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안(西安)에서 태어났다. 고도(古都)에서 자란 다른 아이들처럼, 나 역시 이 도시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다. 학생이었을 때의 어느 저녁, 성벽을 따라 자전거를 탈 때, 오래된 벽돌이 내뿜는 건조한 냄새와 명암이 교차하는 그림자가 간혹 나를 스쳐 지나갔던 기억처럼 말이다. 그때 나 자신이 거대한 청동 그릇 안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도 그릇 위에 내려앉은 두터운 먼지는 날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그릇에는 천 년 동안 집적되어온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먼지에는 진(秦, BC 221∼BC 206), 한(漢, BC 202∼220), 당(唐, 618~907) 등 열 세 왕조의 흥성과 쇠퇴가 녹아있다. 진시황릉(秦始皇陵)의 병마용(兵馬俑)에서 화청지(華淸池), 건릉(乾陵), 대안탑(大雁塔), 법문사(法門寺)까지 시안의 지하철은 여덟 곳의 고대 문화유적지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지하철 공사는 시정부에게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to be or not to be)’ 라는 철학적인 명제를 던져주었다. 다옌타의 종소리는 창안루(長安路) 삼거리를 통과해 시안메이슈쉐위안(西安美術學院)에 바로 닿을 수 있는데, 그곳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옛 사람과 마주쳤던 기이한 경험을 생동감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어릴 적 나는 잡초가 무성한 산봉우리에서 진흙을 가지고 놀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곳이 곽거병(  去病, BC 140~BC 117)^{한나라 무제(武帝, 재위  BC 141~BC 87) 때 명장}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인접한 곳에 있는 위청(衛靑, ?~BC 106)^{한나라 무제(武帝, 재위  BC 141~BC 87) 때 장군}의 묘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무더기였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의 간섭도 그것들의 존재감 없음을 희석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역사의 먼지가 고요하고 자욱한 공기 중에서 모든 생명에 침투하길 원한다. 나는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지칠 줄 모르는 그것들의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에나 늘 존재하는 그것.

 2009년 건축학 전공 학생으로 친구와 함께 로마로 조사 여행을 떠났다. 로마의 중심엔 테르미니(Termini) 기차역이 있는데, 지하의 지하철역과 기차역 앞의 광장에는 고대 로마의 성벽과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여행객들은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이 성벽에 눈길을 빼앗기고, 얼룩덜룩한 벽면에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로마에는 부서진 벽, 수로 등 겉으로 보기에 관광 자원으로서 가치가 없는 유적들이 널려있다. 그래서 그곳은 로마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 100~BC 44)가 서 있었던 그 자리에 몇 천 년 후의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로마가 역사 문화유산을 존중하는 것과는 달리, 현재 시안의 도시건설 태도는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의 소설 제목처럼 오만과 편견’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단어는 경제 발전을 위한 대규모 토목 공사 중 엄청난 유적지를 없애버린 사실에서 기인한다. 일찍이 시안은 이데올로기 등의 문제로, 또한 경제 발전으로 우월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자원개발 점령을 주도하기 위해, 일시적인 개발 열기로 혹은 고대 문화를 하찮게 여겨서, 무수한 문물과 유적지를 훼손하고 문화사상 전례 없는 대참사를 낳았다.

 현재 시안은 얄팍하고 조급한 고대 문화 모방에 열중하고 있다. 시안의 시다졔(西大街)는 고대 거리를 흉내 낸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고, 길과 인접한 건축물은 모두 한당(漢唐) 시기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당나라 건축물을 모방한 저속한 시멘트 건축들, 베이징(北京)식으로 고대를 모방한 세속적인 건물들이 곳곳에 우뚝 솟아 있다. 이는 갑작스럽고, 눈에 거슬리며, 그 어떤 문화적인 함의, 시각적인 편안함과 정신적인 즐거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과정 중에 오히려 오래된 건축물과 성황묘(城隍廟)들이 밀려났고, 그것들은 무관심이라는 당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예술은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위대한 민족은 반드시 포용성을 지녀야 하며, 건축, 즉 예술 그 자체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로마의 테르미니 기차역처럼 말이다. 그곳은 유리벽과 LCD 전광판 등의 신소재와 오래된 성벽이 공존하고, 성벽의 이끼들은 도도한 귀족처럼 두드러져 보인다. 그것이 곧 새 문화를 포용하는 것이고, 다원 문화인 동시에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는 화려한 외관의 높은 빌딩들 사이에서 쉽게 등한시되는 고묘(古廟) 및 부서진 집들이 완전히 수리되어 보존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때 보존되는 것은 한 시대의 건축 예술 풍격이며, 그것들은 반드시 충실한 증거로서 존재한다. 또한 고대 문화에 대한 존중의 증거이자 교육의 대상으로서 강조된다.

