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외 몇 권의 문제작으로 국내에 제법 이름을 알렸던 중국의 작가 옌롄커(閻連科)의 새 작품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다. 『사서(四書)』라는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제목(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유가의 그 ‘사서’와는 그야말로 티끌만큼의 관계도 없다)을 달고 있는 작품이다. 앞서의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확실히 문제적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이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금서(禁書)’의 타이틀을 달고 소개되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된 적은 없다. 여러 출판사들로부터 잇달아 출판을 거부당했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인데, 사실 여부의 확인은 어렵지만, 어쨌든 이 주장만으로도 금서의 아우라를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 소설을 번역, 출간한 한국 출판사와 서점의 마케팅 포인트 역시 여기에 맞춰졌다. 예스24는 “21세기 중국판 금서”로 책 소개의 타이틀을 달았고, 교보문고 인터넷 서점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에 이루어진 지식인 탄압을 다룬 내용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 정권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자국에서는 출간 금지를 당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적어도 이 소개는 절반 이상이 거짓말이다. 그러나 리뷰들에는 온갖 찬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색을 하고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형식상의 파격적 실험성이라는 부분을 제외하면, 작품의 구성이나 미학적 수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작가적 이해 등에서 결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실험적 수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앞서 작품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날렵하게 중국의 현대사 속에서 민감하고도 잘 팔릴 만한 제재와 주제들을 골라내는 데 성공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장군 사택을 배경으로 한 장군의 치정사에 중국 사회주의 시기의 핵심 구호를 오버랩시키고, 『딩씨 마을의 꿈』에서는 허난성(河南省)의 이른바 에이즈 마을이라는 쇼킹한 배경과 소재를 들고 나오더니, 이번에는 대약진운동 시기(1958~1960 초)의 지식인 노동개조소를 소재로 들고 나왔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노동개조소에는 이름도 얻지 못한 온갖 지식인들이 ‘종교’, ‘학자’, ‘작가’, ‘음악’, ‘실험’ 등의 희한한 이름을 단 채 호출되어 나와 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의 아이들’(홍위병을 가리킴)을 쉽게 연상시키는 ‘아이’의 통제와 지시 하에 대약진 시기에 중국의 수많은 인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밀을 키우고, 철강 제련 사업에 몰두하고, 또 기근에 쓰러져간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대약진 시기에는 정말로 이런 일들이 거의 전국에 걸쳐 일어났다. 그것은 확실히 중국과 중국공산당의 치부이며, 진지하고 아프게 반추되어야 할 역사적 사유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민감하고도 중요한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와 소설적 장치와 언어들은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특히 중국사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있지 못한 외국의 독자들로 하여금) 이 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사유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를 하는 위장막에 더 가까워 보인다. 끊임없는 과장과 희화화로 점철되어 있는 이 그로테스크한 위장막은 대약진운동의 수많은 중층적 문제들을 그저 그로테스크한 ‘반지식인주의’ 정도의 단순한 문제로 분식해 내는 데에 성공적으로 기여할 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비민주성에 반대하는 수많은 국외 독자들을 내용 없는 반공주의로 내모는 데에서도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이 피의 역사를 중국공산당의 무지와 ‘반지식인주의’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분식해 낼 경우, 그것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반지식인주의적 태도를 청산해 버린 오늘날의 중국공산당에 대한 면죄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매우 저열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역사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속은 것은 한국의 독자요, 웃는 것은 작가와 출판사다. 그는 여전히 베이징작가협회의 일급 작가로 활약 중이며, 세계적인 양심적 작가로 날이 갈수록 떠받들어지고 있다. 그렇게 그는 자랑스런 금서 레떼르가 붙은 자기 작품들을 팔러 다닌다. “자! 역사를 팝니다. 황당무계하고 우스꽝스러운 중국의 역사를 팔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