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가까운 나이로 한국사회에 살자니, 가족과 친지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예외 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결혼은 언제하니?” 어렸을 적엔 나이를 먹으면 그냥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련의 과정이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어떤 차이도 없이 자연스레 ‘발생’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2012년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결혼이다. 결혼에 대해 물으면 친구들은 이야기한다. “결혼? 돈이 있어야 하지!” 20대 중반 직장 여성들은 초봉 2,500만원을 기준으로 할 때 취업 후 3년에서 5년 동안 꾸준히 돈을 모아야 겨우 결혼 자금을 생색내며 보탤 수 있는 돈이 생긴다. 이것도 오로지 “결혼 자금”에만 국한된, 그나마도 부양할 가족 없이 열심히 저축만 해나갔을 때의 이야기다. 남성들은 여성보다 연봉이 높으니 좀 낫겠지만, 결혼은 혼자 하나? 결국 대출을 받아 결혼하는 커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결혼불능세대』는 결혼불능자들의 증가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판단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다. 각자 사회디자인연구소장과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두 명의 저자 김대호, 윤범기가 대화를 나누며 문제를 공유하고 해답을 찾아가면서 다른 분야의 손님을 초대해 이야기를 더해 가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그래서 “결혼불능"이라는 꽤나 파격적인 제목을 달고 있지만 오히려 전반적인 사회현상을 분석한 책에 가깝다. 이 책에서 결혼은 개인적이고 절대적인 주제가 아니라 함께 엮여있는 다른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하나의 단서 역할을 한다.

 책에 따르면 현재 20~30대 대한민국 남녀들은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다. 사회가 발달하고 사람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우리는 인생의 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을 찾게 되었으므로 결혼을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지만, 한 세대 자체가 이렇게 결혼을 미루고 있는 것은 결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정치경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책은 결혼불능이라는 현상에 대해 식상하고 미시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경제·사회·교육·정치 이렇게 서로 맞물려 있는 분야의 정책들을 하나씩 개선해나가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일단 정부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까지 돈이 돌게 하기 위해 은행 설립의 기준을 낮추고, 기업의 고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비정규직 사용제한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제도로 노동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용보험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혼만 하면, 그 후에는 문제가 없을까? 가정을 꾸린 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출산과 자녀 교육일 것이다. 특히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에 중점을 두는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부모들이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한다. 이 책에 따르면 이런 사교육 집중 현상은 학교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등 교육부터 대학처럼 학점제를 도입하고 맞춤형 수업, 절대평가, 교실 쪼개기를 한 세트로 실행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교사들이 담당했던 수업 외 행정업무는 따로 인재를 고용해서 맡길 것을 제안한다.  고용과 교육,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대신 성적에 대해서는 입학사정관제를 보완해 지금보다 더 정확하고 정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야는 중요하지만 사실 가장 등한시 되는 분야 바로 정치다. 당장 내일 밥 먹고 사는 일에 정치는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국가를 운영하고 정책을 만드는 일과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은 지금처럼 국회의원이 지역의 이익만 생각하게 만드는 지역선거제도보다는 비례대표제나 선출제를 통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해가 높고 능력이 있는 인물들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도덕적 올바름을 향한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국가의 이익이라는 공공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살펴보면 알 수 있듯 『결혼불능세대』는 그 내용과 논리가 그리 익숙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결코 특정한 권력 집단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 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당장 수용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게다가 이 책에 실린 해결책들이 결코 완벽한 것도 아니다. 제도들을 도입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것은 당연하고, 실제로 도입한다고 해도 이전엔 차마 예측하지 못한 체계상의 간극들이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한 예로 이 책이 고용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했던 연대임금제를 좀 살펴보자. 이 책에서는 연대임금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양보, 대기업과 시장 원리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사회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개인의 선한 본성’이나 ‘기업 윤리’에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게으르고 무책임한 기대가 아닐까?

 하지만 이런 틈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체제 개선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분명 나름의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 큼직큼직한 제도의 틀을 잡은 후 생기는 간극들은 좀 더 규모가 작고 촘촘한 제도들로 채우면 된다. 현재 진보신당과 통합한 사회당이 2007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기본소득 운동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의 참여와 더 치밀한 대안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점차 틈을 좁혀 나간다면 적어도 4년, 5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선거에 모든 것을 거는 무모하고 허망한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저자인 윤범기 기자는 머리말에 “결혼하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해법은 바로 정치에 있다”고 적었다. 단순히 관심을 가지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정치를 ‘해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