 종교 건축을 예로 들어보자. 사원은 그 자체로도 건축적 의의가 있고, 제사의 기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건축 풍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건축 문화가 충돌하여 만들어낸 결과이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셀레시즈(Selexyz) 서점의 전신은 800년 역사를 지닌 도미니크 성당이며, 이 때문에 성당 서점이라고도 불린다. 현대식 서점과 고딕 양식의 건축 풍격이 서로 어우러져 장엄한 성당의 아름다움이 고요한 서점으로 탈바꿈했다. 대비되는 예로 시안 샤오자이(小寨) 근처의 대흥선사(大 善寺)는, 내가 어릴 적, 고목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었고, 적절한 위치의 비교적 낮은 사원에 회색 벽과 검정 기와가 놓여 있었으며, 몇 개의 주요 전당의 처마 끝은 두공 형태로 되어 있었다. 또 이 사원은 사람들에게 청신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었으며, 명청(明 ) 이래로 형성된 지역적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몇 차례 보수를 통해 유리 지붕을 얹었고, 큰 광장이 생겼으며, 자금성(紫禁城)의 조각 문양과 낮은 주춧돌을 저속하게 모방하여, 퇴폐적인 현대 도시에서 그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건축은 역사의 증거이자, 역사 연구의 수단이다. 특히 종교 건축물은 막중한 역사적 임무를 지니고 있다. 창춘( 春)의 전국충령묘(建國忠靈廟)^{만주국(滿洲國, 1932~1945) 정부가 순직한 문무 관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축}한 사원는 남색 유리기와를 사용하여, 중국식 건축의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묘당의 문은 합각을 사용하고 있고, 문 앞의 네 기둥은 단순한 두공에 끼워 넣었다. 이는 현대적이면서도 당나라적인 것으로, 새로운 예술 운동이 아시아에 도착한 이후의 일본 건축 풍격을 엿볼 수 있다. 시안의 대안탑은 다른 것을 대표한다. 당나라 고승 현장(玄 , 602?~664)이 629년~645년 인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자은사 서원(慈恩寺西院)에 인도의 안탑(雁塔) 형식을 모방한 전탑을 만들었다. 두 도시가 동서양 건축의 융합을 받아들인 후 창조해 낸 결과물은 달랐으며, 이는 연구 가치가 높다. 현재 시안의 많은 옛 사원들이 부서진 채로 남아있어, 건축 예술의 측면에서 이 사원들의 모습에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언젠가는 로마의 기차역, 스페인의 카르타헤나(Cartagena)에 있는 고대 로마 공무기관의 고대 유적지처럼 새롭게 건축되는 부분과 주위의 다양한 풍격의 건축이 하나로 어우러진, 규모와 구조 방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길 바란다.

 고대 문화 유적과 도시정체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흩어져있는 고대 도시의 작은 골목들에 있는 오래된 민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일본의 건축가 아시하라 요시노부(芦原義信, 1918~2003)는 『길의 미학(街 みの美 )』에서 동양의 건물과 길 사이의 경계는 다소 모호하고, 실내에서 실외까지의 과도 공간은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어,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또한 이 때문에 실내에서는 실외를 볼 수 있고, 실외에서는 실내를 대략적으로 살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구의 길은 길을 따라 정연하게 지어진 건물로 인해 실내와 실외의 구분이 엄격하여, 실내는 완전히 개인적인 공간이고, 실외 공간은 공공장소로서 교류와 교역의 기능을 지닌다고 한다.

