를 함께하는데다 씨족이 강하게 남아있는 마을 내 인간관계 사이에서 이주민이 파고들 여지는 매우 비좁은 실정이다. 문화적 차이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담을 쌓고 살아서는 삶이 너무 척박해질 것이고, 조급하게 친해지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면서 천천히 정착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제주로 이주한지 만 3년이 된 내 경우도 남들이 볼 때는 문화이민자일 것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정착해 살고 있는데 제주에 오자마자 농촌의 문화 활성화를 위한다는 취지로 시행된 농림부 지원사업 ‘신문화공간 조성사업’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아 바쁘게 일했다. 가시리문화센터, 조랑말박물관, 창작지원센터, 목공방 등 하드웨어를 조성했고, 마을 자원조사 및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마을 문화지도 제작, 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시 운영,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학교 운영, 공공미술 프로젝트 추진, 마을축제 개최 등 소프트웨어, ^{휴먼웨어설비, 기계, 제품 등의 설계 및 생산 과정에서 사용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기계적인 환경을 인간 환경에 맞게 제작한 것} 사업들을 진행했다.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 많은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지역 내 예술생태계를 위해 가급적 제주도 내 예술인들을 참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육지에서 참여한 예술인이 더 많았다. 거기에는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 레지던시라는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커뮤니티 아트’라는 주제 하에 마을에서는 작가에게 주거와 일정한 생활비를 지원하고, 작가는 마을과 주민을 주제로 창작활동을 하거나 주민참여 활동, 혹은 교육 등을 진행하였다.

 사업의 결과는 차치하고, 흥미로운 것은 레지던시에 참여한 작가들 가운데 일부가 돌아가지 않고 제주에 눌러 앉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간 작가 가운데 일부는 이런저런 일로 지금도 마을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또한 가시리가 ‘문화마을’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주민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며, 그 가운데 문화, 예술인 범주에 포함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문화 활성화가 마을에 활력을 만들고, 사람을 모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증명되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이민자들이 제주사회에 일정한 자극을 주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기존의 문화적 감성과는 다른 튀는 아이디어와 아이템으로 접근하는 생활문화 공간들이 등장함으로써 관광기반시설이 확장되는 부분이 있고, 제주문화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과 콘텐츠의 다양성 증대, 소통 범위의 확장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문화이민자가 가져온 단기적인 가시적 효과에 주목하기보다는 그들이 ‘문화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제주에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한다.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시설을 구축하고, 창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선주민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주문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유배문화이다. 추사 등 제주에 유배 온 많은 선현들이 남긴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들이 제주문화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문화의 교류는 필연적으로 문화적 접변을 낳는다. 이것이 인간과 자연에 유익한 것으로 남기 위해서는 사람과 문화가, 그리고 그 안에 내재한 창의성과 재능이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문화를 이해하고, 더욱 발전시키려는 이주민의 자발적 노력과 더불어 이들을 올바르게 수용할 수 있도록 제주도의 정책적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며, 또한 선주민들의 포용성도 더욱 커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제주문화가 지역의 전통과 개성이 보존되면서도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풍요로운 섬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