 허징탕(何鏡堂)¹⁾은 그의 강연에서 2010상하이엑스포 중국관의 중국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중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중국관이 "보자마자 중국의 것"임을 알 수 있었던 점이라고 한다. 이는 『허징탕건축인생(何鏡堂建築人生)』 중 중국관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부정할 수 없이, 중국관의 색채와 형식은 모두 중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비록 모두 동양의 건축가들이나, 중국과 일본의 건축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일본의 건축물은 실내 공간이 거리를 향해 열리게끔 만들어, 완전히 과도적인 공간을 만들어 실내외의 엄격한 구분이 없다. 하지만 중국의 건축은 긴 시기 엄격한 통치를 받은 영향 때문인지 다르다. 시안의 옛 민가들을 예로 들어보면, 이들은 모두 길을 따라 막혀있고, 높은 벽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하지만 그 내부의 정원은 널찍하여, 공공 공간으로의 실내 정원과 실내 공간은 긴 복도 등의 과도적인 공간과 이어져 있으며, 이는 이후에도 계승되어, 특히 시안의 고가대원(高家大院), 요가대원(姚家大院) 등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곳의 주거 환경은 다소 열악하고, 상하수도관이 한 건물에 한두 개밖에 되지 않지만,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생활 중 ‘어쩔 수 없이’ 공공 공간으로 나가게 되었고, 어느새 이 공간의 사용 빈도가 늘어, 점차 근대 중국의 동네 형태가 되었다.

 시안의 루당(蘆蕩) 골목의 요가대원 건축물들 역시 개조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옛 건축물의 정원들을 돌아보면 농후한 생활의 정취가 우리를 전염시킨다. 어수선한 정원, 거목 한 그루는 이 정원의 세월과 끊이지 않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수원(水源)은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며, 쓰레기처리장에서는 일상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처리한다. 한 집에는 생명이 있고, 그것의 신진대사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의 흔적과 출생, 성장, 쇠락도 있다. 정원의 나무, 수원, 쓰레기처리장과 잡다한 물건들이 쌓여 있어 아이들에게 놀이의 장소와 재료를 제공하는 곳들이 집의 생명력을 보장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또한 잡다함 속의 풍부한 공간의 층차는 실제로는 그리 크지 않은 집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면서, 그곳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시장은 폄하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사람들은 시정잡배들에 무관심해졌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안의 많은 민가들이 정부의 응급구조성 보호 아래, 다시금 새 생명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옛 정원 문화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도시 공간의 합리성을 획득하는가의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새로운 과제이다.
중국의 건축은 반드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우리의 이웃에서 영감을 얻고 공간의 질서를 찾아야 하고, 중국 건축의 혼을 얻을 수 있을 때만 현대적이면서도 중국적인 건물을 완성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큰 지붕과 빨간 벽돌, 푸른 기와를 모방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시안의 지역 락 밴드 노래 중에는 “여러 차례 난 종고루(鐘鼓樓)에 있었지만, 종과 북소리를 듣지 못했지. 여러 차례 난 옌샹루(雁翔路)에 서 있었지만, 큰 기러기가 나는 것을 보지 못했지.”라는 구절이 있다. 한당 시인의 술 주전자가 엎어지고, 오래된 미음과 옥빛 술이 푸른 벽돌, 낡은 기와의 틈 사이로 흘러 들어간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이것이 이야기라고 말하겠지만, 오히려 이것이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상처가 될까봐 두렵다. 종횡으로 배열된 진시황 병마용 행렬 앞에, 도자기 가마에 제를 올리는 여자가 활활 타오르는 큰 불꽃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독자들은 이것을 단지 전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이것이 500개의 헤비메탈 밴드도 연주해내지 못할, 온몸을 전율시키는 역사시라고 생각한다.

 문화유산의 어떤 하나의 응고된 순간도 공격적인 도시정체성 기획에서 모두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 시안의 모든 고대 건축물처럼, 그것들은 묵직하면서도 포근하며, 우리는 그것에서 사람들 사이의 연기와 불꽃을 볼 수 있고, 역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안을 떠도는 먼지들처럼 말이다.